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 눈의 마왕 8
* * *
눈 앞에서 지금껏 본 적이 없는 어마어마한 마력을 방출하고 있는 마법사.
이에 제니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소개한 소위 ‘마왕’은 짙은 당혹감에 사로잡혔다.
‘이.. 이.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힘이 어떻게..’
단순히 뿜어져 나오는 위력 만으로 지면이 갈라지고 대지를 요동치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마력의 폭풍.
그것은 마치 어마어마한 망망대해를 휩쓸면서 다가오는 거대한 태풍을 연상시키고 있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듣도 보도 못한..
수 백 년의 세월 동안 수 없이 많은 존재들을 숙주로 살아온 그 조차도 전혀 아는 바가 없는 힘.
그것을 묘사할 수 있는 단어는..
마왕의 지식 내에서 단 한가지 밖에 없었다.
신..
세상의 이치를 뒤엎고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해 낼 수 있는 권능을 지닌 존재.
전설과 이야기에선 나오던 그 절대자를 눈앞에 마주한 상황에서
마왕의 머릿속에는 자신이 상대를 잘못 봐도 한 참 잘못 본 것이 분명 하다는 두려움이 격렬하게 소용돌이 치기 시작했다.
‘위..위험 하다.. 이.. 이런 녀석의 몸을 빼앗는 것은 나로서는 절대로 불가능해. 접촉을 시도하기도 전에 먼저 내 본체가 산산 조각으로 박살이 나고 말 거야!’
그렇게 한발 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기 시작한 마왕.
이에 그녀는 다급한 목소리로 눈 앞에 있는 마법사를 보면서 소리치기 시작했다.
“자.. 잠시! 잠시만!.. 우.. 우리 일단은 서로 대화를…”
그러나..
“하아앗!”
다음 순간, 그대로 마왕을 향해 지팡이를 휘두르는 마법사.
그와 동시에, 그녀의 양 측에 서 있던 좀비 들은 그대로 산산조각으로 박살이 났고..
마왕의 몸 역시, 그대로 허망하게 튕겨져 나갔다.
“커어억!”
그 충격으로 인해서 그대로 거울을 떨어뜨린 채 바닥을 구르는 마왕.
바닥에 떨어진 거울은 그대로 커다랗게 금이 갔으며, 쓰러진 마왕은 그대로 몸을 움찔거리면서 일어나지 못하였다.
그렇게 단 일격에 싱겁게 종료되어 버린 소위 말하는 마왕 토벌 작업.
이에.. 소위 말하는 ‘마왕을 물리친 용사’이자 마왕으로부터 ‘마법의 신’ 이라는 평가를 받은 존재.
도로시 인비저블은 생각했던 것보다 한참 못 미치는 허전한 손 맛에 진한 허탈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뭐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겨우 평타 한대 날렸을 뿐인데 벌써 끝이라고?”
비록 허약하기 그지 없는 언데드의 군세를 보면서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상대는 명색의 마왕이었다.
적어도 도로시의 공격을 힘겹게 라도 막아 내면서 눈곱만큼의 반격이라도 시도해 줄 것을 기대 했으나..
아쉽게도 그녀가 바랬던 그런 건 없었다.
반격은 고사하고 자신이 가볍게 날린 일격에 그대로 뻗어버린 마왕.
그래도 최대한 죽지 않도록 힘 조절을 하긴 했으나.. 어쩌면 정말 이대로 죽어버렸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도로시는 일단 조심스럽게 마왕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이 세계 벨런스는 진짜 답이 없을 수준이네, 카알론에 있는 시그룬이나 프리그 같은 아이들을 보면서 그래도 제법 기대를 했었는데..’
그 동안의 수련을 통해서 어느새 레벨 100 중반에 도착한 시그룬.
그리고 수련을 시작한지 상당한 시간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멜리사의 말대로 대단한 재능을 타고 난 것이 사실인지 그 사이에 벌서 100레벨을 돌파한 프리그
그들 정도의 실력이라면, 적어도 도로시가 신경 써서 가볍게 날린 이 평타 정도는 어찌어찌 막아낼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즉, 바꿔 말하면 지금 프리그나 시그룬을 데라다가 여기서 마왕 하라 시켜도 이 녀석 보다는 강할 것이라는 뜻.
그렇게, 다시 한번 참으로 안습하기 그지 없는 이 세계의 평균 수준에 대해서 한숨을 내쉬면서, 도로시는 그대로 자신의 바로 앞에 있는 마왕의 몸을 발로 툭툭 건드리기 시작했다.
“어이. 이봐. 살아 있어?”
“..으..으으…”
“..그래도 다행히 숨은 붙어 있네. 최소한의 예의로.”
만약에 정말로 그걸 맞고 죽어버렸다면 아마도 도로시의 허탈함은 한층 더 묵직했을 터.
그렇게 살짝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도로시는 일단 마법으로 그녀의 상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당연히 이는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 적당히 숨이 붙어 있는 상태로 데리고 가야 마왕을 잡았다는 증거로서 사용할 수 있기 때문.
‘..일단, 큰 이상은 없는 것 같은데. 딱히 뼈가 부러지거나 장기가 손상된 것도 아니고. 단순히 기절한 상태인 건가?’
그렇게 결론을 내리면서 도로시는 살짝 마력을 주입해 잠들어 있던 그녀의 정신을 깨웠다.
그러자..
“으..으으…”
다음 순간 천천히 눈을 뜨기 시작하는 마왕 제니.
그러나, 그녀의 눈에는 방금 전 까지 잠겨 있던 푸른 기운이 사라져 있었으며 아울러 전체적인 분위기 또한 바뀌어 있었다.
기세 등등한 마왕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어쩐지 단아하다는 느낌이 드는 모습,
이에 도로시는 작금의 상황에 약간의 의문을 품었고, 이어서 마왕은 도로시를 보면서 조심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당신은.. 누구세요? 그리고 여긴 어디…!”
그렇게 의문이 담긴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그녀.
그때, 그녀의 눈에는 바닥에 떨어진 채 금이 가 있는 거울의 모습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저 거울은..! 서.. 설마.. 그렇게..”
그와 동시에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반응을 보이는 마왕.
이이서 그녀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도로시를 보면서 깊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보아하니 당신께서 저를 구해주셨군요? 저 거울의 저주에서부터..”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이야기하는 그녀,
이에 도로시는 그녀가 자기를 상대로 어설픈 연기를 하는 것 같지는 않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차분한 어조로 물었다.
물론, 조금이라도 수상한 낌새가 보인다면 바로 뻘짓 하지 말라는 이야기와 함께 이 년을 반쯤 죽여 놓을 생각을 함께 지닌 채로 말이다.
“보아하니,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설명을 해줄 수 있을까?”
“아..네. 알겠습니다.”
도로시의 요청에 고개를 끄덕이는 마왕.
이어서 그녀는, 자신을 구해준 ‘은인’을 보면서 그녀가 겪었던 사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차가운 눈이 내리는 얼음의 나라
그곳에는 한 공주가 살고 있었다.
아름다운 외모를 지니고 있으면서 거기다가 총명하고 자상하기 까지 한 공주는 왕과 왕비 그리고 백성들의 사랑과 애정을 독차지 하며 성장해 갔다.
그녀의 오빠이자 장차 이 나라를 이어받기로 내정되어 있던 왕자가 질투와 위험을 느낄 정도로.
그러나, 그렇게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해 가는 공주에게는 한가지 말 못할 걱정거리가 있었다.
그것은.. 그녀의 몸에 깃들어 있는 남들에게는 없는 기묘한 힘.
비록 누구도 이를 가르쳐 주지는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힘을 능숙하게 다루기 시작한 공주는 간혹 아무도 모르게 이 힘을 사용해서 가벼운 장난을 벌이곤 하였다.
구워진 칠면조가 울음소리는 낸다 던지, 스프안의 생선이 눈동자를 움직인 다던지.
남들이 할 수 없는 특별한 능력이었지만, 그녀는 이를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단순한 장난감 정도로 여기며 생활해 나갔다.
그러나, 그녀의 이런 부주의는 그만 그녀를 몰아내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던 그녀의 오빠.. 왕자에게 덜미를 주고 말았다.
권력에 대한 탐욕과 동생에 대한 질투로 인해서 왕자는 자신을 따르던 신하들과 작당하여 공주를 모함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사악한 마법을 사용해 왕을 죽이려 했다고.
지금까지 벌어졌던 소동은 모두 그녀가 음모를 꾸미기 위한 사전 준비의 일환이었다고.
이에 왕과 왕비는 공주를 감싸려 했지만, 자신 때문에 사랑하는 부모가 곤경에 처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공주는 그대로 자신의 신분을 버리고 몰래 성을 빠져 나왔다.
그러나, 그렇게 스스로의 선의로 모든 것을 내려놓은 공주의 행동은 사람들에게 그녀가 사악한 힘을 다루는 악마라고 오인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어 버렸다.
이에 공주는 어느 곳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한 채, 가는 곳 마다 악마라 핍박을 받으며 고난의 삶을 살게 되었다.
마을에서 그녀를 본 자들은 그녀에게 돌을 던졌으며.
그녀의 행보를 불길하게 여긴 영주들은 그녀를 죽이기 위해 암살자까지 고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목숨까지 위협받게 되면서 계속된 고난 속에 지쳐있던 공주는..
숲 속의 깊은 동굴에서 우연히 거울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달콤한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는 거울.
그녀가 겪고 있는 고통을 없애 주겠다는 그것의 유혹을 지치고 피폐해진 공주는 거절할 수 없었으며.
결국 그녀는 그 거울을 붙잡음과 동시에.. 그것에게 몸을 빼앗기고 말았다.
거울에 몸을 빼앗긴 강력한 힘을 지닌 마법사.
세상 사람들이 소위 마왕 이라 불리는 존재는..
그렇게 탄생하게 되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