〈 13화 〉 3. 재가 내리는 땅
* * *
3.재가 내리는 땅(4)
"..."
힐끗.
결국은 길 주변의 모든 무덤을 원래대로 돌려놓은 소녀는 내가 성호를 긋자, 바로 옆에서 내 손동작을 보고는 자신도 따라서 성호를 긋는다.
"반대로 했잖아."
문제 될 건 없지만 괜히 또 참견해버리고 말았다.
손의 방향을 반대로 했다고 그 마음가짐이 변하게 되는 건 아니었지만 어차피 하는 거라면 제대로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었다.
".. 이렇게?"
이제야 제대로 된 성호를 그을 수 있게 된 소녀는, 조용히 그들을 위해 기도를 올린다.
사실 기도가 어떤 것인지. 누구를 향해 하는 것인지도 모를 테니, 저건 기도라기보다는 얼굴모를 누군가를 위한 따스한 한마디다.
"다음, 하늘... 꼭.. 푸르길. 바랄게."
내가 소녀의 모친 무덤 앞에서 중얼거렸던 그 말을 비슷하게 따라 하며 기도를 끝마친다.
"..."
그만한 거리였으니 수인의 청력으로 역시 듣지 못했을 리 없나.
... 괜히 어색한 기분이다.
"이제 슬슬 출발해도 되겠지."
"... 응."
쿠구구구구....
마을의 대로가 끝나갈 즈음 나타나 눈앞으로 길게 뻗어나 있는 다리는, 이 넓고 깊은 협곡의 사이를 잇고 있는 만큼이나 거대했으며, 아직까지도 파괴되지 않은 이유가 단번에 납득될 만큼 견고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셀틱에서 북대륙으로 넘어갈 수 있는 세 개의 다리중 나머지 두 다리의 경우 마물이 아닌 사람들의 손에 의해 직접 무너져 내린 것이다.
추락한 용이 자신의 몸을 숨기기 위해 내뿜은 검은 연기가 사람들을 집어삼키고 온갖 마물들을 뱉어냈기에 그것들이 셀틱으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연결된 대교들을 전부 파괴하려 했지만, 그런 와중에도 이 다리는 무너지지 않았다.
다른 대교들은 철제 구조물과 부유석, 그리고 마법을 이용하여 만들어졌기에 비교적 무너뜨리기 간단했지만, 아주 오래전 직접 커다란 바위들을 조각내어 하나하나 쌓아 만들어진 이 건축물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했을뿐더러, 도망치던 북대륙의 주민들이 나머지 두 다리가 파괴되자 유일하게 남은 이곳으로 전부 몰려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리를 무너뜨리기 위한 작업은 반 이상 진행된 상태였지만, 난민의 행렬과 바짝 뒤를 쫓은 마물들의 습격으로 결국 지금은 이렇게 방치된 상태다.
아, 그러고 보니 잊을뻔했다.
"이걸 잡고 있어."
"..."
나는 늘어진 쇠사슬 하나를 가리키며 소녀에게 말했고, 작은 손으로 이를 꼭 붙잡은 그녀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움찔..
낯선 손길이 머리로 다가오자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경계하는 반응을 보여주는 소녀의 시선을 무시한 채로 대체 얼마 만인지 모를 성양문을 읊었다.
"가진 것 없이 태어나 오직 빛을 좇으며 살아온 어린 양에게 당신의 가호를, 그림자를 걷어낼 의지를."
저주받은 땅에 발을 내딛으려는 것을 자살이나 다름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쿠구구구구구...
그리고 그들의 말은 그리 틀린 것이 아니다.
협곡 아래로 물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오고 있기는 했지만, 내 발걸음에 따라 함께 울려 퍼지는 이질적인 쇳소리를 듣고 그것들이 몰려올 거라는 것 정도는 인지하고 있었다.
"..."
마치 작은 항마의 결계를 보는 것처럼 소녀의 몸 주변으로 아른거리는 신성 보호문을 확인한 나는, 겉보기에는 크게 위험해 보이지 않는 다리 위에 올랐다.
검붉은 하늘 아래, 깊은 협곡은 어둠으로 가득 들어차 있다.
들려오는 물소리만이 저 아래에 강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줄 뿐이다.
"... 꽉 붙잡아."
그리고, 정확히 다리의 절반 정도를 건너왔을 즈음이었다.
끄그그그그그그그극...!
그그그그그극..!!
그그그그그그그그그극!!
단단한 바위 위를 날카로운 무언가가 거칠게 긁어대는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 소리는 다름아닌 다리의 아래에서부터 가까워지고 있었고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소녀가 쇠사슬을 양손으로 잘 붙잡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꾸르르르르르르륵!"
징그러운 울음소리와 함께 협곡 아래에서부터 솟아오른 어두운 실루엣.
하나, 둘..
가장 먼저 솟아오른 몇몇 검은 형체를 따라, 뒤이어 검은 안개, 혹은 그림자처럼도 느껴지는 희미한 검은 덩어리들이 셀 수 없이 솟아오른다.
그 수는 어림잡아 수천.
"쿠르르르륵..!!!"
마치 거대한 파도가 덮치는 것처럼 수많은 그림자들이 다리 위로 쏟아져 내린다.
이 검은 마물에게 유일하게 형체가 존재하는 곳은 입.
눈이나 귀 따위도 존재하지 않는 이 마물은 유일하게 입만큼은 달려있다.
죽 찢어진 입에 날카로운 이빨이 제각각 다른 크기로 한가득 달려서는 일제히 그 아가리를 벌리고 날아오고 있으니, 불쾌한 소음과 더불어 하늘을 뒤덮은 이 마물 무리의 습격은 그 먹잇감을 당황시키기에는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쾅...!!!"
하지만,
하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는 주먹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검은 덩어리들이 속절없이 터져나가며 주변으로 흩뿌려진다.
내 손 주변으로 펼쳐진 항마의 결계는 입을 제외하고는 실체가 없는 이것들을 상대로 직접적인 타격을 주기에 용이했다.
"으윽.."
쩔그렁! 철컹!
소녀의 몸을 보호하고 있는 항마의 결계는 이것들의 이빨에는 흠집 하나 나지 않을 테지만, 와서 부딪히는 그 충격으로 인해 소녀는 튕겨나가지 않기 위해 있는 힘껏 쇠사슬을 붙잡고 있어야만 했다.
역시나..
굶주리고 쇠약해졌다고는 하나 수인들 중에서도 우월한 신체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는, 민첩함과 더불어 근력까지도 균형 좋게 타고난 늑대 수인답게도 결계를 두들기는 마물들의 공세를 버텨내고 있다.
철컹! 쩔컹..! 철컹!!
아무리 그래도 쇠사슬에 매달리다시피한 소녀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는 몰랐기에 나는 시야를 가릴 정도로 몰려든 마물들을 헤치고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콱..!
콰직....!
그중에서는 옆구리가 터져나갔는데도 끝까지 입을 벌리고 내 팔이나 어깨를 무는 놈들도 있다.
피맛을 보고는 흥분했는지 마물의 무리가 요동치기 시작한다.
꾸드드드득!! 꾸드드드드드드드득!!!
깨진 유리조각이 섞인 폭풍 한가운데에 맨몸으로 내던져진 것처럼, 몸 여기저기에 상처가 생겨나고 핏물이 터져 나온다.
"흠..."
나는 무덤덤하게 내 어깨를 물고 있는 마물을 살점째 뜯어내고는 힘을 주어 터뜨렸다.
이것들은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도 보이지만, 한 마리 한 마리가 전부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에 이렇게나 체계적인 움직임을 보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딱히 적극적으로 놈들의 수를 줄이려 하지 않은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입'을 내보내고 있는 본체가 있기 때문.
그리고 그 본체는 아마 다리 아래, 혹은 더 아래의 협곡 안쪽에 자리하고 있을 게 분명했기에, 나는 굳이 번거로운 수고를 하지 않으려는 것뿐이다.
아무리 그 수가 많아도 제 무리에 치여 실질적으로 날 공격할 수 있는 수는 정해져 있었으니 말이다.
내 목적은 그저 다리를 건너는 것이었고, 다리만 건넌다면 본체로부터 멀리 떨어질 수 없는 이 마물들은 나를 놓아줄 수밖에 없다.
콰직..!
콱...!!
여기저기 살점이 뜯겨나간 탓에, 흘러내린 피로 찝찝한 기분이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발밑을 잘 확인하고, 눈앞을 가리는 마물들을 걷어내며 나아갈 방향을 확인할 뿐이다.
그렇게 한발자국 한발자국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두 팔 위로는 쉴새없이 새로운 상처가 생겨나고, 사라지고, 다시 생겨나고, 사라진다.
신앙심이 아닌 단순한 전투보조능력만을 고려했을 때, 내가 비교적 뛰어난 사제인 것은 사실이지만.. 사제 단신의 능력은 고작해야 항마를 통한 대상의 보호, 정화를 통한 해주와 해독, 그리고 치유를 통한 상처의 회복뿐이다.
지금처럼 아예 뜯겨나간 살점이 순식간에 새로 돋아나거나, 그렇게나 피를 흘리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건 내가 사제라는 사실과 별 상관이 없다.
신의 기적처럼도 보이는 이 능력은 오히려 내게 내려진 용의 저주 때문.
이 계금은 내 시간을 멈춰 붙잡아놓고 있다.
모든 것이 뒤틀리기 시작한 그날의 그순간에 말이다.
그 이후 나는 내가 죽을 곳을 찾아 북대륙을 방랑하며 지내왔지만...
"아.."
콰직..! 콱! 콱!!!
오른손을 집어삼킨 검은 마물이 내 손목을 끊어내기 위해 열심히 입을 놀리고 있는 것을 발견한 나는 주변을 뒤덮고 휘몰아치고 있는 마물들의 벽에 대고 신경질적으로 손을 몇 번을 내리쳐 그 마물을 떨어뜨렸다.
쾅!! 쾅! 쾅! 쾅...!!!
그 와중에 부러져버렸는지 너덜거리던 손목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고 만다.
부러진 뼈가 제멋대로 맞춰지고, 흉터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상처를 보면 불쾌함에 소름이 돋는다.
마치 내가 여기에서 죽어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
하다못해 마물들에게 공격받고 있으면서도 다른 생각에 빠져버리는 나를 보면 새삼 정상은 아니구나 싶다.
"카가가가가각..!"
"캬가가...!!!"
점차 공세가 거세져 간다.
그리고 이게 의미하는 바는, 그래도 내가 제대로 걸어왔다는 것이었다.
얼마 만의 먹이를 놓칠 수는 없다는 듯 마물들이 몸을 날려온다.
크게 의미는 없었지만.
쾅!!
"캬르륵...!"
"케겍...."
드디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를 둘러싸고 빙글빙글 돌고 있던 마물들의 수가 줄어들며 그 너머의 붉은 하늘이 언뜻언뜻 비치고 있다.
저벅 저벅...
"후우..."
그리고 내가 몇 발자국을 더 나아가는 것을 끝으로 검은 마물들은 더 이상 내 앞을 가로막지 못한다.
"캬가가각...."
"꾸르르르르륵...."
결국 먹이를 놓쳤다는 걸 깨달았는지 의미모를 울음소리를 전달하던 마물들은 일제히 꿈틀거리며 한줄기 격류가 되어 협곡 아래로 떨어져내린다.
마치 거대한 뱀 한 마리가 제 굴로 기어들어가는 듯한 그 징그러운 형상에 잠깐 인상을 찌푸린 나는, 그대로 시선을 내려 마물들이 떠나갔음에도 손이 부들거릴 정도로 쇠사슬을 꾹 움켜쥐고 있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 끝났어..?"
의외로 소녀의 얼굴이나 목소리에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그다지 느껴지지는 않는다. 단순히 놀랐을 뿐이라는 반응.
아무리 몸을 보호하는 결계가 있다고 해도 시야를 전부 뒤덮을 정도로 몰려온 마물들을 보면 겁을 먹을 만도 한데..
"그래."
그래도 쇠사슬을 잡은 채로 얼마나 거세게 흔들렸던지 깊게 눌러쓰고 있던 후드까지 벗겨져 소녀의 귀가 드러나 있었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건 처음인가?
처음 만났을 때 본 기억이 있지만 아무래도 그때는 워낙 정신이 없었으니까.
잿빛처럼 느껴지는 진회색 머리칼 위로 뾰족하게 솟은 늑대의 귀.
한쪽 귀의 끝부분이 어색하게 잘려나가 있는 게 보인다.
노예의 증표.
수인 노예들의 구분을 위해 귀 끝을 이렇게 잘라내고는 했다.
하지만 줄곧 트라사에서 살아왔을 이 소녀가 노예가 아니었고, 이 흉터는 인간들이 수인족들에게 가지는 혐오의 표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혐오가 불러온 폭력...노예도 아닌 무고한 수인들을 붙잡아 귀 끝을 잘라내는 이 무의미하고 무식한 폭력은, 수인들은 인간보다도 하찮은 존재라는 그들의 생각이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썩 좋지 않은 기분으로 그 귀끝을 바라보고 있는데 소녀의 머리카락 위로 재가 내려앉는다.
나는 손을 들어 올렸다.
"..."
자신의 머리 위로 다가오는 손길에도 이번에는 어째서인지 소녀는 몸을 움츠려든다거나, 경계 어린 시선을 보내지 않는다.
조금 의아하기는 했지만 나는 그대로 벗겨져 있던 후드를 다시 씌워주었다.
"...!"
자신의 후드가 벗겨져 있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는지 당황한 손놀림으로 이미 내가 씌워준 후드를 꾹꾹 누르는 소녀.
귀를 보이려 하지 않는 이유가 짐작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못본척하고 작은 천 조각 하나를 건네주었다.
이전 소녀의 발에 붕대를 감아주기 위해 찢어낸 옷소매의 나머지였다.
"숨 쉴 때는 항상 그걸 입에 대고 있어."
"... 응."
"이곳은 재가 내리는 땅이니까."
그렇게 말하고 나는 다시금 뒤돌아 1년 만에 찾은 북대륙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생명의 흔적조차 느껴지지 않는 저주 받은 땅.
황량한 검은 대지 위로는 하늘을 뒤덮은 연기와 함께 그 너머로 비치는 붉은빛이 보인다.
거기다 하늘에서 눈처럼 내리고 있는 재는 불길한 느낌을 한층 더하고,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탄내가 코와 목을 찌른다.
그야말로 끝나버린 세상의 모습이다.
발을 디뎌서는 안될 것같다는 느낌을 주는 이 땅위에.. 나와 이 수인소녀는 이미 서있었지만 말이다.
"... 빨간하늘... 재.. 떨어져."
처음 접했을 붉은 하늘을 향해 손바닥을 펴고 그 위로 내려앉는 재를 바라보는 소녀.
용과 함께 검은연기에 휩싸인 북대륙의 중심부는 백 년간을 꺼지지 않고 불타오르고 있었기에, 이렇듯 하늘에 붉은 빛이 비치고 재가 떨어지는 것이다.
"..."
손바닥 위의 재를 바라보는 소녀의 눈빛에 어째서인지 애처로움이 담겨있는 듯하다.
아니면, 내가 그렇게 느끼기에 그리 보이는 것인지도.
"아니지."
그럴리가 없지.
"...?"
내 혼잣말에 고개를 든 소녀에게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의미로 고개를 젓고는 붉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바실리카를 나서던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이곳에 누군가와 같이 오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단순히 기분탓인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늘 찾아왔던 이곳이 주는 느낌이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
노아, 아가사.
그들을 추모해 줄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늘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단순히 북대륙에서 살아있는 사람을 보는 것 자체가 어색한 일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멍하니 재가 내리는 붉은 하늘을 올려다보던 나는, 얼굴에 내려앉은 잿가루를 털어내고 후드를 더욱 깊게 눌러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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