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 빨간모자와 양초팔이 소녀 9
* * *
“미.. 미안… 하다니요?...”
마법사의 말에, 소녀.. 프리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그녀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자신 따위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힘을 지니고 있을 존재.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사과의 말.
그것은.. 그녀조차도 언니를 치료할 수 없다는 말..
“아..아니.. 그럴.. 리가.. 그럴 리 없어요. 고.. 고칠 수 있으시잖아요? 마..마법사 이니까..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마법사.. 이니까..”
눈가에 눈물이 잔뜩 고인 체 프리그가 떠듬 떠듬 이야기했다.
그러나.. 절망 속에서도 어떻게든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그녀를 향해서 마법사는 착잡한 목소리로 말했다.
“살아 있는 상태였다면.. 하지만 이미.. 숨이 끊어졌어.”
“!...”
알고 싶지 않았던 가혹한 현실.
어떻게든 눈을 돌리려 했던 그것이 그녀의 눈 앞에 선명하게 나타나자 프리그의 입에서는 비명이 터져나왔다.
“으…으… 으아아아아아아아!!”
고통, 절망, 후회.
지금까지 애써 틀어막아두고 있던 감정의 탁류가 쏟아져 나오면서 프리그는 절규하기 시작했다.
“나.. 나때문…이야.. 나 때문에.. 언니가... 으흑. 으흐으으윽.”
“….”
언니의 시체를 끌어 안은 채, 미친 듯이 울부짖는 프리그.
그때.. 누군가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따뜻함이 감도는 손길.
마치.. 기억 속에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어머니의 그것과 같은 자상함이 담겨 있는 손길.
이에 프리그는 여전히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있는 것은 그녀에게 사과를 했던 그 마법사.
그러나, 그녀의 얼굴에는 미안함 이라는 감정은 담겨 있지 않았다.
의지.
마치 무언가를 해내고 말겠다는 듯한 표정이 그녀의 얼굴에 담겨 있었다.
“아직.. 확신할 수 없지만.. 해볼게. 이 다음.”
“!....”
죽음이란 누구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은 프리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을 넘볼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신이라는 존재뿐.
그러나,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프리그는 그녀의 말에 약간의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작고 미약하지만.. 어둠 속에서 분명히 타오르고 있는 희망이라는 이름의 촛불에 그녀는 다시 한번 불을 붙였다.
*
죽음.
LDG 내에서도 당연히 존재하는 개념으로 HP가 바닥나면 맞이하게 되는 상태.
그러나 LDG 내에서 유저들이나 그들이 만든 NPC 들에게 죽음은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었다.
가만히 있어도 현실로 3시간. 게임 내 시간으로 3일이 있으면 경험치가 아주 약간 깎인 다는 패널티 외에는 큰 문제 없이 부활할 수 있었으며, 거점전이나 사냥 도중에 전력 이탈이 생긴다는 불편함을 제외하면 그렇게 심각한 요소는 아니었다.
그러나, 현실이 된 지금, 그 죽음이라는 개념은 당연히 도로시 입장에서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개념이었으며 가능한 반드시 극복해야만 하는 요소였다.
‘나의 경우는 거의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 이지만.. 만약 오즈가 죽게 되면 어떻게 될까? 무슨 수를 써서든 부활시키려 시도하겠지만 과연 그것이 실제로 가능한 일일지..’
그리고, 지금 도로시의 눈 앞에는 마침 적당한 실험 대상이 눈 앞에 있었다.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소녀.
일단 동생 쪽은 도로시가 보기에도 적은 양이지만 마력을 지니고 있는 만큼 언니 쪽도 가능성이 있었다.
당장 마법사의 재능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아쉬운 이 상황에서 그녀의 부활을 시도해 보는 것은 실험을 겸해서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여기까지가 카알론의 군주로서 냉정하게 상황을 계산했을 때의 이야기.
그러나 실제로는 그런 이득에 대한 부분은 어디까지나 스스로에 대한 변명을 위한 구실이라는 것을, 도로시는 알고 있었다.
‘혹 그런 게 아니더라도.. 이 아이는 살려주고 싶어..’
자신과 같이 가족을 잃어버린 고통을 안고 있는 소녀.
어딘가에 있을 그녀의 가족 역시, 이렇게 울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도로시는 도저히 그녀를 외면 할 수가 없었다.
‘LDG에 소생에 대한 마법은 없지만. 이와 관련된 부분이.. 한가지 있긴 하지.’
도로시의 머리 속에 있는 한가지 지식.
LDG 식으로 묘사하면 즉각적인 소생을 가능하게 해주는 한가지 수단.
하지만 그것으로 게임 속의 존재도 아닌 현실의 평범한 여자아이를 살릴 수 있을 지 없을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도.. 시도해 볼 가치는 충분히 있어.’
그렇게 결론에 도달한 도로시는 품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초록색의 무언가가 담겨 있는 물건.
이른바, 라 불리는 아이템으로, 죽음을 경험한 존재를 즉시 소생시키는 힘이 담겨 있었다.
다른 게임들의 소생 아이템과는 달리 영 성서롭지 않은 이름답게 디버프를 비롯한 부작용이 존재하는 물건.
하지만, 게임 내에서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인 만큼, 도로시는 눈 앞에 있는 소녀의 시신에 이것을 뿌렸다.
‘게임 내 시스템을 고려하면 온전한 소생은 아마 힘들겠지만...’
그렇게 내색을 하지 않은 채 속으로 제법 불안해 하면서 도로시는 소녀의 시체 안에 스며드는 히드라의 정수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
‘차가워..’
눈보라 속에 갇힌 것 같은 냉기가 감각을 일깨우기 시작한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텅 빈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만 같은 공허하기 짝이 없는 느낌.
마음 같아선 이대로 잠이 들어 버리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으나, 점 차 선명해지는 차가운 느낌은 그런 바람을 포기하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무거운 괴로움 속에서, 그녀는 천천히 눈을 떴다.
“…..”
눈 앞에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은, 누군가의 얼굴.
그 사람의 눈에서 떨어진 눈물은 그녀의 얼굴에 떨어졌다.
따뜻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
꺼질 것 같은 정신 속에 잠겨 있는 그녀를 일깨우는 감각.
이에, 그녀의 몸은 다시금 시야를 바로 잡아 가기 시작했고.
마침내.. 그녀는 눈 앞에 있는 사람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니..”
물 속에 잠겨 있는 듯 뿌옇게 들려오는 목소리.
그것 역시 시야가 잡힘과 동시에 점차 또렷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시끄러우면서도 마음 속을 울리는 듯한 목소리.
그 것이 담고 있는 의미는..
“언니!”
“……”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림과 동시에, 눈 앞에 있는 사람은 그녀의 몸을 강하게 끌어 안았다.
격한 감정이 느껴지는 행동.
마치 잃어 버렸던 무언가를 간신히 다시 찾은 듯한 행동..
“다행이야… 정말… 정말 다행이야.. 언니..”
“….”
안도와 기쁨이 담겨 있는 목소리.
듣는 것 만으로도 감정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만 같은 목소리.
그렇게, 자신을 향해서 격렬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그 사람을 향해서.
그녀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누구.. 세요?”
*
“….”
순수한 의문이 담겨 있는 목소리에 프리그는 잠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눈 앞에 있는 사람에게서 듣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한마디.
그럴 리가 없었다.
그래서는 안 되었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부인 하면서, 프리그는 끌어 안고 있던 언니의 얼굴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그 모습은, 평소에 그녀가 알고 있던 모습과는 무언가 달랐다.
실 없는 미소가 담겨 있는 바보 같은 표정이 아닌.. 공허하기 짝이 없는 백지와 같은 모습.
흐릿한 초점이 담긴 푸른 눈동자에, 차가움 마저 느껴지는 그녀의 얼굴에서 프리그는 무언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면서도.
프리그는 애써 이를 부인하면서 깨질 것 같은 미소를 억지로 지어 보였다.
“어… 언니.. 왜.. 왜 그래?.. 자.. 장난 치지마.. 나.. 나야.. 나잖아.. 언니 동생 프리그..”
“프리.. 그?..”
멍한 목소리로. 마치 처음으로 부모의 이름을 되뇌이는 아이과 같은 반응을 보이는 언니.
이에 프리드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프리그! .. 어.. 언니 동생 이름… 알고 있잖아.. 프레이아 언니의 하나 밖에 없는 동생.”
“..프레…이..아?..”
자신의 이름에도 고개를 갸웃 하는 그녀의 모습.
“아… 아아…”
그 모습을 보면서, 프리그는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의 언니의 머리 속에는 더 이상, 아무 기억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동생에 대한 기억도..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기억도.
그렇게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인 그녀,
하지만.. 프리그는 이에 대해서 더 이상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그저.. 멍하게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미안해.. 언니.. 정말.. 미안해..”
*
잠시 동안의 확인작업이 끝난 뒤, 도로시는 착잡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타깝지만.. 이 이상은 아무리 나라도 방법이 없을 것 같구나.”
히드라의 정수로 소녀의 목숨을 되살리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그녀의 머리 속에 남아있던 기억은 모두 사라졌으며 동생에 대한 것도, 심지어 자신의 이름조차도 남아있지 않았다.
‘게임 상에서 히드라의 정수는 즉각적인 소생이 가능한 대신 다량의 경험치 손실을 유발하지.. 그것이 이 세계에서는 이런 식으로 구현 된 건가..’
비록 기대했던 죽은 자의 부활 이라는, 기적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일을 해냈지만 그것이 기억의 손실이라는 불완전한 결과를 내놓았다는 점에서, 도로시는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도로시를 보면서 프리그는 오히려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담아서 깊이 고개를 숙였다.
“아니요.. 이것 만으로도.. 정말 감사 드립니다. 어쨌든 이렇게 저의 언니를 다시 살려 주셨는데요.. 여기서 더 이상 무언가를 바란다면 그것은 과한 욕심이겠지요..”
“…그..그러니?”
“무엇보다.. 저렇게 언니가 저렇게 된 건 다 저의 때문이니까요.. 마법사님이 그 죄를 조금 덜어주셨으니 이제는 제가 나머지를 책임 져야겠지요.”
나이에 비해서 제법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프리그.
그녀의 행동에 도로시는 제법 의젓한 아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속으로 살짝 감탄하였다.
‘생각보다 강한 녀석이구나.. 나였다면 그런 거 생각 안하고 지금까지 펑펑 울고만 있었을 지도 모르는데..’
메닐라의 말에 따르면 상당히 어렵게 살아왔던 아이였다.
아마도 그런 환경 속에서 단련이 된 탓이 아닐까 생각하며, 도로시는 조용히 물었다.
“그래서. 이제부터 넌 어떻게 할 생각이니?”
“..일단은.. 말씀하신 대로 마법사가 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 할게요. 그리고.. 지금까지 언니가 그랬듯이 이제부터는 제가 언니를...”
“….”
그렇게 슬픔 속에서도 주저앉지 않고 나아가려는 의지를 보이는 프리그
그녀를 보면서 도로시는 조용히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것은
단순히 그녀가 원하는 실험 대상을 찾았기 때문이 아닌, 진심으로 이 어린 소녀의 앞날을 축복하는 의미에서 담은 미소였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문득 이 모습을 보면서 도로시는 지금의 프리그가 약간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과는 달리, 기억을 잃긴 했지만 지금 그녀의 곁에는 지켜줄 수 있는 자매가 있었으니까..
‘오늘 따라 더 보고 싶어지네.. 하루라도 빨리 찾아야만 하는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