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 지옥으로 가는 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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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의 칙령을 전해 받은 황제와 귀족들.
그러나.. 그들은 이 일에 대해서 크게 관여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비록 명분은 그럴싸하지만, 이 안에 담겨있는 진의가 무엇인지 모를 정도로 그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슈타인 대공의 건은 좀 찝찝하긴 하지만, 그건 단순히 마족의 습격 같은 것으로 치부할 수도 있는 일. 실제로 여태까지 마법사들이 직접적으로 우리들을 공격한 일은 없다. 이런 시기에 굳이 녀석들을 적대하여 부스럼을 만들 이유는 없을 터..’
‘무엇보다 이번 건은 교황이 주최하고 있는 일. 그런 만큼, 여기서 성과는 낸다면 결과적으로 가장 큰 덕을 보는 사람은 교황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우리들과 황제에게 해가 되었으면 해가 되었지 득이 되는 일은 없을 터..’
명분과 별개로, 현재 황제와 교황은 주교 서임권.. 즉, 주교를 임명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니고 서로 다투고 있는 중이었다.
이는 근래 들어서 갑자기 강해지기 시작한 교황의 권위와, 상대적으로 약해진 황제의 권위가 충돌하게 된 결과였으며.
이에 황제 하인리히는 자신을 추종하는 영주들의 힘을 최대한을 끌어 모아 교황을 견제하고 약해진 황권을 다시금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었다.
시국이 이런 마당에, 아무리 성전이다 뭐다 하는 기치를 들고 나온다 해도 황제가 교황의 편을 들고 싶을 리가 만무할 터. 그것도 이 전쟁에서 승리하면 교황의 권위가 더욱 강해질 것임이 불을 보든 뻔한 일인 만큼 가급적이면 몸을 사리고 싶은 것이 그들의 의견이었다.
그렇게, 작금의 상황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내보이는 귀족들과 황제.
그러나, 명분이 명확한 상황에서 도움을 아주 안 줄 수도 없는 노릇.
이에 그들은.. 결국, 다른 방법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아무리 그래도 영 찝찝한 일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요, 아무리 그 동안 악마의 자식이니 뭐니 해오긴 했지만, 그들은 칼마르 연합국에서 정식으로 승인을 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 존재들 입니다.”
“명분은 빈약할 지언 정, 힘이 있는 자들에 대해선 일단 인정을 해 주는 수 밖에요. 그렇게 하시는 게 옳을 것 같습니다 폐하.”
그렇게, 앞으로의 일에 대한 결정을 끝낸 그들은 신속하게 이를 이행하였다.
이 순간, 그들이 선택한 길은 세간에 드러날 경우 교회의 사람으로선 욕을 먹을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실리적인 관점에서 보면 상당이 훌륭한 수라 할 수 있었다.
앞으로의 행보를 결정한 직후, 그들은 곧바로 북부의 칼마르 연합국을 향해서 은밀히 사람을 보내었다.
그것은.. 교황이 북부에 성기사단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
그리고. 자신들은 여기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생각이 없으며 이와 관련해서 성기사단의 이동 경로 등의 사안을 알려줄 것이니 반드시 성기사단을 상대로 승리해 달라는 내용의 전언 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안을 들은 마그렌 여왕의 입가에는 차분한 미소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폐하의 뜻을 잘 알겠습니다. 저희들을 이런 식으로 지지해 주시겠다니 그분의 은혜가 참으로 크군요.”
“예, 아무쪼록 꼭 승리해 주셨으면 합니다. 어차피 저희 신성제국의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성기사단 만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그다지 많지 않겠지만 말이지요.”
“물론입니다. 반드시 그리 할 것이니 염려 마십시오.”
그렇게 신성 제국과 협약을 맺은 상황에서, 마르겐 여왕은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지기 시작했다.
‘그래.. 이미 곰의 등에 올라탄 형국이다. 여기서 더 이상 물러날 수는 없어. 오히려 이 기회에 성기사단을 확실하게 처리해 버리면 나의 권위를 한층 더 끌어 올리는 것은 물론이고, 더 이상 교회의 눈치를 볼 이유가 완전히 사라지게 될 것이야.’
그렇게 마음을 정한 여왕은 슬쩍 자신의 옆에 서 있는 제니공주를 바라보았고.
이에 대해서 그녀는 자신의 손녀라 할 수 있는 여왕을 보면서 입가에 뿌듯한 미소를 담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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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결국 교황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말이지?”
“네, 그렇습니다 도로시님.”
마그렌 여왕을 통해 상황을 전달 받은 자미엘.
그녀의 보고를 들으면서, 도로시와 오즈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결국 움직이기 시작했군요.. 교황이..”
“그래.. 사실상 모든 일을 저지른 만악의 근원이 말이지..”
용사파티를 이용해서 오즈를 죽음으로 몰아넣으려 했던 자들.
비록, 자세한 이유는 여전히 불명이었지만, 헤일로를 통해서 그들이 모든 것의 배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 카알론의 주적은 당연히 교회 세력과 그 수장인 교황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거기다가 그들 입장에선 참으로 기쁘기 그지 없는 소식이 한가지 더…
그것은.. 이번에 성기사단을 끌고 오는 존재가 바로..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용사 브루투스.. 그 개자식이 성기사들의 단장으로 온다 이거지?..”
“어쩐지, 그 동안 이 일대를 이 잡듯이 뒤졌음에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더니 다 이유가 있었어..”
전 용사 파티의 인간들 중, 마지막 남은 두 사람 중에서 한 명이자.. 사실상 모든 일을 주관한 존재.
그리고 그런 만큼.
오즈가 가장 큰 원한을 품고 있는 존재..
마침 그의 위치 또한, 지금까지 응징의 철퇴를 내려준 다른 녀석들 중 가장 높은 성기사 단장이라는 위치에 있는 만큼, 이번의 복수는 오즈에게 있어서도 아주 달콤하기 그지 없는 느낌을 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렇게..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이 달콤한 먹잇감을 기다리면서 오즈와 도로시는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아주 철저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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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 소리냐? 도움을 줄 수 없다니? 신성제국의 황제라는 자는 신을 섬기는 자가 아니었단 말인가?”
“참으로 죄송합니다. 하지만 현재 제국 곳곳에는 커다란 흉년이 들어서 도저히 병력을 꾸릴 여간이 되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흉년이라니! 내 그런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이것은 교황 성하의 명이란 말이다! 아무리 황제라 해도 그렇지. 이단자들을 처단하시겠다는 그분의 뜻을 이리 무시할 수 있단 말인가!”
지원을 보낼 수 없다는 황제의 선언에 분노를 토해내는 브루투스.
비록 이번 일과 관련하여 다른 지역의 영주들이 어느 정도 군세를 보내긴 했지만. 그 숫자는 터무니 없을 정도로 부족했다.
기본적으로 원정의 목적지가 북부라는 거리상의 문제가 가장 컸으며, 그 다음으로 비록 명분은 뚜렷하다 하지만 그 내막이 영 시원치가 않은 만큼, 다른 영주들 역시 죽 쒀서 교황주는 결과를 만들어낼 것이 뻔한 이번 일에 굳이 참여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인 만큼, 결국 이번 원정은 사실상 북부 칼마르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신성제국의 도움이 절대적이었으나. 이에 대해서 황제는 이런 식으로 단호하게 자신들의 요청을 씹어버리는 형보를 보이고 말았다.
“그래서 이렇게 사과를 드리는 게 아니겠습니까? 부디 고정하시옵소서, 그리고 굳이 저희들의 도움이 없이도 신의 뜻을 받드는 무적의 성기사단의 힘이라면 충분히. 그 마법사들을 처리할 수 잇지 않겠습니까?”
“큭…”
약간의 비꼼이 들어 있는 사신의 말에, 브루투스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으나.. 그럼에도 그는 이에 대해서 대놓고 반발을 할 수 없었다.
실제로, 신의 뜻을 받드는 무적의 군단이라는 말은 성기사단의 표어와 같은 말이었으니까.
그렇게 어쩔 수 없이.
브루투스와 병사들은 부족한 지원과 병력만을 이끌고 북부를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 숫자는 약 8000
2000이 조금 안 되는 성기사단과 각 지역에서 모인 6000명의 지원군.
그래도 다 합치고 나면 숫자만으로 봤을 때 결코 적은 병력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나라를 점령하러 가는 데에는 조금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루투스는 진군을 개시할 수 밖에 없었다.
이미 교황의 칙령에 따라서 원정에 착수한 마당에, 병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를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그렇게 성기사단을 주축으로 한 원정군은 북부를 향해 진군하기 시작했다.
사악한 마법사들을 벌하고. 이교도 들을 처단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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