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화 〉 에필로그 희극의 끝, 비극의 시작
* * *
전쟁이 끝나고 침통한 분위기에 사로잡힌 성기사들
그들 사이에선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심각한 논의가 오고 갔다.
“이대로 있을 수는 없습니다! 막달레나님과 교회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그 마법사들을 모조리 처치해야 합니다.”
“맞습니다! 비록 황제가 저쪽으로 넘어갔다고 하지만 여전히 방법은 많이 있습니다. 플랑크 왕국과 브리튼 왕국을 움직인다면 충분히...”
강경한 입장을 내세우는 성기사들.
비록 신성제국이 돌아서긴 했지만 여전히 대륙 곳곳에는 교회의 입김이 강하게 남아있었다.
그들에게 명분을 부여할 경우 전쟁을 일으키는 것도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닐 터.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 신중론을 펴는 자들 역시 적지 않았다.
“으음..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전쟁을 다시 벌이는 것은 무리이네. 당장은 지난 전쟁으로 엉망이 된 성도를 정리하는 것이 우선이야.”
“무엇보다 그렇게나 강력함 마법사들을 상대로 다시 전쟁을 벌이는 것은… 우리측에도 엄청난 피해를 야기할 수 밖에 없네.”
“막달레나님 조차 한발 물러나게 만든 존재들이야. 지금까지의 마법사들과는 격이 다른 그들을 함부로 건드릴 수는 없어.”
“지금은 일단 상황을 지켜보면서 힘을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 우선은 성도를 정비하고 새로운 교황을 선출해야겠지. 성기사들의 교육에도 더욱 신경을 쓰고. 전쟁을 고려하는 것은 그 다음일 세.”
“큭…”
명확하게 정론을 이야기하는 원로들의 말에 전쟁을 주장하던 강경파들은 입을 다무는 수 밖에 없었다.
1000년간의 영광에 대한 자부심이 있으며 그것이 회손 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는 여전 했지만, 그들 역시 지금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건 그렇고.. 막달레나님 깨서는 조금 어떠신지요?”
“한동안 바람을 쐬러갔다 오신다 말씀하신 이후 소식이 없으십니다. 그분의 신변에 별일은 없겠지만.. 아마도 이전 일의 충격이 상당히 크신 듯 보입니다.”
“오죽하시겠습니까.. 그 동안 수도 없이 잘라왔던 악의 싹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자라나 있는 것을 목도하셨으니..”
“이게 다 저희들이 어리석었던 탓입니다.. 만약 막달레나님 께서 계속 저희들을 이끄셨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도 않았겠지요.”
“교황 밑에서 너무 나태해져 있던 탓이 컸습니다.. 과거 막달레나님 께서 권력을 이향하신다 하셨을 때 조금 더 적극적으로 말렸더라면..”
“자..자..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는 것은 지금으로선 의미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추후 막달레나님을 모시고 어떻게 상황을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과거의 일에 대한 반성과 앞으로의 일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성기사들간의 대화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리고 나온 결론은 당장은 그 동안 해이해졌던 상황을 수습하고, 각국의 군주들과 힘을 모아 마법사들에 대항하기 위한 대책을 강구하는 것.
적들의 전력으로 봐선 상당히 기나긴 싸움이 될 것이 분명했지만 그들은 다시금 의욕을 새롭게 다지기 시작했다.
1000년간 수 많은 고난을 이겨내고 여기까지 온 성기사들과 막달레나였다.
어려운 일이지만 이번에도 분명 이 고난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들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
카알론의 벌채, 그곳에서는 호화롭기 그지 없는 연회가 열리고 있었다.
화려한 만찬과 창고에 보관해 두었던 각종 주류까지 내온, 오즈가 돌아온 이래 여지 것 카알론 에서 한번도 진행된 적이 없는 대규모의 연회
그 중심에는.. 성기사들의 걱정의 대상이자 그들의 머릿속에는 지금 이 순간 가장 괴로워하고 있어야 할 그 사람.
마리아 막달레나 아나스타가 홀가분한 표정을 지은 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하아.. 끝났다 끝났어.”
“정말 고생했어 언니. 덕분에 큰 문제 없이 마무리 되었어.”
“수고하셨습니다 누님.”
“하하. 내 지금까지 살면서 각종 권모술수를 동원해오긴 했지만 이 정도로 기분 좋았던 적은 처음이야. 여기 한잔 더 부탁해.”
“물론입니다. 그리고.. 저 역시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막달레나님.”
아테나가 술잔을 따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달리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모습으로 상대방에게 확실히 예의를 갖추는 모습
조카와 같은 존재에게 이런 인사를 받는 것에 대해서 막달레나는 제법 신선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아울러 약간의 취기 덕분에 기분이 한층 달아올라 있는 것은 덤.
평소 다른 이들에게는 냉철하고 철두철미한 정치가의 모습을 보여줘 왔던 그녀였지만, 자신을 거짓 없이 내보일 수 있는 동생의 앞에선 정말로 오랜만에 그런 가면을 벗어 던진 채 본성을 내보이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런 언니의 모습을 익히 알고 있던 만큼 도로시와 오즈 역시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주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실질적으로 대륙을 틀어쥐고 있는 그들의 허물 없는 모습을 보면서 정원사들의 입가에는 여러모로 다양한 감정이 얽혀있는 미소가 피어 올랐다
평소 자신들끼리 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는 두 사람의 모습.
서로간에 겉치례 없이 앙금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누구보다 자신을 잘 알고 있으며, 그렇게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바로 가족이라는 관계였다.
그렇게, 약간 아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더 주인.. 아니,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해서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날이 언젠가 올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면서 정원사들은 자신들을 보며 따스한 미소를 보내고 있는 부모 들을 바라보았다.
*
연회가 끝나고 모든 것이 일 달락 된 상황.
그 속에서, 오즈는 난간에 기댄 채 조용히 밤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배신의 날을 겪은 지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현재.
그와 함께 했던 ‘동료’ 라는 것들은 모두 다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복수란 허망함만을 안겨 준다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은데..’
비록, 처음에는 개인적인 욕심에서 시작된 일이었지만, 이것은 오즈에게 있어서. 그리고 도로시와 카알론에게 있어서, 그리고 막달라나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커다란 선물을 안겨다 주었다.
잃어버렸던 가족들을 찾았으며, 카알론이라는 세력이 이 땅에 잘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 결과.. 이 순간 오즈가 느끼고 있는 감정은 안도감..
그리고 기쁨 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기쁨.
그리고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는 그의 뒤에는 그 사람이..
이제는 결코 떨어진다는 생각을 할 수 없는 그 사람이 서 있었다.
“차 다 식을라. 빨리 와.”
“응, 알았어 누나.”
그 말과 함께 방안으로 돌아가는 오즈
이 순간, 그의 손에는 반지가 끼어 있었다.
눈앞에 있는 이 사람과 영원히 함께 하겠다는 서약의 반지가..
*
마법사 전쟁.
그것은 천년 이 넘는 시간 동안 유지되었던 대륙의 힘의 판도를 바꾸는 시작점이 되었다.
각 국의 군주들이 있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교회의 발 아래 놓여 있던 대륙.
각자 다른 목표와 힘을 지니고 있는 군주들이었으며 자신들끼리의 전쟁 역시 주기적으로 발생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교회와 신 이라는 이름아래에 하나로 묶여 있다는 공통점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법사 전쟁 이후, 교회에 대등하게 맞설 수 있는 또 다른 세력이 세상에 그 모습을 내보이면서 상황이 뒤바뀌게 되었다.
강한 힘에는 필연적으로 이를 이용하려는 자들이 붙기 마련이다.
대륙 중부를 장악하고 있는 신성제국과 북방의 칼마르를 필두로 몇몇 국가들은 마법사들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였으며, 이에 반해서 플랑크 왕국과 브리튼을 비롯한 나라들은 교회와 성기사들에 대한 지속적인 지지를 표명하였다.
그렇게 발생한 대륙의 분열.
이는 추후 수백 년간 이어진 두 세력간의 크고 작은 알력 다툼으로 이어졌다.
과거부터 내려온 신의 뜻에 따라 마법을 배제 한다는 명분아래 다시금 그 영향력을 회복하려는 교회 세력.
반면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꽃피우는 것이야 말로 진정을 신이 원하는 것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이런 교회에 대항하여 세력을 키워나가는 마법사들.
그들간의 전쟁을 끝없이 이어 졌으며, 그 과정에서 무수한 피가 흘렀고 여러 국가와 세력들이 흥망을 거쳐 나갔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난 뒤 교회와 성기사들은 결국 자연스럽게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이 감당하기에 이미 마법사들의 세력은 너무나도 커져버렸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렇게 점차 그 뿌리를 내려가기 시작한 심리적인 동요는 어느 순간, 머나먼 동방에서 일어난 이교도들의 준동으로 인해서 발생한 위기감으로 인해 극대화 되었으며, 결국 교회 세력은 끝내 마법사들은 완전히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명목상은 서로간의 오랜 전쟁을 멈추고 평화를 도모하자는 것이었지만, 그 내면은 사실상 교회가 고집을 꺾고 패배를 선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오즈가 시작했으며, 도로시와 카알론의 정원사들의 진행 했으며, 막달레나가 받아 마무리한 기나긴 계획은
교회 세력에 속한 그 누구도 그 진실을 알지 못한 채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
“그건 그렇고.. 대체 장미는 언제쯤 넘어오는 건지..”
“그러게 말이야. 이 언니들이 이렇게 공들여서 준비를 다 놓았는데 여전히 감감 무소식이니.”
언제나와 같이 찻잔을 기울이며 두 자매는 조용히 담소를 나누었다.
기나긴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변함없는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는 그들.
하지만, 시간의 풍파를 맞으면서도 변하지 않는 것은 비단 외모뿐만은 아니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반드시 올 거야.. 1000년이라는 시간을 들여서 네가 내 앞에 나타나 준 것 같이.”
“그렇겠지. 분명히..”
기나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셋째동생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은 여전한 두 자매.
그 말을 하면서 도로시는 찻잔을 깔끔하게 비웠고, 그런 동생의 모습을 보면서 막달레나는 조용히 미소를 지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난 이만 가봐야겠다. 오즈한테 안부 전해줘."
“벌써 일어나게? 요즘 많이 바쁘네.”
“하아.. 이게 다 네가 학생 관리를 잘 못해서 그런 거잖아. 마녀니 마도사니.. 무슨 모 만화의 탈주 닌자도 아니고.. 근래 들어서 겨우 성기사 12지파 중에서 마법사들에 대한 긍정 여론이 생겨나고 있는데, 저런 녀석들이 너무 많아지면 골치 아파진다니까.”
마녀와 마도사.
초창기 수가 적었던 때와는 달리 오랜 시간이 지나고 마법사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인륜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 역시 생겨나기 시작했다.
마녀와 마도사들은 그 정도가 한계점을 넘은 이들로, 도로시가 마법사들의 금기로 지정해 두었던 사안들을 어겨 마법사 세계에서 쫓겨난 존재들을 일컫는 명칭이었다.
당연히, 간신히 교회 세력과 평화조약을 맺어 정세를 안정시킨 그들의 입장에서 이런 문제아들은 자칫 또 다른 전쟁의 명분이 될 수 있는 만큼 단호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도.. 난 가능하면 그냥 놔뒀으면 좋겠는데.. 일단 당장은 대다수가 조용히 산에 틀어박혀서 연구만 하는 녀석들이잖아.”
“그러다가 나중에 큰일 터지는 거라니까. 언니 말 들어. 가끔씩은 이성적으로 냉정하게 대응할 필요도 있는 거야. 저러다가 이상한 마법을 개발해서 일이 커지면 그땐 수습하기 정말 힘들어 진다고.”
“으음.. 요즘 난 제법 이성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생각하고 있는데 말이지..”
막달레나를 보면서 도로시가 살짝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언니였지만, 그렇기 때문에 언니의 저런 면모를 이해할 수는 있어도 공감하기는 힘든 것이 그녀였다.
“아무튼. 이번 일은 내가 처리할 태니까 넌 당분간 조용히 있어. 안 그래도 근래에 동쪽에 있던 비잔 제국이 투르크 한태 망해버려서 정국도 불안불안 하니까.”
“후.. 알았어. 그럼 잘 가고 나중에 또 보자고.”
그렇게, 언니는 떠나 보낸 뒤, 도로시는 조용히 창 밖을 바라보며 떠나간 제자들의 모습을 회상하였다.
“미나 아델란.. 에일라 슬로스.. 재능있는 아이들이었는데 많이 아깝게 되었어..”
언니가 저렇게 나서기로 결정한 이상 두 사람을 비롯한 마녀와 마도사들의 운명은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신성제국의 남쪽에 위치한 비쟌 제국에 주로 거주하는 마법사 세계의 추방자들
그래도 한때 제자라 불렀던 아이들에게 명복을 빌어 주면서 도로시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의 결정이 가지고 올 너무나도 뼈아픈 결과에 대해선 전혀 예측하지 못한 채.
한 마녀의 인생을..
결코 행복할 수 없는 나락으로 밀어 넣어 버리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END
이 다음은 전작 '죽으면서 배우는 이세계 마녀 생활 '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