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일행 출신 사제의 우울-22화 (22/137)

〈 22화 〉 5. 악운의 교차점

* * *

5.악운의 교차점(2)

"가지고 있어."

나는 품속에서 단검을 꺼내 소녀의 손에 들려주고, 왼손을 내밀었다.

"..."

"잡아."

".. 응."

"그리고.. 내가 말하기 전까지는 절대. 눈 뜨지 마."

철퍽.

마을 입구에서부터 벌써 흥건한 피웅덩이들이 발 아래에서 끈적거리는 소리를 내며 나와 소녀를 환영한다.

신발을 만들어주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철벅, 철퍽..

이렇게나 진한 피 냄새가 도처에 깔려있음에도 주변에 마물들이 몰려들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 이상하다.

그렇기에 주변에 느껴지는 기척이 없음에도 이렇게 불길한 느낌이 드는 거겠지.

"...?"

마을 안으로 들어가려다 문득 왼손으로부터 느껴지는 미약한 저항감에 내디디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날 멈춰세운 소녀를 바라보았다.

덜덜덜..

발에 뿌리라도 내린 듯 멈춰서서 내 손을 간절하게 붙잡은 그 작은 손이 급격하게 떨려오기 시작했다.

"당장은 괜찮아. 이 근방에는 아무런 기척도 없으니까."

"... 하..지만."

"괜찮아."

"..."

다리 위에서 마물 무리에게 둘러싸이고도 두려워하지 않던 소녀가 겁에 질려있는 모습에 더욱 꺼림칙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당장은 괜찮을 거라고 말하자 소녀의 떨림은 그나마 잦아들었다. 멈춘 것은 아니었지만, 나도 마을을 뒤덮은 피비린내에 코가 얼얼할 정도인데 그렇지 않아도 나보다 후각이 몇 배는 더 예민할 테니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 가자."

어두운 폐허의 길목 중간중간에는 더 이상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를 등불들이 밝혀져 있다.

그중 하나를 손에 들고, 길 위을 밝히며 앞으로 향해간다.

철벅.. 철퍽...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마을 안쪽으로 조심스레 걸어들어갔지만 입구에서 본 풍경과 크게 다를 것은 없다.

폐허의 벽면을 비추자 난잡하게 튀어있는 핏방울들이 보이고, 그 핏자국을 통해 보이는 것은 이곳에서 일어난 오직 철저한 유린과.. 어렴풋이 느껴지는 증오다.

마치 이후 이곳에 들를 누군가를 위해 일부러 그렇게 해놓은 것만 같은 끔찍한 광경들에 점점 표정이 굳어져 간다.

광장에 가까워 질수록 바닥에 고여있는 피웅덩이들 사이로 조각난 신체의 일부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고, 그렇게 마을 중앙에 도착하고 나서야 드디어 사람의 시체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

"...?"

"눈 뜨지 마."

나는 반사적으로 소녀가 눈을 잘 감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질끈 감은 두 눈을 확인하고 나서야 조심스럽게 시선을 떼고, 등불을 들어 다시 눈앞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

익숙한 얼굴.

꽤 덩치가 있던 그 여관 주인의 시신이다.

찢어질 듯 벌어진 입.

부릅 뜬 두 눈은 그 마지막 순간 대체 무엇을 보았던 걸까.

철벅...

무심코 그의 시신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가, 들려온 끈적한 소음에 반사적으로 발을 뗐다.

하반신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창자가 쏟아져 나와 바닥에 어지럽게 늘어져 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활짝 열린 가슴팍 안쪽은 텅 비어있었으며, 오른팔이 있어야할 자리에는 힘에 의해 억지로 뜯어져 나간 흔적만이 남아있다.

그나마 남아있는 건 왼팔과 몸통, 그리고 그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게 해준 머리통 정도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태가 좋다는 의미도 아니었다.

짐승의 날카로운 이빨에 그대로 잡아뜯긴 것 같은 커다란 상처들이 특히나 눈길을 끈다.

하지만.. 단순히 산에서 내려온 짐승형 마물들의 짓이라고 하기에는 몇 가지 의문점이 있다.

인간의 신체를 이정도로 도륙할 수 있는 근력을 지닌 마물이라면, 틀림없이 덩치가 있을 텐데도 그 마물의 것으로 추정되는 발자국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

오기 전 건너온 다리에서 발견한 전투 흔적처럼, 습격자의 발자국 하나 없는 것은 과연 우연일까.

주민들의 저지 혹은 저항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흔적은 지금 내가 서있는 마을 광장으로부터 산발적으로 퍼져있다.

범인은 아무런 방해나 저지없이 태연하게 이곳까지 걸어와, 혹은 나타나 마을 주민들을 무차별적으로 덮치기 시작했다는 의미였다.

시체를 남겼다는 것.

마물이라고 가정했을 때 가장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끝나지 않을 굶주림을 하나의 욕망으로 삼아 악착같이 연명하는 그것들이 이렇게나 시체를 많이 남기고 떠날 리가 없다.

하지만 생존자는 없다.

모두를 먹어치울 만큼 배고프지는 않았지만, 저항하지도 않고 도망치는 이들까지 굳이 전부 죽였다는 이야기가 된다.

식사도중 급하게 떠날일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과연 그게 무엇일지에 대해서는 쉽게 떠오르지 않는만큼... 남은 거라고는..

역시.. 놈들뿐이다.

왜 이런 외곽의 작은 마을에까지 찾아온 걸까.

뭔가를 찾고 있었나?

이곳에 대체 뭐가 있길래?

놈들은 미치광이지만, 결코 이유없이 움직이지는 않는다.

"..."

덜덜덜...

눈을 감은 채 현장의 중앙에 발을 들이고 있는 만큼, 소녀는 더욱더 불안해 보인다.

... 이곳에 서서 생각한다고 답이 나올 리 없나.

답이 있었다면 이미 놈들의 손에 들어가 있을 테고, 모두가 죽어버린 시점에서 나는 한참 전에 늦어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습관적으로 성호를 긋기 위해 들어올린 손을 다시 늘어뜨렸다.

이들에게 있어 죽음은.. 분명 여태까지의 삶보다도 고통스러웠겠지.

남아있는 그들의 얼굴이, 마지막 순간의 저 표정들이 말해주고 있다.

노인, 어린아이 할 것 없이 신체의 크고 작은 파편들이 피웅덩이에 섞여 널려있는 가운데, 충분히 끔찍하다고 말할 수 있는 여관 주인의 시체가 그나마 낫다고 생각될 정도로.. 무자비한 폭력이 이 마을을 덮쳤다.

그리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언제나 처럼 말이다.

그러니 이들의 삶이 이토록 무의미하게 끝나버린 것에 대해, 내가 건넬 수 있는 위로는 있을 수 없다.

이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저 주어진 상황에서 주린 배를 채우고, 제한된 상황속에서 행할 수 있는 쾌락만을 좇아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가여운 이들이다.

이들에게 무슨 대죄가 있기에 이토록 비참하게 죽어 시신조차 성히 남기는 것을 허락받지 못한 것일까.

꾸욱..

덜덜덜..

내가 손을 떨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기 때문에, 소녀의 손이 작게 떨리는 것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지며,

나는 현실로 끌어당겨질 수 있었다.

그렇게, 이 마을의 갑작스러운 결말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려던 내게 일말의 우려가 스쳐지나간다.

무덤.

나는 소녀의 손을 그대로 붙잡은 채 그녀의 모친을 묻은 장소로 이끌었다.

"..."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해안의 곶이기 때문인지, 소녀가 만든 작은 돌무덤은 어디 한군데 무너지지도 않은 채 마지막 기억 속의 모습 그대로 남아있었다.

다행이다. 라고, 그 많은 시체조각들을 보고 난 다음 고작 이 작은 돌무덤 하나가 무사히 남아있는 걸 보고 다행이라고 생각해버리고 만 것에 대해, 스스로에게 한심함을 느낀다.

의외로 이런 자기혐오는 나를 그리 크게 동요시키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바닷바람과 함께 옅은 탄내가 불어 온다.

어지러울 정도로 짙었던 피 냄새도 점차 희미해져간다.

옆을 바라보자 아직까지도 내 말에 따라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안절부절못하는 소녀가 보인다.

".. 이제 눈 떠도 좋아."

"하악... 학..."

털썩.

여태 숨이라도 참고 있었던 건지, 거친 숨을 내뱉으며 그대로 주저앉아 버린 소녀.

".. 무서운 냄새.. 났어."

"..."

"피 냄새보다... 더 지독한... 냄새."

힘이 풀린 다리를 끌고 제 모친의 무덤으로 기어간 소녀는 남아 있을 리 없는 온기라도 느끼려는 것처럼 몸을 웅크리고, 돌무더기 위에 얼굴을 파묻은 채 작게 떨었다.

하지만 소녀의 말에 나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겁에 질린 이유를 나는 분명 그 머리가 아플 정도의 피냄새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건.. 어떤 냄새였는데."

"... 동족의.. 냄새."

"뭐...?"

소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그 말은 넘겨듣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동족..

동족이라 함은 그녀와 같은 늑대 수인을 뜻하는 건가?

"..."

소녀는 마을입구에서 느낀 두려움을 떠올렸는지 다시 한차례 크게 몸을 떤다.

본능적인 두려움에서 오는 원초적인 공포..

그만한 피 냄새에도 마물이 몰려들지 않은 건, 그게 원인인 건가..?

하지만.. 그렇다면, 그 날카로운 이빨자국들은 대체..

느낌이 좋지 않다.

이런 꺼림칙한 일들이 연달아 일어났다는 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변화가 시작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이곳을 떠난 모양이지만.. 너와 나도 굳이 이곳에 오래 남아있을 필요는 없겠지."

"..."

내 말에 고개를 든 소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무덤 앞에 앉는다.

상황이 좋지는 않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지금 이야기를 해야겠다.

"듣고싶었던 이야기를 해주었으니 나는 너를 용서할거다. 덕분에, 돌아가야할 이유가 떠올랐으니까."

".. 용사님들... 이야기?"

"... 그래."

소녀는 고개를 내려, 자신의 발치를 바라본다.

"하지만, 나도.. 받았는걸."

아직 떨리고 있는 그 가느다란 손가락 끝으로 피 묻은 가죽 신발과, 발목 위로 삐져나온 하얀 천 조각을 가리킨다.

"... 그건 그냥..."

스윽.. 슥...

의도한 건 아니었겠지만 피와 먼지로 엉겨붙어있는 신발을 흙바닥에 문질러 닦아내는 소리가 내 말을 끊는다.

"고기도.. 맛있었어. 잘.. 모르겠지만. 알록달록한것도."

"... 꼭 용서해주지 말라는 것처럼 들리는데."

"아니야."

소녀는 무릎을 털고 일어나 여전히 떨리고 있는 두 다리를 툭툭 때려 먼지를 털어낸다.

"이건.. 고마운 거야.... 응."

"..."

대체.. 뭐가 고맙다는 건지.

"굶길 수는 없잖아. 음식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당연한 거야."

"당연하지않아."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내 말을 부정한다.

그 당돌함에 놀라기도 전에, 방금전의 목소리와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풀죽은 목소리로 소녀는 중얼거린다.

"나.. 수인이니까."

낡은 후드의 끝자락을 두 손으로 잡아당기며 더욱 깊숙이 눌러쓰는 소녀.

슬쩍 드러나 있던 귀 끝의 잘려나간 상처가, 고쳐 쓴 두꺼운 후드에 가려진다.

"..."

하긴, 그랬겠지.

여태 북대륙에서 살아왔으니 저런 반응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난생 처음 받아보는 타인의 호의에 혼란스러운 모양이지.

다만, 계속 그렇게 착각하는 거라면 곤란하다.

"마음대로 생각해. 신발이 있어야.. 그리고 뭐라도 먹어야 네가 배낭을 들고 따라올 수 있을 테니까 그런 것뿐이야."

".. 다시, 데려와줘서.. 고마워."

"..."

"그땐... 너무 슬퍼서.. 인사도, 제대로.. 못했어."

소녀의 서글픈 눈동자는 처량한 돌무덤에 가 닿는다.

그러고 보면, 날 따라 마을을 나온 소녀를 데리고 참 멀리도 돌아왔구나 싶다.

마을을 떠나있던 덕분에 목숨을 건졌으니 운이 좋다고 해야하는 걸까.

아니면 홀로 이세상을 더 살아가게 됐으니 불운하다고 해야 할까.

... 악운이라고 해야 할까.

".. 바닷바람을 맞고 싶었을 뿐이야."

피냄새로 머리가 어지러웠으니까.

홀로 중얼거리는 것이나 다름없는 내 성의없는 대답에도 소녀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나를 올려다보고 있을 뿐이다.

"왜."

피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괜히 지는 것 같아서 오히려 물었다.

껄끄러운 마음에 입으로 먼저 나온 목적 불분명한 물음이었다.

"..."

"....."

당연히 소녀에게서는 제대로된 대답이 나올 수 있을리 없고,

잠깐동안의 그 정적 속에서 파도 부서지는 소리가 겨우 몇 번 들려왔을뿐이건만..

나는 결국 그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먼저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 일단 따라와. 스폴에 널 맡길 사람이 있으니, 그곳에 도착하면 사과든 감사든 전부 받아주고 난 떠날 거다."

"..."

"그리고.. 내게 너무 다가오려 하지 마. 너만 불행해질 뿐이니까."

이젠 따갑게까지 느껴지는 소녀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고 등을 돌렸다.

분명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았던 잿빛 눈동자에 다시 의지가 담긴 것까지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관여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기로 결정한 이상, 죽는 쪽이든 사는 쪽이든 상대의 의사가 필요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더 성가셔 지는 건 사양이다.

진심으로 사양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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