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일행 출신 사제의 우울-40화 (40/137)

〈 40화 〉 7. 벽 안의 사람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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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벽안의 사람들은(4)

대성당 내부를 울리는 여럿의 발소리.

차갑고 매끈한대리석 바닥이 짓밟히며 내는 맑은 소리다.

조그마한 소리에도 크게 울리는 만큼, 발걸음조차 소란스럽지 않도록 자연스레 신경을 쓰게 될 수밖에 없는 답답한 장소다.

천장으로 고개를 들어올리자 보이는 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커다란 구멍 하나.

저 바로 아래에서 아침 예배와 함께 매일같이 사제들이 성양구를 띄워 올리는 것이다.

"아침 예배의 준비를, 금방 돌아올 테니 기다리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우토를 뒤따르던 사제들은 그의 지시에 고개숙여 응답하고는 천장의 구멍 아래에 둥그렇게 둘러서서 신성문을 읊조리기 시작한다.

"...."

"..."

"이쪽으로 오시죠."

대성당 안쪽으로 마련된 널찍한 방으로 모두를 데려온 우토는 여전히 망설임이 남은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이 많은 의자들을 보면 이곳은 주교와 사제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 장소로 보인다.

가장 상석에 앉은 대주교님의 가까이에 나와 우토가 각각 마주 보고 앉게 되었고, 딜런은 괜찮다는 듯 간단히 고개를 숙이고는 벽 쪽으로 두 걸음을 물러선다.

"갑옷을 입고 있어서요. 저는 서서 듣겠습니다."

이 불편하고 딱딱한 분위기 속에서 착석하기를 꺼려 하는 소녀를 따라 함께 서있어 주려는 걸까?

아니면 마찬가지로 이 자리가 불편하기 때문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이정도 분위기로 눈치를 볼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있는 만큼,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세심한 면도 가진 사내라는 쪽이 더욱 설득력이 있다.

.. 그다지 알고 싶지는 않았던 사실이지만 말이다.

"... 그래서, 하실 말씀이라는 건 무엇입니까."

이 넓은 공간에 고작 다섯 명뿐인지라 조용히 가라앉은 공기가 더욱 불편하게 느껴졌던지, 우토는 곧장 내게 용건을 물어왔다.

"용사에 대한 걸 듣고 싶어 하는 눈치니, 먼저 말하지."

".. 고맙습니다."

"스폴에서 용사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되었다."

"단순히 소문입니까?"

소문이라는 단어에 실망한 티를 내며 따지려 드는 그에게 잠시 기다려보라는 의미로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우려하는 대로, 사칭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도 걸리는 게 있어서 말이야."

".. 걸리는 것이라 하심은?"

"그 소문이 적룡교의 부자연스러운 움직임과 관계가 있어 보인다는 거다."

"..."

내 입에서 적룡교에 대한 언급이 나오자, 우토는 물론, 대주교님과 딜런도 골치 아픈 듯 앓는 신음을 흘리고는 시선을 떨어뜨린다.

한때 아케라 전역 어디에서든 찾아볼 수 있었던 성당에서 수많은 신도들을 끌어모으며 하나의 국가보다도 더욱 높은 위상을 가지고 있었던 성양교지만...

그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바실리카의 문을 굳게 닫고 백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믿음은 대부분 사라졌고, 이제는 그 이름만이 예전의 그 휘황찬란하던 과거를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현재로서 바실리카에는 적룡교같은 이단이 활개치고 다니는 것을 심판하기는커녕 제지할 힘조차 없다.

"적룡교는 주로 북부 대륙에서 활동해 왔기 때문에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그 목적은 무엇인지조차 도저히 알 도리가 없었지."

"..."

"여태껏 그들을 방치해 왔지만.. 지금 적룡교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신탁이 내려왔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노려진 건지 아니면 단순히 악운에 얻어맞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 나는 그들에게 공격을 받았고, 그중 어중간한 순혈자 하나를 처리하느라 꼬박 사흘간 정신을 잃고 쓰러져있어야 했다."

"순혈자..?"

"말했듯 어중간한 놈이었어. 겉모습이나 전투능력은 틀림없이 순혈자를 떠올리게 했지만... 처음에는 평범한 수인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는 점과, 지능이 몹시 떨어져 보였다는 점, 그 외에 몇 가지 직접 부딪히며 느낀 의문점들이 완전한 순혈자는 아니라고 판단하는 근거가 된 거다."

".. 그래서, 그게 용사의 소문과 어떤 관계가 있기에 그렇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결국은 내가 겪은 일련의 사건들을 전부 늘어놓는 수밖에 없다.

따로 본다면 제각각이 연결점을 찾아보기 힘든 꺼림칙할 사건들일뿐이지만, 모두 함께 놓고 보면 이상하게도 그 뒤에 있는 흐릿한 형체가 보일 것만 같은 묘한 느낌이 든다.

바실리카에 신탁이 내려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잇달아 일어난 사건들과... 검붉은 로브.

우리들이 모르는 사이 저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는 이미 수레바퀴가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북대륙에서 돌아오는 길, 트라사의 주민들이 참혹하게 몰살당한 걸 확인했고, 항구마을에 거의 도착했을 즈음에는 적룡교도와 조우했지. 그리고 뒤이어 항구마을이 초토화되어 있는 걸 보게 되었는데... 이 세 가지 사건은 모두 일주일이 채 지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야."

"... 그걸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모두, 재가 내리는 땅으로 향하던 내가 한 번씩 거쳐간 곳이니까."

"..."

할 말이 있음에도 참아낸 듯 보이는 우토의 의심 가득한 시선을 무시하고, 나는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트라사와는 다르게 항구마을은 마법 폭격이라도 맞은 듯한 상태였어. 가만히 둬도 곧 죽을 이들뿐인 그곳에 이유 없이 마법을 퍼부을 리는 없는 만큼, 아마도 전투의 흔적으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내가 상대한 건 아마 그 전투에서 살아남은 잔당이겠지."

우토는 슬슬 내가 하려는 말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 용사가 스폴로 향하는 적룡교도들을 저지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 말씀이십니까?"

"확실하지는 않아. 뭐든 직접 보고 겪기 전까지는 확실하지 않지."

"..."

"하지만 스폴과 곧장 연결된 항구마을이 그 지경이 되었는데, 정작 스폴에는 별다른 피해가 없었다는 점은 어느 정도 이 추측에 설득력을 높여주고 있어."

"그래서, 용사는..."

"글쎄, 나는 이미 이곳에 도착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터라서."

용사는 스폴을 떠나 남대륙으로 내려갔다고 했다.

비가 한 번 쏟아진 이후라 앞서간 이의 흔적 같은 게 남아있을리도 없었기에 바실리카로 향한 게 아니라면 다른 선택지로 마땅히 떠오르는 곳은 없다.

"..."

결국 아는 게 아무것도 없지 않느냐는 듯한 불만 가득한 우토의 시선에, 나는 괜히 말하고 싶지 않았던 정보를 그에게도 알려줄 수밖에 없었다.

"두 자루의 검을 쓰는, 밝은 금발의 미청년이라고 하더군."

"인간.. 입니까?"

"그래."

"..."

내 대답에 눈에 띄게 안심하는 기색을 보인 그는 겨우 자신의 감정을 가라앉히고, 다음으로는 집요하게 내게 질문해 왔다.

"그래서.. 그럼, 저 아이는 왜 데려온 겁니까."

"내 목숨을 구해줬거든."

"..."

주저없는 대답에도 우토는 믿기지 않는다는 눈치다.

그도 그럴게 그는, 눈앞에서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확인한 몇 안되는 이들 중 하나였으니 말이다.

"거짓말은 하지 않았어. 그럴 이유도 없고."

".. 그런 이유로는 부족합니다. 정보를 알려주신 것에 대해서는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규율을 예외로 삼은 선례를 남겨서는 안됩니다. 백 년간 닫혀있던 문을.."

"... 그럼 이렇게 하지."

가만히 나와 우토의 대화를 듣고 있던 대주교님이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그녀는 딜런에게 눈짓하며 한가지를 부탁한다.

"딜런, 그때 했던 보고를 이곳에서 다시 한번 부탁하네."

".. 알겠습니다."

'그때' 라는 다소 애매한 지시였지만 딜런은꾸벅 고개를 숙여 보이고, 테이블 쪽으로 가깝게 두 걸음 다가온다.

"얼마전 있었던 일입니다. 아미시아 강을 건너온 것으로 보이는 와이번 무리가 결계에 부딪혀 북쪽 벽 아래로 떨어진 일이 있었습니다."

"그 보고라면 저도 들었습니다. 마물들이 강을 건너 날아오는 거야 늘 있던 일 아닙니까."

".. 끝까지 들어 보시게."

우토의 말대로 날개 달린 마물들이 성양구의 불빛을 보고 강을 건너 날아오는 일은 그리 드물지 않았다.

하지만 늘상 있던 일에 대한 반응이라기에는 대주교님의 표정에 드러난 근심은 이것이 보통 문제가 아니라고 이야기 해주고 있다.

"그 와이번 무리는.. 살아 있었습니다."

"...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결계에 반쯤 불타오른 와이번 무리는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대주교님, 그건...!"

우토는 그 말의 의미를 곧장 이해하고, 왜 그 사실을 이제야 말해준 건지 따지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재앙이나 다름없는 적룡의 화염을 몇 번이고 버텨낸 강력한 결계다.

고작 와이번 같은 마물은 닿는 것만으로도 순식간에 재가 되어도 모자란 마당에, 결계에 부딪히고 심지어는 그 높이에서 추락했는데도 아직 숨이 붙어있었다니?

그건 영원히 그들을 지켜줄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결계가 지난 백 년 사이 크게 약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혼란을 우려해 모두에게는 아직 알리지 않았네. 그 원인도 어렵지 않게 알아냈고.."

"원인, 원인이 무엇입니까?"

"대성당의 지하에 보관중인 세 개의 성물, 그중 하나인.. 생명의 나무가 말라가고 있네."

바실리카의 하늘을 뒤덮은 결계는 강대한 힘과 순수한 은총을 품은 세 개의 성물이 매개가 되어 유지되고 있다.

그리고 생명의 나무,

나를 소테르라고 부르는 그 작은 마을에 결계의 매개로 사용한 것도 그 작은 가지였고, 1년마다 그곳에 들러 은총을 부여하는 이유도 시간이 지날수록 가지가 말라가기 때문이었다.

그걸 생각한다면 이전에 비해 볼품없이 줄어든 바실리카의 사제들만으로는 생명의 나무를 강건하게 유지할 수 없는 것도 당연하다.

뿐만 아니라 세계수의 뿌리로부터 떨어져 나와 오랜 시간이 흘렀다는 이유도 있기에, 지난 백 년간 성양교의 쇠퇴와 함께 그 과정이 촉진된 것이라고 보는 게 맞겠다.

"언제까지고 비밀로 할 생각은 없었네, 실은.. 모두가이 일을알기 전에 에단에게 묘목을 받아와 달라는 부탁을 하려고 했네."

그러고 보니 내가 바실리카를 떠날 때, 딜런이 드물게도 부재중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하필 그때 그렇게 엇갈리는 바람에, 둘 모두 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 하아.."

확실히.. 그곳에 갈 수 있는 이는 딜런 이외에는 마땅히 떠오르지않는다.

하지만 성기사 하나 남지 않은 바실리카에서 경비대장인 그와, 병사들이 자리를 비우게 할 수도 없는 노릇.

"에단, 숲의 요정들에게서 세계수의 묘목을 얻어와 주시게나. 그렇다면 그 공로를 인정해 규율을 어기고 저 아이를 바실리카에 들인 것에 대해서는 눈감아 주도록 하겠네."

"..."

이미 수백 년도 전에 숲의 요정들과 이뤄낸 맹약이 있었기 때문에 그저 가서 받아오면 될 뿐인 간단한 부탁이었지만, 문제는 그들의 거처가 대삼림 깊은 곳에 위치한다는 사실이었다.

한때 녹색 초목으로 뒤덮인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을 펼쳐보이던 대삼림은, 지금에 와서는 아케라에서 가장 빛이 닿지 않는 장소이자 재가 내리는 땅 다음으로 위험한 장소로 손꼽히는 곳이다.

그것을 알기에 우토도 대주교님의 말에 별다른 토를 달지 못하는 것이었다.

아이 하나를 바실리카에 들여보내주는 것만으로 대삼림 깊은 곳 어딘가에 있을 세계수의 묘목을 가져올 수만 있다면.. 그렇게 바실리카의 결계를 다시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다면야 반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 그것이 규율을 어긴 것에 대한 징벌을 겸하는 것이라면, 저도 더 이상 아무 말 않겠습니다. 하지만 저 아이가 이곳에서 머무르는 동안, 그 어떠한 이유로든 거주민들의 피해가 발생할 경우. 방관한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딜런."

"명심하겠습니다. 우토 주교님."

"후우.. 이만 저는 아침 예배를 진행하러 가보겠습니다."

여전히 찜찜한 구석이 남아있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결국 회의실을 나서는 우토.

회의실의 문이 닫히자마자 딜런은 참아왔던 숨을 한번에 내쉬며 입꼬리를 끌어당겨 올린다.

"휴~! 어떻게든 넘어가게 됐군요."

그 고지식한 우토를 한 발 물러서게 한 것이 꽤나 기뻤던지, 후드를 눌러쓴 소녀의 머리 위를 마구 헝크러뜨리기 위해 슬그머니 가까워지는 그의 솥뚜껑만한 손.

하지만 소녀는 눈치빠르게 고개를 숙여 그 손길을 피해내고는 내가 앉아있는 의자 옆으로 바짝 다가와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딜런을 주시한다.

"..."

"으흐음... 흠흠.."

둘이 뭘 하고 있는 건지.

"하지만.. 역시 미안하네 에단, 그 힘든 일들을 겪고도 소식을 전하기 위해 돌아온 자네를 따뜻하게 맞이해주지는 못할 망정 더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지게 한 것 같아서.."

"괜찮습니다. 적룡교가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니, 결계를 빠른 시일내로 정상화 시키지 않으면 곤란할 겁니다."

"... 고맙네."

아직 고맙다는 인사를 듣기에는 이른 것 같았지만, 진심어린 미안함과 고마움이 섞인 저 부담스러운 눈빛을 마주보며 내가 달리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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