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 2000
* * *
자신을 소개한 아테나의 말을 들으면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 오즈.
그런 그를 보면서 도로시는 언제나와 같이 가벼운 어조로 말하였다.
“아무래도 오즈 니 캐릭터는 초보 수준 이라서 전이를 하면서도 큰 변화를 못 느꼈겠지만.. 난 조금 상황이 달랐어. 무슨 원리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내 소유’로 되어 있는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전이 되었거든.”
“그.. 그 말은. 설마?”
도로시의 말에, 문득 그녀가 말하는 소유라는 개념이 무엇인지 인지하게 된 오즈.
멀리 볼 것도 없이, 당장 오즈가 누워 있는 이 방. 이 건물. 그리고 창분 너머로 보이는 이 일대의 전경.
그것은 일전에 도로시가 몇 번 자랑했던 그 장소..
그녀가 소유하고 있던 그 장소와 완전히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가지고 있던 아이템은 물론이고, 보다시피 내 거점인 이곳 카알론까지 나와 함께 통째로 넘어왔어. 그리고.. 그들도 말이지.”
그 말과 함께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도로시.
이에 오즈는 설마 설마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녀의 뒤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런 오즈의 모습을 보면서 아테나는 입가에 진한 미소를 담아 보였다.
*
MMORPG 게임 LDG
그 안에 존재하는 랭커들 중 한 사람이었던 한리아..
도로시 인비저들은 랭커 라는 분류에 들어갈 수 있는 실력자답게 한 지역의 패자로 군림해 있는 존재였다.
게임 상의 구역을 나누는 단위인 거점.
이중 하나인, 카알론 이라는 지역을 자신의 것으로 삼고 있던 도로시는 다른 여타 유저들과는 다른 한가지 눈에 띄는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거점을 점령하는 것이 길드와 같은 단체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반면, 도로시의 경우는 오직 혼자서 이를 점령하고 유지해 나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개인의 역량에 따른 강함의 차이가 하늘과 땅만큼 날 수 있는 LDG의 세계이기에 가능한 일.
하지만 그렇다 해서 그녀가 정말로 일대 다수로 유저들을 상대로 순수하게 무쌍을 찍었던 것은 아니고..
거점 수성을 진행하는 그녀의 곁에는 늘 정해진 AI에 따라서 그녀를 보좌하며 함께 수성을 진행하는 존재인 NPC 들이 함께 있었다.
메인 캐릭터에 귀속되어 함께 전투를 치르거나 부상 치유나 생산, 및 거점 시설 관리와 같은 일들을 해주는 존재인 NPC들.
여타 게임과 달리, LDG 내에선 이 NPC의 숫자에는 이론상 제한이 없었지만, 대신 1레벨 에서부터 탄생시킨 NPC를 성장시키는 노력과 시간을 고려하면 정말로 무제한으로 이들을 양성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었다.
실제로 상위권 랭커들 중에는 NPC를 만드는 것 조차 하지 않고 자신의 캐릭터를 키우는 데만 열중하는 이들도 많은 상황.
하지만, 일단 성장 시키기만 하면 NPC 들의 전투력은 일반 중위권 유저들 조차 학살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질 수 있었으며, 그 외의 편의 상에도 도움이 되는 만큼 대부분 일정 수준의 NPC 들은 보유하고 있는 것이 보통.
그러나, 이런 NPC를 키우는 유저들 중에서도 특히 도로시의 경우는 지금껏 자신이 육성한 NPC 들을 사기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잘 운용해 왔으며, 그 덕분에 피를 피로 씻는 길드들의 연이은 침략에도 NPC 들의 서포트만을 받으며 홀로 굳건히 그녀의 거점을..
흑정원 카알론은 완벽에 가깝게 지켜 왔었다.
그리고, 이렇게 게임 내 유저들 사이에서도 도로시의 상징과 같이 여겨지는 강력한 NPC들을 만든 사람이 바로.. 그녀의 옆집 동생이었던 오즈였다.
당시에는 게임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이를 접으려 했던 오즈.
그러나, 그는 한창 던전 클리어에 바빴던 도로시의 부탁으로 마지막 작업으로서 자신의 캐릭터를 연동하여 도로시의 NPC 들을 만들어주는 일을 하였다.
종족을 정하고, 캐릭터의 외형을 꾸미고 그에 따른 나름대로의 설정과 기본적인 능력을 부여하는 작업.
비록 게임 자체에 대한 흥미는 사라졌었지만 문학계열 전공이자 취미 역시 글을 쓰고 설정을 짜는 것이었던 오즈에게 이는 나름 대로 즐거운 작업이었으며, 그 결과 그는 거의 두 달에 가까운 시간을 들여 가면서 도로시에게 수 많은 NPC 들을 만들어 주었다.
물론, 그래 봤자 막 만들어진 당시의 NPC 들은 1레벨에 불과 했지만, 어찌 되었든 설정 하나는 참으로 거창하게 따서 만들어 주었던 오즈.
그 숫자는 설정에 따라 신나게 찍어낸 결과, 개인이 찍어낼 수 있는 NPC의 시스템 상의 한계에 도달하는 수준이었다.
당시에는 정말로 단순한 재미.. 그리고 다른 사람도 아닌 도로시의 부탁이었기에 전력을 다해서 진행한 일이었지만, 솔직히 오즈는 이를 만들어 주면서도 그 결과에 대해선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으며 그럴 이유도 별로 없었다.
어찌 되었든 이를 키우는 것은 도로시의 몫이었으며, 그 자신은 이 게임을 접기로 이미 마음을 굳힌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오즈는 자신이 했던 그 두 달 간의 작업이 낳은 어마어마한 결과를 눈 앞에서 보고 있는 중이었다.
“…저.. 저기 누나?.. 서.. 설마 이거 전부..”
“응, 맞아. 네가 만들고 내가 키워낸 우리 아이들이야.”
“…”
눈 앞에 보이는 것은 드넓은 홀의 모습.
그곳에 보이는 것은..
무려 2000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NPC 들이었다.
그들의 성별은 도로시의 주문과 오즈의 취향에 따라서 전원 여성으로 통일.
그렇게, 자신이 만들어낸 2000명의 ‘딸’ 들을 보면서 오즈가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 순간.
홀을 메우고 있던 NPC 들은 동시에..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도로시를 향해 무릎을 꿇고 예를 표하였다.
“위대하신 주군을 뵙습니다.”
“카알론의 군주, 도로시 인비저블 님께 영광을!”
“..꿀꺽..”
충성스러운 목소리로 선언하는 2000의 NPC들.
2000이라는 숫자는 군대 규모로 따지면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막상 이렇게 한자리에 모아놓고 보니 그 수가 셀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 하였다.
거기다가.. 오즈 입장에서 놀라운 사실이 한가지 더.
지금 이순간 느껴지는 바다와 같이 무수한 힘의 기척들 사이에서..
오즈보다 약한 존재는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메이드 복장을 하고 있는 이들부터, 군악대를 연상시키는 복장을 하고 있는 자들, 그 외에 갑주를 차려 입은 기사들까지.
심지어 가장 약한 요리사로 보이는 이들 조차도 오즈의 세 배 이상은 되는 수준.
‘그 말은 즉. 이곳에 있는 2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전부..’
바꿔 말하면, 이곳에서 가장 약한 존재 조차도 오즈가 거점으로 삼았던 도시에선 맞상대 할 수 있는 존재가 거의 없다는 뜻이었으며
더 나아가 눈 앞에 있는 이 전력은 이 나라, 아니.. 어쩌면 이 세계 자체를 멸망시킬 수도 있는 터무니 없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이거. 생각했던 것 보다 스케일이 터무니 없이 커지고 있는 것 같은데..’
이미 도로시 한 사람만 해도 이 세계의 존재들에겐 답이 없을 것 같은 수준이었다.
그런 그녀 못지 않은 괴물들이 지금 그의 앞에서 득실거리고 있었으며, 이는 자연스럽게 오즈에게 한층 더 묵직한 압박감을 주고 있었다.
‘이 녀석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면.. 아마 세상은 그날로 멸망 할 지도.’
한편, 그렇게 어마어마한 힘을 지닌 존재들의 충성심이 담긴 인사를 받으면서, 도로시는 천천히 앞으로 나와 NPC 들을 보며 말했다.
“미리 소식을 접했고 또한 지금 눈으로 보고 있는 만큼 다들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이쪽은 오즈 인벤시블. 과거 나의 부탁으로 이 자리에 있는 너희들을 직접 창조해낸 사람이다. 즉 그는 너희들에게 있어서 아버지와 마찬가지인 존재, 앞으로 나를 대하듯 오즈를 대해야 할 것이며 또한 한치의 무례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도로시님!”
“저희들의 창조주이신 오즈님께 충성을 맹세하겠나이다!”
도로시의 말에 박력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NPC 들
그 모습을 보면서, 오즈는 생각지 모한 어마어마한 부담감과, 이란 상황에서도 당당하게 대처하고 있는 누나의 모습에 대한 감탄을 동시에 느끼기 시작했다.
‘과연. 도로시 누나는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나 같으면 아마 부담감 때문에라도 덜덜 떨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믿을 수 있는 누나의 기운에 힘입어 조금 긴장감을 덜어내는 오즈.
이어서 그는 천천히 눈 앞에 보이는 이들을, 자신이 만들었던 아이들의 모습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가 짜두었던 설정 그대로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 이들
그 모습을 보면서, 오즈는 문득 무언가 가습이 벅차 오르는 듯한 기분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게.. 내가 만든 아이들이라.. 이건가? 이렇게 보니까 뭐랄까. 조금 코끝이 시큰해 지는 것 같은 느낌인걸?’
굳이 비유를 하자면, 마치 헤어졌던 자식들이 장성 하게 자라서 자신의 앞에 나타난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오즈의 입가에는 자신도 모르게 살짝 기쁨이 담긴 미소가 지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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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 들과의 대략적인 인사를 끝낸 뒤 다시금 방으로 돌아온 오즈와 도로시.
도로시는 진정의 의미에서 조용히 차를 마시기 시작했고, 오즈 역시 여전히 떨리는 가슴을 진정 시키기 위해 아직 열기가 가시지 않은 홍차를 단번에 들이켰다.
그렇게 잠시 동안의 침묵이 이어진 뒤, 먼저 이를 깬 사람은 도로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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