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 눈의 마왕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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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롤의 몸에서 마력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도로시가 보기에는 상당히 미약한 수준이었지만, 그 마력은 트롤의 몸을 휘감기 시작했고
동시에 트롤은 거울을 들고 있는 손에 힘을 쥐었다.
“이 안에 담겨 있는 힘! 내가 손에 넣어주마!“
그와 동시에 산산 조각으로 부숴지는 거울
그 직후 갑작스러운 돌풍이 일면서 그 안에 모여 있던 힘이 분수마냥 뿜어져 나오더니, 이내 그것은 그대로 트롤의 몸 속에 흡수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치 기름 속에 불꽃을 집어 넣은 듯 맹렬하게 변화하기 시작하는 트롤의 몸.
본래 흰 색이었던 녀석의 몸은 검푸른 빛으로 변하기 시작했으며, 몸을 이루고 있던 근육들 역시 한층 더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크하하하! 최고로군! 지금까지 네 년의 밑에서 땅을 핥는 굴욕을 감내한 보람이 있었어! 이런 무지막지한 힘이라니!”
압도적인 힘에 취해 환의의 광소를 터뜨리는 트롤.
이를 보면서 제니의 얼굴은 창백하게 변하였고,
그렇게 강화된 육체의 힘에 만족하면서 트롤은 몽둥이를 치켜들고 전투 태세를 갖추었다.
“자 그럼 덤벼라, 나약한 인간들 따위 모조리 끝장을 내주마!”
살기등등한 목소리로 도발하는 트롤.
비록, 그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제니는 명확하게 알 수 없었지만 최소한 자신 보다는 강할 것이라고 제니는 생각했다.
지금껏 그녀가 휘둘러 온 힘은 그녀가 지니고 있던 마력도 있었지만 절반 이상은 저 거울의 보조를 받은 결과.
그런 점에서, 거울의 힘을 완전히 흡수한 트롤은 지금의 그녀로선 이길 방법이 없었다.
‘이렇게 되면.. 남은 희망은..’
결국,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그녀의 옆에 있는 이 사람..
거울에 조종당하던 자신을 해방시켜준 도로시뿐.
이에 그녀는 간절한 표정으로 도로시를 바라보았고, 이에 그녀는 어쩐지 상당히 귀찮다는 듯한 얼굴로 트롤을 보면서 말하였다.
“어이, 거기 있는 트롤, 우리 꼭 싸워야 해? 어차피 넌 원하던 힘을 손에 넣었고, 우리를 딱히 더이상 여기서 볼 일 도 없거든? 그러니까 이쯤 해서..”
“시끄럽다 인간! 지금껏 네년의 옆에 있는 마왕에게 시달림을 받은 대가를 받기 전까진 절대로 살려 보낼 수 없다! 아니! 그년뿐만이 아니라 인간들은 모두 우리 트롤들의 적!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모조리 죽이거나 노예로 만들 것이야!”
기세 등등하게 소리치는 트롤의 말.
이에 도로시는 짙은 한숨을 내쉬면서 천천히 고개를 저어 보였다.
“하아…사람이 갑자기 힘을 얻으면 제정신을 못 차린다더니. 딱 이런걸 두고 하는 말이었구나. 뭐.. 그런 점에선 나도 할 말은 없는 것 같지만..”
“잡설은 여기까지다! 우선 네 년들부터 시작해서 곧바로 지상의 인간들 까지 모조리 처치해 주마!”
그 말과 동시에 곧바로 몽둥이를 든 채 달려드는 트롤
족히 3m 는 되어 보이는 거구에 무시무시할 정도의 근육질 몸을 지닌 녀석은 그대로 도로시를 향해 거침 없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반면 트롤의 공격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도로시.
그녀의 이런 모습에도 트롤은 일말의 경계심도 품지 않은 채 거침 없이 공격을 가하려 들었다.
지금 이 순간, 그는 여태껏 지녀보지 못한 최강의 힘을 손에 넣은 상태였다.
아무리 상대가 인간 마법사라 하더라도 지금의 자신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죽어라!!!”
포효를 내지르며 그대로 도로시를 향해 몽둥이를 내리 치는 트롤
“위.. 위험!..”
그 모습을 본 순간 다급 한 목소리로 소리치는 제니.
그리고..
파악!
다음 순간, 제니의 얼굴에 튀는 붉은 피.
그와 동시에 그녀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졌으며 몸은 충격에 휩싸여 움직이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 순간 그녀가 느낀 감정의 원인은 그녀가 생각하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녀에게 충격을 안겨준 것은..
그녀가 생각했던 도로시의 죽음이나 부상 같은 것 따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커…커어어억…”
“쓰레기 따위.. 죽어버려.”
차가운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여성..
순간적으로 도로시의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검은 상복차림의 그녀는 거대한 대검을 든 채 그대로 트롤의 심장을 꿰뚫어 버리고 있었다.
그리고..
파아아아악!
그녀는 그대로 힘을 주어 심장에 박혀 있던 검을 뽑아 내었고, 이어서 트롤의 거대한 몸은 그대로 무너지듯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굳이 네가 나설 필요는 없는데 말이지.. 아샤트리아.”
“천한 트롤 따위를 해치우는데 도로시님이 손을 쓰실 이유는 없습니다. 하물며 위대하신 존재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무례한 헛소리를 지껄이는 놈이라면 더더욱.”
“그런가?.. 뭐, 아무튼 수고했어. 그럼 이걸로 상황도 얼추 정리 되었으니..”
그 말과 함께 그대로 뒤쪽에서 멍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제니에게 시선을 돌리려던 도로시.
그때..
“이런..”
“?!?”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도로시
그리고 다음 순간..
“어?”
그 직후,
제니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다.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렇게 되었는지. 그녀 조차도 이를 인식하지 못했다.
“헉!..”
그러나, 그 결과를 인식한 순간 제니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달아오르는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어느새 그녀의 몸은 공주님 안기 자세로 도로시의 양 팔에 들린 채, 본래 서있던 곳에서 100m 정도 뒤로 물러난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저.. 저기.. 이.. 이게 무슨..”
“이건.. 조금 귀찮게 된 것 같은데..”
“네?”
심각한 목소리로 말하는 도로시, 이에 제니는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쪽을 향해서 시선을 돌렸고, 그녀의 얼굴은 다시금 딱딱하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맙소사…”
그녀의 시선이 멈춘 곳은 지금 그녀의 위치에서 제법 떨어진 장소.
그곳에선 방금 전까지 자신들의 바로 앞에서 쓰러져 있다가 다시금 천천히 일어나고 있는 트롤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신력이나 의지와 같은 문제가 아니었다.
방금 전 일격으로 심장을 관통 당하면서 확실하게 즉사한 트롤.
지금 이 순간도 그것의 가슴에선 피가 줄줄 흘러 내리고 있었으며,
눈에 생기 따위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몸은 이런 상황에서도 움직이고 있었다.
생명이 남아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닌..
그것의 몸에 남아 있던 마력이 이상한 쪽으로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시체가 움직이는 것.
평소 마왕 제니가 사용해 오던 마법과 비슷했으나, 트롤의 몸에서 발산하고 있는 불길한 기운은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리고, 자리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난 녀석은 그대로 뒤를 돌아 이 상황에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던 트롤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트.. 트락? 사.. 살아 있었나? 우.. 우린 자네가 죽을 줄 알고 있었..”
당황한 목소리로 이야기 하는 트롤들.
그들은 방금 전 어마어마한 힘을 지니고 있던 트락이 순식간에 어 심장이 꿰뚫린 채 당하는 모습을 보았으며, 이로 인해서 전투에 대한 의욕이 상당히 꺾인 상태였다.
그런 만큼, 그들은 자신 들 앞에 선 트락이 공격을 명할 경우 이를 거절 하거나 트락을 설득해야겠다 여기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들이 트락에게 말을 걸려던 그 순간..
“크아아아악!!”
“크르륵! 뭐.. 뭐냐! 갑자기 이게 무슨!”
갑자기 동족들의 목덜미를 물어 뜯기 시작하는 트락, 이에 목이 뜯겨나간 트롤들은 그대로 즉사해 바닥에 쓰러졌다.
그러나..상황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크워어억!”
트락에게 당해 숨이 끊어진 트롤들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마치 방금 전 트락이 그랬던 것과 같이.
그리고,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난 트롤의 시체들은 공포에 질려 달아날 생각조차 못하고 있는 동족들을 공격했고, 그렇게 죽은 트롤들은 마찬가지로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단 수초 만에 모조리 걸어다니는 시체가 되어버린 트롤들. 녀석들은 도로시와 제니에 대해선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그대로 저택 밖으로 달려나가 추가로 집결해 있던 동족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아비규환에 휘말린 트롤들.
그렇게 저택 밖에서 처절한 비명소리와 괴성이 울러 퍼지는 것을 보면서 도로시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설마 이게 좀비 아포클립스로 빠질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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