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일행 출신 사제의 우울-113화 (113/137)

〈 113화 〉 19. 금빛 새벽을 불러오는 용사

* * *

19.금빛 새벽을 불러오는 용사(4)

늘 알고 싶었다.

나는 왜 이곳에 있는 걸까.

빼앗긴 태양을 되찾아 하늘을 짙게 드리운 어둠을 걷어내는 것.

입에 담기도 겁나는 일곱 머리의 사악한 붉은 용을 쓰러뜨리는 것.

인류를, 더 나아가 아케라의 모든 종족을 구원하는 것.

세상을 구하는 것.

이 손으로.

내가.

이렇게나 중요한 일을,

어째서 내가.

이만큼이나 무거운 책임과 의무가 내 어깨를 짓눌러 올 것을 진작 알았더라면.. 나는 결코 이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어째서 용사일행의 사제가 되어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일까..

용사,

일행..

그렇다.

사실 내가 버틸 수 있었던 건 전부..

앞에서는 이끌어주고 뒤에서는 든든하게 받쳐주며 나아갈 수 있게끔 떠밀어주던 동료들이 있어서였다.

노아... 레베카..

... 아가사.

나는..

양손에 든 검을 섬광처럼 휘둘러 빛이 번쩍거릴 때마다 거대한 덩치의 마물들이 우수수 쓸려나가는 광경을 만들어 낼 수 없다.

나는,

천재지변과 같은 마법으로 벼락을 내리치고 땅을 뒤엎으며 언덕 너머를 가득 메운 마물 무리를 처리하지도 못 한다.

나는,

목소리를 듣고 올바른 방향으로 일행을 인도하여, 늘 빛이 바래지 않는 마음가짐으로 모두가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도록 독려해주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 사제인 내게는 무엇 하나 흉내 내기 어려운 일들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이곳에 홀로 서 있다.

이런 보잘것없는 나라도 반드시 지켜내고픈 하나의 희망을 등 뒤로 숨긴 채,

여전히 나는 숨이 끊어지지 않았다.

쿵...! 쿵...! 쿵...! 쿵...! 쿵...!

... 사제에게는 버거운 일?

이 세상이 언제부터 그런 사정 하나하나를 다 봐줄 만큼 상냥했나.

쿵....! 쿵....! 쿵....! 쿵....! 쿵....!

... 노력이나 의지로는 결코 극복할 수 없는 압도적인 힘의 차이?

그런 것, 일곱 머리의 붉은 용을 상대하며 이미 충분히 뼈저리게 느꼈다.

쿵.....! 쿵.....! 쿵.....! 쿵.....! 쿵.....!

그러니.. 나는 네놈의 말에 따라, 비참한 꼴로 이 불합리한 폭력에 저항해 주겠다.

그러나, 그리 쉽게 죽어주지는 않겠다.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엉킨 실줄기에 걸린 베틀처럼 나아가지 못하고 늘어지던 심장 소리가 드디어 제대로 들려오기 시작하고, 그에 모자라 끓는 피를미친 듯이 쥐어짜내며 격동하기 시작한다.

당장 내 눈앞으로는 여전히 안간힘을 쓰며 나를 끌어내려 하고 있는 소녀의 모습과,

그 위로 떨어져 내리고 있는 다섯 줄기의 참격이 보인다.

"지크프리트...!!"

쿠두두두둑....!!!

캉....!!!

"호...?"

그 아래의 존재를 비루한 고깃 조각으로 전락시키기 위해 떨어져 내리던 놈의 손톱은,

무언가 단단한 것에 가로막혀 강하게 진동하며 반대 방향으로 튕겨나간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쥐고 있던 것을 집어던졌지만, 놈은 당연하다는 듯이 피해낸다.

"... 이건, 놀랍군."

쿵! 쿵! 쿵! 쿵! 쿵!

온몸을 뒤덮은 검푸른 털, 쇳덩이를 집어넣어 둔 것만 같은 근육질의 몸, 머리 위로 솟아난 늑대의 귀와 튀어나온 주둥이, 그리고 크고 날카로운 이빨들은 이전과 달라지지 않은 틀림없는 순혈자의 모습이다.

지긋지긋한 절망에 사로잡혀 있던 내게 마치 일렁이는 그림자와 같이 불길한 악의 덩어리로밖에 보이지 않고 있던 놈의 모습을..

나는 지금이 되어서야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놈이 내뿜고 있는 강대한 기세가 내 생존본능을 자극할 새도 없이, 나는 지금 당장 내 몸 안에서 터져 나오기 위해 핏줄을 터뜨리고 다니며 빠져나갈 구멍을 찾고 있는 거대한 기운의 격류를 눌러 담는 데에 급급했기 때문이었다.

촤르르르륵...!!!

"그건.. 말뚝인가...?"

어느새 완벽하게재생이끝난 내 팔을 세게 잡아당기자 사슬에 끌려와 손바닥 위로 빨려 들어온 쇠말뚝을 놈은 보고도 굳이 묻는다.

"크흐으... 헉, 컥..."

아쉽게도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쩌적... 쩌저저적..

꾸구구구욱....

은총을 한계까지 머금고 안쪽에서부터 단단하게 굳어진 피부는, 마찬가지로 한계까지 몸속에 채워 넣어진 은총의 격류가 가져오는 압력에 못 이겨 쩍쩍 갈라져 부서지다가도 저주로 아무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다른 이들의 눈에는 내 온몸의 피부가 멋대로 깨지고 갈라지면서도 끊임없이 맞붙어 아물고 있는 징그러운 모습으로 비추어지고 있을 것이다.

내가 발휘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을 가져다준다고는 하나, 조금이라도 방심하는 순간 내 몸이 산산조각나 터져나가고 말 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지금 이 상황에서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 크흐흐흐흐, 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에단..! 그거다...! 바로 그거야..!!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투쟁이다!! 맞서 싸워라...! 발버둥 쳐라..! 끝까지 저항해라...!!!"

내 신체를 매개로 삼아 무한한 은총을 계속해서 눌러 담고, 그 한계의 한계를 맞이했을 때 나 자신의 안위나 주변 상황조차 고려하지 않고 그대로 터뜨려 거대한 힘의 폭발을 일으키는 것이야말로 내가 마지막 수단으로 여기고 있는 '고해'이다.

눈앞으로 밀려오는 끝을 직감한 내가 반사적으로 온몸을 은총으로 가득 메우자, 갈 곳 없이 몰려다니던 저주의 기운이 잘려나간 양팔로 순식간에 집중된 것은 솔직히 말하자면 의도한 결과는 아니었다.

하지만 덕분에 양팔은 화살이 쏘아지는 것보다도 빠르게 재생했고, 품속에서 그리운 물건 하나를 꺼내들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촤르르르르르륵....!!!

쩔그럭! 철걱!

사제복을 젖히자 옷 안쪽으로 늘어져 있는 수많은 쇠 말뚝들.

등에 인 관을 고정시킨 사슬 소리에 묻혀 드러나지 않고 있던 그리운 사냥도구들이다.

투박한 쇳덩이처럼도 보이는 말뚝들은 특이하게도 한 쌍마다 사이에 100 레니 정도 길이의 두꺼운 쇠사슬로 연결되어 있다.

북대륙을 떠나 바실리카로 거처를 옮기고서는 앞으로 더이상 쓸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해 대주교님께 맡겨둔 것이었지만,

... 다시 마물을 사냥해야 할 때가 왔다.

"그흐흐흐흐흐.. 그래... 바로 그 눈빛이다. 네가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투쟁할 수 있는 전사라는 걸!! 내게 증명해 봐라!!!"

...!!

주변의 흙먼지가 한차례 휘몰아치듯 내게서 물러서고 있다면, 그때는 이미 놈이 나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기 위해 두 손을 휘두르고 있다는 의미다.

이 속도를 따라가려는 생각을 해서는 그것만으로 늦는다.

찢어지고 재생되기를 반복하고 있는 탓에 붉게 물든 시야보다는 이 숨기려해도 숨겨질 수 없는 놈의 강대한 기운을 따라 나도 내 몸이 기억하고 있는 본능적인 반응을 기대하는 것만이 정답이었다.

캉....!!! 까가가가가가가각....!!!!

카칵...! 칵.....!

성기사들의 검과 둔기 대신 내 손에 들린 두꺼운 쇠말뚝은 은총을 가득 머금고 강화되어 놈의 날카로운 손톱을 막아낸다.

막아낸 것이다.

그러나 벌써 깊게 패인 상처가 생겨나 불똥이 튀는 것으로 보아, 한 개당 고작 두세 번의 공격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네놈은 사제일 텐데...!! 이런 훌륭한 싸움 방식은 대체 누구에게 배운 거지?!"

캉...!! 까각..! 캉!! 깡! 캉!!! 캉!!

마치 내가 팔을 들어 올리면, 놈이 알아서 그 위로 손톱을 휘두르는 것처럼.

쉴 새 없이 손목에 사슬을 걸고 새로운 말뚝을 꺼내 손에 쥐고, 오감을 곤두세우면 머리보다는 몸이 먼저 움직여 놈의 움직임을 따라가고 있었다.

"내 움직임을..! 그리고 힘을..!! 바로 턱 밑까지 쫓아오고 있다니...!! 놀랍군! 놀라워!! 가르침으로 얻은 손 버릇 따위도 없는..! 그야말로 야생의 전투법이 아니냐...!!"

.. 대답하지 않는다.

바위처럼 단단하게 굳어진 몸일지라도 당장이라도 부스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전신에 힘을 주고 있는 내게는 질문에 짧게나마 대답할 여유조차 없다.

"..."

무엇보다 놈과 공방을 주고받기 시작한 이래로 목구멍 아래에서 차오르는 숨을 강제로 틀어막은 상태였기때문이었다.

지금 호흡을 했다가는 내 몸은 들숨과 날숨에 맞춰 수축 이완하며 전신이 찢어지는 고통을 선사할 테고, 놈의 공격을 방어하고 있는 내게 호흡에 따른 일순의 멈칫거림이나 조금의 규칙성이라도 나타났다가는 당장 패배로 직결되고 만다.

"끄으으으으윽....!!"

캉...!!!! 까강!!

그렇기에 당장 이 부스러질 것만 같은 몸 상태를 부여잡기 위해서는,

그리고 찰나의 틈을 매섭게 노려오는 놈의 맹공을 막기 위해서는,

모든 불완전 요소를 배제해야만 했다.

내가 견딜 수 있는 시간은 결코 길지 않을 것이다.

폭발 직전의 강대한 은총은 지금도 저주를 몰아내고 있었기에 재생능력까지도 현저히 저하되어 있다.

"강자의 압도적인 힘 앞에 철저히 유린당하는 것이 싫다면!! 소중한 것을 빼앗기고 싶지 않다면..!! 싸워라...!! 내게 맞서 싸워라...!!!!"

깡!!! 깡! 깡!!! 깡! 카앙!! 깡...!! 캉! 깡!!!

카가가가각...!!!

뜨겁게 달궈진 피가 맹렬히 전신을 맴돌며 아직 아물지 못한 핏줄을 재차 터뜨리고,

호흡이 바짝 마르기까지 하니 몸의 겉과 속 전부 불타는 듯 뜨겁고 고통스럽다.

"크하하하하...!!"

"윽, 큭...! 끄윽....!"

먼지와 어둠밖에 남지 않은 이 공간을 서로의 단단한 이빨이 맞부딪히며 튀어오르는 불똥이 만들어내는 찰나의 빛과, 깨져나가는 쇳소리가 요란하게 채워가고 있다.

"끅....?!"

뻐억....!!!

놈에게 있어 희열 그 자체일 이 호각의 공방으로 피가 뜨겁게 달궈진 것일까?

아직도 전력이 아니었다는 것처럼 더욱 빨라진 놈의 공격에 결국 틈이 생긴 나는, 짐승 같은 육감으로 그 좁은 틈에 공격을 끼워 넣어온 놈의 무릎에 그대로 복부를 타격당하고야 말았다.

뒤늦게라도 몸을 빼내어 직격타는 아니었음에도 누군가 나를 붙잡고 크게 한 번 위아래로 흔들어댄 것만 같은 이 커다란 충격은 놀라울 만큼이나 고통스럽지도 버겁지도 않다.

"끄으으으으...!!"

그도 그럴게, 나는 이미 아까부터 이와 비슷한 충격이 몸 내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수십 번씩을 이루어지고 있는 걸 참아내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그러나 이대로 몸이 공중에 뜨면, 당장 이 뒤로 쏟아질 공격을 제대로 막아낼 수 없다.

카가가각...!

칵...!!!!

"...?!! 네놈은..! 크하하하!! 정말 최고다...!! 이대로 죽이기는 아까울 정도야!"

양손에 잡은 말뚝 사이로 이어진 사슬을 내 몸이 붕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놈의 손톱에 역방향으로 걸고 공중에 뜬 몸을 오직 팔힘만으로 늦지 않게 바닥에 내려놓았다.

누군가 가르쳐 준다고 해서 따라 할 수 없을 그 기민한 움직임에 놈은 적인 나에게조차 찬사를 내뱉으며 고양된 감정을 숨기지 못한다.

"진작 이렇게...!! 할 수 있었잖냐..!!!"

카가가각..!! 깡! 깡!!!

뻐억..!!

뻑...!!!

정신없이 놈의 날카로운 손톱을 막아내면서도 종종 날아드는 발차기에 질긴 가죽이 터져나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바위처럼 흔들리지 않으며 오히려 한 손으로만 쥔 말뚝을 철퇴처럼 휘둘러 놈의 어깨나 허벅지 옆 등을 묵직한 쇠말뚝으로 후려치는 등, 이 싸움의 양상은 거의 난투전으로 향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 이렇게 한 대씩을 주고받고 있었음에도, 이 싸움에서의 우위를 누가 쥐고 있는지는 분명해 보인다.

"어째서..! 도망쳤느냔 말이다!! 크흐하하하하하하하!!!!"

뿌득,

쿠드극. 투두둑...!!

쩌적..! 쩍­!

내장, 뼈, 근육, 혈관, 피부

무엇 하나라고 말할 것도 없이 내 온몸에서는 나서는 안될 소리를 내며 망가져가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지속된 부하를 못 이겨 말 그대로 붕괴해가고 있다.

몸을 격하게 움직이면서도 호흡은 강제로 틀어막은 탓에 폐는 불을 삼킨 것처럼 고통스럽고 목은 당장이라도 수만갈래로 갈기갈기 찢어질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통스러운 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내 발악에 어울려주고 있는 심장이 한 번씩 뛸 때마다 느껴지는 끔찍한 격통에도 놈의 공격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아...!! 이제 한계인 거냐...! 아니야...!! 네놈은 더 견뎌낼 수 있다...!!! 모든 것을 빼앗기거나! 혹은 모든 것을 빼앗을 각오로 내게 덤비는 거다...!!"

"끄으으아아아아아아....!! 컥...!"

놈은 나만큼이나 나의 상태를 잘 알고 있을 것이었다.

기운을 억누르는 것에만 집중한 채로 호흡도 없이 몸이 부서져라 격하게 움직이고 있다.

생명의 마지막 불꽃을 화려하게 불태우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불꽃이 이제 곧 사그라들고 말 것이라는 것까지도 놈의 예민한 감각에는 전부 걸려들었을 거다.

.. 결국 나는 놈을 뛰어넘을 수 없었다.

엉망진창이 된 속은 내가 원하지 않아도 울컥 피를 토해내고,

비틀거리는 나를 향해 날아오는 손톱이 보인다.

쐐애애애애액...!!

이건 막을 수도, 피할 수 없겠다는 직감에 마지막까지 있는 힘껏 말뚝의 뾰족한 끝을 놈에게로 내질렀다.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오기에서 였다.

"... 에단....!"

"..?"

그 절체절명의 순간,

실비아가 집어던진 것으로 보이는 검은색 일색의 단검 한 자루가 어느새 내 시야 안쪽으로 들어와 있다.

"이까짓...!"

정확하게 눈알을 노리고 날아드는 그 단검을 놈은 겉보기와 어울리지 않게 유연한 고개를 비틀어 피해내려 했지만,

"컥..?"

내가 사슬을 쥔 팔을 앞으로 내밀다 다시 뒤로 강하게 당겨 그 반탄력에 휘둘러진 말뚝으로 놈의 턱을 힘껏 올려친 탓에 다시 단검의 날끝이 눈앞으로 보이자 결국에는 한발 물러서고 만다.

따라서 나를 찢어놓기 위해쇄도하던 놈의 손톱은 단검을 튕겨내기 위해 간신히 방향이 틀어지고 말았다.

캉..!!

"감히..!! 이 싸움에 끼어들다니...!!!"

신성한 투쟁에 끼어든 훼방꾼에 대한 분노와 짜증으로 일그러진 얼굴 위로 굵은 핏줄이 불끈거리며 돋아나고, 놈의 흉포한 시선이 한순간 소녀에게로 향한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나는 튕겨나가는 검은 단검을 잡아채 품속 깊숙이 숨겼다.

"... 쿨럭.."

그리곤 있는 힘, 없는 힘 전부 쥐어짜내어 가쁜 숨 대신 쿨럭거리며 입가로 넘쳐흐르는 뜨거운 핏물에도 나는 놈의 품 안쪽으로 쓰러지듯 무거운 몸을 내던졌다.

당장 유일하게 비어있는 놈의 옆구리를 노리고 뻗어지는 내 팔에, 나와 마찬가지로 재생능력을 지닌 놈은 자신에게 향해오는 작은 단검 한 자루를 고맙게도 무시해 주고 공격 범위 내로 알아서 걸어들어온 나를 조각내려 한다.

"이딴 공격...!!"

하지만.. 치명상을 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놈이 코웃음을 치며 무시하고 있는 이 한 번의 공격에 내 모든 것이 달려있었다.

소녀가 벌어준 그 짧은 시간 덕분에, 단검의 뾰족한 날끝에는 내 썩은 피로 만들어진 검은 독이 발라져 있다.

뿐만 아니다. 소녀가 머리를 향해 던진 단검 한자루를 무시하지 않고 피하거나 막으려 하던 것으로 보아, 놈이 분명 치명상을 의식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아낼 수 있었다.

... 놈의 재생능력은 결코 나와 같은 불사의 저주는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끄으으아아아아아아아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놈이 이 지독한 독기를 눈치채기 전에..!!!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놈은 같은 수에 두 번 다시 당해주지 않을 것이다.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

나는 끓어오르는 감정을 모조리 토해내듯 갈라지는 고함을 지르며, 단검을 쥔 손에 온 힘을 싣었다.

"...!"

.. 하지만.

놈은 나와 눈이 마주친 그 순간,

단검 따위는 무시하고 나를 동강 내려는 것을 그만두고는 급하게 손을 뻗어 공격을 대신 막아낸다.

그러고는 이렇게 읊조려 오는 것이었다.

".. 이 한 번의 공격에 네 모든 것을 걸었군."

"...!!!"

푸쿠욱...!

짐승의 육감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정확하게 미래예지에 가까운 위기 회피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구드득...! 부득..!!

단검에 꿰뚫린 것은 놈의 옆구리가 아닌, 손바닥.

가까이의 손가락부터 곧바로 반응이 오기 시작했는지 부득 부득 거리며 기괴하게 비틀리기 시작하자, 놈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손목을 베어낸다.

서걱­!!

툭..!

".. 독이었나."

그리고 그 판단은 옳은 것이었기에 그 단단하고 날카로운 손톱은 물론이고 뼛조각 하나 남기지 않고 검게 변해 무너져 내리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던 놈은 나를 씁쓸한 눈빛으로 노려본다.

"그래, 이것 또한 약자가 강자를 상대하기 위해 곧잘 사용해 오던 투쟁방식이지..."

"... 그윽.."

그리고 내가 다시 한번 내장에서부터 차오르는 핏물과 날뛰는 은총에 못 이겨 몸을 움찔거린 순간,

".. 컥, 허억... 쿨럭.. 쿨럭..."

나는 핏물로 가득한 놈의 반대편 손에 누군가의 심장이 뽑혀나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그르르르르.. 네놈을 모조리 뜯어먹어 내 권능의 지배 아래에 둔다면... 다시는 건방지게 재생할 수 없을 거다."

힘의 근원인 심장을 빼앗겼기에 은총의 폭주는 일어나지 않았고, 내 몸은 잔류하던 기운을 못 이겨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아아...

이렇게까지 해도, 부족한가..

죽음에 한 발을 걸쳐둔 위태로운 상태로 온몸이 부서져라 발악하고,

일행의 기습이 벌어준 시간마저 기회삼아 비겁하게 암기에 독까지 발라 놈과 맞찔려 함께 죽으려 했지만...

.. 그럼에도 이겨내지 못했다.

지켜내지 못했다.

아까보다 한 발자국 더 가까워진 실패에 절망하며, 힘없이 떨어진 고개는 커다랗게 구멍이 난 내 가슴께를 시야에 비춘다.

아직 더 내게 할 수 있는 것은 없는지 생각하고 싶어도 아득히 멀어져 가는 정신.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는 것에 대한 개운함이 아닌 나 자신의 약함에 대한 분함으로 엉망이 된 속이 들끓는다.

.. 그러나 입에서 핏물을 쏟아내는 것 이외에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내 귓가로,

".. 아니요. 잘 버텨주셨습니다."

낯설지만, 그럼에도 익숙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기에...

나는 어째서인지 안심하고 눈을 감을 수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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