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일행 출신 사제의 우울-70화 (70/137)

〈 70화 〉 11. 불신과 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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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불신과 맹신(5)

"긴장할 필요 없어요. 제가 묻는 말에만 대답해 주세요."

세레스티아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애써 마음을 추스르는 한 편으로 싹을 틔워올리는 불안을 느꼈다.

"... 에단이.. 당신을 해치려고 한 적이.. 있나요?"

"..."

말없이 자신을 올려다보는 수인 소녀의 눈동자가 안타까울 정도로 흐리멍덩했기에, 제대로 된 대답을 기대할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안타까운 모습을 가장 처음 발견했다고 하니, 저 어린 나이에.. 그 충격은 이루말할 수 없을 것이다.

"..."

"아.."

그런데 그 순간, 조용히 고개를 젓는 수인 소녀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던 세레스티아는 곧이어 자신의 감각에 걸려든 이질적인 마나의 흐름에 저 대답이 거짓이라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되었다.

"..."

"세레스티아 님?"

소녀의 저 대답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물어오는 푸르기스 원로를 보며, 세레스티아는 자신의 입이 차마 떨어지지 않는 것을 느꼈다.

그에 반해 그녀의 반응을 보고 이미 저것이 거짓이라는 걸 눈치챈 푸르기스는 마치 전부 예상하고 있었다는 것처럼 씁쓸한 웃음을 지어온다.

"거짓이로군요."

"..."

입을 열지 못하는 세레스티아를 대신해 이번에도 푸르기스 원로가 소녀의 심문을 대신한다.

"괜찮다, 어린 수인아이야. 지금의 그는 너를 해치기는커녕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러니 그의 눈치를 보고 거짓을 입에 담을 필요는 없다."

"아니... 아니야.. 해치려고 한 적이 있는 건... 맞지만.. 하지만, 그건 내가 먼저 나쁜 짓을 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가 너의 목을.. 졸랐다거나..?"

당신들이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을 꾹 다문 채 자신을 향하고 있는 저 엘프 여자의 연녹색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으면 머릿속은 무조건적으로 진실만을 말할 것을 강제해 온다.

"목을... 조른 적이 있는 건.. 맞지만... 읏.. 하지만.."

처음 자신이 그의 물건을 빼앗기 위해 달려들었을 때, 목을 붙잡혀 바닥에 내려 꽂히고 그의 목을 관통시켰던 가시로 되려 위협을 받은 것이 분명 기억 속에 있다.

하지만 그건.... 그가 그렇게 반응을 한 건 오로지 수인인 자신을 해치기 위함이 아니었다.

먼저 잘못을 한 건 자신이었고, 그에 대한 각오가 되어있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거기다 그는 오히려 자신의 얼굴을 확인 하고는 마무리를 지으려는 움직임을 멈추기까지 했으니..

"... 의심의 여지가 없겠군요."

"불쌍한 아이 같으니.."

"쯧쯔.."

그들이 어떤 오해를 하고 있는지 알고있음에도 소녀는 자신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을 느꼈다.

더 들을 필요도 없겠다는 것처럼 쓸려가 버리는 이 분위기와, 자신마저 그가 아이들을 죽였을지 모른다는 불안에 사로잡혀... 이젠 이미 커다랗게 덩치를 키운 의심이 발목을 붙잡아왔기 때문이었다.

"성실한 증언에 감사드립니다. 이만 돌아가도록 하십시오. 저 어린 수인에게는.. 저자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고통일 테니..."

"아... 아..니.. 나는..."

자신의 말들이 그의 재판에 큰 영향을 미칠 거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던 소녀는 이 견디기 힘든 압박감에 시달리다,나가기 직전이 되어서야 간신히 부정의 목소리를 끌어올렸지만..

아직 할 말이 남은 것 같아 보이는 수인 소녀의 의사를 무시하고, 푸르기스 원로는 경비들에게 손짓한다.

세레스티아는 이를 막지 못한 채 그들을 바라보고만 있다.

"잠시.. 잠시만요..!"

그런데 그때, 조용히 수인 소녀의 뒤에 서있었던 사슴 수인이 경비의 인도를 받아 끌려나가는 도중, 갑작스러운 말을 꺼내온다.

푸르기스 원로는 그냥 끌고 나가라는 의미로 손짓을 멈추지 않았지만, 이를 세레스티아가 잠시 멈춰 세운다.

"당신은 분명... 수인 마을의 진료소에 있었죠."

"네, 네..! 세레스티아 원로님. 저는 라챤코라고 합니다."

꾸벅 고개를 숙인 그녀의 양쪽 뿔에 달린 장식들이 흔들리며 조명빛을 반사하는 걸 보면서, 세레스티아는 그녀가 멈춰 선 이유를 물었다.

"이번 재판과 관련해, 뭔가 할 말이라도 있는 건가요?"

"아, 그게.. 그러니까.. 제가 확인한 아이들의 죽음에... 이상한 점들이 있었습니다.."

"... 이상한 점이요..? 설마 다른 외상이 발견된 건가요?"

스스로도 아직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의 라챤코를 보며, 세레스티아도 의구심을 가지고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전혀 예상 외의 것이었다.

"아니요, 아니요.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아이들은... 두 손에 목이 졸려 질식사한 것이 맞지만, 그 외에 어떠한 외상도, 저항한 흔적도 없었습니다."

"그게.. 무슨 의미죠?"

"손자국은 모두 일치했습니다. 그러니 범인의 팔이 여러 개가 아니라면... 아이들을 한 명씩 목을 조르고 있을 때,붙잡힌 아이는 물론..그 주변의 아이들도 도망치거나 저항하지 않았다는 걸 의미합니다."

"...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누군가 자신의 목을 졸라 왔을 때,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본능이 뛰어난 수인들에게는 저항을 하려다 손톱이 부러진다거나, 인대가 늘어난다거나 하는 등의 흔적이 남아있어야 맞다.

두팔과 다리를 묶어놓지 않고서야 숨통이 조여들면 살기 위해 크게 발버둥을 칠 수밖에 없는데, 손이나 발에 묶인 자국조차 없이 아이들의 시신은 깔끔했다.

오랫동안 강한 압력을 받아 피멍이 들어있는 목을 제외하고는 정말 이상할 정도로 깨끗한 것이다. 어느 한 명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섯 명의 아이 모두가 말이다.

"그건.. 저도 잘..."

"..."

"흠.. 아직도 저희들에게 숨기고 있는 게 많은 자입니다. 기괴한 능력 하나 둘 정도 더 숨겨두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겠죠."

라챤코의 증언으로 회장 내부에서는 잠시 의문 섞인 목소리들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지만, 이는 푸르기스 원로의 한 마디로 일축되고 만다.

"라챤코, 당신의 성실한 제보에 감사드립니다. 이만 돌아가 어린 수인에게 내려질 판결을 기다리십시오."

"... 알겠습니다."

문이 닫히고, 푸르기스 원로는 펜을 들어올려 몇 가지 내용을 더 써내려간 다음, 멋들어진 서체로 글이 적힌 종이 한 장을 세레스티아에게 건네 왔다.

"푸르기스 원로, 이건...?"

"판결문입니다. 세레스티아 님께서 아이들을 살피고, 수인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경계 밖에 다녀오시는 동안.. 마음 편히 쉴 수 없었던 저희들이 재판 직전에 가진 원로회외의 내용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렇...군요.."

원로회의 수장이었지만 단독으로 에단과 동행하며 그를 감시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그녀는, 자신을 제외하고 진행된 원로회의의 결정사항마저 거절할 입장이 되지 못했다.

둘러앉아있는 다른 원로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피며, 그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이는 것까지 확인하게 된 세레스티아는 어쩔 수 없이 그 판결문을 받아들었다.

"읽어 주시죠."

그의 목소리는 분명 차분하고 고저없이 부드러웠지만, 세레스티아는 강요받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읽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까지.. 이미 와버린 이후였지만 말이다.

세레스티아의 시선이 에단을 향한다.

고개를 숙이고 판결만을 기다리고 있는 그에게, 이번만큼은 고개를 들라고 말할 수 없었다.

"... 에단, 수인 아동 다섯을 잔인하게 목졸라 살해한 그 죄는 중대하나.. 죽음에서조차 돌아오는 그대에게 사형 집행을 언제까지고 할 수도 없으며, 그 능력을.. 어머니의 나무를 정화하는 데에 있어 필수불가결의 요소로 판단하는 바.. 사지와 목에 구속을 마치고 폐쇄된 성소에 감금하여, 반복되는 삶과 죽음 속에서... 자신이 저지른 죄를 참회하며, 생명의 요람을 위한 희생으로나마자식을 잃은 부모들에게사죄할 수 있도록 선처한다."

"..."

에단은 그 판결문에 수긍하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인다.

어떠한 변론이나 불만도, 그는 제기하지 않는다.

".. 헹겔, 폭행과 경계 내의 무단침입, 그리고 살인까지. 수인들의 대표를 맡고 있음에도 이러한 충동적인 범죄를 저지르고 만 그대의 죄 또한 중대하나... 두 엘프 경비병은 잠시 기절했을 뿐, 추가적인 외상이 없었다는 점과, 당시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범인에게 보복하려 했다는 인과를 현장 확인과 다수의 증언을 토대로 본 원로 재판은 인정하는 바, 원래대로라면 추방 명령을 내려야 마땅하나 대표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나는 것으로 종족 간의 합의를 이루도록 한다."

"..."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으며, 고개를 떨구고 있는 헹겔.

입술을 깨물고 만 세레스티아는, 비교적 최근에 적힌 것으로 보이는 마지막 판결을 읽어내렸다.

"그리고... 실비아. 이 어린 수인은 에단의 일행이었으나, 학대를 받아온 정황이 확인된 만큼 같은 피해자로 인정하여 그 죄를 따로 묻지는 않겠다. 추방 명령 또한 내리지 않으며 판결이 전해지는 대로 구속을 풀어줄 것을 명한다.."

"잘 하셨습니다."

"..."

입가에 웃음을 띠고 자신의 어깨를 토닥여오는 푸르기스 원로의 평소같지 않은 그 행동과 표정에서 왜인지 모를 거부감을 느끼고 몸을 비틀어 벗어난 세레스티아는, 순식간에 피어오르는 의구심에 그 진실만을 강제하는 눈동자로 그를 똑바로 쳐다보고 이렇게 물었다.

"에단을 어머니의 나무에... 이것 때문인가요? 이것 때문에 일을 꾸민 건 아니겠죠 푸르기스 원로..!"

"흥분하신 것 같습니다. 세레스티아 님.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실례가 되는 억측이 아닙니까."

"제가 묻는 말에 대답하세요. 푸르기스 원로."

그 단호한 목소리에 입가의 웃음기를 지운 푸르기스 원로는 굳은 표정으로 그녀를 마주 바라본다.

공식선상에서 이렇게까지는 맞부딪힌 적이없는 둘이었던 만큼 원로들의 시선조차 둘을 향하고, 회장은 숨이 막힐 정도의 긴장감으로 가득찬다.

"후우... 어쩔 수 없군요. 잘 들으시죠. 저는 그 어떠한 계략도 꾸민 적이 없습니다. 그가 이런 짓을 저지를 줄도 몰랐고 저 역시 몹시 유감이지만... 사실대로 말씀을 드리자면, 한편으로는 어머니의 나무가 메마를 일 없게 되었다는 점에서 정말 다행이라고도 여기고 있습니다."

"..... 거짓말이.. 아니군요..."

"이제 만족하셨습니까?"

"..."

그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자신이 터무니없는 실수를.. 그것도 모두가 보는 앞에서 이렇게 저지르고 말았다는 걸 깨달은 세레스티아는 힘없이 고개를 떨구고, 흔들리는 눈동자로 자신의 손에 구겨진 판결문을 바라보았다.

진실을 바라는 눈동자의 빛에도종이 위의 흔들리는 글씨들은 내용을 전혀 들려주지 않았고,

사형. 학대. 죽음 과 같은 부정적인 단어들만을 언뜻 언뜻 시야에 담아오고 있다.

툭.

자신의 어깨에 다시 한번 올려진 그의 손을 세레스티아는 이번만큼은 떨쳐내지 못했다.

".. 누구보다지혜로운세레스티아님의 눈 앞에서, 제가 어찌 거짓을 입에 담겠습니까."

"..."

에단은 판결문을 들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저항 한번 하지 않고 엘프 경비들에게 끌려나갔고.

그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이비는 헹겔의 속박을 풀어주었다.

철컹! 철컹!!

땡강...! 땡그랑.....!

두 조각씩으로 분리된 묵직한 쇳덩이가 바닥에 부딪혀 큰 소리로 회장 안을 울리고,

당장이라도 그녀가 에단을 뒤쫓아 달려나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헹겔은 이비에게조차 아무런 말 한마디 없이 그저 힘빠진 발걸음으로터벅터벅밖을 향한다.

재판은 끝났다.

원로들도 하나 둘 자리를 떠나고, 마지막으로 세레스티아마저 판결문을 한 손에 구겨쥔 채 떠나가고 나서야...

불꺼진 회장 안에 홀로 남게 된 이비는... 두 눈을 감고..

그렇게 한참을 이 어둡고 조용한 회장 안에 서 있다가, 다시 눈을 떴다.

"후우..."

수많은 감정의 덩어리가 지저분하게 뒤섞인 한숨을 길게 내쉰 이비는헹겔이 떨어뜨린 구속구를 바라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 이거였구나."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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