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 슈타인의 인간 5
* * *
온 몸이 사실로 묶인 채 감옥에 갇힌 괴물.
그것의 주변에는 병사들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무기를 든 채 삼엄하게 감시를 하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하게 생긴 녀석이군.”
“철저히 감시해라. 생긴 것만큼이나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는 녀석이다. 내일 처형이 있을 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말도록.”
“알겠습니다.”
한동안 이 일대를 시끄럽게 했던 녀석인 만큼 병사들은 바짝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비록 그들이 보기에도 그 괴물은 의욕 없이 축 늘어져있을 뿐이었지만, 지금까지 몇 번이나 병사들의 포위망을 뚫고 달아났던 용의주도한 녀석이었다.
언제 돌변하여 자신들을 공격할지 모르는 만큼 그들은 감시를 게을리 하지 않은 채 철통과 같이 그곳을 지켰다.
적어도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
‘..난 이제.. 죽는 건가..’
사슬에 묶인 그는 더 이상 아무런 의욕도 남아있지 않았다.
부상을 입은 한쪽 팔의 고통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지금까지 입었던 상처 중에서 그에게 가장 쓰라린 고통을 주고 있는 그것.
그가 마지막으로 희망을 걸었던 창조주가 그에게 남긴 것이었다.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할 줄 것이라 생각했던 존재마저도 자신을 버렸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그는 짙은 절망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그 직후에 병사들과 함께 나타난 여성.
자신에게 차갑게 대했던 창조주는 그 순간 그 여성을 지키기 위해 소리를 질렀고, 이를 듣는 순간 그의 절망은 분노로 뒤바뀌기 시작했다.
다른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창조주 역시 다른 인간을 사랑할 줄 알았다.
그런데 어째서.
그는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낸 자신을 형오하고 있는 것인가.
그 사실에 짙은 실망을 느끼며 그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그 여인을 공격하려 들었다.
어차피 그에게 더 이상 남아있는 희망은 없었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고통을 준 만큼 창조주에게도 고통을 안겨주리라.
그렇게 결심하며, 그는 자신의 몸에 담긴 강력한 힘으로 그 작고 나약한 여성을 내리치려 하였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그는 팔을 움직일 수 없었다.
이런 순간에서도 느껴지는 이질적이면서도 두려움 감각.
자신을 보면서 공포에 질린 얼굴을 하고 있는 그 여성의 모습을 보는 순간, 그의 마음 속에는 기묘하면서도 차가운 무언가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지금 이 여자를 죽인다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무언가를 건널 것 만 같은 감각.
이에 그는 차마 그 여자를 해칠 수 없었고, 곧 이어 그의 팔에는 창조주가 휘두른 검이 박혔다.
‘….’
쓰라리면서도 뜨거운 고통이 그의 팔을 휘감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고통에도 그는 더 이상 무언가를 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을 향해 증오의 눈길을 발산하는 주인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 여인.
그리고 잠시 후 나타나서 그를 향해서 무기를 겨누는 수많은 인간들.
그렇게 그는 세상이 자신을 완전히 내버렸다는 것을 느끼며 아무런 저항 없이 병사들의 손에의해 그곳에서 끌려나갔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은 거들떠 보지도 않은 채 여인의 안위만을 챙기는 창조주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렇게 그는 자신의 짧았던 삶이 이제 곧 끝난다는 것을 인지하며 조용하 고개를 들었다.
작은 창을 통해서 보이는 작은 별빛들.
그에게 처음으로 세상의 아름다움을 가르쳐 주었던 그것은 지금 이순간도 찬란하기 그지 없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지금 그의 마음 속에 잔잔한 아픔을 안겨주고 있을 뿐이었다.
‘세상은 아름답지만.. 난 그렇지 못하구나.. 그게 내가 버림받고 사라져야만 하는 이유..’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신은 결코 이런 모습으로 태어나길 바라지 않았으니까.
아니, 애초에 그는 이 세상에 원해서 태어난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그런 감정과는 별개로 지금 그에겐 더 이상 살고 싶다는 의욕 같은 것은 남아있지 않았다.
홀로 버려져 외로움 속에 괴로워하는 일은 더 이상 겪고 싶지 않았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자신이라는 존재를 세상에서 지워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스스로의 마음을 정리하면서 그는 어쩐지 무거워지기 시작하는 눈꺼풀을 천천히 감기 시작했다.
마지막이 다가오는 이 순간에도 평범하게 피로감을 느끼는 자신이 조금은 우습다 생각하면서..
*
실수의 결과를 직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다.
재 멋대로 일을 진행하는 경우는 있어도, 자신이 벌인 일에 대해서 모른 척 외면하는 경우는 절대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는..
카알론의 정원사 라플라스 페이퍼는 자신의 실책이 벌이고 있는 참상을 두 눈 똑바로 뜨고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는 중이었다.
발단은 대공이 괴물을 잡을 용병을 모은다는 정보를 들으면서부터였다.
이를 통해 라플라스는 단번에 그 실험이 실패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인식하게 되었으며 곧바로 실험의 결과 탄생한 인간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 보이는 일련의 사태는 그녀가 인간이란 존재를 얼마나 과대평가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아주 생생하게 알려주기 시작했다.
그들이 괴물이라 부르고 있는 마법 실험의 결과로 태어난 ‘인간’
그것은 단지 모습이 흉하다는 이유만으로 가는 곳마다 이유 없이 인간들에게 배척을 받았다.
아테나의 말대로였다.
인간은 단순한 겉모습만으로도 쉽게 휘둘리는 존재였다.
그것이 아무리 대화를 시도하고 호의를 보여주려 해도, 인간들은 그것이 위험한 존재라 지래 짐작하면서 무기를 들이밀었다.
‘팔다리까지 멀쩡하게 달려 있는 존재인데.. 단순히 얼굴이 조금 흉할 뿐인데 이렇게까지..’
급기야, 마지막에는 실험을 진행했던 슈타인 대공마저 그것을 향해 무기를 겨누는 모습을 보면서 라플라스는 자신의 실패를 완벽하게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까지 격렬하게 반응을 할 줄이야.. 역시 인간의 심리를 읽는 데에서 아테나 언니를 따라가려면 난 아직 멀었어.’
그렇게 냉정하게 결론을 내리면서, 동시에 라플라스는 한편으로 감성적인 부분에서의 결론 역시 내릴 수 밖에 없었다.
라플라스의 눈에 보이고 있는 인간.
사실상 그가 태어나게 된 경위는 라플라스가 실험을 시작하도록 대공에게 미끼를 던졌기 때문이다.
즉, 그것의 탄생에는 라플라스 역시 관여 했으며, 따라서 그것의 신변에 대해선 라플라스 역시 책임이 있었다.
‘마력의 사용은 이미 확인이 되었지.. 그렇다면 여기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당연히..’
그렇게 결론에 도달한 라플라스는 즉시 행동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만약 이번 일이 아테나의 귀에 들어가게 될 경우 그녀 역시 처벌을 각오해야겠지만 라플라스에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저지른 일로 인해서 결과가 나왔고, 그 결과에는 책임질 사람이 필요하다는 사실뿐.
책임의 회피라는 선택지는 애초에 그녀의 머리 속에 들어있지 않았다.
*
그는 화려한 의복차림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받고 있었다.
빅터 슈타인 대공.
그는 마침내 고대하던 결혼식을 올리면서 이제는 그의 아내가 된 엘리에게 입을 맞추었다.
이어지는 화려한 연주와 흩날리는 꽃다발.
그리고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그녀의 신부를 보며 대공의 입가에는 자연스럽게 미소가 피어 올랐다.
그러나 그 순간..
이 세상의 누구보다 행복해야만 했을 이 순간에도 대공의 마음 한 켠에는 사라지지 않는 불안감이 남아있었다.
그것은 그가 창조했던.
그리고 처형 전날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던 그 괴물로 인한 염려.
그것이 사라져버린 후, 대공은 한동안 편하게 잠조차 자지 못했다.
그 무시무시한 존재가 언제 또 나타나 자신을 공격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그것이 복수를 하겠다며 이전과 같이 엘리를 죽이려 들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런 불안 속에서 대공은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으며 이는 시간이 조금 지나고 그나마 그런 감정이 누그러진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이순간도 어디에선가 그 괴물이 튀어나오지 않을 까.
혹 저 많은 군중들 사이에 그 괴물이 숨어있지는 않을 까.
그렇게 사라지지 않는 두려움은 그 후로도 대공의 마음 한 켠에 줄곧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두려움은, 자식을 보고, 그의 주변에 소중한 이들이 하나 하나 늘어날 때마다 점점 더 커져갔으며, 마지막 순간 그가 영면에든 그때까지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방금 전까지 차가운 사슬에 매어있던 때와는 달리. 지금 이 기운은 잔잔하고 포근하면서 마치 그의 아픈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것만 같았다.
그런 감각을 느끼며,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
그 직후, 자신의 눈에 들어온 장면으로 인해서 그는 잠시 혼란에 빠져들었다.
그가 있는 곳은 더 이상 차가운 감옥도, 이슬이 맺힌 축축한 숲 속도 아니었다
그가 누워있는 장소는 그가 만져보지도 못했던 침대 라는 가구 위.
그 사실을 인식한 그는 멍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변의 모습은 그에게 있어서 상당히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그가 보았던 어떤 장소도. 심지어 제법 으리으리했던 창조주의 거처조차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게 치장된 방.
자신이 어째서 이런 곳에 있는 것인지 그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그때였다.
“어머, 일어났군요.”
그의 귓가에 들리는 목소리.
태어나서 처음으로 듣는 상냥함 이라는 감정이 느껴지는 그 목소리에 그는 놀라움을 느끼며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한 여성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의 외모는 그가 보기에도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도록 생겼다.
그녀의 상반신은 그가 보아왔던 어떤 여성보다도, 심지어 그가 마지막에 보았던 창조주의 소중한 여성조차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녀의 하반신은 인간과는 달리, 다리가 아닌 거대한 뱀의 몸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그녀가 어떤 외모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흉측한 모습을 보고 있음에도 일말의 두려움이나 경계심도 느껴지지 않는 그녀의 태도였다.
“몸은 좀 어떤가요? 다친 상처는 치료해 두었지만, 혹 다른 불편한 곳이 있으면 말해주세요.”
태어난 이래 처음이었다.
누군가가 친절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을 걸어주는 것은..
지금껏 이를 위해서 무던히 노력했고, 심지어는 목숨까지 걸었으나 끝끝내 실패하고 말았던 그것.
이제는 거스를 수 없는 불가능한 세상이 이치와 같이 여겨졌던 그것이었으나. 눈 앞에 있는 여성은 이를 단번에 깨부숴 주고 있었다.
이에 그는 당혹감과 더불어서 한 순간 북받쳐오는 진한 감격으로 인해 몸을 떨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는 알고 싶었다.
처음으로 자신에게 상냥한 말을 걸어주는 이 존재에 대해서.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이치는 단번에 부숴버린 그녀에 대해서..
이에 그는. 지식은 익히고 있었지만 거의 해본 적이 없기에 어색하기 그지 없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냐고.
어떻게 흉측한 자신을 보고서도 이렇게 말을 걸 수 있는 것이냐고.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 그에게 그녀는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설명하자면 조금 길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이어서 그녀의 입에서 나온 단어.
이를 듣고 이해하는 순간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인간들을 보면서 줄곧 바래왔던 그것.
그러나.. 자신은 결코 가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것.
잡을 수 없는 꿈과 같이 여겨졌던 그 이름을 그는 힘겹게 되뇌기 시작했다.
“어머..니.. 나의.. 어머..니…”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