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 복수의 서막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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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가는 거창한 이름과 별개로 상당히 팍팍한 직업이라 할 수 있었다.
항상 목숨을 내걸고 전투에 임하며, 실패는 곧 죽음으로 직결되는 경우가 아주 많았다.
이는 나약한 하급 모험가들은 물론이고, 용사 파티라는 이름을 지닌 고위 모험가들 역시 마찬가지.
그러한 점에서, 건트를 비롯한 용사파티의 멤버들은 슬슬 지쳐가고 있었다.
마왕이라는 존재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었으나, 솔직히 마왕의 정체에 대해선 뚜렷하게 알려진 바가 없었으며, 그자가 얼마나 강한지, 이를 잡기 위해선 얼마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소모되는 지 조차 지금으로선 알 수 없는 상황.
그리고..
그렇게 추상적인 목표만을 지닌 채, 모험가로서 팍팍한 삶을 지겨워 하고 있던 그들에게.
어느 날.. 한 사람이 접근해왔다.
정체를 숨긴 채 용사파티에 접근한 인물.
그는 정확한 사정은 붇지 말라는 조건과 함께, 건트 일행에게 선불로 어마어마한 금액을 내밀며 한가지 의외를 요청하였다.
그것은.. 작은 시골마을에 있는 한 하급 모험가.
오즈 인벤시블 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는 모험가를 찾아서 그를 감시하고 추가적인 명령이 떨어지면 제거하라는 것이었다.
비록 선금을 많이 주긴 했지만, 시간도 오래 걸리고 성가시기 그지 없는 의뢰.
이에 용사파티의 멤버들은 처음에는 거절하려 하였으나.. 이어서 그 사람은, 그들에게 거절할 수 없는 조건을 추가적으로 내걸며 의뢰를 종용하였다.
그것은.. 모험가로서의 삶을 청산하고, 그들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건트와 같이 한 지역의 장군이 되는 것부터, 귀족으로서 신분과 영지를 지니거나, 혹은 상인이 되기 위한 막대한 자금을 지원 받는 등..
지금의 용사 파티로 생활하면서는 줄곧 꿈만 같이 여겨 왔던 최고라 여겨지는 삶을 주겠다고 그는 약조 하였으며, 이에 용사 파티는 막대한 선금과 그 뒤에 이어질 조건을 기대하면서 의뢰를 수락 하였다.
자신들의 꿈을 위해 한 사람의 등에 칼을 꽂게 되는 의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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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예정대로 나를 죽인 직후 너희들은 원하는 것을 받았고..”
“네! 그.. 그렇습니다 오즈님! 비록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끝까지 알 수 없었지만.. 분명 상당한 힘과 권력을 지니고 있는 사람인 것 만큼은 사실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장 저만 해도 장군이 될 수 있도록 영주에게 추천을 넣고 이를 성사시킬 정도인 것으로 봐선..”
“으음..”
건트의 말에, 오즈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생각을 정리하였다.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있던 사실이 또렷하게 윤곽을 보이기 시작한 상황.
비록 아직 이 일의 배후가 누구인지, 그리고 이런 짓을 벌인 목적이 무엇인지는 아직 미지수였지만. 적어도 적의 존재를 확정 지은 것 만으로도 오즈에게는 제법 큰 수확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럼. 한가지 더 물어볼게. 너 말고 다른 녀석들은 지금 어디서 뭐 하고 있어?”
“네! 그.. 그것은..”
오즈의 물음에, 건트는 방금 전과는 달리 일 말의 고민도 없이 바로 대답을 하였다.
비록 오즈와는 달리 진심으로 목숨을 맡기던 동료들이었으나, 지금 이 순간. 이미 모든 것을 잃어버린 건트에게 있어서 그들의 정보를 넘기는 일은 고민할 가치조차 없는 것이었다.
‘이대로 나만 당할 수는 없지.. 어차피 난 끝났어. 이렇게 된 이상.. 너희들도 모두 나 처럼 나락으로 떨어지는 거야.’
그렇게, 혼자서 죽을 수는 없다는 아주 훌륭한 우정을 보여주면서 건트는 그가 알고 있는 동료들에 대한 모든 것을 털어 놓았고. 그런 그를 보면서 오즈의 입가에는 진한 미소가 지어지기 시작했다.
‘참 술술 잘도 부네. 역시.. 이 녀석은 일말의 동정조차 필요가 없는 놈이야.’
일단 건트 에게 약속한 대로 오즈는 건트의 목숨을 거둘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이는 건트와의 약속 때문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가 건트의 목숨을 살려주려 한 이유..
그것은, 일단은 살려 둬야, 앞으로 그의 입에서 지옥의 절규가 끝 없이 울려 퍼질 수 있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내가 느꼈던 고통과 절망.. 천배 만배로 되갚아 주도록 하겠어. 건트.. 그리고 다른 녀석들도 전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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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트를 심문하여 정보를 캐낸 오즈.
이를 통해서 도로시와 오즈는 앞으로 계속해서 이어질 복수의 일정을 어느 정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럼, 이걸로 윤곽이 어느 정도 여유를 가지고 차근차근 정리해 나가자. 어차피 이 녀석들이 어디 도망 가는 것도 아니고. 공연히 서둘러서 일을 꼬이게 만들 필요도 없으니까 말이야.”
“응 알았어 누나.
일전에 발키리아가 가져온 정보 이상으로 상세한 사안들을 알아낸 두 사람.
현재 남아 있는 전 용사파티 멤버들의 보다 정확한 위치와 현재 하고 있는 일을 파악한 이상, 이제 남은 것은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목표물들을 요리해 주면서 그 뒤에 있을 배후를 끄집어 내는 것뿐이었다.
“건트와는 달리 남은 녀석들의 거주지는 이곳 칼마르 연합국이 아닌 더 남쪽에 있는 나라들. 그 지역은 아직 오즈 너도 가 본적이 없는 곳이라 그랬지?”
“응, 비록 대략적인 소문들만 들었을 뿐, 거기에 뭐가 있는지. 얼마나 강한 자들이 있는지는 아직 미지수야.”
“으음.. 그 점에 대해선 보다 확실하게 한 뒤에 움직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말이지. 이곳 칼마르와는 달리 남쪽에 있는 국가들은 정세도 복잡하고 전력도 더욱 강하다 들었으니..”
그런 점에서, 일단은 잠시 한 숨을 돌리며 보다 상세한 정보를 모으기로 결정한 도로시와 오즈
비록 복수도 중요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들에게는 그 이상으로 카알론에 있는 그들의 딸들이 다치지 않는 것도 중요 했으며, 이를 위해선 객관적인 확신이 서기 전에 섣부른 행동을 하는 것은 금물이었다.
그때..
“도로시님!”
“..아테나. 무슨 일이지?”
다급하게 자신을 부르며 방안으로 들어오는 아테나.
이에 도로시는 의문을 느끼며 그녀에게 물었고. 거기에 대해서 아테나는 진지함이 담긴 목소리로 그녀와 오즈에게 한가지 사실을 이야기 하였다.
그것은..
*
“! 뭐?.. 그.. 그게 정말이야?”
“예, 틀림 없습니다 도로시님. 아시겠지만 이제 겨우 실험을 시작한지 다섯 달이 지났을 뿐입니다만.. 이 자료를 좀 보십시오.”
약간 떨리는 손으로, 무언가를 기록한 서류를 건네는 아테나.
그것을 본 순간, 도로시의 얼굴에는 순간적으로 복잡하기 그지 없는 감정이 스치고 지나갔으며, 반면 오즈의 얼굴에는 짙은 놀라움의 감정이 깃들기 시작했다.
“이게.. 정말이야? 이 정도로 까지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네, 비록 표본이 워낙 부족하긴 하지만 이 자체는 사실입니다. 이 세계 출신의 마력 사용자에게 본래 저희가 있던 세계의 수련 법과 약간의 버프를 적용시킨 결과..”
얼마 전, 적절한 대상을 손에 넣은 직후 만일의 사태에 대한 가능성을 보기 위해서, 아울러 혹여 가능할지 모를 전력의 강화를 위해서 실험을 진행한 아테나.
그것은.. 이 세계에서 마력에 재능을 지니고 있는 인간에게 LDG 식 마법 수련을 시켰을 경우 어떤 결과가 나오느냐 에 대한 것이었다.
마법사를 적으로 규정하고 마력과 마법을 탄압하고 있는 이 세계인 만큼.
어쩌면 인간들의 허약함에 대한 근본 원인은 종족이나 태생적인 차이가 아닌 단순한 배움의 과정에서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아테나와 도로시가 세웠던 가설이었다.
그리고 그 가설을 전재로 진행된 실험은 지금.. 아테나가 가져온 차트를 통해서 생각지도 못한 결과로 나타나고 있는 중이었다.
“다섯 달 만에.. 레벨 70을 돌파. 물론 그 속도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지만 이 정도 추세라면..”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오즈.
그도 그럴 것이 70레벨이라면 일전에 용사 파티의 리더였던 용사의 전력에 거의 준하는 수준이라 할 수 있었다.
반면 이곳에 잡혀올 당시 그 ‘실험 대상’의 레벨은 고작 20~30 수준.
그들이 고작 훈련 법을 바꾸고 약간의 버프를 준 것 만으로도 다섯 달 만에 40에 달하는 레벨을 올렸다는 것은.. 2년간 고작 20여 개의 레벨을 올리는 데 성공했던 오즈를 경악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수치였다.
“누..누나.. 설마 이거..”
“잠시만.. 아직 그렇게 속단하기엔 일러.”
불안감이 담긴 목소리로 도로시에게 말하는 오즈.
그러나, 이에 대해서 도로시는 단호한 어조로 일단 그를 진정시킨 뒤,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말 했던 것이지만. 지금 이 수치는 어디까지나 이 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일 뿐. 이를 보편적인 경우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직은 여러모로 무리가 있어. 안 그래도 아테나의 말마따마 제법 재능이 있는 녀석이었던 만큼, 적어도 다른 실험 대상을 데려와서 조사를 해보기 전까진 섣부르게 판단하는 것은 금물이야.”
“아..으..응.. 그건.. 그렇긴 한데.”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여전히 진한 염려의 감정을 느끼는 오즈.
단순히 수련법을 바꾼 것 만으로 이렇게 차이가 난다면, 상황에 따라선 도로시와 카알론에 대적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존재가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소위 마왕이라 불리고 있는 그것 이라던가, 최악의 경우, 그 대상이 바로 문제의 그 흑막일 가능성 또한 있었다.
‘저번에 3년씩이나 뱀 속에 갇혀 있었던 점도 그렇고.. 어째 파면 팔수록 일이 점점 꼬여가는 기분이 드는데..’
한편, 이러한 상황을 보다 명확히 확인하기 위해서 도로시는 아테나를 보며 곧바로 지시를 내렸다.
“아테나, 일단은 지금까지 진행해 왔던 계획을 일시 중단 한다. 우선은 확증을 위해 보다 많은 표본을 확보하는 데 주력할 것. 이를 위해 지금 바로 메닐라를 불러 오도록 해. 인간의 마력에 대한 재능을 탐지하는 데엔 그 아이 만한 존재가 없으니까.”
“네, 알겠습니다 도로시님.”
그렇게, 또 다시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브레이크가 걸린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도로시와 오즈는 자신도 모르게 살짝 입술을 깨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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