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 4. 추모의 밤은 깊어만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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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추모의 밤은 깊어만 가고(3)
방금까지도 살아있던 마물의 데일 듯 뜨거운 내장을 거리낌 없이 맨손으로 휘저으며, 갈라놓은 배로부터 모조리 쓸어낸다.
투둑..! 둑..!
후두두두둑...!
아직 따뜻한 피 몇 방울이 얼굴에 튀었지만 나는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해체작업을 이어나갔다.
마물의 고기를 먹는 건 그야 상식밖의 행동이지만, 정화를 거치고 불로 충분히 익혀 먹는다면 먹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북대륙에서 지낼 때, 내가 그 수십 년 동안 뭘 먹고 지내왔을지 조금만 의문을 가져본다면 그리 어렵게 나올 답도 아니다.
쩍...!
한번의 칼질에 두꺼운 목이 잘려나간다.
먹이사슬의 나름 높은 곳에 자리한 놈 답게 몸의 대부분이 두꺼운 뼈와 근육으로만 이루어져 있기에 이 커다란 덩치에서 먹을만한 살점은 그리 많이 나오지 않았지만..
"이 정도면 일주일은 문제없나."
칙칙한 검붉은빛을 띠는 살덩이들을 바라보며 홀로 중얼거린 나는 손을 뻗어 정화의 기운을 끌어올렸다.
원래의 순수하던 상태로 되돌린다는 의미의 정화가 소녀의 때묻은 손을 깨끗하게 해주었던 것처럼 이 마물에게 정화가 듣는다는 것은 원래 이것은 마물이 아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라면 마물이라는 것이 이 세상의 순수한 상태로부터 배제되어야 할 불순물이라는 의미인지 문득 의문이 든다.
물론 답은 신만이 알고 있겠지만, 답에 가까워지기 위한 인간들의 노력은 집착과도 같이 지금껏 이어져 왔다.
굳이 말하자면.. 나는 그렇게까지 노력하는 부류의 인간은 아니었지만 그 대표적인 인간상의 솜씨좋은 마법사 한 명을 알고 있기에, 그래서인지 그녀를 따라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흠..."
어쨌든, 내가 지금 이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는 이유는 단순히 심심함 때문이리라.
마물의 사체를 만지작 거리는 게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니었으니까.
철그럭..
턱....!
나는 해체작업으로 인해 지저분해진 뒷마당의 정리를 하며 생각을 이어나갔다.
오로지 파괴와 살육만을 목적으로 살아가는 마물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건 용이 내뿜은 검은 연기로부터.
그렇다면 붉은 용은 어디에서 그 커다란 날개를 펴고 이곳까지 날아온 걸까.
마물의 기원이 붉은 용이라면, 붉은 용은 어디에서 비롯된 존재인가.
신이 내리는 시련인가, 혹은 주제넘은 피조물들에 대한 단죄의 철퇴인가.
아케라의 드넓은 해역 주변을 맴돌며 안개짙은 날 모습을 드러낸다는 전설 속의 대수,
포르투나의 깊은 곳에 잠들어있다는 털빛이 흰 용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같은 전설로 치부하던 일곱 머리의 붉은 용이 실존했으니..
이를 전설로 남긴 먼 과거의 이들은 그 답을 찾았거나, 지금과 같은 고난을 극복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적어도 그들은 붉은 용과 조우하고도 후세를 남겼고, 나 자신이 곧 그 증거였으니 말이다.
"..."
그렇다면 정말이지 부끄러운 증거가 아닐 수 없다.
고깃덩이를 가죽을 잘라낸 포대 위에 쌓고 이제 오두막으로 돌아가려는데, 바닥의 내장 무더기 옆으로 쓸모없이 남아 버려진 두꺼운 가죽이 눈에 걸린다.
"...음."
끼이이이익...
다 떨어지기 직전의 오두막 문이 열리고, 내가 안으로 들어왔을 때 가장 먼저 확인한 건 식탁 위의 접시였다.
깨끗하게 비워진 접시를 보자 피식하고 마른 웃음이 새어 나온다.
그런데...
"...!"
의자에 보이지 않는 소녀의 모습을 찾기 위해 자연스레 안쪽으로 고개를 돌리게된 나는... 반사적으로 고함을 치고야 말았다.
"거기에서 떨어져...!!"
머리의 피가 순식간에 데워지며 빠른 속도로 혈관 아래에서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진다.
동시에 거세게 뛰기 시작한 심장에 순간 눈앞이 아찔해질 정도.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
철퍽!!
나도 모르게 집어던진 가죽 조각이 소녀의 발치 아래 큰 소리와 함께 고꾸라진다.
소녀는 꼬리를 파뜩 세우며 깜짝 놀라 오두막의 어두운 구석으로 민첩하게 숨어들어갔고, 나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었다.
"허억... 헉.... 헉.. 헉....."
가죽이 바닥에 팽개쳐지며 이것이 머금고 있던 핏물이 사방으로 튀어 방금까지 소녀가 서있던 곳의 바로 한 발자국 앞, 하얀색의 관에도 지저분하게 후두둑 떨어져 내린다.
그 앞으로 다급히 다가가 주저앉은 채,핏방울이 묻어있었음에도 주저없이관을 끌어안은 나는 쇠사슬을 붙잡고 힘을 주었다.
철그럭. 철걱!
관 주변으로 단단하게 둘러진 쇠사슬들이 풀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불안하게 뛰고있던 내 심장을 진정시켜 준다.
"..."
"....."
어두운 구석으로부터 놀람이 섞인 회색빛 눈동자가 희미한 안광과 함께 나를 주시하고 있다.
".. 그녀의 관에... 손대지 마."
"..."
"내게는... 이것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이젠 이것뿐이다.
이것밖에 남아있지 않다.
나는.. 나는...
"... 슬퍼 보여."
"..."
나는 소녀의 참견에 대답하지 않고, 품속에서 손수건을 꺼내 관에 묻은 피를 조심스럽게 닦아내었다.
소녀는 단순히 이 앞에서 서있었을 뿐이고, 내 행동이 다소 과했던 건 사실이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내게 있어 색이 바래지 않은 마지막 기억의 조각이니까.
*
"누님,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겁니까?"
"연락은 넣어놨으니.. 기다려 봐야지."
트라사를 떠나 스폴과 이어진 사슬길이 놓인 항구마을까지 도착한 일행은 적당한 건물 폐허에 자리를 잡고, 챙겨온 술과 식량을 허비하고 있었다.
오늘 길에 다섯 명이 마물의 습격으로 죽었지만, 애초에 누님이라고 불리고 있는 이 여자는 그럴 작정으로 남자들을 모은 것이었다.
마물들에게 날붙이를 든 남자 두 세명 정도만 던져주더라도 그들이 살기 위해 처절하게 저항해준다면 그만큼의 도망칠 시간을 벌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 사실을 다른 사내들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이들이 그녀를 따르는 이유는 그녀가 적룡교의 일원임을 확신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정말 누님이 적룡교의 사람일 줄은 몰랐습니다. 얼마 전에 찾아온 그분이... 흉흉한 소문이 무성한 주교님입니까?"
"... 한낱 마연 수송책이 주교일 리 없잖아 이 머저리야."
여자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그 질문을 한 남자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저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처음 뵈었을 때는 오줌이라도 지리는 줄 알았습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수송책으로 찾아온 그인지 그녀인지도 모를 검붉은 로브의 괴인이 풍기는 분위기는, 본능적으로 사람을 움츠러들게 하는 꺼림칙하고 불쾌한 것이었다.
마물이라도 눈앞에 둔 것 같은...짙은 죽음의 냄새.
"그리고 나는... 애초에 말단일 뿐이라 그 대단하신 주교님들 얼굴은 본 적도 없어. 목소리만이라면 모를까."
"그러고 보니 누님은 어떻게 적룡교에 들어가게 되신 겁니까..?"
"흥.. 나도 약값에 팔려간 신세야. 그 이상은 말 못해."
말하고 싶지도 않았고, 애초에 말할 수도 없다.
그 피비린내 나는 섬뜩한 목소리로부터 자신은 침묵을 명령 받았고, 이에 따르지 않으면 몸의 구멍이란 모든 구멍에서 검은 피를 쏟아내고 끔찍한 몰골이 되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자신이 트라사의 판매원으로 파견된 것은 꽤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지금쯤 자신과 함께 끌려왔던 아이들은...
"잠깐... 조금 조용해지지 않았습니까?"
"...? 원래 조용했잖아."
한 사내의 뜬금없는 말에, 여자는 사내들에게 조용히 하라는듯 손짓하고 주변에 귀를 기울였다.
이곳에 도착하고 비쩍마른 수인 몇 마리가 음식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일이 있기는 했지만, 본보기를 보인 이후에는 조용해졌다.
주변을 기웃거리는 녀석들이야 여전히 있었지만 이제와서 포기하고 떠났다고 해서 크게 이상할 건 없다.
그것들을 경계하기 위해 마연도 여태 하지 않고 참고 있었던 거니 말이다.
그래도 모두가 잠시 숨을 죽였기 때문인지, 이상하리만치 주변이 조용한 건 사실이다.
그때, 정작 말을 꺼낸 사내가 뭘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냐는 듯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렇습니까? 저는 그럼 잠시 물좀 빼고..."
꽈광...!!!!!!!!
후두두두두두둑...!
투둑 툭...
"...!!!"
"...!!!!!"
"...!!"
터벅, 터벅, 터벅.
눈앞으로 날리는 돌가루를 확인한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죽을힘을 다해 자신의 무릎을 멈춰세웠다.
퍼걱....!!!
"아아, 다들 앉아 있어."
푸슉..! 푸슛...!!
테이블에서 일어난 사내의 머리통이 방금 막 고깃조각과 뼛조각으로 분해되더니 뇌수와 피를 이리저리 튀기며 사라지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머리로 올라가려던 피는 막힘없이 치솟아 올라 처음으로 바깥공기를 접했고, 머리를 잃은 육신은 곧 힘없이 테이블 위로 쓰러진다.
어떻게...?
아니 어째서...?
철퍽..!!!
주르르르륵.....
울컥! 울컥!
아직 자신의 죽음을 깨닫지 못한 사내의 심장이 강하게 펌프질을 할 때마다, 목구멍에서는 피가 솟구쳐 올라 테이블 위로 쏟아져 내린다.
방금까지 함께 술을 마시셔 떠들던 이의 피가 테이블 위를 흥건하게 적셔나가는 것을 그들은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트라사의 판매원을 찾아왔는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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