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 슈타인의 인간 3
* * *
‘난… 누구인가..’
이것이 태어난 순간 그것의 머리속에 처음으로 떠오른 생각이었다.
그 직후, 눈을 뜬 그는 자신을 둘러싼 것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존재.
알 수 없는 세상.
기괴한 냄새가 코를 찔렀으며, 옆에선 본능을 찌르는 듯한 쇳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으며 모든 것이 그저 무섭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앞에는 움직이는 작은 무언가가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말하여 자신을 향해 소리치는 그것.
이에 그는 한 순간 공포에 사로잡혔고,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거칠게 날뛰기 시작했다.
자신을 둘러싼 이 답답하고 무시무시한 세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마치 새가 알 껍질을 깨고 나가듯.
그는 온 힘을 다해서 ‘세상의 벽’을 부쉈고. 그 직후 그의 앞에는 넓은 세계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암흑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분명히 드넓은 세상.
그러나 그곳에서 흘러 들어오는 신선한 무언가는 기괴한 냄새로 인해서 탁해져 있던 그의 정신을 맑게 하는 듯 하였다.
이에 그는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본능에 따라서.
그가 원하는 바에 따라서.
그렇게 그는 자신이 태어난 바위로 된 ‘껍질’을 깨부수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는 달리기 시작했다.
자신이 태어난 저 좁고 답답한 세상에서 벗어나 정신 없이 앞으로 내달렸다.
그리고.. 얼마나 나갔을까..
그의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면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비로서 보이기 시작했다.
“아아…”
울음소리와 같은 탄성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밤 하늘을 가득 매운 별..
너무나도 웅장하고 밝으며 황홀하기 짝이 없는 그것의 모습을 보며 그는 잠시 제자리에 선 채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았다.
*
“이런…”
상황을 관찰하던 라플라스의 입에서 짧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슈타인 대공이 그것을 탄생시키기 전, 그녀는 업무로 인해서 피치 못하게 관측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서둘러 일을 끝내고 돌아온 직후 그녀의 눈에는 처참하게 망가진 실험실을 정리하는 대공의 모습이 보일 뿐. 그것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당황한 나머지 대공의 성 곳곳을 살펴보았지만, 끝내 그것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설마 완성에 실패한 건가.. 이렇게 되면 실험을 처음부터 다시 진행해야 할 지도..”
안타까움이 담긴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라플라스는 처음 이 일을 계획했던 순간을 다시 한번 떠올리기 시작했다.
*
“역시.. 너무 적어..”
서류를 본 라플라스의 입에서 작게 안타까움이 담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 이순간도 열심히 정찰 업무에 힘쓰고 있는 아샤트리아와 그 외 다른 존재들의 도움을 받아서 작성한 기록표.
그것은 인간들 사이에서 인구당 마법사 태어날 확률을 조사해 놓은 것이었으며, 신성제국의 여러 도시와 칼미르 연합국일대의 제법 여러 마을들의 정보를 수집해 통계를 낸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산출된 마법사가 태어날 평균 확률은 대략 1%
전체 인구를 따지면 그다지 적은 수는 아니었지만, 이들을 일일이 찾아내고 교육을 시키는데 드는 시간을 고려하면 앞으로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빨리 카알론이 마음껏 날개를 펴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는 입장에선 답답하기 그지 없는 일.
그러던 중, 라플라스의 머리 속에 문득 한가지 수가 떠오르기 시작했고, 그녀는 급하게 책들을 뒤져 자료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래.. 이거라면..”
그가 찾은 책의 내용은 인공적인 인간을 만들어 내는 방법이 단긴 서적.
당연히 그 출처는 LDG세계에서 온 것인 만큼, 이것을 이용하면 다수의 마법사들을 말 그대로 양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라플라스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이 책을 아테나에게 가져간 결과는..
“응, 금지.”
“에? 하.. 하지만 언니! 이거라면 분명 마법사를 양산하는 기간을 비약적으로 시간을 단축할 수..”
“그거 시체를 이용해서 인간을 만드는 거잖아. 그 외모는 당연히 평범한 인간 기준으로 상당히 추악하게 생겼을 것이고. 이번 일에는 일종의 선전 목적도 있다는 걸 감안하면 득보다 실이 너무 커.”
“네, 하..하지만 외모 같은 건 그렇게 중요한 것이..”
“미안하지만 중요해. 우리랑은 다르게 인간들에게는 특히 심하게. 당장 너만해도 지금 밖에 나가면 괴물이다 뭐다 하면서 돌멩이부터 날아온다는 거 알고 있잖아. 이쪽은 오히려 더 박한 대우를 받을껄?”
“에이 그래도 같은 인간인데 설마…”
“금지야. 도로시님 에게도 그렇게 보고할 테니까 그리 알고 있어.”
“…하아..”
그렇게 언니 선에서 잘려버린 안건.
그러나, 라플라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까짓거.. 그렇다면 직접 사례를 만들어서 입증을 해보면 되잖아. 일단 언니에게 금지를 먹었으니 카알론 내부에서 실행하는 건 조금 무리가 따르고.. 밖에서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면..’
그러던 중, 라플라스는 자신이 받은 이 세계의 인간들에 대한 정보들 가운데 에서 슈타인 대공에 대한 것을 알게 되었다.
제국의 유능한 인재로서 상당한 권력과 영토를 지니고 있지만, 동시에 남들 모르게 은밀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 존재.
그렇게 적당한 실험대상을 발견한 라플라스는 그녀 자매인 자미엘을 움직여 은밀하게 일을 진행해 나갔다.
그리고 그녀의 예상대로 슈타인 대공은 시체를 조합해 인간을 만들기 시작했으나.. 안타깝게도 라플라스는 그것이 완성되는 순간을 놓치고 말았다.
‘이 슈타인이라는 사람에게 다시 미끼를 던져볼까?.. 아니.. 그건 너무 무리수가 커. 이미 한번 실패한 실험을 다시 하게 만드는 것은 어떤 미끼를 던져도 쉽지 않을 거야.. 결국 적당한 인물을 다시 물색하는 쪽이 빠르려나?..’
그렇게 고민하면서 라플라스 자신도 모르게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
밤하늘을 수놓는 찬란한 빛들.
시간이 지나고 그것들은 하나 둘 그의 시야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뒤 그의 눈에는 더욱 많은 것들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초록색으로 우거진 술과 반짝이는 개울.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찬란한 광채를 내뿜고 있는 거대한 광명채.
너무나도 신비롭고 근사한 것들을 눈에 담으면서 그는 생각했다.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구나.. 이 세상은.’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천천히 숲을 가로질러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천천히 주변의 모습을 바뀌어 갔지만 그의 눈에는 모든 것이 평온하고 근사하게 보인 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알지 못했다.
모든 것을 아름답게 보고 있는 그와는 달리 인간의 눈은 그렇게 관대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
“..무슨 소리냐? 괴물이라니?”
“서쪽 지역에서 소문이 퍼지고 있습니다. 괴물이 나타나 주민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군요.”
“나 참.. 브레멘에서 퍼진 헛소문이 여기까지 흘러 들어온 건가? 하여튼 이래서 소문이란 참 성가신 것이란 말이야.”
신하의 말에 슈타인 대공은 심드렁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괴물이니 뭐니, 근래 들어서 그런 이야기들이 그의 귓가에 자주 들리고 있었다.
북쪽의 칼미르 연합국에서 트롤들이 나타났다는 소문을 불과 얼마 전에 들은 그로서는 그저 백성들을 움츠러들게 만드는 이 뜬소문들이 빨리 가라앉았으면 하는 심정뿐이었다.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 같습니다. 듣자 하니 시체를 이어서 만든 듯한 흉측한 외모의 괴물이 돌아다니고 있다 들었습니다만..”
“뭐?..”
그 순간, 슈타인 대공은 갑작스럽게 떠오른 사실에 마치 뒤통수를 얻어 맞는 듯한 충격에 휩싸였다.
‘설마.. 그 녀석이 아직도 살아서 움직이고 있다 이건가? 내가 만든 그 괴물이..’
잠깐의 유희로 여겼으며 영 달갑지 않은 결과를 맞이했지만, 이제는 서서히 그의 기억에서 잊혀져 가고 있던 일..
그러나 당시에는 신경 쓸 필요가 없으며, 알아서 조용히 끝날 것이라 여겼던 일이 아직도 지속되고 있었다는 사실에 그는 당혹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제길.. 그게 아직도 안 죽고 살아 움직이고 있다고? 진작에 죽어버렸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어떻게.. 아니, 그보다도.. 그런 녀석이 내 영지를 휘젓고 다니면 일이 귀찮아진다. 주민들의 피해도 크고 무엇보다 이 일을 교황청에서 눈치채면 나중에 성가신 꼴을 당할 수도 있어..’
실험을 진행하면서도 이래저래 캥기는 것이 많았던 만큼, 슈타인 대공은 가능한 빨리 일을 매듭지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음..음.. 뭐.. 뜬 소문일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그 정도로 구체적인 이야기가 돌아다니고 있다면 이 땅을 다스리는 군주로서 손을 볼 필요가 있겠지. 병사들을 풀어 주변을 조사하고 그런 괴물이 발견되면 즉시 처치하라 지시하도록.”
“알겠습니다. 전하.”
언제나와 같이 백성들을 신경 써주는 군주의 말에 신하는 고개를 숙이며 그의 명을 받들었다.
그렇게 신하가 나감과 함께, 슈타인은 이것으로 성가신 일은 금방 해결될 것이라 생각하며 다음 일정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엘리의 아버님을 뵈러 갈 날이 얼마 안 남았군. 슬슬 이와 관련해서 준비를 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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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헉! 헉!”
다급한 숨소리를 내면서 숲 속으로 도주하는 흉측하고 거대한 괴물.
다수의 무장한 병사들이 그의 뒤를 따라가려 했지만, 그 거구의 옹으로도 산짐승보다 빠르게 도망치는 녀석을 붙잡기란 역부족이었다.
“챗. 빨라도 너무 빠르군..”
“저런 몸으로 저 정도 속력이라니.. 대체 뭐 하는 괴물이지?”
“저게 소문으로만 듣던 마족인가? 이 일대에서 보는 것은 거의 처음이다만..”
“아무튼 귀찮게 되었어. 하루빨리 저 녀석을 처치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말이지.”
괴물을 완전히 놓친 것을 확인하며 병사들은 아쉬움에 한마디씩 하였다.
영주가 후한 상금까지 내걸면서 확실하게 처리하라 지시한 존재.
그러나 어렵게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 추적했음에도 녀석을 잡는 데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였다.
“아까 보니 화살도 안 먹히는 것 같던데.. 설마 창칼도 안 먹히는 거 아니야?”
재빠른 움직임에 상상 이상으로 방어력도 뛰어났다.
정확하게 맞춘 화살이 살가죽을 뚫지 못하고 튕겨나갈 정도.
다행이 녀석은 싸움을 피하고 싶었는지 이쪽을 공격 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그거대로 병사들에게 두려움의 여지는 남기고 있었다.
“어떻게 한다.. 저런 녀석이 작정하고 덤벼든다면 아마 골치 꾀나 아플 텐데..”
“그냥 돌아가서 실패했다고 보고할까? 지래 겁을 먹고 숲 속으로 달아난 녀석은 그 후에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는 걸로..”
“그게 좋을 지도.. 산적무리도 아니고 이 넓은 숲 속에서 그 녀석을 찾는 건 아무래도 불가능에 가까우니까.”
딱히 뾰족한 수도 없었기에, 병사들은 며칠만 더 머문 뒤 실패했다는 보고를 올리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그들의 가장 우선적인 임무는 괴물로부터 마을을 지키는 것.
그것이 대략 달성된 것으로 보이는 만큼 상금 까지는 무리여도 나름 공적을 치하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 역시 그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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