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 눈의 마왕 9
* * *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랬.. 구나..”
제니의 이야기를 들은 이후, 도로시가 착잡한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이는 단순히 눈 앞에 있는 이 기구한 삶을 살아왔던 여인에 대한 연민 때문도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도로시의 앞길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법을 사용한다는 이유만으로 가족에게 배신당하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생명을 위협 까지 받게 되다니.. 마법이라는 것에 대한 혐오가 심각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정도 일 줄은..’
비록 수준 차이는 많이 있지만, 일단은 같은 마법사로서 그 고충이 이해가 가기도 했으며, 아울러 자신과 카알론이 두 다리 쭉 벋고 생활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조건의 난이도가 제법 높다는 것을 실감하게 해주는 이야기였다.
‘이거 생각보다 갈 길이 많이 먼데.. 일단은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마법에 대한 막연한 적대감부터 해소 시켜야 할 것 같아.’
지금의 도로시로서는 추장적이면서도 명확하게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
그러나, 일단 눈앞에 있는 이 제니라는 이름의 전 마왕 겸 공주를 잘 이용한다면 어떻게 길이 보일 것도 같다는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앞으로 넌 어떻게 할거지? 거울의 지배에서 벗어났으니 이제부터 다시 공주의 신분을 되찾을 건가? 아니면 다른 무언가..”
“..아니요, 그건 아마도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말과 함께 얼굴에 죄책감의 감정을 내보이기 시작하는 제니.
이어서 그녀는 도로시를 보면서 슬픔이 담긴 얼굴로 말을 계속 해 나갔다.
“제가 공주의 자리에서 쫓겨난 지는 벌써 수 십 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거기다가 비록.. 거울에 의해서 조종당하는 몸이었지만, 저 역시 중간 중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있었습니다. 트롤들을 규합해 세력을 모으고, 인간들의 마을을 습격했던 사실도 그리고, 그들에게 마왕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는 사실도 말입니다.”
“으음..”
“비록 저의 의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전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몸입니다. 그러니.. 도로시님. 부디 당신의 힘으로 제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뭐? 하지만 그건 좀..”
제니의 말에 주저하는 기색을 내보이기 시작하는 도로시.
이에 제니는 다시 한 번, 간곡한 목소리로 도로시에게 청했다.
“부탁 드립니다. 아무리 실수에 의한 결과라 해도 무고한 이들의 피를 흘리게 만든 저 입니다. 그들의 넋을 달래주고 대가를 치르기 위해서라도 제발..”
“하아..”
간절하게 자신을 죽여줄 것을 요청하는 제니.
그런 그녀를 보면서 도로시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천천히 제니에게 다가가는 도로시.
이에 제니는 마음의 준비를 한 듯, 그대로 천천히 눈을 감아 보였다.
말 그대로 자신의 죄를 참회하는 죄인의 심정을 지닌 채 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리는 제니.
그리고..
퍽!
“크윽!”
다음 순간, 그대로 들고 있던 지팡이로 제니의 머리를 후려치는 도로시.
그 안에 담긴 힘을 절대로 강하지 않았으며, 이에 제니는 순간적으로 강렬한 통증만을 느꼈을 분 죽음을 맞이하지는 않았다.
“아야야..”
마음 같아선 어째서 자신을 죽이지 않았는지 따지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느끼고 있는 통증이 너무 강렬한 나머지 잠시 동안 입을 열지 못하는 제니.
그리고, 그런 제니를 보면서 도로시는 답답함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나 참.. 일단은 그냥 듣고 있었는데 너 생각보다 뻔뻔한 녀석이구나?”
“아우우…ㄴ..네? 그.. 그게 무슨..”
“잘못을 했으니 그 대가로 죽여달라고? 이 년이 세상 참 날로 먹으려 들고 있네? 이봐, 여기서 내가 너를 죽여버린다 해서 정말로 네가 지었던 잘못들이 보상 될 거라고 생각해? 착각하지마, 지금 여기서 네가 수 백 번도 넘게 죽는다 해도 네가 죽인 사람은 단 한 명도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고. 그런데 그걸 가지고 목숨 하나로 퉁치시겠다? 대가를 치르려면 열심히 살아서 다른 사람들을 살릴 생각을 해야지, 어디서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어?”
“…”
자비 없이 팩트를 내다 꽂아버리는 도로시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는 제니.
이어서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도로시는 조금 가라 앉은 어조로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네가 지금까지 저지른 잘못을 감당하기 힘들다고? 그러면 그만큼 앞으로 열심히 살도록 해.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아직 살아 있는 이들을 위해서 네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라고. 그 전까지 죽여달라느니 어쩌니 하는 이야기를 꺼내지도 말고 생각도 하지 마.”
“…”
“알았어 몰랐어?”
“! 아..ㄴ..네! 아.. 알겠습니다 도로시님!”
그렇게, 자신의 말에 따르기로 결정한 제니.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도로시는 마음 속으로 조용히 승리의 미소를 지어 보이기 시작했다.
‘좋았어.. 이걸로 전 공주이자 마왕이었던 여자는 우리 쪽으로 끌어들였어. 이제 이 사람을 잘 이용하기만 한다면..’
비록 강제로 물러났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한번 왕족은 영원한 왕족이었다.
특히, 앞서 들었던 제니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녀는 잠시 후계자로까지 거론 되었던 존재인 만큼 듣보잡 왕족이 아닌 나름대로 굵직한 혈통을 지니고 있는 인물.
이를 잘 활용 한다면 앞으로의 계획을 진행하는데 있어서 분명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생각과는 조금 다르게 흘러갔지만, 아무튼 1차적인 목표는 달성하는데 성공했다 여기며 내심 기뻐하고 있는 도로시였다.
그런데..
“응? 그러고 보니.. 그 거울은 어디 있나요?”
“어? 거울? 거울이라면 분명..”
문득 생각이 난 듯 질문을 하는 제니.
이에 도로시 역시 대화에 집중하느라 문제의 그 저주받은 아이템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 하면서 방금 전에 그것이 떨어져 있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이거 어디 갔어? 분명히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설마 그 사이에 누군가가 가져간 건가? 그렇다면 큰일이에요! 그 저주받은 거울은 손에 쥔 자를 지배하는 힘이 담겨 있어요! 빨리 찾아서 파괴하지 않으면 제 2, 제 3의 마왕이..”
다급하게 이야기하는 제니.
그러나.. 솔직히 이에 대해서 도로시는 내심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중이었다.
‘제2 제 3이 아니라 마왕이 트럭째 몰려와도 별로 위험할 것 같지는 않은데..’
그 정도 수준의 녀석이라면 말 그대로 군대가 몰려온다 해도 가볍게 지워버릴 수 있는 도로시인만큼 이 순간 그녀는 일말의 위기감도 느껴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때..
“크르륵. 이것을 찾고 있는 것인가 마왕?”
“! 너..넌..”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거친 목소리.
이에 제니와 도로시는 동시에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 있는 것은 셀 수 없이 많은 트롤들의 모습이었다.
못해도 수 백은 되어 보이는 어마어마한 숫자.
그리고.. 그들의 맨 앞에는 트롤의 리더로 보이는 존재가 기세 등등한 표정으로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너.. 그.. 그 거울은?”
그것은 제니의 정신을 지배하고 마왕으로 군림했던 문제의 그 거울.
그러나, 그 중심에는 커다란 균열이 가 있는 상태였으며, 그 때문인지 지금 이 순간 트롤은 딱히 정신을 지배 받고 있다거나 하는 느낌을 들지 않고 있었다.
‘저 녀석은.. 아까 전에 헬하운드에게 도망쳤던 그 녀석인 것 같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딱히 위기감을 느끼지는 않고 있는 도로시.
그러나, 그녀의 이런 태도와 별개로 트롤은 거울을 든 채 희열에 찬 목소리로 당혹감을 내보이고 있는 제니에게 소리쳤다.
“크킄. 네년의 그런 표정을 보고 있자니 상당히 재미있군, 하지만 지금까지의 은공을 생각해서 내 특별히 재미 있는 것을 보여주도록 하지!”
그 말과 함께 자신의 주먹에 마력을 담기 시작하는 트롤.
이어서, 이에 반응 하듯 틀로의 손에 쥐어져 있는 거울은 마치 살아 있는 것 마냥 흔들거리면서 어떻게 해서든 트롤의 손에서 빠져 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작 트롤은 그런 거울의 움직임은 신경 쓰지 않은 채, 자신의 옛 주인이었던 제니를 보면서 당당하게 외쳤다.
“크르르르 지금까지 네년 몰래 익혀온 궁극의 마법, 이를 이용해서 이 안에 담긴 힘을 손에 넣는다면 마왕을 끝장 내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겠지. 그 다음 드디어 이 몸 깨서 완전한 트롤들의 왕으로 군림하는 것이다!”
환의에 찬 목소리로 소리치는 트롤.
그러나, 이에 대해서 도로시는 오히려 생각지 못한 구경거리가 늘어났다는 사실을 상당히 흥미진진하게 감상하고 있는 중이었다.
‘궁극의 마법이라.. 이번에는 그나마 재미 있는 걸 보여주… 아니 기대를 하지 말아야지. 그러다 도 실망할라.. 그래도 이 상황만 놓고 보면 충분히 재미있긴 한데..”
그렇게 어쩐지 팝콘이 고프다는 생각을 하면서 도로시는 팔짱을 낀 채로 힘을 끌어 모으고 있는 트롤의 모습을 구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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