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 빨간모자와 양초팔이 소녀 3
* * *
생각지도 못한 뜬금 없는 권유.
이에 프리그는 눈 앞에 있는 소녀를 보며 의문에 찬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마법….사?”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었다.
악마의 힘을 사용하여 기괴한 일들을 일으킨다는 사악한 존재들.
직접 보거나 한 적은 없었으며 실제로 그런 것들이 있는지 조차 프리그는 명확하게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눈 앞에 있는 이 특이한 소녀는 그 마법사가 될 것을 권유하고 있다.
‘팔 다리만 없는 줄 알았는데.. 설마 머리 쪽도 문제가 있는 사람인 건가?’
그렇게 자연스럽게 떠오른 생각과 함께 프리그는 어이없다는 의미가 담긴 미소와 함께 그녀에게 말하였다.
“하하..재미는.. 없네요 그런 이야기. 마법사라니. 양초나 팔고 있는 제가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해에.. 하지만 내가보기에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데? 적어도 어설프게 양초 값 가지고 사기치는 것 보다는 잘 할걸?”
“!...”
그 순간, 프리그의 얼굴이 빳빳하게 굳어졌지만, 소녀는 그녀의 반응은 신경 쓰지 않은 채, 품 속에서 양초를 꺼내 이를 프리그의 눈 앞에서 흔들어 보였고.. 이에 프리그의 눈은 곧바로 경악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뭐야.. 이게..”
단순한 행동이었다.
그녀가 항상 가지고 다녔으며 지금도 바구니 안에 가득 담아 있는 냄새 나는 싸구려 양초
그것을 그녀의 눈 앞에서 흔드는 행위는 프리그도 쉽게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이를 본 프리그는 돌로 머리를 맞은 것 같은 충격에 사로잡혔다.
그녀가 이를 했다면 아무것도 이상할 것이 없는 일이었지만. 팔도 없는 소녀가 양초를 흔들고 있는 장면은..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들린 것 같이 허공에서 까딱거리고 있는 양초를 눈앞에서 보고 있는 것은.
프리그로 하여금 지금까지 지니고 있던 상식이라는 것을 완벽하게 깨부수도록 만들고 있었다.
“그렇게 놀랄 것 없어. 너도 수련하면 이 정도는 간단하게 할 수 있을걸? 이 도시에 참고 넘치는 쓸모 없는 인간들과는 달리 너에게는 재능이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소녀는 허공에서 흔들고 있던 양초에서 힘을 풀었고, 이에 그대로 바닥에 떨어지려는 양초를 프리그는 아슬아슬하게 붙잡았다.
그렇게 그녀의 손으로 되돌아온 양초.
하지만, 이를 보고 있는 프리그의 마음상태는 방금 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그.. 그 말 정말인가요? 저에게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재능이 있다는 말..”
“응, 지금이야 그냥 평범한 인간들하고 다를 바가 없지만. 재능을 일깨워 준다면 지금의 너는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강해질 수 있을 거야.”
“재능.. 나에게..남들에게는 없는.. 특별한..”
소녀의 말에, 프리그의 눈에는 방금 전과는 다른 생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히 스스로가 마법사 라는 여전히 명확히 와 닿지 않는 무언가로 인해서는 아니었다.
‘특별해.. 내가.. 언니하고는 다른.. 언니는 가지지 못한 그런 것이 나에게..’
예쁜 얼굴과 세상 물정에 무른 물렁한 성격. 자매임에도 프리그가 가지지 못했던 것을 지니고 태어난 언니는 이를 통해 행복을 누려왔고, 그 결과 동생인 그녀에게 계속해서 박탈감과 아픔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눈 앞에서 신기한 힘을 보여준 소녀는 처음으로 자신에게 특별하다는 말을 해주었다.
그것 만으로도 프리그의 마음 속에는 오랜 시간 느껴본 적이 없는 순수한 기쁨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하.. 할게요. 그 마법사 라는 거. 정확하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번 해 볼게요.”
떨리는 목소리로 프리그가 말하였고, 이에 소녀는 입가에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
해가 중천에 채 오르지도 않은 시간.
평소 한창 양초를 팔고 있어야 할 이때에 집으로 돌아가는 프리그의 발걸음은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벼웠다.
과거에는 지옥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곳을 향해 발을 질질 끌고 가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마치 꽃 길을 걸어가는 것 같은 기분.
그 팔다리가 없는 소녀와는 이틀 후 그곳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으며, 그때까지 이곳을 떠날 준비를 해두라는 당부를 받았다.
그녀를 따라간 뒤에 어떤 삶이 있을지 프리그는 아직 확신할 수 없었으며, 그 마법사라는 것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아는 바가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추위에 떨며 싸구려 양초를 팔아 하루하루를 간신히 연명하고 있는 지금보다 못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프리그의 마음 속에는 앞으로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삶에 대한 기대감이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 프리그를 결정적으로 기쁘게 만드는 것이 한가지 더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저런 난폭한 아저씨와 재수없는 언니를 보지 않아도 돼. 내가 가진 특별한 재능으로.. 지금보다 훨씬 행복하게 살아갈 거야.’
지금껏 자신들끼리만 행복을 공유하며 살아온 꼴도 보기 싫은 두 사람의 곁에서 떠날 수 있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프리그가 그 소녀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데엔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그렇게 후련한 기분을 느끼며 프리그가 소녀에게서 받은 은화 하나를 손에 쥐고 집안으로 들어간 그때였다.
“콜록! 콜록!..”
“…”
문을 열고 들어간 그곳에는, 익숙한 사람이 익숙하지 않은 모습으로 있었다.
프리그가 너무나도 싫어하고 있는 언니, 프레이아.
그녀는 감기가 든 것인지 몸을 떨면서 기침을 하고 있었다.
이불조차 덮지 않은 채 맨 바닥에 쓰러져 앓고 있는 그녀의 모습.
그녀를 예뻐해 주던 주인 아저씨는 진작에 주점에 갔는지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평소에도 술에 찌들어 사는 인간이긴 했지만, 아픈 사람을 두고 간 그 인간의 행동에 프리그는 자동적으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하여튼.. 마음에 안 드는 족속들 이라니까..”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며 그대로 자신의 방으로 가려는 프리그.
그러나..채 몇 발자국 가기도 전에 그녀는 그대로 천천히 뒤를 돌아 보았다.
이제 이틀 뒤면 다시 볼 사이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프리그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언니를 보면서 조금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다지 내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빨간 두건을 쓰고 놀러 다니기 전까지는 그녀를 챙겨주던 유일한 가족이었던 언니였다.
여전히 꼴 보기도 싫지만 그래도 마지막 가는 길에 그 동안의 보답을 해주는 셈 치고, 프리그는 쓰러져 있는 그녀의 언니를 조심스럽게 끌어다가 난로 옆에 있는 침대 위에 뉘어 놓았다.
“이제는 나도 없을 테니까.. 아저씨랑 둘이서 행복하게 잘 살라고.”
그렇게 이불을 덮어준 후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언니의 이마에 물로 적신 수건을 얹어준 뒤 프리그는 천천히 자신의 방으로 향하려 하였다.
그 순간, 문득 프리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한가지 있었다.
“저건..”
한 순간 방으로 가려던 프리그의 눈을 사로잡은 그것.
그녀가 언제나 부러워했던 빨간 두건과 깨끗하고 예쁜 의복
언니와 자신을 구분 짓는 상징으로 여겨져 왔던 부러움의 대상.
한쪽에 곱게 개어놓은 그것을 보면서 프리그는 지금까지 늘 마음 속에 담아두었던 욕망이 휘몰아치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어차피 이제 곧 이곳을 떠나는 마당에..’
평소라면 난폭한 주인 아저씨에 대한 공포로 하지 못했을 행동.
그러나. 지금 프리그 에게는 더 이상 무서울 게 없었다.
‘마지막으로 한번만.. 비록 내가 언니같이 예쁘게 생기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떨리는 손으로 낡고 해진 옷을 벗고 언제나 동경하던 예쁜 옷으로 갈아입은 프리그.
마지막으로 머리에 붉은 두건을 쓴 그녀는 대아에 담긴 물을 통해서 조심스럽게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았다.
‘뭐야.. 이렇게 보니까 나도 언니랑 그렇게 차이가 많이 나지도 않잖아..’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적어도 프리그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만 같은 아름다운 모습.
그렇게 한층 기분이 올라간 그녀는 그대로 집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허름한 옷을 입고 양초를 팔러 갈 때와는 전혀 다른 신선하기 짝이 없는 느낌.
마치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은 자유로움을 느끼며 프리그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도시의 중심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때..
“뭐야 너.. 어딜 가는 거야?”
“?”
갑자기 그녀의 뒤쪽에서 들린 목소리.
이에 프리그는 약간 찝찝한 기분을 느끼며 그대로 갈 길을 가려 했으나 곧바로 뒤에서 다시금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너. 빨간 두건. 이상한 데로 가지 말고 이쪽으로 와.”
“네?.. 저.. 말인가요?”
자신을 지목하는 것 같은 그의 말에 프리그는 뒤를 돌아 보았다.
그곳에는 처음 보는 단정한 복장을 한 남성이 커다란 마차 옆에 서 있었다.
차가운 인상을 주면서 마치 뱀과 같은 모습을 연상시키는 그는 정확하게 프리그를 바라보면서 그녀에게 다가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