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 눈의 마왕 11
* * *
사태가 발생한지 1시간 뒤.
도로시는 저택 밖을 배외하고 있는 트롤 좀비들을 보면서 묘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으워에에에…
“크에에에…”
동공이 완전히 풀린 채 정체 없이 일대를 방황하고 있는 수많은 트롤 좀비들.
그 숫자는 자그마치 수백에 달했고, 마법의 영향 덕분인지 시체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본래 살았던 때보다 전투력은 더욱 강해진 듯싶었다.
그래 봤자 도로시 까지도 필요 없고 소환해 둔 헬하운드 정도만 나서도 정리될 일이긴 했지만, 일단 도로시는 거기까지 고려하지는 않고 있었다.
저렇게 이성을 잃은 와중에도 본능적인 감각은 남아있는지, 녀석들은 도로시와 제니에게는 오히려 두려움을 느끼며 알아서 피하려는 듯한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이쪽에 위험이 되었으면 단숨에 쓸어버렸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도 없는 상황에서 손을 쓰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래도 그 배신자 트롤이 각성 했을 때는 레벨 20짜리가 한 순간에 70짜리가 되면서 조금 흥미롭긴 했다만 설마 그 뒤에 이런 게 있었을 줄이야..’
그때, 그녀의 눈에 정처 없이 움직이던 트롤들의 시선이 어디론가 향하는 것이 보였다.
그 직후 그대로 그쪽 방향을 향해서 단체로 이동하기 시작하는 트롤들.
이에 도로시가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의문을 느끼고 있던 그때였다.
“이런.. 저쪽은..”
제니가 걱정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고, 이에 도로시는 의문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저쪽에 뭐가 있어?”
“네.. 분명 저기로 가면 인간들의 도시.. 에스빈이 나올 텐데..”
“하아.. 이렇게 되면 결국 손을 쓸 수 밖에 없겠네.”
제니의 말에 도로시는 성가심이 담겨 있는 한숨을 내뱉었다.
개인적으로 그녀가 손을 쓰지 않는다는 전재 하에 이 좀비 아포칼립스가 어떤 식으로 이어질지 궁금하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역시 사태가 인간들의 마을까지 번지는 것은 곤란했다.
“그럼, 슬슬 움직여 볼까?”
“괘. 괜찮겠나요? 하나 하나는 약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저만한 숫자는..
제니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고, 이에 도로시는 약간 멋쩍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뭐…숫자라면 이쪽도 만만치 않아서 말이야.”
“네?”
도로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제니가 의문을 표하였고, 그녀의 말에 대한 대답으로 도로시는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한 순간 일렁이기 시작하는 저택의 그림자.
“헉!...”
이어서 그림자 속에서 튀어 나오기 시작하는 녀석들을 보면서 제니의 표정이 빳빳하게 굳어졌다.
이곳에 오면서 도로시가 내내 끌고 다녔던 뒤틀린 사냥개. 그것과 유사하게 생긴 녀석들 수십 마리가 일사 분란하게 진열을 잡은 채 대기하는 모습은 제니에게 커다란 충격과 더불어 본능적인 경외심을 불러일으켰다.
‘이것이.. 마법사.. 마력을 다루는 자의 힘..’
세상의 이치를 뒤트는 힘인 마력
이 힘을 성장시켰을 경우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에 대해선 제니 역시 인식하고 있었다.
아울러, 스스로가 그 힘을 완벽하게는 다루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거울에 사로잡히기 잔, 그녀는 홀로 연구를 하면서 어설프게 나마 나름대로의 마법을 만들어 가긴 했지만, 그것에 명백한 한계가 있다는 것은 제니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 이정도 격차가 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언 듯 보아도 수백이 넘는 저만한 대군을 자유롭게 부리는 도로시.
이를 보면서 제니는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도 정식으로 교육을 받으면.. 마법사로서 제대로 된 훈련을 쌓으면 저렇게 될 수 있을까?’
본래부터 힘에 대한 열망을 지니고 있던 그녀였기에, 눈 앞에서 본 아득히 높은 새로운 경지는 그녀의 의욕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한편, 그런 제니의 반응을 인식하지 못한 채, 도로시는 그대로 손을 뻗어 눈앞에 있는 헬하운드 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쓸어버려. 한 놈도 살려 놓지 말도록.”
*
어둠이 깔린 항구마을 에스빈.
이 마을의 서쪽에는 버려진 폐가가 있었다.
가난한 여행객이나 상인들이 가끔 돈을 아끼기 위해 하루 밤을 묵고 가는 장소이긴 했지만, 관리가 전혀 안된 탓에, 오래 머무를 장소는 못 되는 곳.
그곳에는 한 무리의 가난한 상인들이 자리를 잡은 채 지친 몸을 뉘이고 있는 중이었다.
“하아.. 이번 거래도 완전 허당 이었어..”
“설마 발품판 값도 못 벌다니.. 제길 이번 손해를 어떻게 매워야 할지..”
“그 망할 상점 주 녀석이 가격 후려치기만 안 했어도 이렇게 까지 되지는 않았다고.”
이번에 있었던 손해를 생각하며 혀를 차는 상인들.
섬과 육지 사이를 오가며 거래를 하는 그들은 이번에 거래에서 있었던 손실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며 어떻게든 잠을 청하려 하고 있었다.
그때..
“우드득!”
“응?.. 무슨 소리지?”
갑자기 옆쪽에서 들려오는 기괴한 소리.
마치 힘으로 나무바닥을 뜯어내는 듯, 기묘하면서도 어쩐지 소름 끼치는 소리에 상인들은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쾅!”
“쿠워어어어얶!”
기괴한 비명소리를 내면서 마룻바닥을 뚫고 기어나오는 존재.
마치 썩은 생선과 같은 눈을 하고 있는 그 것은 팔을 부자연스럽게 허우적 거리며 천천히 상인들을 향해서 다가오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건!”
“괴물! 괴물이다!”
달빛으로 인해서 어둠 속에서도 뚜렷하게 보이는 녀석의 기괴한 모습.
한쪽 얼굴이 함몰되어 뇌수를 질질 흘리면서 기괴한 울음소리는 내고 있는 괴물의 모습에 상인들은 공포로 가득한 비명을 지르며 다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야!”
“하.. 하지만 이거라도 가지고 가지 않으면…”
“놔두고 빨리 달아나!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
“아아…”
그 순간, 주변을 둘러본 상인들의 눈에 절망의 빛이 서렸다.
어느새 그들의 주변을 완전히 포위한 괴물들의 무리.
녀석들은 침인지 고름인지 모를 액체를 줄줄 흘리면서 상인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서..설마.. 설마. 우리들 여기서...”
“으…으아아아악!!”
상인들의 입에서 절망이 뒤섞인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
“댕! 댕! 댕!”
“비상! 비상!”
“괴물이 나타났다!”
어둠의 정적이 깨지면서 들리는 소란스러운 소리.
사람들을 다급하게 불을 켠 다음에 어찌 해야 할지 판단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기 시작했고, 그 중 그나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몇몇은 손에 망치나 쟁기와 같은 무기를 든 채 서둘러서 괴물이 나타났다는 곳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혼란의 한복판에서, 카이와 게르다의 부모는 자신들이 너무 늦게 도착했음을 한탄하기 시작했다.
“이런.. 벌써 괴물들이 이곳까지..”
“그 손님의 말이 맞았어요, 하지만 놈들이 이렇게 빨리 들이 닥칠 줄은.”
자신들에게 했던 여성의 경고.
정황상, 방금 전의 그 괴물과 같은 녀석들이 다수 습격할 지도 모르니 서둘러 마을로 가서 이 사실을 알리라는 말.
그러나, 그녀의 말대로 부부가 마을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기도 전, 이미 마을은 어딘가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괴물들로 인해서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주.. 죽어라 이 녀석!”
담장 위에서 거칠게 횟불을 휘두르고 작살을 던지는 사람들
그러나, 그들의 혼신을 다한 공격에도 괴물들은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온 몸에 작살이 박혔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그대로 진격을 계속하는 거대한 괴물들.
마치 죽지 않는 불사신과 같이 어떠한 공격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으며, 놈들은 그대로 마을 담장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놈들은 지능이 부족한지 취약한 담장 문 쪽을 노릴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는 것.
그러나, 비정상적으로 강한 놈들의 완력에 담장은 버티지 못하고 천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마.. 막아라! 놈들이 담장을 부수려 하고 있다!”
“으아아아앗! 받아라!”
다급하게 망치를 휘둘러 괴물을 내리 찍는 마을 주민
그 일격에 괴물의 머리통은 마치 바위로 찧은 계란과 같이 생각보다 간단하게 터져나갔다.
“좋았어! 이거라면 분명..”
박살이 난 괴물의 머리를 보며 기뻐하는 주민들.
그러나.. 그들의 기대는 곧바로 그 이상의 절망으로 덧칠해져 가기 시작했다.
“뭐..뭐야?”
“말도 안되! 머리가 터졌잖아! 그런데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 거지?”
팔다리를 잘라내어도, 심장을 꿰뚫어도, 심지어 지금과 같이 머리를 날려버려도 끄떡 없는 괴물들.
마치 불사신과 같은 놈들의 집요한 공세에 마침내 한쪽 담장이 무너져 내렸다.
“안돼! 담장이 무너졌다!”
“괴물들이 몰려온다!”
“사.... 살려줘! 으아아악!”
무너진 담장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괴물들.
놈들은 자신의 발 밑에서 두려움에 휩싸여 있는 인간들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으아아아아악!!!”
“크어어어억!”
그대로 자신의 손에 쥔 인간을 우적우적 씹어먹기 시작하는 괴물.
괴물의 이빨에 씹힌 인간들은 처참한 비명을 내지르며 죽어갔고, 이 모습을 본 인간들은 한층 더 공포에 질리기 시작했다.
“도… 도망쳐라! 저런 괴물을 이길 수 있을 리 없어!”
“어서 피해! 놈들은 불사신이야! 덤벼봤자 개죽음일 뿐이라고!”
혼란과 절망 속에서 절규를 내지르며 달아나는 주민들.
괴물들은 그런 사람들을 향해서 기괴한 울음 소리를 내면서 달려들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