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 복수의 서막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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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성의 광장과 거기에서 이어지는 중앙 홀에 몰려 있는 수 많은 사람들.
그들의 시선은 지금 이 순간, 하나같이 눈 앞에서 진행되고 있는 결혼식에 향해 있었다.
화려한 영주의 의복을 입은 채, 입가에 감출 수 없는 기쁨의 미소를 내보이고 있는 건트 장군.
그리고. 그의 옆에서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있으면서 마치 죽은 사람과 같은 생기 없는 얼굴을 한 채 조용히 서 있을 뿐인 마틸다.
그녀의 모습을 지켜 보면서 많은 영주민들은 자동적으로 안타까움과 연민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으나.. 이 자리에서 이를 대놓고 표출 할 수 있는 이들은 없었다.
당장 곳곳에는 병사들이 무기를 든 채 공연한 소란이 이는 것을 막고 있는 만큼 공연히 문제를 일으켰다간 바로 사단이 벌어질 것이 뻔한 상황.
그러나, 그렇게 이들이 염려와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와중에도, 심지어 이들 중 대다수가 건트가 나눠주는 잿밥에 관심이 있어서 왔음에도 불구하고.
영주민들의 머릿속에는 한가지 생각만은 명확하게 자리잡고 있는 중이었다.
눈 앞에 있는 저 건트라는 자는, 분명 죽은 뒤에는 지옥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말이다.
설령 그가 아무리 승승 장구를 한다 해도.
남들이 보기에 아무리 대단한 업적을 세운다 하더라도
권력과 지휘를 위하여 자신이 충성을 맹세한 주인을 죽이고 그 자리를 강탈한 대가는, 현생에서건 사후 세계에서건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한편, 사람들의 그런 시선을 받고 있는 건트의 옆에선 가여운 여성.
영주의 딸이자, 이순간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여인일 것이라 확신하고 있는 인물인 마틸다는 들리지 않는 주례사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앞으로 이어진 끔찍한 미래에 대한 절망만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이제 조금 있으면,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이 땅을 통째로 강탈한 도적의 품에 부인이랍시고 안기게 될 것이었다.
얼굴조차 보고 싶지 않은 이 흉측한 남자에게 몸과 마음을 철저하게 유린 당하고..
최악의 경우 이 끔직한 존재의 아이를 낳아야 할 지도 모르는 일.
그렇게 피할 수 없는 비극적인 미래 속에서 그녀는 혀를 깨물고 자살 하고 싶다는 충동을 몇 번식이나 느끼며 힘겹게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런 그녀의 귓가에, 절대로 들리지 않았으면 하는 그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자 그럼.. 신랑과 신부는 맹세의 키스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
자신에게 끔찍한 낙인을 찍는 마지막 의식.
그것을 요구하는 주례의 목소리는 마치 악마의 선언과 같이 여겨졌으며, 이에 마틸다는 도저히 고개를 들고 자신의 바로 옆에 있는 이 원수의 얼굴 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어서, 그런 마틸다의 턱을 붙잡는 끔찍하기 그지 없는 감각.
강한 힘이 담겨 있는 손은 억지로 마틸다의 턱을 잡아 당겼고..
곧바로 마틸다의 눈 앞에는 결코 보고 싶지 않은 그 남자의 추악한 웃는 얼굴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 그럼.. 어서 키스를 하시지요 부인.”
“!....”
끔직한 목소리로 속삭이면서 마틸다의 턱을 잡아 당기는 건트.
이에 마틸다는 마음 속으로 다시 한번..
닿을 리 없는 간절한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 대상이 신이든, 악마든 상관 없었다.
그것이 누구든, 자신의 몸과 영혼을 재물로 바칠 터이니 부디, 그녀의 앞에 있는 이 끔찍한 괴물을 처치해 달라고.
그러나 마틴다의 간절한 애원 과는 무관하게 건트의 손길은 마틸다의 턱을 단단히 고정한 채 그것을 자신의 입술로 끌어 올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자의 입술이 마틸다의 입술을 강탈하려는 그 순 간.
“! 뭐… 뭐야?”
“저.. 저건 대체..”
“?!”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소란스러운 목소리.
그와 동시에, 건트는 자신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마틸다의 턱에서 손을 때면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이..이게 무슨..?”
다음 순간, 건트의 눈에 보이는 것은 그의 머리 바로 위에 생겨난 거대한 검은 동공이었다.
끝을 알 수 없는 어두운 심연과 연결되어 있는 거대한 공간의 틈새.
마치 지옥의 입구와 같이 여겨진 그것이 자신의 바로 위에 생겨난 것을 보면서, 건트의 얼굴에는 진한 당혹감과 공포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 이게 대체 뭐야? 지금껏 살아 오면서 이런 건 한 번도 본적이 없었는데.. 대체 무슨.’
갑작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하는 본능의 경고에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 질을 치기 시작하는 건트.
이는 비단 건트 뿐만이 아닌, 이곳에 있는 모든 병사들과 영주민들. 심지어 마틸다 까지 느끼고 있는 감정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한 순간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그 검은 동공 안에선.. 이어서 천천히.
검은 무언가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의 모습은 한 마리의 짐승이라는 말 이외엔 표현할 방법이 없어 보였다.
인간의 몸에 검은 갈기가 달린 사자의 머리를 달고 있으며, 등에는 한 쌍의 검은 날개가 달려 있고 한 손에는 흉흉한 검은 기운이 휘몰아 치고 있는 거대한 검은 도끼를 들고 있는 존재.
아울러, 이마에는 보랏빛이 감도는 검은 산양의 뿔이 한 쌍 돋아 있는 그것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자동 적으로 한가지 공통적인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악마?’
‘서.. 설마 그럴 리가. 하.. 하지만 저 뿔 하며 날개 하며.. 거기다가 무시무시하게 생긴 저 외모 라면 분명..’
경전에서나 나올 법한 흉학한 외모와 피부로 느껴지는 것 만 같은 끔찍한 기운을 발산하고 있는 괴물.
그것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공포에 떨기 시작했고. 이는 그 ‘악마’ 의 바로 앞에 서 있는 꼴이 된 건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이게 무슨.. 가..갑자기 뜬금 없이 이런 곳에 왜 악마가?’
지금껏 모험가로서 그리고 장군으로서 수 많은 마족들을 사냥해온 건트.
그러나, 그런 그 조차도 이런 외모와 압도 적이면서도 사악하기 그지 없는 힘의 기척을 지닌 생물체는 본 적이 없었으며.. 이에 그 역시 자동적으로 눈 앞에 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이 괴물이 악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하.. 하지만 대체 악마가 이곳에는 왜? 서.. 설마 정말로 천벌이 내려진 것인가? 영주를 배반한 나에게 신께서 벌을 내리신 것은..’
줄곧 자신의 죄에 대해서 합리화를 해 왔던 건트.
그러나, 그런 그 조차도 눈 앞에서 심판을 연상시키는 존재가 나타나자 자동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자신의 죄악에 대해서, 정말 하늘에서 징벌을 내리기로 결정한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런데..
“건트여! 이제 계약을 이행할 순간이 왔다! 어서 약조를 지켜라!”
“헉!”
“마.. 말 했다!”
건트를 내려다 보면서 마치 포효하는 사자와 같은 무시무시한 목소리로 말하는 악마.
그러나, 듣는 이로 하여금 자동적으로 공포를 느끼게 만드는 억양 이상으로, 건트는 자신을 알고 있는 듯한 악마의 말에 당혹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호..혹시 저를 알고 계시는 것입니까?”
두려움에 떨면서 악마에게 묻는 건트.
그때, 그런 건트를 보면서 악마는 코웃을 치며 말하였다.
“이제 와서 뻔뻔하게 발뺌을 하려는 것이냐? 소용 없는 짓이다! 건트 네놈은 이 대악마 츄러스님 과의 계약을 벌서 잊은 것이란 말이더냐?”
“계.. 계약 이라니요? 대체.. 무슨 말씀을..”
들어 본 적도 없는 이야기를 커다란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악마.
이에 건트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 자신의 기억을 수 없이 되새겨 보았으나..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생각 나는 것 따위는 없었다.
악마와의 계약이라니. 모험가 시절 수 많은 의뢰를 받아온 그였지만 본 적도 없는 악마와 계약을 한 기억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그런 건트의 입장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악마는 들고 있는 도끼를 그의 앞에서 흔들며 살벌한 기세로 말을 이어 나갔다.
“네놈! 나와 약속을 하지 않았더냐! 이 땅의 영주 자리는 주는 대신 그 대가로 이 영지에 있는 모든 인간들의 영혼을 나에게 주겠다고 말이다!”
“! 아..아니.. 그.. 그게 대체 무슨..”
갑작스럽게 튀어 나와 들어보지도 못한 끔찍한 계약 내용을 운운하는 악마.
그것도 사실상 영지 내의 거의 모든 주민들이 모여 있는 이곳에서 모든 이의 귓가에, 아주 또렷하게 들릴 수 밖에 없는 목소리로 떠드는 그의 말
이에 건트의 얼굴에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당혹감과 두려움의 감정이 깃들기 시작했고.. 그런 그를 보면서 바로 옆에서 그를 호위하고 있던 병사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거..건트.. 장군님. 다..당신이.. 당신이 설마 그런..”
불과 수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에게 아첨을 하였던 그였으나, 지금 이 순간 그의 얼굴에는 짙은 배신감과 공포만이 감돌고 있는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보면서 건트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아니다! 난 그런 계약 따위는 한 적이 없다! 이 악마 놈이 단순히 나를 모함하는..”
“네 이 녀석! 감히 이 대악마 츄러스와의 계약을 어길 셈이냐! 어서 약조를 지켜라! 이 곳에 있는 모든 인간들의 영혼은 이제 나의 것이다!”
심장이 오그라들 정도의 살기를 뿜으면서 다시 한번 재촉하는 악마.
한편, 그렇게 당혹감에 휩싸여 있는 건트의 모습을 보면서..
군중 속에 숨어 있는 이번 연극의 주최자..
도로시와 오즈의 입가에는 매우 흥미진진한 미소가 지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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