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일행 출신 사제의 우울-110화 (110/137)

〈 110화 〉 19. 금빛 새벽을 불러오는 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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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빛 새벽을 불러오는 용사(1)

쩔걱! 철걱! 철걱! 철걱!

척! 척! 척! 척!

누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게끔 얼굴을 포함한 전신을 감싼 흑색 갑옷의 한 무리 군인들은 절도있는 발걸음으로 대로의 돌바닥을 힘껏 짓밟으며 거리 위를 위압감으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황제 폐하를 위하여!!"

"... 황제 폐하를 위하여."

그러나 가로등이 밝혀진 대로를 따라 황명을 수행하는 이들은 단순히 거리를 걷고 있을 뿐 다른 특별한 행동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몇 번씩을 아무도 보이지 않는 빈 거리 위에서 황제 폐하를 위해서라며 힘껏 소리칠 뿐이다.

그러다 그들은 곧, 대로의 끝과 끝을 이어놓는 커다란 광장에 도착한다.

"정지...!!"

"정지..!"

처저저적..!!

처적!

집행 소대의 하나인 이들을 이끄는 소대장의 명령이 떨어지고 나서야 그들은 일제히 갑옷 소리를 내며 멈춰 섰고,

아무래도 드디어 무언가 제대로된 명령 수행을 보여주려는 모양이다.

.. 그러나 대로와 마찬가지로 텅 비어있는 이 광장 위에서 이들은 황제의 유일한 명령을 집행하는 데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철걱, 처저저적...!

그럼에도 갑옷소리를 내며 일사불란하게 산개하는 이들의 움직임에는 고된 훈련의 흔적이 묻어나 있다.

이젠 영지와 영지간의 싸움도 일어나지 않게된 하나의 도시 모르부스에서 이 땅을 침범할 이는 비쩍 마른 부랑인들과 마물들 뿐이었건만, 이들이 이렇게나 잘 훈련되어 있는 것은 다소 의문스럽기도 하다.

"... 존, 어이 조나단, 뭘 그렇게 열심히 기웃거리고 있어. 어차피 근처에아무도없다니깐."

"알고 있어, 그래도 명령이니까."

"뭘 언제부터 그렇게 충성스러웠다고 그러냐? 그나저나 참 이상하지, 남부지구에서 칼날 놈들이 이미 한 번 들쑤시고 난 다음부터는 집 밖에 싸돌아다니는 주민들이 없을텐데.. 우리한테 떨어진 명령은 대로와 광장에서의 집행이라니, 무슨 생각인 건지 모르겠다니까."

광장의 구석구석을 살피기 위해 병사들은 둘씩 찢어져 움직이고 있었고, 주변에 그들 이외에 따로 듣는 귀가 없었기에 이런 말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아마 지금 이곳에 있는 소대원들 모두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겠지만 말이다.

"내 생각에는 말이지? 그냥 미친놈인 것 같아, 애들은 왜 잡아다가 수용소에 쳐넣는 건지 모르겠고, 저항군이 거슬리면 그냥 싸그리 밀어버리고 뿌리 뽑으면 될 텐데 이렇게 쓸데없이 군인들을 굴리고 있잖아."

".. 확실히 이상하긴 하지. 저항군과의 힘의 차이는 명백하고, 그들에게 모르부스 바깥으로 도망칠 곳 따위는 없으니까. 어쩌면 황제는 그들이 크게 위협적이지 않다고 느끼지 있는 건지도 몰라."

"하기야... 뭐, 우리야 적당히 산책이나 하고 배급받으면 되니까 좋기는 한데.."

조나단이라 이름 불려진 사내는 자신의 친한 동료인 카알을 잠시 바라보다 그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잠깐 다녀올게."

"너는 꼭 밖에 나와서 오줌 싸더라, 긴장 좀 풀라니까 짜식이."

"... 시끄러워 인마."

그렇게 조나단은 갑옷 아랫부위를 부여잡고, 엉거주춤한 발걸음으로 광장 구석의 어두운 골목으로 향한다.

"..."

하지만 그는 골목 너머로 넘어오자마자 연기하던 자세를 바로하고 신중하게 주변부터 살폈다.

휘­익..

자신을 따라온 이가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그는 골목 너머의 어둠 속으로 짧게 휘파람을 불었고,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이내 가볍고 조용한 발걸음 소리가 하나 어둠 속에서 들려오기 시작한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이는 점차 빨라졌고,

그대로 갑옷을 입은 이에게 안겨들어 왔다.

다만 이런 상황에서도 그들은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도록 주변을 경계하며 조심하고 있었다.

"... 로잔느."

"오빠.."

혹시 모르는 상황에 대비하여 조나단은 투구를 벗을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모습을 드러낸 여성은 그를 알아보고 갑옷 위로허리를더욱 힘주어 끌어안는다.

".. 무사해 보여서 다행이야. 루이는 잘 지내고?"

"응, 루이도 이제 열다섯인 걸... 내년이면 벌써 성인식 할 나이고."

"... 그랬구나."

남매가 이 막간의 재회를 기뻐하는 것도 잠시, 둘의 눈빛은 이내 진중함을 머금고 서로를 향한다.

그렇게 처음으로 여성이 내뱉은 질문은 평범한 남매 사이에서는 이루어지기 힘든 대화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수용소 위치는 알아냈어?"

"서부지구 투기장에서 임시 수용 후에, 그 중에서 또 선별을 해서 황성 지하로 데려가고 있어. 황제의 칼날은 그 위치에서 여태껏 움직인 적이 없으니 확실할 거야."

"... 그렇게 되면 지하 수로 말고는 밖에서 안으로 들어갈 방법이 없잖아."

"맞아. 그래서 여기, 어렵게 구했어. 지하 수로 경계조의 여분 지도야, 말 그대로 여분이라 근무에 관련된 기록은 그 위에 없지만.. 그래도 필요할 거야."

최대한 작게 접어 꾸깃꾸깃 갑옷 안쪽으로 숨겨둔 황성 지하 수로의 지도를 꺼내 건네준 그는 이를 넘겨받는 자신의 여동생의 손등을 꾹 붙잡는다.

".. 이건 네가 할 필요가 없는 일이야."

여러가지 의미와 감정이 담긴 말이었다.

"알아,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지."

그러나 여동생의 망설임 없는 대답에 조나단은 더 이상 잔소리를 할 수 없었다.

사실 그녀가 그렇게 대답할 거라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다.

.. 그렇기에 지금 자신이 더 건넬 수 있는 말이라고는 이것밖에 없다.

".. 늘 하는 말이지만... 몸조심해."

"몸을 사리면서는 할 수 없는 일이야. 하지만.. 오빠 마음은 알겠어. 최대한 조심할게."

"... 그래, 그걸로 됐어."

건네받은 지도를 품속에 넣고 등을 돌린 그녀를 조나단은 끝내 한 번 더 붙잡았다.

"... 건국제."

"응..?"

"건국제.. 그때가 되기 전에, 아니라면 그 당일에라도 뭔가 일어날 것 같아.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아."

확실한 것은 아니었다. 근거가 부족한 이야기를 함부로 판단에 끼워넣었다가는 자칫 선택을 그르치게 만들 수도 있었지만.. 고민 끝에 말을 꺼낸 것은 이를 감수할만큼이나 찝찝한 무언가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그의 여동생은 그의 마음을 알아채고 의견에 동의해 준다.

"그렇네, 건국제까지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황제에게 있어 큰 의미가 있는 날인 만큼 그전에 우리를 정리하려 들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걱정하지 마, 우리도 마냥 가망 없는 싸움을 하려 드는 건 아니니까."

"..."

".. 고마워. 오빠."

고맙다는 말을 끝으로 골목 너머의 짙은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린 여동생의 보이지 않는 뒷모습을 눈으로 좇으며, 그는 엉거주춤 들어 올렸던 손을 다시 내려놓았다.

".. 몸조심 해야 해, 로잔느."

들어주는 이 없는 빈 골목에 그 말을 힘없이 내뱉고, 조나단은 다시 가로등으로 밝혀진 광장으로 걸어 나왔다.

그러자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카알이 손을 흔든다.

"오줌 싸는데 뭐 그렇게 오래 걸려? 설마 큰 거? 아니지, 갑옷 입고는 큰 거 못 싸잖아. 너 설마 오줌 싸다가 갑옷에 흘렸냐? 그래서 그래?"

추잡한 농담을 던지며 자신에게서 멀리 떨어지는 자신의 동료를 보며, 조나단은 실없이 웃고는 그의 농담에 어울려 주었다.

"그래, 좀 흘렀다. 이리 와 인마, 손 좀 닦게."

"에이 씨! 저리 가라? 어어..?"

개미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 광장에서 집행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는 만큼, 이들뿐만 아니라 다른 병사들도 아예 앉아서 쉬거나 잡담을 나누고 있었기에 그들의 행동은 그다지 이상하게 비추어지지 않았다.

그런 만큼이나, 그들에게 내려진 명령은 어딘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성인이 아닌 아이들을 무차별적으로 잡아들이라는 비정상적인 명령.

그 이유로 제국 격상에 걸맞은 정예 병사의 조기 육성이라는 다소 억지스러운 변명을 끼워맞추고는 있었지만,

남녀 불문에 임산부, 심지어는 갓 태어난 아기까지도 빼앗아 간다는 소문이 들려오고 있는 걸 보면 그 변명은 정말 말도 안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신들은 집행 소대에 배치되고 단 한 번도 명령을 수행한 적이 없었다.

집행 범위를 대로와 광장에만 국한시켜놓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지금껏 그 명령을 집행해온 것은 다름 아닌 황제의 칼날이라 불리는 붉은 갑옷의 기사단 뿐이다.

자신들의 눈치를 보고 겉으로라도 이 무리한 명령을 따르는 구색을 갖추게 한다?

바실리카에서 찾아온 사절단을 성당에서 처형하고, 귀족들을 중앙광장에서 산 채로 분쇄기에 집어넣어 돼지들의 밥으로 주는 등의 정신나간 기행을 벌인 황제가 고작해야 병사들의 눈치를 볼 리가 없다.

지금 이들 집행 소대는 말 그대로 하는 일이 없었다.

늘 같은 시간, 늘 같은 경로, 늘 같은 인원으로.. 별 의미없는 행군을 수십 개의 소대가 매일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집행에 저항하기 위해 일어난 저항군과 창궐한 역병에 동시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사람의 손은 하나라도 더 필요할 텐데 말이다.

황제가 일부러 주민들과 저항군을 내버려 두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일개 병사인 그조차도 받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아무리 홀로 고뇌한다 해서 황제의 진의를 알아낼 수 있을 리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그는 계속해서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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