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 복수의 서막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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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분주하기 그지 없는 뉘벤의 영주 성
평소 우중충하기 그지 없던 때와는 달리, 한결 화창해진 날씨 속에서 사람들은 바쁘게 위에서 내려온 명령을 수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일들을 일단 열심히 하고 있는 것과 별개로, 성 안에 있는 이들 중 대부분의 얼굴에는 맑은 날씨와는 반대로 어두운 그림자가 내려 앉아 있는 상태였다.
“하아.. 결국 이 날이 오고 많았구려.”
“그러게나 말일세.. 결국은 이렇게 되고 말았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는 사람들.
이는 비단, 두 사람뿐 아니라 성 곳곳에 경비병들이 없는 장소라면 거의 대부분 일어나는 현상이라 할 수 있었다.
오늘은, 지난 한 달간 뜸을 들인 끝에 결국 시작된 건트와 마틸다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었다.
동시에, 영주의 딸과 혼인을 함으로서 건트가 영주의 자리에 오르는 행사 또한 겸해서 이루어지는 날.
사실상 반란군들이 확실하게 권력을 틀어쥐는 행사가 있는 날이라 할 수 있는 만큼, 이에 대해서 사람들의 민심이 좋을 턱이 없었다.
‘비록 전대 영주님이 조금 어벙한 구석이 있더라도 절대로 나쁜 분은 아니셨는데..’
‘세금도 많이 낮춰 주시고, 전쟁에 사람들을 무리하게 동원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으셨어..’
‘무능하다 나약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긴 했지만, 생각해 보면 그 정도로 우리들의 살림을 신경써 주신 분도 드물지..’
비록 건트 입장에선 반란에도 번번히 대처하지 못하는 무능한 인간으로 비추어 졌을지 몰라도, 대부분의 영주민들은 오랜 세월 동안 그럭저럭 이 땅을 다스려온 영주에 대해서 나름 긍정적인 감정을 지니고 있었다.
아울러, 백성들을 세심하게 살펴주곤 하였던 영주의 딸 마틸다에 대해선 거의 모든 이들이 호감을 품고 있던 상황.
이런 와중에서 건트가 힘을 앞세워 일으킨 반란과 마틴다와의 강제적인 혼인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마음 속에 반발심을 느끼게 만들고 있었다.
“애휴.. 악마는 뭐하나. 저런 녀석 안 잡아 가고.”
“그러게나 말일세. 이러다가 우리들까지 천벌 받는 게 아닌가 싶네 그려.”
그렇게 욕을 하면서도 당장 눈 앞의 칼이 무서운 만큼, 억지로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
한편, 그런 민심에 대한 걱정은 한쪽에 완전히 치워둔 채, 건트는 거울 앞에 서서 화려한 의복을 입은 자신의 모습을 기분 좋게 바라보고 있었다.
‘음..음.. 과연, 나라는 녀석은 이렇게 꾸미니까 제법 멋지게 생겼군. 하긴, 모름지기 이 땅을 다스리는 영주가 이 정도는 되어야지.’
비록 주변의 민심이 그저 그렇다는 것은 그도 알고 있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오랜 세월 군림해 왔던 영주의 목을 처 버린 것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 해서 건트는 그 일에 대해선 큰 걱정을 하지는 않고 있었다.
‘어차피 불만이 있는 놈들이라 해봐야 힘 없고 나약한 떨거지들뿐이다. 그 놈들의 힘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 거기다가 정식으로 영주가 된 이 몸의 통치를 보면 분명 다들 언제 그랬냐는 듯 기뻐할 것이 분명하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사람은 힘 있는 자에게 무릎을 꿇고 복종하게 되어 있었다.
늙고 무기력한 영주의 밑에서 불이나 끄기 위해 돌아다니던 때와는 달리, 건트는 영주가 되면 가장 먼저 그의 강력한 힘부터 보여줄 생각이었다.
‘우선 나의 부하들과 징집한 병사들을 주축으로 한 군대를 준비한다. 그 다음, 이 인근에 있는 물러 터진 영주들을 모조리 처치하고 나의 세력을 넓히는 것이야. 넓은 영토와 강력한 군대. 그것들을 점차 확장해 나가다 보면 이런 지방의 영주가 아닌 이 나라 전체를 도모할 수도 있다. 결국은 이곳 칼마르 연합국을 내 손안에 넣는 것이야.’
대부분 남쪽으로 떠난 용사 파티의 동료들과는 달리 건트가 이곳에 남아 있기를 선택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나름대로 출세길을 잡아 떠난 이들과는 달리, 건트의 궁극적인 목적은 누군가의 신하 따위가 아닌 한 나라의 왕이 되는 것.
그러기 위해선 자신보다도 쟁쟁한 실력을 가진 동료들과는 거리를 두면서 한적한 곳에서 세력을 키울 필요가 있었다.
다른 지역에 비해서 영주들 간의 결속도 약하고 험악한 기후로 인해서 근간도 강하지 않은 칼마르 연합국은 그런 점에서 건트가 뿌리를 내리기에 아주 좋은 장소라 여겨졌으며, 실제로도 그렇게 여겨지고 있었다.
물론, 그의 이런 웅장한 계획이 잘 실현이 될 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었으나.. 적어도 지금 이 순간, 건트는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그의 앞에는 승리의 길만이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머지 녀석들 보다 출세하는 속도는 늦은 감이 있다만 뭐 상관 없지. 이제부터 그 놈들과는 차원이 다른 길을 나는 걸어 갈 것이다. 이 건트 님의 이름으로 이 나라는 내 발밑에 두고 말겠어!’
그렇게, 앞으로 있을 원대한 포부를 지닌 채. 건트는 그대로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그 직후, 그의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그의 충실한 부하들.
지금껏 그의 명령에 따라 절대적인 충성을 보여온 그들을 보면서 건트는 믿음직스러운 기분을 느끼며 얼굴에 진한 미소를 담아 보였다.
“자 가자.”
“네, 알겠습니다 건트 영주님!”
“허허, 벌써 그렇게 부르지는 말게, 아무리 그래도 난 아직은 장군의 신분이지 않는가. 정식으로 영주의 관을 받기 전에는 장군이라 부르게.”
“정 그러시다면 알겠습니다 장군님.”
“후후후.”
그렇게 말은 하면서도 부하의 아부 섞인 발언에 건트는 제법 나쁘지 않은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 이제부터 난 이 땅의 영주다! 하찮은 모험가도, 남 뒷수습이나 해주는 장군도 아닌 당당한 이 땅의 지배자인 영주인 것이야!’
그런 생각과 함께 건트는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갔으며, 병사들 역시 그런 그의 뒤를 따라 당당하게 어깨를 핀 채 예식이 거행되는 중앙 홀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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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인산 인해를 이루는 영주성 앞.
그곳에는 오늘 있을 결혼식을 겸한 즉위식에 참석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는 중이었다.
비록 건트가 대다수의 사람들의 지지를 받지는 못하는 인물이긴 했으나, 그것과 별개로,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않듯, 이런 행사 때마다 영주 성에서 배풀어지는 연회를 빠지려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런 인파들 사이에는 가면을 착용한 도로시와 투구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오즈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은데.”
“민심과는 별개로 연회 때 나누어 주는 술과 음식들을 거부할 사람은 거의 없는 법이니까 말이지. 뭐, 우리로선 관람객들이 많다는 점에서 잘된 일이라 할 수 있겠지만 말이야.”
그 말과 함께, 가면 너머로 도로시는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으며, 오즈 역시 동감의 표시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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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 밖에 보이는 수 많은 사람들.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마틸다는 초점 없는 눈으로 입가에 영혼 없는 미소를 지어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참.. 많이도 왔구나.. 나의 결혼을 축하해 주기 위해서.”
“흑..으흑..”
“으흑.. 아가씨..”
아버지를 죽인 원수와 가지게 될 결혼식.
그것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마틸다가 느끼고 있는 감정은 그저 절망과 좌절.. 그리고, 할 수 만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숨을 끊어버리고 싶다는 심정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도 그녀의 곁에 붙어 있는 병사들과 건트측 하인들을 그녀가 섣부른 짓을 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는 상황.
이런 상황에선 자결을 시도하는 것 조차 불가능 했으며, 그랬다간 오히려 그녀의 아랫사람들만 다칠 것이 뻔한 만큼 마틸다 입장에선 도저히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
결국,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얌전히 건트의 신부로서 그의 자리를 빛내주는 노리개가 된 뒤, 얼마 지나 지나지 않아 처분 당하는 것뿐.
그렇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망 속에서, 마틸다는 천천히 뒤를 돌아서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화려하기 그지 없는 드레스와 이에 어울리지 않는 시체와 같은 얼굴을 한 채로..
‘만약.. 만약에 신께서 계신다면.. 부디 저 악마에게 천벌을 내려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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