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 지옥으로 가는 길 6
* * *
쏟아지는 빗줄기가 가늘어지고, 해가 뜨기 시작할 무렵..
비로서 엉망이 된 훈련장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그 시간이 되어서야. 막달레나는 간신히 울음을 멈출 수 있었다.
도로시 이상으로 지치지 않는 몸을 가지고 있는 그녀조차도 진한 피로감을 느낄 정도.
하지만, 그런 상태와는 별개로 막달레나의 마음은 유래 없는 평온함에 휩싸여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그토록 찾았었던. 그러나 이미 오래 전 현실을 받아들이고 포기하고 말았던 동생과 이렇게 다시 재회할 수 있었다는 사실 덕분이었다.
“조금 진정 됐어?”
“훌쩍.. 으..응… 괜찮아.. 이제는..”
마치 어린아이가 울음을 그친 것 같이 코끝이 빨개진 상태로 훌쩍이는 막달레나.
언니의 그런 흔치 않은 모습을 지켜보면서 도로시는 어쩐지 언니이긴 하지만 그녀가 조금 귀엽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 참.. 아무리 그래도 호들갑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헤어진 지 겨우 1년도 안됐잖아. 예전에 유학 갔다 왔을 때는 눈물 한 방울 안 흘리고 오히려 깔깔거리면서 놀려놓고선.”
“….에?”
다음 순간, 도로시의 말에 막달레나는 의문으로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대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한 표정.
이에 도로시는 이 언니가 그 동안 고생을 해서 시간개념까지 잊어버린 게 아닌 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그것도 몰랐던 거야? 우리가 이 세계로 떨어진 지 겨우 1년 지났잖아. 나야 내가 지배하던 거점이랑 그곳에 있던 NPC 들까지 같이 왔고, 거기다가 오즈.. 그러니까 준경이랑도 만나서면 재미있게 잘 지냈다만.”
자신의 말을 들으면서 멍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는 언니.
이에 도로시는 약간의 조심스러움을 담아 그녀에게 물었다.
“대체 어디서 얼마나 고생을 한 거야? 그만한 힘을 지니고서도 언니답지 않게…”
그때..
“자..잠깐.. 잠깐만.. 지금..뭐라 했어? 1년? 네가 이 세계에 온지 겨우 그것밖에 되지 않았다고?”
다급한 목소리로 되묻는 막달레나.
이에 도로시는 무언가 묘한 기분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말했다.
“응… 대략 그 정도 된 걸로 아는데. 작년 여름에 때 즘 왔고, 지금은 여름이 막 시작되는 시기 이니까..”
“….”
그녀의 말에 막달레나는 잠시 충격에 휩싸인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이내 그녀는 마음 속에서 무언가 진정된 것 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고.
이어서 침착하면서도 조용한 어조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래.. 그렇게 된 거였구나.. 그래서.. 아무리 이 세상을 뒤져 봐도 끝내 너희를 찾을 수 없던 거였어..”
무수한 상념이 담겨 있는 듯한 목소리.
이에 도로시는 의문과 더불어 약간 불안한 기분을 느끼기 시작했고, 그런 동생을 보면서 막달레나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 이상하게 들리 지도 모르지만.. 한리아. 내 말 잘 들어..”
“으..응?”
지금까지 흐트러 졌던 모습과는 달리. 다시금 본래 그녀가 알고 있던 완벽한 언니의 모습으로 돌아온 막달레나.
이에 도로시는 무언가 심각한 이야기가 나올 것을 예상하며 긴장을 한 채 그녀의 말에 집중하였다.
“너.. 내가 여기에 온지.. 얼마나 지난줄 알아?”
“…뭐.. 나랑 비슷한 시기.. 라면 물어보지도 않았겠지? 아마도 조금 더 오래.. 2~3년에서 길면 10년..정도?”
대충 떠오르는 시간을 말하는 도로시.
이에 막달레나는 조용히 고개를 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1000년.”
“…뭐?”
“1000년이라고, 내가 이곳에서 지내온 시간은.”
상상을 초월하는 기간이 막달레나의 입에서 나왔고, 이에 도로시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는 것 같은 충격을 받으면서, 동시에 언니에게 줄곧 품고 있던 의문이 해소되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언니가 이런 상황에서 농담을 할 일은 없어… 더군다나 그 정도 시간이라면.. 언니가 마법사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해도 이상하지 않긴 해..’
인간은 수년 간의 생활 만으로도 사람이 뒤바뀔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막달레나가 말한 1000년이라는 시간이라면 사람이 바뀌다 못해 풍화되고 뒤틀리더라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시기였다.
“내가 처음 이 세계에 혼자 떨어진 이후.. 수 십년 간은 줄곧 너희들을 찾아 다녔어. 하지만 아무리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아무리 새로운 곳을 찾아가 봐도 너와 장미의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었지. 그리고.. 결국 200년째 되던 해에 난 너희들이 이 세계에 오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려버렸지. 그런데 설마 이런 일이 있었을 줄은..”
“으으음…”
진심을 담아서 사과하는 막달레나.
그러나, 그런 언니의 모습을 보면서 도로시는 솔직히 경외감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1000년.. 그 만큼 살았으면서 이 정도 밖에 사람이 안 변한 게 기적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확실히 정신력은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언니를 따라올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도로시는 슬쩍 언니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비록 그녀 역시 본래의 모습과는 다른, 게임 캐릭터 상의 모습을 하고 있긴 했지만 그녀의 행동 거지나 느낌은 분명 예전과 비슷했다.
“고생 많았겠네.. 이런 세상에서 혼자서 살아가느라.”
이제는 완전히 예전의 언니를 대하는 듯한 어조로 도로시가 말했고, 이에 막달레나는 그리운 느낌이 드는 구도로 동생을 바라보며 가볍게 말했다.
“뭐.. 솔직히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어. 너도 대충은 알잖아. 이 세상의 평균이 얼마나 허접 한지. 그 동안 이 점을 어떻게든 개선시켜 보려고 했는데.. 역시 수명에 제약이 있는 오오라로는 분명 한계가 있더라고.”
“응?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 너 LDG에서 마력을 다루는 마법사는 불로불사란 설정이 있는 거 기억하지? 그거 이 세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아.. 그럼 오오라 사용자는 신의 뜻을 받들기에 유한한 생명을 산다는 것도..”
문득 지금 카알론에 머무르고 있는 제니 역시 나이를 먹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며 도로시가 대답했고, 이에 막달레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나 같은 경우 게임 캐릭터의 몸으로 온 덕분인지 그런 제약이 없었지만, 내가 그 동안 키워 왔던 오오라 능력자들은 대부분 100세를 못 넘기고 죽어버렸어. 거기다가 성장 속도도 느려서 그나마 가장 강했던 녀석이 400대 초반 정도였지? 지금은 한 동안 손을 안대서 어떨지 잘 모르겠지만.”
“으음..”
400대 라면 이 세계 기준으로는 분명 괴물 급이긴 하지만 도로시의 기준으로는 그 한계가 명확한 수준.
그런 이야기를 듣던 중, 문득 도로시는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응?.. 그런데 언니는 왜 마법사들을 죽이고 다녔던 거야? 이 세계의 성직자들이 하도 극성을 부려서 솔직히 난 방금 전까지 언니가 이상하게 변한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다고.”
“그건… 다 말하자면 이야기가 조금 길어지긴 하는데..”
“해줘, 어차피 시간도 많잖아.”
“그렇긴 한데.. 지금은 장소가 썩 좋지 않아.”
“아..”
문득, 지금 자신들이 박살난 훈련장 한복판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도로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일단은 조금 쉰 다음에 이야기 하자. 간만에 티타임이나 가질까?”
“그건… 정말 오랜만이네.”
활기차게 말하는 동생을 보면서 막달레나의 입가에는 평온한 미소가 번졌다.
*
카알론의 별채.
그곳의 한쪽에서는 정원사들이 전전긍긍한 상태로 모여 있었다.
“그래서..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거야?”
“그게.. 그 수녀년이 쳐놓은 오오라가 아직도 남아있어서..”
“거기다가 도로시님도 무언가를 하신 것 같아. 내 능력으로도 확인이 안돼.”
다급하게 묻는 아테나의 말에 메닐라와 자미엘이 난감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제길.. 역시 도로시님을 그냥 놔두고 오는 게 아니었어.. 벌써 반나절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다니.. 이렇게 된 이상 내가 직접 가서..”
“그만둬 언니. 도로시님의 명령도 명령이지만, 지금 우리들 상태로는 가봤자 오히려 방해만 될 가능성이 높아.”
“으으…”
마력의 회복까지는 아직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상황.
상대가 만전을 기해도 감당이 불가능한 만큼. 지금과 같은 몸으로는 가봤자 순식간에 깨질 것이 뻔하긴 했다.
더군다나 지금 그들의 시선을 차단하고 있는 자는 다른 누군가가 아닌 도로시 본인인 만큼, 그녀의 입장에선 개입할 명분조차 없었다.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도로시에게 무슨 연락이 오거나 최소한 마력이라도 빨리 회복되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정원사들.
그때, 눈을 감은 채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아샤트리아가 천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왔습니다.”
“응?”
“누가? 도로시님이?”
다급하게 묻는 아테나. 그러나 이에 대해서 아샤트리아는 더 이상 설명을 하지 않은 채 그저 조용히 문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웃!”
“네 녀석..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문을 열고 나타난 문제의 그 수녀.
이에 그곳에 있던 정원사들이 동시에 공격 태세를 취하기 시작한 그때였다.
“어머. 다들 여기에 모여 있었구나.”
“에?”
“도…도로시님?.. 그리고.. 오즈님?”
수녀의 바로 뒤에서 나타난 자신의 부모의 모습에 그들은 당혹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그녀들을 보면서 수녀는 조금 난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에.. 역시.. 그다지 환영하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은데..”
“뭐.. 전후 사정이야 어찌 되었든 언니가 지은 죄가 있으니까 말이지.. 아무튼 아테나.”
“ㄴ… 네? 무.. 무슨 일이시지요 도로시님?”
갑작스럽게 자신을 부르는 도로시의 말에 아테나는 잔뜩 경직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경우에 따라선 곧바로 전투에 돌입해야 할지도 모른다 생각하면서.
그리고, 그런 아테나에게 오즈는 미안함과 약간의 흥분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여기는.. 아니다. 그냥 내 방으로 가는 게 좋겠다. 홍차 세 잔만 타서 방으로 가져다 줘. 다과는 최대한 달달한 걸로..”
“아, 그건 적당히 짭짤한 걸로 부탁할게. 나 예전이랑 입맛 바뀌었어. 나이를 먹고 나니까 단 게 별로 안 땡기더라고.”
“에… 이런 부분에서는 조금 늙은이 같아 졌네요 누님?..”
“아하하.. 너 못 본 사이에 많이 컸다? 오랜만에 조금 맞을래?”
“하하 사양할게요, 아무튼 그럼 그렇게 부탁할게.”
그 말을 남긴 채 그대로 수녀와 함께 자신의 방으로 향하는 오즈와 그 뒤를 따라 가는 도로시..
이를 보면서 정원사들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은 채 두 사람이 도로 닫은 문을 바라보았다.
“…봐..봐봐. 내가 걱정할 필요 없다고 그랬지?”
“…이거 당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아테나가 답답한 목소리로 말한 뒤 그대로 차를 타기 위해 방을 나섰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