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 옆집 누나
* * *
배신의 결과로 끔찍한 최후를 맞이한 오즈
꺼져 있는 의식 속에서, 그의 마음 속에는 어느 순간부터 그리웠던 얼굴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생활비만 붙여 주던 부모의 모습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증오의 대상이 된 빌어 처먹을 용사파티 동료들의 얼굴 또한 아니었다.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이는 그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었던 그 사람..
어떠한 순간에서도 그를 버리지 않았던, 진정한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그 사람..
그의 옆집에 살고 있던, 동시에 그가 내심 좋아하고 있던 누나의 모습.
그 사람을.. 한 번만 더 보고 싶다 생각 하면서, 오즈는 그녀에 대한 진한 그리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차라리.. 용사파티 같은 곳이 아니라 누나를.. 리아 누나를 찾아 다녔더라면..’
그렇게 자신의 어리석은 선택에 후회하고 있던 그 순간.
꺼져 있던 오즈의 감각에 무언가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경아!
흐릿하게 들려오기 시작하는 목소리.
마치 동굴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듯한 뿌연 소리.
준경아!
이어서 들려오는 보다 또렷한 음성.
그것이 자신의 본래 이름을 부르는 소리라는 것을 인식 하면서, 오즈의 의식은 점차 선명하게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준경!”
“허억!”
자신을 흔들어 깨우는 감각과 목소리.
이에 거친 숨 소리와 함께, 오즈의 두 눈이 번쩍 떠지기 시작했다.
“허억..허억…허억..”
다시는 못 뜰 것이라 생각 했던 눈이 떠진 상황에 당혹감을 느끼며 거칠게 숨을 내쉬는 오즈.
그 순간, 그의 눈에는 침대에 누워 있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처음 보는 여성의 모습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보라 빛 머리칼에 푸른 눈동자를 지난 그녀.
머리에는 마법사 특유의 모자와 검은 빛이 감도는 로브를 걸치고 있으며, 나이는 대략 20대 초반 정도로 여겨지는 여성.
그러나,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예.. 예쁘다.. 엄청나게..’
지금까지 오즈가 보아 왔던 그 어떤 여성보다 아름답기 그지 없는 그녀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이에 오즈가 잠시 멍한 표정으로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그 순간, 오즈는 잠시 그녀의 외모에 한눈이 팔려 미처 신경쓰지 못하고 있던 한가지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 자.. 잠시만, 뭐.. 뭐야 이 여자?.보아하니 일단은 마법사 같은데, 대체.. 대체 이 힘은..’
전사로서 상대의 강함의 기척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오즈.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오즈는 눈 앞에 있는 이 아름다운 여성을 보면서 잠시 현기증이 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녀에게서 느껴지고 있는 힘의 기척..
그것은 용사 파티가 쓰러뜨렸던 산맥의 주인 같은 것 따위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 격차는 당장 오즈가 인식할 수 있는 수준만 따져도 개미와 코끼리 정도의 격차 그 이상..
즉, 눈 앞에 있는 이 여자는 아름답기 그지 없는 외모와는 별개로, 오즈가 듣도보도 못한 수준의 터무니 없는 괴물이라는 것을 뜻이었다.
‘이.. 이런 사람이 대체 왜 나를 이런 곳까지..’
그렇게 묵직한 공포 속에서 그저 몸을 떨고 있던 오즈.
그때..
“욱!”
“다행이다! 정말로.. 정말로 다행이야!”
다음 순간, 오즈가 뭐라 반응 하기도 전에 거칠게 그를 끌어 안는 여성.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오즈는 진한 당혹감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건 대체 무슨..?’
생전 처음 보는 무시무시한 힘을 지니고 있는 엄청난 미녀가 거리낌 없이 자신을 껴 안는 상황.
그녀의 절대로 작지 않은.. 아니, 사실대로 말 하자면 엄청난 거유라고 할 수 있는 가슴은 그대로 오즈의 얼굴을 파묻혀 버렸으며, 동시에 그녀의 몸에서 느껴지는 향긋한 냄새와 부드러운 감촉이 그대로 오즈를 뒤덮기 시작했다.
빨려 들어 갈 것 같은 부드러우면서도 몽실몽실한 촉감.
순간적으로 오즈는 그것에 완전히 정신을 빼앗길 뻔 했으나, 이런 상황에서도 아슬아슬하게 맨 정신을 유지해 냈다는 점에서 오즈는 진심으로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 이.. 일단 기분은 좋긴 한데. 대체 이 여자는 누구 이길래 나를..’
이 이해할 수 없는 갑작스러운 포상 같은 상황에 뭘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오즈.
그때..
“걱정했잖아. 안 그래도 나 때문에 이번 일에 휘말렸는데 어디서 험한 꼴이나 당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고.. 그래도 정말 다행이야. 어쨋든 이렇게 널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에?..”
그 여자의 입에서 나오는 진한 안도감이 느껴지는 발언.
이에 문득 오즈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으며. 이어서 그는 조심스럽게, 자신을 끌어 안고 있는 미녀를 올려다 보며 말했다.
“저.. 호..혹시.. 당신.. 한리아..? 리.. 리아 누나야?”
설마 하는 생각에 너무나도 그리웠던 그 이름을.
한리아 라는 옆집 누나의 이름을 불러 보는 오즈.
그 순간, 그 여자는 그제야 비로서 자신이 한가지 실수를 저지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식 하면서, 끌어 안고 있던 오즈의 몸을 놓아 주며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 아. 미. 미안. 준경아, 그러고 보니 생긴 게 조금 많이 바뀌었지? 아무래도 게임 캐릭터 기준의 외모 인지라 미리 설명을 했어야 했는데....”
비록 목소리는 달랐지만 오즈에게 있어선 너무나도 익숙한 그녀의 말투.
더욱이, 자신의 본래 이름을 알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오즈는 다시금 확신을 할 수 있었으며, 동시에 그녀의 입에선 확인 사살을 해주는 듯한 말이 나왔다.
“뭐 어쨌든.. 맞아, 나 리아야. 네 옆집 누나인 한리아. 이쪽에선 닉네임 따라서 ‘도로시’ 라고 불리고 있지만.”
“아…”
꼭 듣고 싶었던 그 이름.
그리고, 익숙한 캐릭터의 닉네임.
이에 잠시 동안 멍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중, 비로서 현실을 깨달으면서 이어진 오즈의 행동은..
“누..누나아아!”
“아..”
다음 순간, 이번에는 역으로 그녀의 몸을 끌어 안는 오즈.
그와 동시에, 그의 눈에는 자동적으로 눈물이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흑..으흑..흐윽.. 누나.. 리나 누나..”
“…”
방금 전의 두려움 따위는 깔끔하게 사라진 채, 그녀의 품 속에서 울기 시작하는 오즈.
만약, 평소에 그녀와 다시 재회를 했다면 아마도 평범하게 웃으면서 반가움을 표현했을 것이다.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오랜만에 다시금 얼굴을 본 재회의 기쁨을 나누면서도 어느 정도는 감정을 조절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오즈는 믿었던 동료들에게 배신 당하면서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은 이후였다.
누구도 믿을 수 없게 된 세상에서 홀로 쓸쓸히 죽어가던 상황.
이런 때에,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그 사람이 눈 앞에 나타났다는 사실은 그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커다란 기쁨과 안도감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의 품에 안겨서 어린아이 같이 울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며.
리아는..
아니,
이 세계에 온 뒤로는 도로시 인비저블 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된 마법사는 입가에 언제나와 같은 자상한 미소를 담은 채 조용히 그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
“이제는 좀 괜찮아 졌어?”
“..으..응.. 조금..”
방금 전까지 눈물을 펑펑 쏟던 때와는 달리, 이제는 부끄러운 듯 살짝 고개를 돌리고 있는 오즈.
그 익숙한 모습을 보면서, 도로시는 입가에 작게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보아 하니 당장은 염려하지 않아도 되겠네. 석 달간 고생을 제법 많이 한 것 같아서 걱정하고 있었는데.”
“석 달?”
생각 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숫자에 오즈는 의문을 표하였고, 이에 대해서 도로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내가 이곳에 온지는 약 석 달 정도 되었어. 그 동안 너나 다른 사람들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여기 저기를 조사해 봤는데, 다행히 가까운 마을에서 우연히 수년 전 오즈 라는 모험가가 있었다는 기록을 발견하면서 혹시나 해서 인근에 탐지 마법을 사용해 널 찾아 낼 수 있었어."
"후우.. 그랬구나."
문득 오즈라는 이름이 이 세계에서 상당히 특이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까딱 하면 정말로 그곳에서 숨이 끊어졌을 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건 그렇고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네가 있는 곳에 갔을 때는무슨 커다란 뱀 같은 놈 이 있길래 녀석을 해치웠거든, 그런데 그 안에서 네가 튀어 나오는 거 있지?"
"아.."
아마도 정황상 산맥의 왕에게 삼켜진 이후에 도로시가 그를 구해준 듯 싶었다.
비록 오즈는 그때 이이 과다 출혈로 인해 정신을 잃어버린 상태였기에 기억은 전혀 없었지만 말이다.
"무리하게 사냥을 하다 그렇게 된 거야? 그도 아니면 혹 이 세계에 무슨 인신 공양 같은게 있다던가.."
아직 이곳이 어떤 세상인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만큼 상당히 흉흉 소리를 하고 있는 도로시.
이에 오즈는 그다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을 다시금 끄집어 내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그게 말이지..”
도로시의 질문에 생각만으로도 속이 뒤틀리는 그 순간의 이야기를 해나가는 오즈.
2년 하고 반년 전 이 세계에 온 뒤 모험가로서 생활한 것, 그 과정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용사 파티의 동료들, 그리고.. 직전에 있었던 그들의 배신과 마지막으로 통째로 뱀에게 삼켜진 자신에 대한 것 까지.
그렇게 일련의 이야가 끝나자, 도로시의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분노의 감정이 떠오르기 시작했고, 이어서 오즈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솔직히 지금도 믿겨지지가 않아. 그 사람들이 이렇게 나를 배신 하다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음 같아선 당장 이라도…”
“그럼, 지금 당장 그 하찮은 것들의 목을 따 오도록 할까요?”
“?!”
“하아…”
다음 순간,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목소리.
도로시의 것이 아닌 처음 듣는 여성의 음성에오즈는 잠시 분노의 감정도 잊은 채 놀란 표정으로 그쪽을 돌아 보았으며, 동시에 도로시의 입에선 작게 한숨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곳에 서 있는 사람은 메이드 복장을 하고 있는 여성이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은발머리에, 끝부분을 고리 같은 것으로 고정한 상태였으며 눈동자는 보라 색을 띄고 있는 여성.
도로시 못지 않은 상당한 미모를 지니고 있는 여성이었으며,
동시에 도로시와 마찬가지로 마찬가지로 상상도 할 수 없는 강자의 기척이 느껴지는 그녀.
그녀의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분노의 기색이 담겨 있었다.
“감히 겁도 없이 오즈님을 배신하고 옥체에 까지 욕보이게 만들다니, 그런 하등한 인간들은 만번 죽어도 그 죄를 씻을 수 없습니다. 도로시님 부디 명령을! 소녀 지금이라도 당장 가서..”
거침 없이 분노를 쏟아내는 여성.
오즈 입장에선 작금의 상황에 대해 분노를 해주는 것은 일단 고마운 일이었지만.. 처음 보는 사람이 이런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 대한 의문이 더 크게 느껴졌다.
더욱이 그 대상이, 자신 따위는 한 손으로 짓이겨 죽여버릴 수 있는 괴물이라는 점에선 묘한 공포마저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일단 공감을 해주는 것은 좋은데.. 그쪽은 대체 누구세요?’
그렇게 그녀에 대한 질문이 목구멍까지 넘어오려던 그때, 그 정체 불명의 메이드를 보면서 도로시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정해 아테나. 물론 복수에 대한 부분은 나도 공감 하지만 지금은 일단 해야 할 일이 있지 않겠어?”
“!... 음, 음 그.. 그렇군요, 실례했습니다.”
그렇게 순식간에 분노에서 당혹감, 그리고 침착함이라는 상당히 다채로운 표정 변화를 빠르게 보여주기 시작하는 메이드.
이어서 그녀는 우아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치마를 살짝 들어 올리며, 눈 앞에 있는 오즈를 보면서 천천히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
“인사 드리겠습니다. 소녀의 이름은 아테나 인비저블. 흑정원 카알론의 위대한 군주이신 도로시 인비저블님을 섬기는 정원장이자, 오즈님의 어수로 빚어진 첫 번째 피조물 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아..ㄴ..네.. 정원장.. 잘 부탁.. 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미모의 메이드 에게 진심 어린 인사를 받아 보는 오즈.
그러나, 그 사실에 제법 설레는 감정을 미처 다 느끼기도 전에, 그의 얼굴에는 또 다른 놀라움의 빛이 서리기 시작했다.
“그..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널.. 마. 만들었다고?”
“네, 오즈님. 비록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소녀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똑똑히 남아 있습니다. 오즈님께서 손수 저의 몸과 얼굴을 어루만져 주셨던 그때의 기억이.. 그 부드럽고 따사로웠던 오즈님의 손길을 말입니다.”
그 말과 함께 자동적으로 얼굴을 붉히기 시작하는 아테나.
무언가 야릇한 상황을 떠올리게 만드는 그녀의 이야기에 오즈 역시 순간적으로 얼굴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아니아니.. 그건 또 뭔 소린데? 내가 뭘.. 어떻게 해? 나.. 난 그런 적이..!”
그 순간, 오즈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한가지 생각.
그것은, 어쩐지 익숙한 아테나 라는 이름과 어디서 본 것 같은 그녀의 얼굴에 대한 부분.
그리고.. 언 듯 지나갔던 정원장 이라는 호칭.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오즈의 머리 속에선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밀물처럼 차오르기 시작했다.
“..서..설마.. 넌. 예전에 내가 만들었던 그..”
1년 전, 그가 문제의 그 게임..
LDG를 접기 직전에 했던 일련의 ‘작업’들.
그것을 떠올리며 오즈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고, 여기에 대해서 아테나는 진심으로 기쁨이 담긴 미소를 지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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