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 빨간모자와 양초팔이 소녀 1
* * *
“후우..”
“수고했습니다. 그만 쉬도록 하세요.”
“ㄴ…네. 감사합니다.”
훈련이 끝나고 휴식 허가가 떨어지자 그녀는 거칠게 숨을 몰아 쉬며 바닥에 주저 앉았다.
벌써 5 개월째, 매번 완전히 탈진해야 가까스로 끝나게 되는 훈련을 한 마디의 불평 없이 견뎌래고 있는 그녀..
시그룬은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내며 짙은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 이 순간도 당장 자리에 드러누워 잠에 빠져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되기 그지 없는 훈련.
그러나, 그런 사실과 별개로 시그룬은 지금 그녀가 하고 있는 일에 강한 의욕을 지니고 있는 상황이었다.
‘전혀 몰랐어.. 설마 내가 이 정도 까지 강해질 수 있을 줄이야. 이것이 바로 그 마법의 힘 이라는 건가?’
마법사가 사용하는 사악한 능력이라고만 알고 있던 힘인 마력과 이를 기반으로 한 기술인 마법.
그러나, 그 마법사의 노예가 된 지금의 시그룬은 마법사의 명령에 따라서 내키지 않지만 최선을 다해서 마력과 마법이라는 힘을 배우게 되었다.
다른 이들과 달리 자신이 마력에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다는 말과 함께. 생각 했던 것 이상으로 성심을 다해서 그녀를 훈련 시켜주고 있는 마법사들.
이에 시그룬은 경계심을 느끼면서도 일단은 전력을 다해서 그들의 지시에 따라 훈련에 임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 불과 5개월 가량의 시간이 지난 지금.
시그룬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본래 마법사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성직자였던 그녀.
그러나 지금의 시그룬은 이전과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힘이 자신의 몸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끼며 점점 더 그 힘에 심취하고 있는 중이었다.
고작 5개월만의 훈련 기간을 거치면서 이전에 비해 두 배 이상 강해진 시그룬.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 가는 자신을 보면서 그녀는 진한 희열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게.. 소위 말하는 타락 이라는 걸까? 그렇다 하지만.. 이 정도 힘을 가질 수 있다면 확실히 욕심을 낼 만도.’
물론, 아무리 그래도 마법이라는 힘에 대한 찝찝함이 남아 있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럼에도 그녀에게는 애초에 선택지 자체가 없었으며, 더 나아가 이를 마냥 거절하기엔 손에 넣게 되는 힘의 크기가 너무나도 컸다.
거기다가 또 한가지..
타락이건 뭐건 상관 없이, 지금의 시그룬 에게는 하루라도 빨리 이 마법사들에게 자신의 유용성을 인정 받으면서 이를 통해 이뤄 내야만 하는 목표가 존재하고 있었다.
이는 약속대로 풀려나기 직전에 마법사의 변덕으로 인해서 다시 속박되어 있는 신세가 된 발키리아 멤버들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래도 어른으로서 나름대로의 의지를 지니고 있는 동료들과는 달리, 아직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도 의지도 지니고 있지 않은 어리고 연약한 이들..
바깥에 두고 온 그녀의 동생들에 대한 것이었다.
이곳에 오기 직전, 빚쟁이들에게서 해방시켜 잠시 먼 친척 집에 맡겨두고 왔던 어린 동생들.
그 결과 그 아이들은 더 이상 노예의 신분은 아니게 되었지만 그 아이들이 지금쯤 어찌 되었을 지는 시그룬도 명확하게 확신할 수 없었다.
‘그 친척이라는 사람.. 인상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었는데. 설마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
애초에 워낙 급하게 떠나야 했기에, 무언가를 더 알아볼 틈도 없이 불가피하게 내린 결정이었다.
더군다나 당시엔 길어야 수 주 이내 끝날 것이라 여겼던 일이 지금은 예기치 못하게 5개월 이상으로 늘어나게 된 만큼 상황은 더욱 더 불안하기 그지 없었다.
그렇다 해서 여기서 동생들의 소식을 알아 볼 수도 없는 만큼, 결국 지금의 그녀로써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가능한 빨리 마법사들의 인정을 받아 동생을 데리고 오는 것뿐.
이를 위해서 시그룬은 마음 속의 찝찝함을 밀어둔 채, 마법사들의 명령에 따라서 최선을 다해 훈련에 임하고 있었으며 그 덕분에 시그룬의 전투력은 날이 갈수록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이었다.
‘조금만 기다려줘.. 프레이아.. 프리그. 이 언니가 반드시 너희들을..’
*
도로시의 거점인 흑정원 카알론.
흑정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곳은 중심부에 위치한 성 주변에 검은 풀과 나무로 우거져 있는 녹지대가 넓게 존재하고 있었다.
그 규모는 어지간한 산림 수준이었으며, 이곳 역시, 카알론의 일부로서 이 세계로 함께 넘어와 지금은 인근의 숲과 카알론의 영역을 가르는 일종의 경계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언 듯 보기엔 검은 풀과 나무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듯한 이곳은 절대로 평범한 장소가 아니었다.
수풀 곳곳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 강력한 방어시설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각종 치명적인 함정에 레벨 400대에 달하는 NPC 들과 소환된 몬스터 등으로 이루어진 병력까지 주둔해 있는 상황이었다.
지금껏 300~400대에 달하는 중수 유저들이 어설프게 공략을 시도했다가 수도 없이 박살이 났던, 실질적으로 카알론의 1차 방어선이라 할 수 있는 장소.
이곳에 도착한 아테나의 앞에, 이 지역을 수호하고 있는 NPC들이 접근하였다.
“어서 오십시오 정원장님, 이곳에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복장으로만 보면 마치 꽃밭을 가꾸는 아가씨 들과 같은 복장을 하고 있는 아름다운 여성들.
그들은 정중하게 예를 갖추며 아테나에게 물었고, 이에 대해서 아테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그들에게 말했다.
“메닐라를 찾고 있다. 가능한 빨리 불러오도록.”
“알겠습니다. 정원사님이라면 안쪽에서 자고 계십니다. 바로 모셔오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한 후 사방으로 흩어지는 조경사들.
그들을 보며 아테나는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매번 이런 식으로 찾아보지 않으면 절대 나타나지 않는, 이 일대를 관리하는 카알론의 간부.
마법사 메닐라 디아블로.
간부를 지칭하는 정원사의 직책을 지니고 있는 그녀는, 이 검은 숲을 관리하는 수문장과 같은 위치에 있었으나 그와는 별개로 상당히 게으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 아이의 이런 점은 어찌 보면 약간 귀여운 구석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지금 같이 약간 서둘러야 하는 상황에선 역시 영 성가신 부분이라고 아테나는 생각 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나타난 조경사 한 명의 품 안에는 잠옷차림의 소녀 한 명이 들려 있었다.
여전히 잠이 덜 깬 듯,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 그녀.
언 듯 보기에 그녀는 10대 초반의 평범한 인간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맑은 붉은빛 눈동자에, 길고 진한 보라색 머리칼.
그리고 이러한 이목구비가 모여서 만들어진 귀엽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만드는 외모의 소녀.
그러나, 그런 얼굴과는 별개로 그녀의 몸은 결코 평범하다고 볼 수는 없는 구조를 하고 있었다.
인간을 비롯한 일반적인 존재들이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는 신체부위..
그녀의 몸에는 팔다리가 달려있지 않았다.
마치 토르소를 연상시키는 그녀의 이런 육체는 처음 보는 이로 하여금 본능적으로 동정심을 유발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녀의 정체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니 그녀와 한번이라도 전투를 치렀던 자들은 그런 동정심은 정말로 뭘 몰라서 느끼게 되는 감정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아테나나 조경사들뿐 아니라. 이곳까지 쳐들어 왔던 침입자들 모두..
그런 사실과 별개로. 조경사의 손에 안겨있던 그녀는 피곤한 표정으로 아테나를 한번 힐끗 본 뒤, 바로 앞에 놓여있는 휠체어와 비슷하게 생긴 의자에 앉혀졌다.
“하아암. 아테나.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야.. 지금 해가 중천에 떠있는데.. 흠흠.”
상완 부만 남아있는 팔로 눈을 비비는 메닐라.
그렇게 늘어진 동생의 모습에 언제나와 같이 잔소리를 하려 했지만 아테나는 이를 한번 삼킨 뒤 약간의 인내심을 발휘하며 말했다.
“도로시님의 명령이야. 저번에 이야기 했던 오즈님의 복수, 그리고.. 카알론을 위해서 지금 바로 네 힘이 필요하다고 하셨어.”
“응? 마마랑 파파가 나를?”
다음 순간. 갑자기 두 눈을 반짝이는 메닐라.
그것은 마치 생일선물을 발견한 아이와 같이 기대와 흥분이 느껴지는 모습이었으며, 이를 보며 아테나는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 그러니까 늘어져 있지 말고 빨리 움직이라고. 도로시님과 오즈님을 기다리게 해선 안되니까.”
“응! 알았어! 금방 갈 거니까 조금 있다 봐.”
방금 전과는 달리 생기가 넘치는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메닐라.
그 직후, 그녀는 수하인 조경사들을 동원하여 서둘러 몸단장을 시작하였다.
간간히 들리는 다급하게 보채는 목소리.
이를 보면서, 메닐라의 성격을 알고 있는 입장에서 아테나의 마음 속에는 슬쩍 불안 기분이 감돌기 시작했다.
‘이번 일은 외부에서 마력에 재능이 있는 아이를 데려오는 것.. 도로시님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처리하라 하셨건만. 과연 이 아이가 잘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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