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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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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어어어어…”
눈 앞에서 쓰러져 가는 마수.
거대한 뱀을 닮은 그것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무기를 들고 있던 이들의 입가에는 환한 미소가 피어 올랐다.
“이겼다!”
“드디어 산맥의 왕을 처치했어!”
기쁨이 담긴 표정을 지은 채 환호성을 지르는 모험가들.
그들은 지금, 지하 깊은 곳에 위치한 둥지에서 지난 수 년 간 도시를 습격해 왔던 마족인 ‘산맥의 왕’의 목을 벤 상황이었다.
“수고했습니다, 이게 다 여러분들이 잘 해주신 덕분입니다.”
“무슨 소리. 우리들은 기껏해야 녀석들의 부하들을 상대한 것 밖에 없는걸?”
“사실상 용사님이 다 한 거지 뭐. 안 그래?”
“그럼 그럼. 인정할 건 인정 해야지.”
거대한 뱀의 목을 밴 채 지친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는 남성과, 그를 칭찬하는 동료들
도끼를 든 거구의 남성과, 활을 든 여성 사냥꾼. 그리고 검은 수녀복 차림을 한 여성 신관과, 창과 방패로 무장한 여전사.
그들은 이 모험가 무리의 리더이자. 이번 전투에서도 승리에 가장 큰 공헌을 한 남성.
소위 ‘용사’라 불리고 있는 사내의 주변에 모여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눈 앞에 있는 '용사'를 칭찬하고 있는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얼굴에 진한 웃음을 담은 채 워사이드를 들고 다가오고 있는 남성.
그를 보면서, 용사는 입가에 미소를 담아 보이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즈도 고생했습니다. 당신이 작은 녀석들을 맡아주지 않았다면 분명 지금보다 더 힘들었을 거에요.”
“덕분에 우리들도 편하게 싸울 수 있었다. 수고 많았어.”
“하하, 뭘요, 제가 한 일은 기껏해야 시선을 약간 분산 시킨 정도 인 걸요? 여러분들에 비하면 아직 멀었어요.”
그렇게 동료들의 칭찬에 약간 쑥스러운 기분을 느끼며 대답하는 전사.
본래는 최준경 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었으나, 이 세계에서는 ‘오즈 인벤서블’ 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는 그는,
다시 한번 동료들의 모습을..
소위 말하는 용사 파티라 불리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눈에 담아 보였다.
‘벌써 2년인가?.. 이 안에 들어 와서 이들과 함께 움직인 시간이.’
본래 세계에건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오즈.
그러나, 친한 옆집 누나의 권유로 인해서 가상현실 게임 시현에 참여했던 그는 예기치 않게 이 세계로 떨어지게 되었다.
본래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 그가 지니고 있던 게임 캐릭터의 모습과 능력을 기반으로 이 세계에 떨어지게 된 오즈.
비록 그는 문제의 그 누나하고 비슷한 시기에 게임을 시작했었지만. 유명 랭커였던 그녀와는 달리 오즈는 이 게임에는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
결국, 전공을 살려서 누나의 일을 도와준 이후로는 사실상 게임을 접었던 상황.
그 결과, 그가 이 세계에 왔을 때의 전투력은 이 세계의 하급 병사들 보다 약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본래 게임 캐릭터였다고, 먹고 살기 위해서 마족과 마법사들을 사냥하는 모험가로 활동한 이후부터 그의 실력은 조금씩 쓸만할 정도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인간들을 적대하고 그들을 습격하는 마족들과, 이 세계에서 금기시되고 있는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사들.
이에 대항하여 각 도시와 교회에선 모험가라는 조직을 운영하여 조직적으로 이들을 사냥해 왔으며, 오즈 역시 그러한 모험가 중 한 명으로서 입에 풀칠을 하며 하루 하루를 연명해 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마치 일용직 노동자 같은 느낌으로 살아간지 근 반년이 지난 시점.
그런 오즈의 앞에 친절하게 손을 내민 지금의 동료들이 나타났다.
‘용사’라 불리는 특별한 재능을 타고난 전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평범한 마족 따위가 아닌 마법사들의 왕. 소위 마왕이라 불리는 존재를 척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특별한 상위 모험가 그룹.
통칭, 용사 파티로 불리는 그들은, 단순히 머릿수가 모자란다는 이유로 변방 지역의 이름 없는 모험가였던 오즈를 자신들의 파티에 합류 시켰고, 그때부터 2년간 오즈는 이 용사 파티의 일원으로 소속되어 열심히 무기를 휘둘러 왔다.
그렇다 하지만, 기본적인 실력 차이로 인해서 오즈의 전력은 이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약한 수준이었으며 때문에 전투마다 발목을 잡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그런 오즈를 나무라기는커녕 오히려 그가 보다 빠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기꺼이 도움을 주었으며,
그 결과 지금의 오즈는 비록 여전히 전투력은 동료들 중에서 가장 약하지만 이 파티 안에서도 나름 제 몫은 할 수 있는 전사로 성장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누나처럼 각 잡고 열심히 게임을 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강했겠지만. 솔직히 이 상황도 나쁘지는 않아.’
비록 먼치킨스러운 힘을 얻지는 못했으며 산맥의 왕의 부하를 상대로도 상당히 아슬아슬하게 이기긴 했지만, 그럼에도 오즈는 지금의 삶에 대해 아쉬움은 없었다.
만약 처음부터 너무 강한 힘을 지니고 시작했다면 지금 같이 좋은 동료들은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으니까.
처음에 그가 약했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매번 어려움을 함께 극복 하면서 언제나 그의 앞에서 웃어주는 자상한 동료들.
그들이 없었다면 아마 여기까지 성장하기란 힘들었을 것이었으며, 어쩌면 지금도 간신히 목숨만 연명하고 있었을 것인 만큼, 오즈에게 있어서 이 동료들은 소중한 은인이자 가족과 같은 존재들 이었다.
“자 그럼 돌아가도록 할까요? 제법 큰놈을 잡았으니 이번 보수는 분명 대단할 겁니다.”
“그래, 맞아 분명 그럴 거야.”
“이만한 거물을 잡았으니까 말이지.”
“어쩌면 평생 먹고 살 만큼 돈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몰라.”
“잘만 하면 영주 자리까지 노려 볼 수도?”
기분 좋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용사와 동료들
약간 과장이 섞여 있었지만 그럼에도 오즈 역시 제법 들떠 있는 상황인 만큼 이를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하하, 하긴 무려 그 산맥의 왕이니까 말이지요. 못해도 한 밑천 두둑이 잡을 수는.. 커어억!”
그 순간..
오즈의 등 뒤에서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격통.
이에 오즈는 순간적으로 사냥을 하는 과정에서 마무리를 소홀히 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쓰러뜨린 줄 알았던 그 마수가 반격을 한 상황.
그것이 당장 오즈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직후.
오즈의 눈에 보이는 것은 그의 심장을 꿰뚫고 있는 익숙한 창의 모습.
그것은..
그의 동료가 줄곧 사용하던 바로 그것이었다.
“이…이게.. 이게 대체 무슨.. 쿨럭!”
뭐라 말을 하지도 못한 채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버린 오즈.
그 직후, 그의 눈에 보이는 광경.
그것은.. 자신을 향해서 지금까지 보지 못한 싸늘한 미소를 짓고 있는 동료들의 모습이었다.
‘뭐야.. 대체 뭐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거야?’
언제나 듬직하게 곁을 지켜 주었던 도끼를 든 기사.
후방에서 산뜻 한 목소리로 지원을 해주었던 사냥꾼.
따스한 미소와 함께 부상을 치료해 주었던 신관.
종종 달콤한 목소리로 그에게 호감을 표했던 여전사.
그리고.. 현명하고 다정한 리더로서 줄곧 자신을 격려해 주었던 용사.
그러나 지금, 오즈의 눈에는 더 이상 믿을 수 있는 동료의 모습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의 눈에 보이는 장면.
그것을.. 죽어가는 자신을 보면서 기쁨을 표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하아.. 드디어 끝났다. 솔직히 저 뱀하고 싸우는 과정에서 뒤져버렸다면 좀 더 편했을 텐데.”
“죽으라고 마련해준 자리에서도 멀쩡하게 살아 남다니 쓸 대 없이 운이 좋은 녀석이라니까.”
“그래도 다행이지요, 마침 묫자리로 딱 어울리는 으슥한 곳이라서.”
후련함을 담아서 떠드는 전사와, 인상을 찌푸리며 불쾌함을 담아 이야기 하는 사냥꾼.
그리고, 차가운 미소를 담은 채 이야기 하는 신관.
‘무슨..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당신들이.. 당신들이 어째서..’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오즈는 작금의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그에게 있어선 2년간 생사고락을 함께 해온 가족과 같은 동료들 이었다.
그런 그들이 자신을 배신하고 저런 소리를 하다니.
그런 일 따위는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그는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 순간. 흐릿해져 가는 오즈의 시야에는 한가지 장면이 분명하게 들어 왔으며, 이를 통해서 오즈는 자신을 향한 그들의 감정이 무엇인지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짓이겨 놓은 벌레는 보는 것 같은 태도로 죽어가는 오즈를 내려다 보고 있는 동료들의 모습..
지금까지 그가 느끼고 믿어왔던 모든 것이 거짓이었음을 나타내 주는 장면이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마음에 안 들던 녀석이 이렇게 끝장 나다니, 속이 다 시원하군.”
“뭐, 그래도 일단 사람들에게는 명예롭게 전사한 걸로 해줄게. 산맥의 왕과 싸우다 죽은 전사로서 말이야.”
“그 정도면 적당하겠지요, 저희들은 어쨌든 당신의 동료 이니. 마지막 예후 정도는 해드려야겠습니다.”
조소를 담은 채 이야기 하는 그들.
이에 오즈의 마음 속에 절망과 분노의 감정이 터져 나오는 그 순간.
그의 눈에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여전사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그에게 사랑의 말을 속삭여 주었던..
부끄러운 얼굴로 그의 뺨에 입을 맞추어 주었던 여전사.
그러나 지금, 여전사는 거리낌 없이 오즈에게 찔러 넣었던 자신의 창을 해집으며 진한 기쁨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이걸로 의뢰는 종료, 남은 건 돌아가서 보수를 받는 것뿐이지?”
“어머, 냉정하네요? 저희는 몰라도, 당신이랑은 그래도 한때 좋아한다고 꽁냥거리기 까지 했던 사이였잖아요.”
여전사를 보면서 약간 농담이 섞인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신관.
이에 대해서 여전사는 오즈와 일행에게 늘 밝은 분위기를 안겨주었던,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오즈에게는 구역질이 날 정도로 혐오감이 들게 만드는 웃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하하! 설마 그걸 진짜로 믿은 건 아니지? 내가 이 녀석이랑? 미안하지만 매력 따위는 1도 없는 무식한 사내는 나한테 맞지 않아. 적어도 대 귀족이나 왕자님 정도의 기품을 지녀야 하지 않겠어?”
그 말과 함께, 오즈의 몸에 박혀 있던 창을 뽑아 드는 그녀.
동시에 오즈는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면서 급격히 정신이 흐려지는 것을 느꼈으며, 그런 오즈를 보면서 줄곧 침묵을 유지하고 있던 그 사람..
소위 용사 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그 남자는 언제나와 같이 친절한 미소를 지은 채 죽어가는 오즈를 보면서 말했다.
“자 그럼, 슬슬 돌아가 볼까요? 서둘러 보고도 올려야 하고, 무엇보다 이곳은 조금 있으면 다시 뱀들이 몰려올 것이니 서두르도록 하지요.”
“그게 좋겠네. 공연히 남아 있다가 험한 꼴을 보면 곤란 하니까.”
“자 그럼, 귀찮은 짐짝도 드디어 내다 버렸으니 간만에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갈까요? 오늘은 제가 사도록 할게요.”
“하하, 신관님이 통 크게 쏘신다면 저희야 환영이지요. 기대하겠습니다.”
그렇게, 언제나와 같이 환한 목소리로 떠들면서 그대로 오즈를 버리고 가버리는 용사 파티.
눈 앞에서 사라져 가는 그들을 보면서, 오즈는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처절한 절규를 내뱉었다.
죽고 싶지 않다고,
대체 나에게 왜 이러는 것이냐고.
제발.. 제발 목숨 만이라도 살려 달라고.
그러나, 그의 간절한 외침은 끝내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물론 그것이 설령 입 밖으로 나왔더라도, 그것은 그저 죽어가는 이의 공허한 음성으로 끝났겠지만.
그렇게, 오즈가 짙은 절망 속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던 그때였다.
'!.. 저..저건..'
다음 순간, 오즈를 향해서 다가오기 시작하는 무언가
그것은.. 방금 전에 용사 파티에 의해서 목이 잘려 나갔던 거대한 뱀.
산맥의 왕이었다.
분명 숨이 끊어 졌으리라 여겨졌던 존재.
그러나, 그것의 머리는 어느새 새로 돋아나 있었으며 이 순간 그것의 관심은 자신의 눈 앞에 높여 있는 움직이지 못하는 고깃덩어리..
오즈에게로 향해 있었다.
그렇게 꼼짝없이 뱀의 먹이가 될 처지에 놓인 상황에서, 오즈의 입가에는 허탈한 미소가 지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가는 구나.. 이렇게 난..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쓸쓸히..'
그렇게 모든 희망을 버린 채, 오즈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산맥의 왕도 문제였지만. 이미 극심한 출혈로 인해서 오즈의 정신은 꺼지기 직전의 상태에 도달한 상황이었다.
'듣자 하니 산맥의 왕에게 먹히면 그 안에서 영원히 살게 된다는데 .. 그런 일이 실제로 있을리 없겠지..'
그렇게 마지막으로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 오즈는 정신을 잃어 버렸고..
그의 이런 몸을, 산맥의 왕은 그대로 통째로 집어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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