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 빨간모자와 양초팔이 소녀 6
* * *
“끄어억 취한다…”
술에 거하게 취한 남성은 비틀거리면서 집 안으로 들어왔다.
평소와 같이 지저분하게 어질러져 이는 장소.
그러나, 방금 전 선술집에서 술과 안주를 마음껏 먹고 온 그에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취기가 도는 와중에도, 그의 머리 속을 떠나지 않고 있는 고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칫.. 그 망할 노친내들.. 슬슬 프레이아를 질려 하는 것 같던데.. 여차 하면 동생년을 보내 줘야 하는 건가?”
술김에 머리 속에 있던 생각들을 주절거리는 남성.
얼마 전부터 프레이야를 노리개로 보내면서 받았던 돈이 조금씩 줄기 시작했다.
대충 프레이아의 몸에 그 노인들의 것과 같은 병이 옮기 시작한 때부터였으며, 이미 이런 식으로 몇몇 아이들을 갈아 치웠던 적이 있는 만큼 남성은 슬슬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나마 언니 쪽은 멍청해서 넘기기 쉬웠는데 동생 쪽은 은근히 눈치가 빠르단 말이지.. 적당히 구슬리는 게 안 된다면 억지로 라도 보내는 쪽으로..”
지금까지 여러 아이들을 보내온 만큼, 그 정도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머리를 때려서 기절 시키거나 독한 약초를 먹이는 것도 방법.
어차피 노인들이 원하는 것은 어린 여자아이의 몸인 만큼, 그 과정에서 머리가 이상해지거나 하는 것쯤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걸래 짝이 되어서 이제 쓸모가 없어진 만큼 프레이아는 이제 내다 버려야지.. 가까운 날을 잡아서 소각장에 집어 던지면..”
그렇게 남성이 쉴 세 없이 이야기를 주절거리던 그때였다.
“응?..”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무언가.
술에 취해 있는 탓에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얼핏 사람이 반짝이는 무언가를 들고 서 있는 것 같이 보였다.
기억상 프레이아는 몸이 아파서 누워있던 만큼, 아마도 동생 쪽일 것이라 생각하며 남성은 비틀거리는 몸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뭐야.. 안 지고 깨 있던 거였냐?.. 아.. 그렇지.. 딸국 안 그래도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술이 들어간 탓에 비틀거리는 몸으로 그것을 향해서 다가가는 남성.
어쨌든, 일단은 적당히 말러 구슬려 보는 게 순서인 만큼, 그는 취기로 인해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지금까지의 기억을 더듬어 이야기를 질질 늘어놓기 시작했다.
“사실.. 내가 아주 조…은 일자리는 구해서 말이지…그.. 그래 너희 언니 같이.. 예쁜 옷을 입고 놀다가 오면 큰 돈을 받을 수… 커억!”
다음 순간, 갑작스러운 격통에 남성은 숨이 막히는 것을 느끼며 그대로 자리에 주저 앉았다.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극심한 괴로움이 그를 뒤 덮으면서 남성은 어떻게든 일어나 보려고 몸을 뒤틀었지만 비대한 그의 몸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여기에 이미 술로 잔뜩 절어져 있는 정신은 이런 상황에서 조차도 삐걱거리면서, 그는 그저 바닥에 쓰러져 죽어가는 벌레와 같이 팔을 허우적거릴 뿐이었다.
“이.. 무슨… 사..살려..제발… 커커..컥…”
그의 입에서 간신히 말이 기어 나왔지만, 그와 동시에 숨통을 잡아 뒤트는 듯한 고통은 더욱 심해졌다.
그렇게 잠시 동안 도살당하는 돼지와 같이 꺽꺽 소리를 내던 남성은 어느 순간, 더 이상 몸을 움직이지 못한 채 그대로 빳빳하게 굳어져 버렸다.
취기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자신의 영혼이 고통의 밑바닥으로 끌려 내려가는 감각을 생생하게 느끼면서..
*
싸늘한 시체가 되어버린 남성.
어둠 속에서 이를 내려다 보면서, 온 몸이 피로 뒤덮인 소녀는.. 프레이아는 허탈한 웃음 소리를 흘리기 시작했다.
“해..해해…해해해…”
처음으로 사람을 죽여본 감각..
그것은 너무나도 질척질척 하고 더러웠으며 금방이라도 토악질을 할 것 같이 속이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런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프레이아의 가슴 속에 박혀 있는 끔찍한 고통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절망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녀의 마음 한복판에 박혀 있는 지독한 악마의 검에서 우러나오는 고통.
지금까지 프레이아는 어떤 일을 겪어도 절대 희망을 잃지 않았다.
굶주릴 때도.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도. 언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그리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이 고깃덩어리가 자신을 악마의 우리에 던져 넣을 때도.
현실이 아무리 괴롭고 힘들더라도..언제나 희망은 있다고.
그렇게 믿고 지금까지 버텨왔다.
그러나.. 그녀의 마지막 남은 빛이자 삶의 유일한 목적이었던 동생.
그녀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겠다고 맹세했던 동생이 망가져버린 것을 본 순간.
어둠 속에서 깜박이고 있던 프레이아의 희망은 완전히 꺼져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마침내 흘러 넘치기 시작한 절망은 곧 고통과 분노로 바뀌었고.
갈 곳을 잃은 그녀의 폭주한 감정은 한가지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복수..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소중한 동생까지 망가뜨려버린 그 인간에 대한 복수..
이 뒤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감정에 따라서, 부엌에 있던 칼을 들었고.
자신의 앞에서 무어라 중얼거리는 그 인간의 가슴에 이것을 찔러 넣었다.
그리고 곧바로 뒤따라 오는 질척한 느낌.
처음으로 감정에 따라서 한 행동의 결과는 행복하지도, 상쾌하지도 않았다.
자신의 손이 더러워졌다는 불쾌함.
단지.. 그것뿐이었다
“언.. 니?”
그때, 그녀의 뒤에서 들러오는 목소리.
이에 프레이아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저급한 양초에서 나는 비릿한 냄새가 피비린내와 뒤섞여 그녀의 코를 찔렀다.
그렇게 만들어진 희미한 불빛 사이로 보이는 존재..
이제는 망가져 버린, 너무나도 가여운 자신의 동생의 모습에 프레이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허탈하게 웃을 뿐이었다.
“이.. 이게 무슨… 어..언니..”
당혹감이 가득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동생.
이에 프레이아는 영혼을 잃어버린 듯한 표정을 지은 채 천천히 동생에 다가갔다.
*
갑작스러운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깬 프리그.
주인 아저씨의 꺼져가는 듯한 목소리에, 그녀는 조심스럽게 양초에 불을 지핀 뒤 방을 나섰다.
그 직후 보게 된 장면..
죽은 듯 쓰러져 있는 주인 아저씨와, 피투성이가 된 채, 서있는 언니의 모습.
갑작스러운 상황에 프리그는 두러움에 사로잡혔고, 그런 프리그를 향해서 언니는 천천히 다가왔다.
얼굴을 피와 기름으로 뒤덮여 있었으며, 손에서는 여전히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보다도 프리그는 두렵게 만드는 것은 바로 언니의 두 눈 이었다.
공허하기 짝이 없는.
마치 생명이 꺼져버린 시체와 같은 눈빛.
사람이 아닌, 짐승의 그것과 같은 눈빛을 하고 있는 언니의 모습에 프리그는 그저 두려움에 떨며 자리에 주저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어째서 이렇게 되어버렸는지는 그녀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사건을 계기로 언니의 마음 속에 있던 무언가가 망가져 버렸다는 것뿐이었다.
그것이 지금까지 겪어왔던 고통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이 했던 말로 인한 해방감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렇게 프리그가 두려움과 혼란에 사로잡혀 있던 그때.. 언니는 천천히, 피로 얼룩진 손을 들어 프리그를 향해 뻗었다.
“웃!..”
자신도 모르게 두려움에 두 눈을 질끈 감은 프리그.
한 순간, 이성을 잃은 언니가 자신에게도 무서운 짓을 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언…니..?..”
다음 순간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각..
따뜻하면서도, 자상한 느낌.
자신의 머리를 다정하게 어루만져주는 언니의 손길.
이에 프리그는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던 공포심이 사그라드는 것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그곳에 있는 것은, 언제나와 같은 언니였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늘 자신을 지켜주었던 바로 그 사람.
그런 언니가 프리그를 향해서 다정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프리그.. 지금부터.. 언니 말 잘 들어야 해. 알았지?..”
“으.. 응. 알았어 언니..”
평소의 바보 같은 느낌이 들던 때와는 다른 목소리.
그 안에 담긴 어떤 의지에 프리그는 정신이 추스러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고, 그런 동생에게 언니는 여전히 다정한 미소를 잃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내 방 옷장 밑을 보면 돈이 있어… 그걸 가지고 지금 바로 이 마을을 떠나.”
“? 무… 무슨 소리야 언니? 갑자기 왜.. 그리고.. 말했잖아. 내일이면 마법사가 와서 우리를..”
“프리그! 정신 차려!”
다음 순간, 갑자기 굳어진 얼굴로 단호하게 말하는 언니.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는 그녀의 이런 모습에 프리그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으며, 그런 프리그를 향해서 언니는 엄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잘 들어! 세상에 마법사나 마법 같은 건 없어! 그리고 지금은 그런 망상에 사로잡혀 있을 때가 아니야! 지금 바로 돈을 가지고 이 마을에서 달아나야 해!“
“그.. 그런 거 아니야 언니! 분명 마법사가..”
“그만! 이제 제발 그만해!”
거의 애원하듯이 처절한 목소리로 소리지르는 프레이아.
언니의 이런 모습에 프리그는 더 이상 마법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렇게 입을 다문 동생을 보며 언니는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애쓴 뒤, 단호하게 말했다.
“만약 내일 아침에라도 사실이 알려지면 분명 마을 사람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하지만 우리 둘 다 도망치기에는 돈이 너무 부족해, 그러니까.. 하다 못해 너만이라도..”
“그.. 그럴 수 없어! 어떻게 언니를 놔두고 어떻게 나만.. 차라리 이렇게 된 거 나도 언니랑 함께..”
홀로 도망치라는 언니의 말에 프리그는 필사적으로 거부하려 하였다.
이제서야 겨우 언니의 사랑을 이해하게 되었는데, 이런 식으로 해어질 수는 없었다.
그렇게 프리그가 어떻게 해서든 언니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말하려던 그때였다.
“쾅! 쾅! 쾅!”
“문 열어! 안에 있는 거, 다 알고 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