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 빨간모자와 양초팔이 소녀 8
* * *
“자 그럼.. 이 다음은 어떻게 해볼까?.. 그렇지. 기왕 약한 벌레들이 잔뜩 모여 있으니까..”
즐거운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며 팔다리가 없는 소녀는 자신의 시선을 사람들 중에서 유독 허약해 보이는 한 남성에게로 향하였다.
동료를 끔직하게 죽여버린 괴물.. 마법사의 시선이 자신으로 향하는 것을 느낀 그는 어떻게든 그곳에서 달아나기 위해 떨리는 다리를 억지로라도 움직이려 하였다.
그런데..
‘뭐.. 뭐야.. 이게 무슨… 자.. 잠깐.. 위험해! 어서 피…’
“크어억!”
갑작스럽게 말을 듣지 않는 그의 육체.
그에게는 마치 온 몸에 쥐가 난 듯한 마비감 만이 느껴졌다.
혀까지 굳어서 말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린 상황.
동시에 갑자기 통제권을 잃어버린 그의 몸은 주인의 의지에서 벗어나 제멋대로 움직였고, 그대로 바로 앞에 있던 동료의 등을 단도도 내리 찍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 무슨 짓이냐!”
“배신이냐! 너 이 녀석!”
‘아.. 아니야.. 이..이건 내 의지가 아니..’
예기치 못한 돌발 행동에 이쪽으로 살기를 돌리는 동료들.
눈 앞에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에 대한 공포가 이쪽을 향하는 것을 느끼며 그는 어떻게든 상황을 설명하려 하였다. 그러나..
“주.. 죽어라! 모.. 모두 죽어!!”
그의 의지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토해내기 시작하는 그의 혀. 그 사실에 당황하기도 전에 그의 몸은 곧바로 또 다른 동료의 몸을 찔렀고, 이에 다른 동료들은 배신자를 처단하기 위해 무기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크어억!”
“이. 이 녀석.. 언제 이렇게..”
‘뭐야.. 이게 대체 뭐야! 내가.. 내 몸이!’
불가능한 방향으로 관절을 꺾어대며 동료들의 몸을 공격하는 그의 몸.
그 여파로 뼈가 부러지고 근육이 끊어지는 것이 느껴졌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미칠듯한 격통 속에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있었다.
“죽.. 어라!.. 죽…어!”
그의 의사와 상관 없는 말과 행동을 하면서 그의 몸은 오직 순수하게 고통만 전해주고 있었다.
‘그.. 그마아아안!! 제발!! 제발 그마아아안!!!!!’
마음 속으로 처절한 절규를 내지르는 남성.
그는 동료 중 누군가가 가능한 빨리 자신을 죽여주기를 바랬으나, 그의 손에 든 단검은 계속해서 동료들의 목에서 피를 뿜는데 성공하였다.
그때..
“제기라아아알!!”
“아..”
소녀의 입에서 짧은 탄성이 나옴과 동시에 그의 머리에 검이 박혔고, 이로 인해서 그는 마침내 이 처참한 고통에서 벗어나 너무나도 달콤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다.
“이런.. 실수했다.. 조작 미스.”
카드게임의 패를 잘못 낸 것 같은 표정을 지어 보이는 소녀.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방안에 남아있는 단 두 명의 남성은 동료의 머리를 가른 피 묻은 검을 든 채 숨을 헐떡이기 시작했다.
마법사..
그들이 생각했던 어떤 괴물보다도 끔직하고 잔인하며 무시무시하기 짝이 없는 존재.
지옥의 악마가 있다면 저런 존재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도록 만드는 그것을 보면서,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한가지뿐이었다.
“사… 살려주십시오 제.. 제발!”
“저.. 저희가 잘못 했습니다. 제발 목숨만은…”
무기를 던져놓고 무릎을 꿇는 두 사람.
그들에게 이런 끔찍한 괴물에게 이길 방법 따위는 없었다.
그렇다면 유일하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이 괴물에게 자비를 구걸하는 것뿐.
그렇게 결론을 내린 그들은 그대로 고개를 땅 바닥에 처박은 채 간절히 애원하기 시작했다.
“죽고 싶지 않습니다! 제발.. 제발 무엇이든 할 테니!”
“자비를 배푸소서! 부디 어리석은 저희들에게 아주 조금만 자비를!”
“흐응.. 살고 싶단 말이지?”
자신들의 말에, 어쩐지 고민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소녀.
이에 두 사람은 어쩌면 살길이 열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고개를 들고 더욱 적극적으로 말하였다.
“그.. 그렇습니다! 사.. 살려만 주신다면 어떤 일이든 하겠습니다!”
“저희들.. 그래도 제법 능력 있는 사람들 입니다. 어떻게든 그 은혜에 보답할 것이니..”
실제로는 어떨지 모르지만, 일단은 목숨을 건지는 것이 중요한 만큼, 최선을 다해서 복종을 맹세하는 두 사람.
이에 고민하던 소녀의 얼굴에서는 한 순간 티 없이 밝은 미소가 피어 올랐으며, 이에 두 사람은 어쩌면 살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좋아 결정! 귀찮으니까 그냥 이대로 전기구이로!”
‘응?..’
‘전… 뭐라고?’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소녀, 그러나 그들이 그 말뜻이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그들의 생명은 순식간에 끊어졌다.
검게 그을려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새까만 숯덩이가 되면서..
*
“자 그럼.. 이걸로 귀찮은 ‘증거’들도 다 인멸 했으니까..”
후련한 감정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하면서 소녀의 시선은 이제 이 방 안에서 유일하게 움직이고 있는 프리그에게로 향하였다.
두려움과 놀라움, 그리고 알 수 없는 기대가 담긴 눈빛으로 소녀를 바라보고 있는 프리그.
그녀를 보면서 팔다리가 없는 소녀는 즐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때? 대단하지? 그럼 이제 약속대로 나와 함께 가자. 조금만 수련을 쌓으면 아마 너도 이 정도 쯤은…”
“마.. 마법사 님!”
“응?”
갑작스럽게 큰 목소리를 내며 소녀의 앞에 무릎을 꿇는 프리그.
이에 소녀는 의문에 찬 표정을 지으면서 프리그를 바라보았고, 그런 소녀를 향해서 프리그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간절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마.. 마법사님이 하시라는 대로 다 할게요. 마법사가 되는 것도 최선을 다 할거고. 혹 위험한 일을 시키시더라도 불평하지 않고 전부 다 할게요. 그러니까 제발.. 제발…”
그 말과 함께 다급하게 손을 뻗는 프리그.
그녀의 손에는 이제 싸늘하게 식어가기 시작하고 있는 언니..
프레이아 의 몸이 들려 있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언니를… 제 언니를 살려주세요.”
“…”
프리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마법사 소녀는 약간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지금까지 항상 지니고 있던 여유로움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듯한 모습.
그러나, 프리그에게 그런 것을 인지할 여력 따위는 없었다.
이대로 있으면, 그녀의 언니는 죽어버리고 말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미 죽음을 맞이한 상태이나 자신이 이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마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언니를 살릴 방법이 있다면..
혹 이 강력한 힘을 지닌 마법사 라는 존재가 그 방법을 가지고 있다면..
프리그는 무슨 수를 써서든 언니를 살려내야만 했다.
자신을 위해 희생만 하다가 죽어가고 있는 가여운 언니.
자신의 어리석은 질투와 호기심 때문에 이렇게 되어버린 언니
그것에 대해서 용서조차 빌지 못한 채 이대로 그녀를 떠나 보낼 수는 없었다.
그런 것은. 프리나 스스로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설령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이 천금과 같은 기회를 잃어버리고 목숨마저 잃어버린다 해도..
언니에게 속죄를 할 수만 있다면 그녀는 기꺼이 그 길을 선택할 것이었다.
한편, 온 힘을 다해 애원하는 프리그를 보면서 마법사 소녀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그대로 손을 귓가에 대고 입을 열었다.
마치, 이곳에 없는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어조로..
“응, 마마 나 메닐라. 이쪽에 문제가 좀 생겼는데..”
*
메닐라의 호출을 받은 도로시는 곧바로 그녀가 말한 장소로 이동하였다.
카알론의 외곽 지역에 위치한 메닐라의 거처.
그곳에는 처음 보는 어린 소녀와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는 자매로 보이는 소녀가 쓰러져 있었다.
“이 아이니?”
“응, 마마. 내가 말했던 마력을 지니고 있는 아이. 원래는 이쪽만 데리고 오려고 했는데…”
그때, 쓰러져 있는 소녀의 손을 꼭 붙들고 있던 소녀는 다급하게 도로시를 향해 다가왔다.
차마 일어나지도 못한 채 말 그대로 바닥을 기어서 다가오는 소녀.
이어서 그녀는 마치 넋이 나간 듯한 목소리로 연신 고개를 숙이며 도로시에게 애원하기 시작했다.
“부.. 부탁드립니다! 제발.. 무슨 짓이든 한 테니.. 제발 저희 언니를.. 언니를 살려주세요!”
너무나도 처절하게 애원하는 소녀.
이에 도로시는 약간의 당혹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그녀를 보며 메닐라는 한숨을 내쉬며 말하였다.
“하.. 보다시피, 이렇게 자기 언니를 살려달라고 하도 고집을 부려서 말이지..”
“…그렇..구나.. 언니를..”
그 말에, 도로시는 비록 입장은 많이 다르지만 눈 앞에 있는 이 처음 보는 소녀에게 연민을 느끼기 시작했다.
단순히 이 아이가 처한 상황이 불쌍해서가 아니었다.
지금의 그녀 역시..
본의 아니게 소중한 가족을 잃어버린 상황 이었기 때문이다.
오즈와는 또 다른.
이 세계 어딘가에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자신의 소중한 자매들을..
‘만약, 지금이라도 나에게 그 사람들을 다시 만날 기회다 온다면.. 분명 무슨 수를 써서든 이를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도로시는 조심스럽게 쓰러져 있는 소녀의 언니에게로 다가갔다.
지금 그녀의 힘이라면, 숨만 붙어 있다면 회복마법을 사용해서 상처 하나 없이 소생시키는 것이 가능할 터.
그러나..
“..미안..”
짧지만 진심이 담긴 목소리로 도로시가 말하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