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화 〉 마법사 전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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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앉아있는 황제를 보면서 도로시는 내심 상당히 긴장을 하고 있었다.
사전에 그들이 원하는 내용은 미리 상대방에게 적어서 보내둔 상황.
일전에 칼미르와 맺은 계약서의 내용과 거의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당장 위급한 상황에 처해있는 황제를 상대로 상당량의 자금을 청구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황제의 입장에선 거저나 마찬가지인 금액이겠지. 군사 유지 및 운용 비용이 1년 예산의 절반 이상이라고 했으니까..’
현실 세계에 있을 때 군대에 관심이 많은 소위 밀덕이었다면, 수만에 달하는 군사를 유지하기 위해서 얼마나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는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쪽에는 큰 관심이 없었던 도로시 였기에, 그녀는 군대의 운용에 생각보다 돈이 만이 든다는 것을 알고 상당히 놀랐었다.
‘군의 유지와 그에 따른 생산성의 감소.. 이런 쪽에서 보면 군대야 말로 돈 먹는 하마나 마찬가지였어. 그런 점에서 보면 마법사들의 가성 비는 가히 사기 급이라 할 수 있지.’
병사들이 휘두르는 검 한 자루, 창 한 자루 화살 한 발, 그것들이 다 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팡이 한 자루와 사람 한 명으로 수백 수천의 군대를 짓이길 수 있는 마법사들은 효율성 측면에서 그 가치가 어마어마 하였다.
‘문제는.. 이런 엄청난 [상품]의 가치를 어떻게 상대방에게 알려주느냐 하는 것인데..’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이에 관해서 도로시는 아테나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다.
애초의 이야기의 시작부터가. ‘이 부분은 도로시님이 맡아 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였으며, 여기에 대해서 도로시는 사실상 언니와 아이들이 밥상을 다 차려준 상황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있을 수는 없었기에 별 수 없이 ‘알았다.’ 라는 말로 상황을 일축해 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일단은 지도자 인데.. 이런 마무리 도장 정도는 직접 찍어줘야겠지. 그럼.. 시작해 보자.’
그렇게 생각하면서 도로시는 긴장을 하고 있지만 부담은 크게 가지지 않은 채, 조용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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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눈 앞에 있는 여성. 도로시 인비져블을 보면서 황제는 여태까지 느껴보지 못한 긴장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지금껏 그가 상대해 왔던 이들은 손가락으로 일일이 꼽을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이 있었으며 그 종류 역시 다양하기 그지 없었다.
구걸하는 거지부터 옥좌에 앉은 왕까지.
그렇게 각양 각색의 인물들을 만나고 그들의 행동거지를 분석해 왔던 황제였지만, 지금 그가 마주하고 있는 이 도로시 라는 여성은 지금까지 그가 만났던 어떤 인물들 하고도 다르다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마법사들의 수장이라.. 일단 상당히 높은 자리에 있다 할 수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격식에는 그다지 구애 받지 않는 사람인 것 같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높은 자리에 앉으면 그에 맞춰서 행동거지가 어느 정도 정해지기 마련이다.
주변 사람을 대하는 자세는 물론이고, 하다못해 평소의 걷는 걸음이나 말 한마디 에도 일정량의 무게가 실리게 된다.
그러나. 이 도로시라는 자에게선 그런 것은 딱히 보이지 않았다.
당장 뒤에 있는 호위, 혹은 비서로 보이는 특이한 외형의 천 옷을 입고 있는 여성을 대하고 있는 모습에서도 황제는 신하와 주인 사이의 격식 보다는 마치 부모가 딸을 대하는 듯한 친근함을 느낄 수 있었다.
‘주변 인들에게 허물 없는 성격이라는 것인가? 하지만 그런 인물이 굳이 가면을 쓰고 정체를 감추는 행동을 하는 건 조금 이해하기 힘들군..’
협상에 있어서 저런 식의 장신구는 그자디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상대방에게 자신의 표정을 감출 수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이득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이상으로 상대방에게 불신을 심어줄 수 있다는 단점을 지니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신뢰는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협상 자리에선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는 요소.
그때, 그런 황제의 생각을 읽었는지, 아니면 그제서야 어색한 부위기를 눈치 챈 것인지, 도로시는 먼저 입을 열며 운을 때었다.
“실례했습니다. 그럼 대화를 시작하기에 앞서 불필요한 시선이 없어졌으니 이제 이런 것은 필요 없겠군요.”
그 말과 함께, 천천히 착용하고 있던 가면을 벗는 도로시.
이를 본 직후, 황제는 지금까지 생각하고 있던 사안을 완벽하게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였다.
상상 이상으로 짧으면서도 간단한 예고와 함께 가면을 벗은 도로시.
그 순간, 마치 천상의 미를 구연해 둔 것만 같은 아름답기 그지 없는 얼굴이 황제의 눈 앞에 보였다.
보는 것 만으로도 머리를 어지럽게 할 정도로 엄청난 미색.
가면 아래 저런 얼굴을 감추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황제는 이 도로시라는 여성에 대한 평가를 두 단계 정도 올리게 되었다.
‘과.. 과연.. 그렇게 된 것이었군.. 그녀가 계속 가면을 쓰고 있었던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어..’
협상에서 기초가 되는 것은 상대방의 신뢰, 그리도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상대의 호감을 얻는 것이었다.
그리고 남성을 상대로 할 때 가장 쉽고 빠르게 호감을 얻어낼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미색을 이용하는 것.
도로시의 얼굴을 본 순간, 제국을 지탱하고 있는 강인한 정신력을 지니고 있는 황제 조차도 한 순간 마음이 흔들릴 뻔 하였다.
다행히 그녀의 미모에 넘어가 정신을 흐트러뜨리지는 않았지만, 황제는 상대의 수가 치명적이면서도 강력했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군.. 얼굴을 감추어 궁금증을 유발시킨 뒤, 이를 내보임으로써 그 압도적인 미모가 주는 효과를 배가 시킨다. 정말 무서운 한 수로군.. 하마터면 이 나조차 넘어갈 뻔 했다.’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단순히 가면을 벗는 것만으로도 강력하기 짝이 없었던 상대의 첫 수.
다행이 황제는 이를 성공적으로 방어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상대방이 무서운 존재라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방심해선 안 된다.. 이 도로시라는 여자.. 마법사의 수장이라는 이름이 아쉽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상대다. 함부로 얕봤다간 큰 낭패를 볼 것이야.’
그렇게 생각 하며, 황제는 최대한 정신을 가다듬은 뒤, 입가에 여유로운 미소를 담은 채 도로시 에게 말했다.
“과연.. 가면을 벗으니 이제서야 얼굴을 알아볼 수 있겠군, 그럼 피차 바쁜 몸인 만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고 싶소만?”
“네, 좋습니다.”
그 말 을 하면서 얼굴이 살짝 찌푸려지는 도로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빛나는 미모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이를 보면서 황제는 내심 기쁨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마도 자신만만하게 내놓은 첫수가 막힌 것에 대해서 조금 아쉬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리라.
‘대단한 미인계였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군, 그럼 이 다음에는 어떤 수를 내놓을지 보도록 할까?’
상대방에 대해 긴장과 더불어 약간의 흥미를 느끼며 황제는 도로시의 말을 경청하였다.
‘이런 수까지 동원하는 것을 보면 분명 서류로 보낸 조건만이 전부가 아닐 것이다. 아마도 공세를 진행하고자 한다면 그것을 언급하려 들겠지.’
직접적인 언급은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 치면 굳이 상대방의 감정을 흐트러뜨려 들지 않았을 터.
이런 자리라면 응당 따라오는 내밀한 요구조건이 그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황제는 판단했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마법사들의 힘은 그 한사람 한사람이 강력하기 짝이 없다고 하지. 단신으로 수백을 상대할 수 있는 전력.. 이를 그 정도 돈만 가지고 대여해 줄 리가 없다.’
마법사라는 전력의 힘이 사실대로라면 그 가치에 대해선 말할 필요도 없는 것.
이는 황제 역시 확실하게 간파하고 있는 부분이었으며, 이와 관련해서 황제는 뒤따라올 저들의 커다란 요구 조것을 최대한 깎음과 동시에 그 마법사들의 힘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손에 넣어야 했다.
그렇게 상대의 공격을 받아낼 준비를 하는 황제.
이에 대해서 도로시는 조용한 목소리로 그녀가 원하고 있는 사안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저희들의 요구조건은..”
‘그래.. 말해 봐라, 상황이 상황인 만큼 어지간한 것은 다 들어줄 터이니..’
나름 마음의 준비를 하며 황제는 도로시의 입에서 나올 말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귓가에 들리는 도로시의 요구조건은..
“서류에 적혀 있는 내용 그대로 입니다. 마법사들의 안전과 독립성 보장, 그리고 이번 일.. 정확히 말하면 폐하께 반기를 든 저 자들을 쓸어버리고 카노사에서 폐하께 굴욕을 안겨드린 교황을 무릎 꿇리는 대가로 제국 예산의 5%를 요구하는 바 입니다.. 아 그리고..”
‘꿀꺽…’
형식적인 대답에 이어서, 도로시의 입에서 추가적으로 튀어나오는 말.
실질적인 그녀의 요구사안은 이것이 분명할 것이라 생각하면서 황제는 마른 침을 삼켰다.
‘일단 비용에 대해선 여전히 싸게 불렀다.. 그렇다면 역시 원하는 것은 땅인가? 제국 영토의 일부.. 혹은 루돌프의 영지를 달라 할 수도 있겠어. 그도 아니면 공작위 같은 귀족 지휘를 요구할 지도.. 국가적인 이득에 있어선 후자 쪽이었으면 좋겠는데.. 아니 어쩌면 두 가지를 다 요구할 지도..’
도로시가 잠시 말을 줄인 짧은 순간 온갖 생각을 다 하기 시작하는 황제.
어느 것이 나오든 놀라지 않겠다고 각오를 다진 채 황제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였다.
그리고, 그런 황제에게 도로시가 던진 말은..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아마도 황제 깨서는 저희 마법사들의 능력에 대해선 아직 확신이 없을 것으로 사려되옵니다. 그렇지 않으십니까?”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틀어버리면서, 동시에 그의 생각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도로시.
어쩌면 상대방 입장에선 알고서도 굳이 건드리고 싶지 않은 내용이었음에도, 이를 치고 들어오는 도로시의 말에 황제는 내심 당황하기 시작했다.
‘설마.. 요구 조건 대신 이런 이야기를 할 줄이야.. 역시 보면 볼수록 무서운 여자임에 분명하군. 이런 식으로 정곡을 찔러 나를 흔들어 보겠다 이건가?.. 대체 이 뒤에 얼마나 대단한 것을 요구하려고..’
그렇게 한층 더 불안감이 커지긴 했지만, 황제는 안 그래도 요청하려 했단 사안을 상대방에서 먼저 꺼내주었다는 사실을 나름 긍정적으로 받아 들이기로 하면서 그녀의 말에 대단했다.
“그.. 그렇소.. 그 말 대로. 사실 영주가 보증을 해주기는 했지만 역시 그런 엄청난 이야기는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선 납득할 수 없는 법이지.”
“역시 그렇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황제 폐하께 그 위력을 조금 보여드리고 싶습니다만.. 혹 괜찮으시겠습니까?”
“물론이오, 그렇게 해준다면 나야 고맙소만..”
불안한 기분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일단 도로시의 말에 긍정을 표하는 황제.
그리고 여기에 대해서 내심 짙은 안도감이 담긴 미소를 지어 보이는 도로시
전쟁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마법사 전쟁은 그렇게 완전히 쓸대 없는 걱정을 하고 있던 두 사람의 대화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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