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 지옥으로 가는 길 2
* * *
성기사들을 떠나 보낸 교황.
그러나.. 이 순간 그의 표정을 절대로 좋지 못했다.
적어도 1만명 이상의 병력은 모일 것이라 생각했던 그였으나. 생각보다 군주들의 호응은 영 시원치 않았으며, 결정적으로 이번 일의 가장 큰 목표인 신성제국 측에선 끝내 지원을 보낼 수 없다는 통보를 보내오고 말았다.
‘그 미꾸라지 같은 녀석.. 결국 일을 이렇게 만드는 것인가..’
사실상 이번 일의 가장 큰 목표가, 이 일을 계기로 해서 황제를 발 밑에 두는 것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계획은 시작부터 문제가 생겼다고 볼 수 있었다.
여기다가 원정까지 실패를 한다면 그 결과는 더욱 처참하게 드러날 터.
그렇게, 교황이 작금의 상황에 대해서 불만을 품고 있던 그때였다.
“무언가 일이 개운치 않게 흘러가고 있으신 듯 하군요.”
“! 서.. 성녀님.”
다음 순간, 갑자기 그의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교황은 당혹감을 내보이기 시작했다.
대성녀..
1000년 전 교회를 창시한 인물이자, 신의 대리인.
교회의 지도자인 교황 자신 조차도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는 존재.
평소에는 줄곧 교황청 내부에서 기도에만 열중해 왔던 그녀의 예기치 못한 출타에 교황은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으며..
그런 교황을 보면서, 대성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놀랄 것 까지는 없지 않겠습니까? 오랜만에 바깥 공기를 좀 맞고 싶어 나왔습니다. 아무리 저라 해도 30년간 가만히 있기엔 조금 좀이 쑤시기도 하고 말이지요.”
“그..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잘 오셨습니다 대성녀님.”
예기치 못한 대성녀의 등장에, 교황은 짙은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교회 세력 최후의 보루이자, 자신의 상관이라 할 수 있는 그녀.
그러나.. 상급자의 예기치 못한 등장은 그녀가 없던 상황에서 줄곧 자신의 뜻대로 권세를 휘둘러 왔던 교황에게 있어서 그다지 달갑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예언의 인물인 오즈가 출현하고 마법사들이 나타난 지금까지도, 그가 가급적 대성녀에게 이 사실을 고하려 들지 않았던 것은 그런 이유 또한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며, 그가 자신의 선에서 일을 끝내려 하는 것 또한 그런 배경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울러, 상황에 따라선 자신의 행동에 따라 대성녀가 분노를 표출하게 된다면 그것이야 말로 골치 아픈 일.
이에 교황은 최대한 말을 줄이기로 결심을 하면서 대성녀가 조용히 다시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도록 만들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런데..
“듣자 하니.. 근래 들어서 교황청 내부가 시끌 시끌 하더군요. 마법사들의 준동이 갑자기 심해졌다지요?”
“ㄴ…네, 그렇습니다만.. 그렇다 해서 별 일은 아니니 너무 신경 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마법사들이라 해 봤자 저희 성기사들이 출격한 만큼 금방 정리가 될 것일 테니 말이지요.”
“그런 것 치고는 안색이 썩 좋아 보이지 않으십니다 만?”
“ㄴ..네?”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교황을 보면서 자상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대성녀.
이어서 그녀는 특유의 잔잔한 어조로 교황에게 말했다.
“만약 자신이 있다면 그렇게 염려할 필요는 없겠지요. 보아 하니 상황이 제법 심각한 것 같은데. 숨기실 필요 없으니 어디 말씀해 보십시오.”
“그.. 그것은..”
추궁이라기 보다는 사실상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상냥한 배려의 말.
그러나, 동시에 여기서 어설픈 거짓말은 통하지 않는 다는 것을 교황은 느낄 수 있었다.
무려 천 년이라는 시간을 살아온 대성녀를 속이는 것은 그에게 있어선 절대로 불가능한 일.
이에 교황은 최대한 간략하게, 작금의 상황을 설명하는 것으로 넘길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사실.. 그렇게 상황이 여유롭지는 않습니다. 성기사들을 보내긴 했지만. 이를 보좌할 병력의 수가 그다지 많지 않기에 승리를 확신하기가 쉽지는 않을 듯싶습니다. 거기다가 저 마법사들은 칼마르 연합국과도 손을 잡고 있는 지라..”
“호오.. 그렇단 말이지요? 이거 제법.. 골치 아픈 상황인 듯싶군요.”
“네.. 그렇..습니다.”
교황의 말에 그가 의도한 대로 이 상황을 상당히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대성녀.
그러나.. 잠시 후..
그녀는 무언가를 곰곰히 생각하더니 이내 결정을 내린 듯 그에게 말했다.
“할 수 없군요, 그렇다면 여기선 제가 힘을 써드리도록 하겠습니다.”
“ㄴ..네? 그.그게 무슨..”
“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성기사들이라 하면 근본적으로 저의 제자들이라 할 수 잇는 존재들. 제자들이 힘이 부치다는 데 스승이 나서주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 그건.. 그렇습니다만..”
“목표는 칼마르의 마법사들이라 했지요? 그렇다면, 제가 먼저 가서 녀석들을 정리하고 있겠습니다. 성기사들은 그저 뒷마무리만 잘 해주시면 될 것입니다.”
그 말과 함께, 그대로 마치 바람을 타듯 순식간에 날아 오른 뒤 북쪽을 향해 사라지기 시작하는 대성녀.
그녀의 이런 예기치 못한 행보에 교황은 당혹감을 느꼈으나..
한편으로는 의외로 일이 잘 풀릴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백여 년 가까이 없었던 대성녀의 출격이었다.
과거 대 악마들과 최강의 마법사들 조차도 단신으로 쓸어버린 그녀의 힘이라면 북방의 마법사들 따위는 며칠을 채 버티지 못하고 궤멸 당할 것이 분명할 터.
이를 잘만 이용하면 칼마르 연합국을 굴복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이번 일에 슬쩍 발을 뺀, 저 오만한 황제 조차도 무릎 꿇게 만드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교황은 계산을 하였다.
‘그래.. 이것도 나름 전화위복이겠지. 대성녀님께서 사악한 마법사들을 단숨에 벌하시고, 난 그 위세를 등이 업어 나의 권력을 단단히 다진다. 잘 하면 줄곧 원하던 주교 서임권을 가져오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야!’
그렇게 진한 기대감을 느끼면서 교황은 하루라도 빨리 대성녀의 승리 소식이 날아오길 기다리기 시작했다.
*
추적추적 비가 쏟아지는 날.
카알론의 텅 빈 훈련장을 내려다 보면서, 아샤트리아와 메닐라는 조용히 찻잔을 들고 있는 중이었다.
“이제 며칠 정도만 있으면 성기사들이 온다는 군요.”
“후훗. 재미있겠는데? 이걸로 파파를 괴롭혔던 그 용사라는 녀석을 마음껏 짓이겨 줄 수 있게 되었어. 그 동안 그 자식을 못 찾아서 얼마나 신경이 쓰이던지.”
“동감입니다. 아울러서 저 교회세력이라는 것을 따르는 졸개들도 한꺼번에 온다 했으니.. 이 기회에 저희 카알론의 위용을 인간들에게 톡톡히 보여주도록 하지요.”
다가올 전쟁에 대해 기대감을 품고 있는 두 사람.
비록, 제자들을 통해서 이 세계의 인간들이 지니고 있는 잠재력이 제법 대단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들이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손으로 키워낸 존재에 한정된 것일 뿐.
평범한 인간들의 강함이라 해 봤자 그 한계가 명확 했으며, 설령 그것이 성기사라 해도 자신들의 압도적인 마력 앞에선 그저 허망하게 갈려나가는 개미들에 불과하다는 것을 두 사람은 이미 실험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오오라만 사용할 줄 알면 뭐해? 그걸 가지고 실체화도 못 시키는 허접한 녀석들인데.”
“애초에 실체화의 기준이 300대 인 만큼, 쉬운 일은 아니긴 하지만요. 듣자 하니 성기사들의 평균 전력은 60. 그나마 강한 녀석도 100이 채 안 된다 들었습니다.”
물론 이 정도 수준이면 30대만 되어도 강자 소리를 듣는 이 세계를 기준으로 봤을 때 가히 일당 백의 실력을 지녔다 할 수 있는 수준.
그러나, 당연히 이는 카알론에 있는 NPC들에 비하면 발톱의 때만도 못 한 수준이었다.
“그런 점에서 조금 아쉽네, 기왕 전투가 있는 거 조금은 강한 녀석 이랑 붙었으면 했는데 말이지. 적어도 오오라 실체화는 가능한 수준으로 말이…!”
그 때..
“쾅!”
다음 순간, 훈련장의 중심부 에서 거대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빗소리를 꿰뚫으며 생생하게 울려 퍼지는 그것.
이에 두 사람은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혹감을 느끼면서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직후..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
그것이 무엇인지 인식한 순간, 두 사람의 얼굴에는 짙은 당혹감이 깃들기 시작했다.
“뭐.. 뭐야 저게…”
“처.. 천…사?..”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