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장 - 플레이아데스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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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
“아가씨?”
마이아와 코델리아의 호위인 여검사가 거의 동시에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더와 코델리아가 뜬금없이 서로를 보며 이상한 소리를 했기 때문이다.
네가 왜 여기서 나와.
‘왜 나오긴, 병문안 왔으니 나왔지.’
‘병문안 왔으니까 나온 거 아냐?’
마이아와 여검사가 합리적인 생각을 하는 그때 유더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눈앞의 소녀를- 자신과 마찬가지로 당혹과 놀람과 아무튼 기타등등 여러 감정에 빠져 있는 코델리아를 보며 생각했다.
‘뭐지? 왜 노란폭풍이 떠오르지?’
눈앞의 소녀는, 그것도 ‘절세’라는 말이 붙어도 좋을 정도로 아름다운 미소녀는 코델리아였다.
만년 2등인 노란폭풍 따위와는 조금도 연이 없는 유더 자신의 약혼녀 말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눈을 마주친 순간 노란폭풍이 떠올랐다.
가히 절대적인 감이라 해도 좋았다.
더욱이 상대 역시 자신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 중요했다.
‘설마.’
설마 진짜로 노란폭풍?
현기증 나는 이야기였지만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일단 유더 자신도, 그러니까 아웃복서009 임진호도 유더 바이엘이 되었으니까.
“흠흠, 어, 음. 잠시 실례했습니다.”
“어··· 저, 저도요.”
유더가 먼저 우물쭈물 말하자 코델리아 역시 우물쭈물 말했다.
그런데 이쪽을 살피는 눈치가 역시 예사롭지 않았다.
“일단··· 앉으시죠.”
“어··· 네.”
정말로 일단 착석.
어색하기 짝이 없는 두 사람의 모습에 마이아와 여검사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잠시 뿐이었다.
마이아는 미리 준비되어 있던 차를 새로 내주었고, 유더는 코델리아와 어색한 눈빛 교환을 계속하였다.
‘시험해보자.’
단순히 유더 자신만 뭔가 느낀 거라면 모르겠지만, 저쪽도 비슷한 걸 느낀 상황이었다.
상대가 정말 유더 자신의 느낌대로 노란폭풍이라면, 뭔가 대참사 같긴 했지만 정말로 그러하다면 알아먹으리라.
“노, 노하.”
노란폭풍 하이.
막상 입 밖에 내자니 부끄러웠던 터라 목소리가 떨렸다.
그런데 반응이 제대로였다. 코델리아가 순간 움찔하더니 눈을 크게 뜬 것이다.
“아··· 아하.”
아웃복서 하이.
코델리아도 작게 말했고, 마이아와 여검사가 다시 고개를 갸웃하는 그때 유더는 쐐기를 박아 넣었다.
“야··· 너두?”
“야··· 나두.”
“도련님?”
“아가씨?”
마이아와 여검사의 얼굴에 이제는 제법 진지한 걱정의 빛이 어렸다.
멀쩡하던 양반들이 갑자기 왜 저런단 말인가.
하지만 유더는 그런 두 사람의 반응을 신경 쓸 수 없었다.
‘미친! 진짜로 노란폭풍이냐?!’
대충 눈빛으로 말하니 상대도 비슷한 대답을 돌려주었다.
유더는 일단 심호흡을 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어떻게 된 일인지, 언제부터 코델리아가 된 건지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지금 이 자리에는 마이아와 여검사가 있었다.
때문에 유더는 돌려 말하기를 시도했다.
“협력전 초기화 9시 3-9.”
영웅전기2의 컨텐츠 중에 하나인 협력전은 매일 밤 12시- 그러니까 자정에 초기화가 되었다.
9시는 9시 방향을 이야기했고, 3-9는 입구 좌표에서 9칸 아래- 즉, 18미터 아래를 의미했다.
따라서 유더의 말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았다.
‘자정에 우리집 정원 구석에서 만나자.’
솔직히 여간한 영웅전기2 플레이어도 알아먹기 힘든 이야기였지만, 썩은물 노란폭풍이라면 이해할 터였다.
그리고 과연 코델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말했다.
“양호 입감.”
제대로 알아들었다는 뜻의 무전 용어로, 노란폭풍 특유의 말투 가운데 하나였다.
“흠흠, 건강하신 것 같아 다행이네요. 오늘은 늦었으니 이만 물러가고··· 다음에 뵙겠습니다.”
“흠흠,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다음에 뵐 날을 기대하겠습니다.”
어차피 여기서는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가 없었다.
언제 어디서 만날지도 정했으니 그냥 빨리 뜯어지는 게 나았다.
코델리아와 유더가 서로 그리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서자 이번에도 당황한 것은 마이아와 여검사였다.
“버, 벌써 가신다고요?”
“아가씨?”
어찌나 놀랐는지 무표정이 기본인 마이아의 얼굴에도 놀란 기색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미 합의를 마치고 인사까지 나눈 유더와 코델리아였다.
유더는 어색하게 웃으며 노란폭풍- 아니, 코델리아를 배웅했고, 코델리아는 마찬가지로 어색한 미소와 함께 빠른 걸음으로 퇴장했다.
“도련님? 이게 대체······.”
“음, 그러게.”
이게 대체 무슨 일인 것일까.
하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확실했다.
유더 자신의 말을 믿고, 자신의 편이 되어줄 아군의 등장.
코델리아가 떠난 응접실 입구를 바라보던 유더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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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더 바이엘의 부친인 바이엘 백작은 후계자인 게일 바이엘, 그러니까 유더의 형과 함께 북부 원정에 나가 있는 상태였다.
원정이라 했지만 연례행사처럼 있는 북부 몬스터 토벌로, 출발부터 귀환까지의 기간이 한 달인 소규모 원정이었다.
어찌되었든 덕분에 그렇지 않아도 한산한 집안은 더욱 조용했다. 대부분의 가신들이 아버지와 형을 따라 원정에 나갔기 때문이다.
저녁식사를 방에서 홀로 해치운 유더는 자정이 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밤도 깊어 자정.
방에서 몰래 빠져나온 유더는 서둘러 정원으로 향했다.
시기상으로 보면 아직 여름이긴 했지만 괜히 북부가 아닌지 밤공기가 차가웠다.
‘제대로 찾아올 수 있겠지?’
약속한 장소인 커다란 나무 아래 선 유더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진짜 플레이아데스구나.’
하늘에는 달이 두 개 걸려 있었다.
셀레네와 헬레네.
밤하늘을 빛내는 쌍둥이 여신.
실제로 본 둘의 모습은 가상현실을 통해 볼 때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신비로웠다.
“야.”
바로 그 순간이었다. 돌연 들려온 아주 작은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 유더는 담벼락에 바짝 붙은 뒤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했다.
수도사들의 로브를 연상시키는 갈색 후드를 꾹 눌러 쓴 붉은 머리칼의 소녀였다.
“노란폭풍.”
“아웃복서009.”
작게 말하니 마찬가지로 작은 목소리가 돌아왔다.
그리고 풀썩.
플라이 마법으로 담벼락을 넘은 코델리아가 오만가지 감정이 뒤섞인 얼굴로 유더를 바라보았다.
“정말로 진짜?”
“어, 정말로 진짜.”
방금 서로 닉네임까지 확인했으니까.
“진짜 뭐같네.”
“뭐가?”
“너인데도 미친 듯이 반가운게.”
코델리아의 말에 유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완전히 다른 세계에 홀로 떨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아는 얼굴- 아니, 사람이 있으니 반갑기가 그지없었다.
“언제부터?”
“이틀 전. 너는?”
“나도 이틀 전.”
“눈 떠보니 갑자기?”
“일단은.”
유더와 코델리아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나무 아래 쪼그려 앉아 서로를 보았다.
다시 먼저 입을 연 것은 코델리아였다.
“야, 그런데 이런 건 남자가 와야 하는 거 아냐? 어떻게 여자애한테 남자 집 담벼락을 넘게 하냐?”
“이게 갑자기 웬 성차별이야. 그리고 너 유더 몰라? 유더 바이엘. 구음절맥. 내가 어떻게 담벼락을 넘냐?”
생각해보니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네가 언제부터 여자였다고 그러냐.”
“날 때부터.”
“응?”
“날 때부터라고, 미친놈아.”
코델리아의 고백 아닌 고백에 유더는 눈을 껌벅이더니 이내 당혹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노란폭풍이 여자였어?”
“그러는 넌 남자였냐?”
“나야 남자였지.”
“난 여자였어.”
“그, 그래.”
생각해보니 알고 지낸 게 벌써 5년이었지만, 그 흔한 보이스 채팅조차도 해본 적이 없는 사이였다. 게임에서 만났을 때야 당연히 게임 캐릭터로 만난 거니 알아볼 건덕지가 없었고.
“어찌되었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유더가 말하자 코델리아가 조금 인상을 쓰긴 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중요한 것은 아웃복서009는 유더가, 노란폭풍은 코델리아가 되었다는 것과, 이 세계가 영웅전기2의 세계라는 사실이었다.
유더는 일단 기본적인 것부터 맞춰보기로 했다.
“너도 그래? 그··· 게임 속에 들어왔다는 느낌이라기보다는 ‘전생’이 아웃복서··· 그러니까 노란폭풍이었던 것 같은.”
“나도 그래. 너도 그렇구나.”
얼핏 보면 별 차이가 없을지 모르지만, 사실 둘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했다.
귀환의 여부.
만약 정말로 영웅전기2의 세계인 플레이아데스에 다시 태어난 것이라면 ‘귀환’이란 종착지가 존재하지 않을 터였다. 애당초 다시 태어난 거니 어딜 돌아간단 말인가.
하지만 유더도, 코델리아도 그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만큼 스스로가 각자 유더와 코델리아라는 사실에 강한 실감을 느껴서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사안이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대소환제.””
천사들과 악마들이 본격적으로 강림하기 계기가 되는 이벤트.
처음에는 대환란의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도록 강해지는 것만을 염두에 뒀지만 역시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이 세계에 파멸을 야기할 대소환제 자체를 막아야만 했다.
물론 막막한 이야기였다.
천사들과 악마들의 강림은 플레이아데스라는 세계에 있어 실로 운명과도 같은 일이었으니까.
아무리 썩은물인 유더라 할지라도 혼자서는 절대로 무리였다.
하지만 혼자가 아닌 둘이라면.
그것도 서버 랭킹 1위와 2위가 함께라면.
“거기다 픽이 좋아.”
유더 바이엘과 코델리아 체이스.
둘 다 사기캐와는 거리가 먼 비주류 캐릭터들이었지만, 유더가 말하는 픽은 단순히 성능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코델리아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나눠먹기 딱 좋네.”
“빙고.”
유더는 무인이었고, 코델리아는 마법사였으니까.
세상 모든 재화가 그러하듯이 플레이아데스 내에 존재하는 각종 기연과 아이템들의 숫자 역시 한계가 존재했다.
만약 유더와 코델리아가 같은 길을 걷는 캐릭터였다면 필연적으로 서로가 서로의 성장에 방해가 될 수밖에 없을 터였다.
하지만 둘은 무인과 마법사였고, 그렇기에 코델리아 말마따나 사이좋게 플레이아데스의 재화들을 나눠먹을 수 있었다.
“5년 동안 한 번도 안 했던 파티를 여기서 하게 될 줄이야······.”
“그러게, 세상 일 참 얄궂단 말이지.”
게임 속 세상에서 환생한 것도 황당한데 만년 2등 녀석이랑 같이 환생하다니. 그것도 약혼 관계로.
“아무튼, 이렇게 된 거 일단 협력 좀 부탁해.”
“무슨 협력?”
“구음절맥 치료해야지.”
“그거 이벤트로 자동 치료되지 않아?”
그랬다.
유더 바이엘로 시작하고 어찌어찌 반년을 보내고 나면 체이스 백작가에서 구음절맥의 치료제를 구해 바이엘 백작가로 보내는 이벤트가 발생하게 되어 있었다.
즉, 그냥 얌전히 기다리기만 하면 구음절맥을 치료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코델리아의 물음에 유더는 끌끌끌 혀를 차며 말했다.
“그러니 만년 2등이지.”
“뭐야?”
“야, 솔직히 말해봐. 너 유더 플레이 안 해봤지?”
“아니거든? 해봤거든? 해봐서 치료되는 것도 알고 있는 거거든?”
“그런데 그런 말이 나오냐? 그냥 반년 기다려서 치료받자는 말이?”
반년이면 6개월, 6개월이면 180일, 180일이면 자그마치 4320시간.
허송세월로 날려보내기에는 너무나 긴 시간이었다.
유더의 지적에 코델리아는 인상을 쓰며 대꾸했다.
“그럼 어떡하라고.”
“그전에 치료해야지. 갖은 꼼수를 동원하여.”
고인물을 넘어 썩은물의 경지에 오른 자신들만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가까이 와봐.”
새삼 코델리아에게 손짓한 유더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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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장 - 플레이아데스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