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일행 출신 사제의 우울-42화 (42/137)

〈 42화 〉 7. 벽 안의 사람들은

* * *

7.벽안의 사람들은(6)

딜런과 나는 한동안 말없이 연초를 태우며, 느긋하게 술집 안의 이들을 구경했다.

딜런이 얼굴을 보인 것만으로도 조용해졌던 게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들은 금세 이쪽에는 신경을 끄고 그들 자신의 맡은바 책무를 다하고 있다.

그들이 맡은 역할이라 함은, 이 지저분하고 칙칙한 뒷골목에 값싼 웃음소리로나마 활기를 늘어놓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 그랬더니 아니 그놈이, 속옷 바람으로 침대 밑에서 도망나오지 뭔가..!"

"흐하하하하하...!"

"푸하하!"

그들의 아무 걱정 없어 보이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부럽다는 듯 중얼거리는 딜런.

"다음 달에는 아이도 태어날 텐데, 참 걱정이 많습니다.."

딴에는 이 시끄러운 주점에서 작게 중얼거린것 같았지만, 워낙 굵은 목소리라 알아듣는데에 어려움은 없었다.

".. 딜런."

"...?"

"아내가 있었나?"

혼잣말에 가까운 그 신세한탄에서 한참을 뒤로 돌아간 내 질문에 잠시 벙져있던 그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들어 올리려던 술잔을 슬며시 내려놓았다.

"이래 봬도 당신과 처음 만난 그날에도 저는 어엿한 유부남이었습니다."

"놀랍군. 지난 10년간 들은 소식 중에서는 가장 놀랐어."

"하하하.. 제가 집사람 이야기를 잘 안하기는 하죠."

듬직하다는 수준을 넘어서 한 마리 곰처럼도 느껴지는 커다란 덩치에, 흉터까지 있어 괜스레 위협적인 저 얼굴이 적어도 지난 10년 사이에 새롭게 생겨난 것은 아니었기에 그 놀라움은 더 크다.

물론 겉모습은 겉모습일 뿐이고, 딜런이 속으로는 쓸데없이 인정 많은 사내라는 사실은 나도 알고 있지만..

뭐, 의문을 가지는 게 죄는 아니니까.

"이야기를 안하는 데에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음.. 말 못할 사정 같은 게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럼?"

"제 집사람은 정말 멋지고, 좋은 여자고..."

어째 계속 말꼬리가 늘어진다.

"...?"

"그냥 저는... 으흠.."

벌컥 벌컥..

어째서인지 말하기를 몹시 주저하던 딜런은 내려놓았던 술잔을 다시 집어들고 단번에 목구멍에 털어넣었다.

탁!

깨끗하게 비운 술잔을 내려놓고, 급하게 들이키느라 입가에 흐른 것을 소매로 슥 닦아낸 그는 이전보다는 조금 풀린 눈으로 부끄럽다는 듯 조용히 말해왔다.

"이런 덩치를 가진 경비대장이... 집사람한테 꽉 잡혀 산다는 걸 알면 놀림거리밖에 더 되겠습니까.."

"..."

"지금은 또 홀몸도 아니라서.. 어찌나 극성인지... 크흠. 지금 여기 온 것도.. 으후, 이제 그만 마셔야겠습니다."

저 덩치로 눈치가 빠른 게 여태 안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 원인을 알아낸 것 같다.

"그래. 그럼 이 이야기는 그만하는 걸로 하고, 우토에 대해 조금 묻고 싶은데."

"우토가 대주교님과 부딪히는 게 신경쓰이셨나 봅니다? 하지만.. 그리 걱정할만한 위험한 녀석은 아닙니다."

"나는 걱정하는 게 아니라.."

"예예, 알고 있습니다."

마치 내가 그렇게 말할 줄 알고 있었다는 듯한 즉답에 어딘가 찜찜한 기분이 드는 것을 애써 무시하며, 나는 그 이유를 물었다.

"... 그래서, 이유는?"

"우토 녀석이 까칠하고 고집도 센 데다가 대주교님과는 자주 의견 충돌을 일으키기는 해도, 그의 발언이 언제나 바실리카와 거주민들을 우선하고 있는 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흠..."

"물론 우토가 이번에 문을 여는 것에 동의한 이유는.. 아마 당신이 난민들에게 성자로 추앙받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겠지만.. 사제들을 내보내지 않은 건 유치한 편가르기가 아니라, 성양구를 띄울 최소 인원을 남겨놓기 위함이었습니다."

습관처럼 빈 잔에 술을 따르려던 그는 이제 그만 마시겠다고 자신이 한 말을 떠올렸던지 혀를 차며 술병을 내려놓고, 아예 자신의 술잔을 테이블 위에 거꾸로 뒤집어 놓고서 말을 이었다.

"안그래도 신탁이 내려온 것 때문에 용이 곧 깨어나는 건 아닌지 다들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있으니까요. 그런 와중에 어느날 성양구가 떠오르지 않으면 모두들 크게 혼란스러워하겠죠."

확실히, 백년간 매일같이 바실리카의 아침을 비추어온 성양구가 가지는 의미가 단순히 밝고 커다란 등불만이 아니라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것은 일종의 신호였다.

우리는 괜찮다고, 우리는 안전하다고, 스스로 되뇌기 위한 몹시 비효율적인 신호.

"..."

"저도 우토를 그리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속이 시꺼먼 놈이 아니라는 건 압니다."

".. 그래."

알고 있다.

우토가 나를 그렇게나 싫어하는 이유도, 내가 먼저 규율을 어겼기 때문이니까.

"흐우우.. 들어가기 전에 옷에 배인 냄새부터 먼저 빼고 들어가야겠습니다. 기회가 되면 나중에 집사람도 소개시켜 드리죠."

"아니, 그럴 필요는.."

"아, 그러고 보니... 그 아이는 어디에 있습니까?"

실비아라면..

덜컹..!

"...?"

"..??"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던 딜런이 지나치듯 소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바로 그 순간,

술집의 문이 소리내어 열리더니 눈에 익은 실루엣 하나가 후드를 깊이 뒤집어쓴 채 당당히 안쪽으로 걸어 들어왔다.

긴 로브로 가려져 있었지만 워낙 작은 키와, 후드 아래로 보이는 뽀얀 얼굴의 윤곽 때문에 여자아이라는 사실을 숨기기는 힘들다.

"으엇..?!"

쿵­!!

누구인지 곧바로 알아봤는지 딜런은 크게 놀라 자리에서 급히 일어서다가 마침 적당히 위치해있던 나무 기둥에 머리를 세게 부딪히며 그 위로 쌓여있던 먼지를 시원하게 털어낸다.

"... 콜록, 콜록콜록.. 어우 머리야."

그 이외에는 나나 술집 안의 다른 이들이나 반응에 별반 차이는 없었다.

"꼬마야? 여기는..."

"웬 건방진 꼬맹이가 어른들 놀고 계시는데.. 어..? 야..!"

술집의 마스터가 애써좋게좋게나가라고 손짓을 하든, 문에서 가까운 테이블의 손님 하나가 시비를 걸어오든 마치 보이지도 않는 것처럼 그들을신경 쓰지 않고 곧장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소녀.

"어이! 너 지금 내 말 안들....! 어... 음.. 커흠... 흠.."

물론 소녀가 멈춰 선 테이블에 앉아있는 둘을 확인하고 나서는 언제 시비를 걸었냐는 듯 조용히 자리에 앉는다.

소란이라도 일어날까 싶었지만 일단 괜찮은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계속 술집에 어린 여자아이를 두는 것도 민폐겠지.

"여긴 어떻게 찾아온 거지?"

".. 냄새."

"..."

뒷골목의 하수구에 흐르는 오수와, 심심치않게 거리에 쌓여있는 쓰레기 더미에서 올라오는 지독한 악취 사이로 어떻게 내가 있는 곳을 가려낸 건지, 내 생각보다 훨씬 수인의 후각이 정교하다고 느끼며 이번에는 날 찾아온 이유를 묻기로 했다.

"그래서, 여기까지 날 찾아온 이유가 뭔데."

"들었어.. 혼자 간다고."

누구에게, 라고 묻기에는, 뭐 대주교님에게 들은 거겠지.

연회색 눈동자는 그 결정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처럼 똑바로 나를 주시하고 있다.

"왜. 혼자서.. 가는거야?"

"내가 가려는 곳이 분명 네게 위험한 곳이니까."

"나도, 따라갈래."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과, 아예 위험하다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내가 향하게 될 대삼림은 그중 후자에 해당하며,

이미 얼마 전 다녀온 적이 있는 불길과 마물들에 휩싸인 그 검은 숲보다는 아니었지만 분명 위험한 곳이다.

그곳에 자리잡은 마물들의 골치 아픈 특성 때문에라도 그렇고, 무엇보다 해결이 빠를수록 좋은 문제이니만큼 혼자서 다녀오는 게 나을 거라고 판단했다.

소녀가 수의 객잔에 남지 않고, 날 따라온 이유에 대해서는 이미 들어 알고 있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을 생각도 없지만..

며칠 걸리지 않을 일에 굳이 위험한 대삼림으로 소녀를 데려갈 필요는 없겠다고 판단했을 뿐이다.

마침 대주교님에게 맡겨둘 수 있겠다 싶기도 했고 말이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소녀는 뚱한 표정으로 내게 물어올 뿐이다.

"왜 혼자, 위험하려고 해?"

"다소 위험한 것 정도는 내겐 괜찮으니까. 너도 알잖아."

"..."

소녀는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문다.

내가 약속을 어겼다고 생각하기라도 한 걸까?

그러고는 이내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질문을 재차 던져온다.

"왜 혼자, 힘들고, 아프려고 해?"

"나는..."

조금만 바뀌었을 뿐인 질문이었기에 나 역시 바로 대답을 고쳐 말하려다 조용히 입을 다물고 말았다.

'나는 힘들고 아프더라도 괜찮으니까.'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말이다.

"..."

누군가가 특별한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해서, 그에게 그것이 힘들지 않을 이유는 될 수 없다는 걸 나는 안다.

이 당연한 걸 모르는 이들이 이 세상에는 너무나도 많았지만 말이다.

모른다기보다는, 모른 척한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까?

그렇게 내가 대답을 주저하고 있는 사이, 소녀가 먼저 내가 하지 못한 말을 자신의 입에 담는다.

"... 따라갈거야.. 나는, 괜찮으니까."

날 따라가겠다고 결정했을 때, 그때도 이렇게 말했었지.

.. 괜찮다고.

그 괜찮다는 게 과연 어디까지 허용가능한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저 결정을 여기서 더 거부할 수는 없다.

이건 내가 아닌, 소녀의 의지에서 비롯된 결정이었으니까.

"난 분명히 위험한 곳이라고 말했어."

"응."

"그런데도 따라오고 싶다면... 멋대로 따라오면 되는 거겠지."

".. 응."

내 허락에 소녀의 후드 위가 잠깐 움찔하는 게 보인다.

뭐가 좋다고 저런 반응인지..

"에단, 대삼림에 저 아이도 데려가려는 겁니까?"

"나도 대주교님에게 맡겨두려고 했어. 그런데 본인이 그러고 싶지 않다면서 이렇게 멋대로 도망쳐 나왔는데, 내가 뭘 더 어쩌겠어. 일단은.. 은인이거든."

"... 끙.."

이거야 원, 대주교님만 곤란하게 만든 꼴이 되어버렸다.

"하여튼 제정신은 아니야."

그 위험한 곳에 함께 갈 수 있게 되었다는 데에 기뻐하고 있는 소녀의 모습은 어딘가 뒤틀려있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제정신이라는 그 덧없는 개념따위, 그 옳은 판단 기준을 지금은 나도, 그 누구도 모를 테지만.

"우선은.. 그래, 지금쯤 애타게 널 찾고 있을 대주교님에게 사과부터 드려야겠네."

"... 으응."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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