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 백설 여왕 4
* * *
여왕과의 독대가 있을 후, 자미엘이 기다리고 있는 방에 도착한 제니.
그녀는 자신이 주고 받았던 대화를 그에게 말해 주었고, 이에 자미엘은 대놓고 성가시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진짜 귀찮네.. 간단하게 동맹을 맺으면 될 것을 교회 녀석들 핑계를 대면서 거절해? 그것도 간단하게 힘으로 밀어버리는 것도 아니고 복잡하게 일을 진행하라니 이 무슨..”
“마그렌 여왕이 생각보다 호락호락 하지 않은 인물이라는 뜻이지요. 그녀 입장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손해 볼 것이 없는 상황입니다. 우리들이 성공하게 되면 자신의 권력에 방해가 되는 교회 세력을 몰아낼 수 있고, 덤으로 마법사라는 강력한 동맹 까지 가질 수 있게 되겠지요, 반면 우리가 실패 한다면 이번 일은 자신과는 상관 없이 마법사들이 독단적으로 저지른 일이라는 핑계를 대면서 발을 빼면 그만이고요.”
“으음.. 이야기가 그렇게 되는 건가..”
자미엘이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느 쪽이 되었든 이쪽은 이용 당할 수 밖에 없는 처지.
마음 같아선 그딴 여왕 대가리에 총구를 들이대면서 짧고 간단하게 끝나고 싶었지만, 그런 짓을 했다간 아테나는 물론이고 도로시와 오즈 역시 기겁을 할 것임이 분명했다.
“뭐..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안 그래도 이와 관련해서 적당히 쓸만한 비책이 있으니까 말이지요.”
“응? 있어?”
“부족한 몸이지만, 일단은 공주의 신분이었으니 말이지요, 혹 협상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이를 해결해 나갈 정도의 준비는 당연히 하고 있었습니다.”
이래 보여도 어린 시절부터 총명한 모습을 보여 국왕과 주변 사람들의 환심을 샀던 제니였던 만큼, 나름 머리를 쓰는 일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이 생각했던 계획을 자미엘에게 말하였고, 이를 다 들은 자미엘은 두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호오.. 그거 제법.. 재미있을 것 같은데?”
“그렇다 하지만, 속단은 이릅니다. 말했듯이 실패 확률이 분명히 존재하는 만큼 방심은 절대 금물입니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 반드시 성공 시켜 보일 태니까.”
그렇게 결정을 내린 직후, 두 사람은 그대로 제니가 세운 계획에 따라서 행동을 개시했다.
*
쾨벤하운에 위치한 대성당.
그곳에서는 칼마르 교회 세력의 수장
여신관 헤일로가 주관하는 고위 성직자 들간의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듣자 하니 지금 마법사들이 이곳 쾨벤하운에 머무르고 있다 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할지 의견들을 내 주십시오.”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헤일로.
비록 젋은 나이에 칼마르의 교회 세력을 총괄하는 자리까지 오르긴 했지만, 교황청의 직접적인 신임을 받고 있는 그녀의 권위는 튼튼하기 그지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명에 따라서.
고위 성직자들은 존중을 표하며 대화를 시작했다.
“마법사라니.. 사악한 힘을 사용하는 그것들이 이 신성한 주님의 땅에 발을 들여놓을 줄은 정말로 몰랐습니다.”
“마족들을 처치한 공로가 있으니 지금으로선 어쩔 수가 없지요. 폐하께서도 그들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만큼 일단은 조금 더 지켜보도록 하십니다.”
“제길.. 그 놈의 마족들.. 얌전히 지내던 것들이 대체 왜 갑자기 튀어나와서 소란을 피웠던 것인 것인지..”
“이것도 다 그 마법사들의 소행이 아니겠습니까? 분명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일부로 자작극을 벌인 것입니다!”
흥분 속에서 금방 극단적인 추측까지 꺼내기 시작하는 성직자들.
그들에 대해서, 헤일로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아무리 그래도 성급한 판단은 금물입니다. 마법사들이 그런 짓을 했다는 증거도 없을뿐더러, 솔직히 전 그런 번거로운 짓까지 벌일 만큼 이 지역이 이점이 큰지도 의문이 드는 군요. 비록 이 일대는 북부 대륙에 신의 뜻을 전하기 위한 핵심 지역이지만, 그만 한 전력을 통해서 굳이 이런 곳이 아닌 다른 나라들을 건드릴 경우 얻을 수 있는 이점은 이보다 몇 배는 더 클 것입니다.”
“그건… 그렇긴 합니다만..”
신관 헤일로의 말에 마법사의 자작극 설을 주장하던 이는 일단 꼬리를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솔직히 그녀의 말대로 이 땅이 그런 소란을 피우면서 까지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선 상당히 애매하긴 했다.
낮은 기온으로 인해서 추위와 굶주림이 만연해 있는 칼마르 연합국이었다.
이로 인해서 인구도 적었으며, 영토 역시 대부분이 눈과 얼음으로 뒤덮여 있는 척박하기 그지 없는 장소.
이런 빈곤한 국가를 노릴 바에는 차라리 신성제국이나 플랑크 왕국 같은 곳에서 같은 소동을 벌이는 것이 훨씬 큰 이득이 될 것이 자명한 사실.
어쨌든, 그렇게 진행된 회의의 결과는 일단은 마법사들의 동태를 두고 보다가 적당한 구실이 생기면 놈들을 처형하거나 내쫓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그들의 입장에선 자신들의 선배들이 세력 확장의 재물로 삼았던 제니 공주가 이곳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성가시기 짝이 없는 일인 만큼, 그 대기 기간이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으며 이는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다.
비록 결과는 그들의 생각과 완전히 반대로 흘러가긴 했지만, 어쨌든 분명히 그렇게 되긴 하였다.
*
제니에게 교회 세력의 ‘처리’를 요구한 마그렌 여왕.
그러나,
솔직히 그녀는 이런 정치적인 일 자체에는 그다지 큰 기대를 걸지는 않고 있었다.
마법사들이 정치적으로 교회에 소소한 주는 것 이상으로
그녀가 궁극적으로 관심 있는 것은 마법사의 강력한 힘.
마력과 마법 이라는 그 신비한 힘을 자신이 손에 넣을 수 있으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교회 세력을 밀어내는 것은 생각 보다 간단한 일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세상 이치는 어차피 힘에 의해 돌아가는 법이며 척박한 환경을 지닌 칼마르에서는 그 법칙이 더욱 잘 통용되는 장소였다.
여기다가 어차피 성도 롬과 이곳의 거리를 매우 먼 만큼, 힘으로서 직접 압박을 가한다면, 지금까지의 불리한 상황을 단번에 뒤집을 수도 있을 것임이 분명 했다.
그런 내막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이런 조건을 내건 것은, 보다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함.
이쪽은 이런 부담을 지고 있지만 그래도 당신들과의 동맹을 맺어 주겠다는 일종의 퍼포먼스에 가까웠다.
기본적으로 힘을 쥐고 있는 것은 저쪽인 만큼, 이런 식으로 라도 하지 않으면 칼마르가 받게 될 부담이 상당히 클 가능성이 높았기에 마그렌은 같은 왕족 출신인 제니를 상대로 조금 그렇지만 이런 방법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 동맹 협상에서 저쪽에서 요구할 조건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도록 할까? 가능한 이쪽은 적게 내주고 저쪽에선 많은 것을 얻어와야 할 텐데 말이야..”
그렇게 교회 세력에 대해선 거의 신경 쓰지 않은 채 마그렌이 앞으로 있을 협상에 대한 부분만을 고민하고 있던 그때였다.
“폐하, 제니 공주님께서 납시셨습니다.”
‘음?.. 벌써? 생각보다 빠른데?’
그녀가 계산했던 것 보다 포기가 빠른 것 같다 여기며 마그렌은 제니의 입실을 허가하였다.
*
“네? 교회세력을 꺾을 방법이 있다 그것 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폐하.”
의외의 답변을 들고 온 제니의 말에 마그렌 여왕은 약간 놀라움을 느꼈다.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으며, 사실상 저쪽이 포기할 것을 염두에 두고 낸 과제였으나 정작 상대방은 생각 했던 것보다 빠른 시간에 이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왔다는 것.
그런 여왕에게 제니는 찬찬히 자신이 구상한 계획들을 설명했고, 이에 여왕은 잠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성공할 경우 확실하게 그들을 정리할 수 있는 방법.
하지만, 이런 저런 리스크를 고려하면 여왕은 이를 섣불리 진행하기가 상당히 쉽지 않았다.
도중에 계획이 들통나거나 잘못될 경우 그녀가 지게 될 부담이 상당했기 때문.
하지만 제니는 이를 실행하는 데 있어서 그 점을 양보할 생각은 없었다.
만약 도중에 여왕이 발을 빼버리면서 일이 복잡하게 꼬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그들에게 있어선 최소한의 안정장치가 필요했다.
이에 제니는 명확한 어조로 그녀에게 말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폐하? 저희와 손을 잡고 교회 세력을 쓰러뜨리시겠습니까? 아니면 이대로 모든 것은 묻고 이를 없었던 일로 여기시겠습니까?”
“…”
제니의 말에 여왕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었다.
상대방이 이렇게 나올 경우 단순한 협상의 지렛대로 이 일을 사용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해졌다.
여기다가, 이번 일이 성공 했을 경우의 이득을 생각하면 여왕입장에선 이 손을 잡지 않을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여러분들의 말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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