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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메이커-3화 (3/473)

< 제1장 - 플레이아데스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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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음절맥이란 타고난 음기가 너무 강해 전신 혈맥에 이상이 생겨 기의 순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 하는 체질을 의미했다.

때문에 구음절맥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전신 혈맥을 막고 있는 음기를 한 번 해소해줄 필요가 있었는데,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구음절맥의 극음에 대비되는 극양의 힘이었다.

“반년 뒤에 유더가 먹는 게 뭔지는 알지?”

“알지. 태양화리잖아.”

“올, 역시 괜히 2등이 아닌데?”

“흠흠, 내가 좀···이 아니라 너 자꾸 2등, 2등하면서 신경 건들래?”

코델리아가 눈매를 날카로이 하며 경고했지만 유더는 능글능글 웃을 뿐이었다.

그냥 채팅창에서 놀릴 때도 재미있었는데, 노란폭풍이 절세미소녀가 되어 표정까지 보여주니 더 재미있어진 탓이었다.

“뭐, 어찌되었든 너도 알다시피 태양화리는 극양의 힘을 품은 잉어야.”

“그래서, 태양화리 잡으러 낚시라도 가자고?”

“너 진짜 서버 2등 맞니?”

“맞거든? 내가 서버 2등이거든?”

“그래, 나는 1등이고.”

코델리아가 꽉 쥔 주먹을 부들부들 떨자 유더는 바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갔다. 뭐든지 강약조절이 중요한 법이었다.

‘그리고··· 이 녀석은 나랑 계통이 좀 달랐으니까.’

나란히 서버 1위와 2위를 독식하던 아웃복서009와 노란폭풍이었지만, 사실 플레이 스타일 자체는 완전 다른 길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는 공략파였고, 얘는 걍 싸움꾼이었지.’

아웃복서009가 게임 내에 존재하는 인물, 이벤트, 아이템 등을 극한까지 파고들어 업적 점수를 획득하는 공략파였다면 노란폭풍은 그냥 사냥을 많이 해서 점수를 올리는 극한의 전투파였다.

물론 둘 모두 썩은물인만큼 아웃복서009도 전투를 잘 했고, 노란폭풍 역시 영웅전기2에 대해 알만큼 알았지만 그래도 역시 전공 분야가 다르다는 느낌이었다.

‘어찌되었든.’

잡념을 머릿속에서 지운 유더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극양의 힘을 가진 아이템을 손에 넣으면 훨씬 더 빨리 구음절맥을 치료할 수 있어.”

“그건 나도 알겠는데, 주변에 그런 게 있던가?”

코델리아가 미간을 찌푸리며 기억을 더듬었다.

극양의 아이템이라면 유더 말마따나 태양화리 말고도 제법 숫자가 되었지만, 지금 시점의 유더와 코델리아가 자력으로 구할 수 있는 게 있을지 의문이었다.

“하나 있어. 그것도 가까운 곳에. 이쯤하면 너도 알겠지?”

“응? 어··· 음··· 아, 그거구나. 그거. 음, 그게 있었네.”

코델리아가 누가 봐도 어색한 국어책 읽기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거. 그러니 그거 처리하게 좀 도와줘. 그거니까 뭐 준비해야하는지 알지?”

“아, 알지. 응, 알아.”

알긴 뭘 아니. 하나도 모르는 게 눈에 보이는데.

끌끌끌 혀를 찬 유더는 그냥 정답을 말해주기로 했다. 놀리는 게 재미있기는 했지만, 시간이 무한정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라이제강이 가진 태양의 목걸이를 쓰면 될 거야.”

“그래, 라이제강의 태양의 목걸이를 쓰··· 라이제강?! 악마 라이제- 읍읍!”

깜짝 놀란 코델리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목소리를 높이려 했지만 다행히 중간에 커트할 수 있었다.

급히 코델리아의 입을 틀어막은 유더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야, 우리 지금 몰래 만나고 있는 거거든?”

그것도 자정, 야심한 시각에.

아버지 따라 집안사람 대부분이 원정 나가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방금 소리를 듣고 누군가가 다가왔을 터였다.

“진정했어? 진정했으면 손 뺀다?”

유더의 물음에 코델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놓는다.”

“푸화-! 야, 너 지금 진짜 라이제강 이야기한 거야? 붉은 달의 악마 라이제강?”

유더가 손을 빼자마자 코델리아는 낮은 목소리로 빠르게 물었다. 어이가 없다는 얼굴이었다.

“맞아, 붉은 달의 라이제강.”

“미쳤어? 걜 지금 어떻게 잡아. 레벨이 깡패인 것도 몰라?”

붉은 달의 라이제강.

세일룬 왕국 북부에 봉인되어 있는 악마로, 영웅전기2 중반부에 등장하는 중간보스들 가운데 하나였다.

코델리아의 말마따나 아무리 고인물을 넘어 썩은물의 경지에 접어든 아웃복서009와 노란폭풍이었지만 게임을 막 시작한 거나 다름없는 지금의 전력으로 놈을 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유더 역시 인정했다.

“맞아, 그걸 어떻게 잡냐. 그런데 역시 노란폭풍답네. 머리가 꼭 잡는 걸로만 돌아가고.”

“태양의 목걸이가 필요하다며. 그거 라이제강 드랍템이잖아.”

지금으로부터 오백년 전, 붉은 달의 라이제강을 봉인한 것은 태양의 성기사 가리우스였다.

라이제강은 봉인당하기 직전 마지막 발악으로 가리우스의 목숨을 취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가리우스가 가지고 있던 태양신의 성물인 태양의 목걸이가 라이제강과 함께 봉인되고 말았다.

이미 가리우스까지 죽은 마당이었기에 태양신의 사제들은 태양신의 성물이 라이제강의 힘을 약화시켜줄 거라 믿으며 봉인진을 완성하였고, 덕분에 태양의 목걸이는 라이제강의 드랍템이 되고 말았다.

“죽이지 않고 템만 뺏는다.”

“어떻게? 그리고 애당초 봉인을 풀어야 라이제강이 나오는 거 아냐? 그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고? 나 아직 1성 마법사 밖에 안 된단 말이야.”

“그래, 그리고 나는 구음절맥이라 마을사람A만도 못 하고. 그러니 벨라스틴의 마법진을 쓴다.”

“벨라스틴의 마법진?”

“벨라스틴의 마법진. 그걸 사용하면 봉인의 힘을 유지한 채 라이제강만 잠깐 불러내는 게 가능할 거야. 우린 봉인 때문에 꼼짝도 못 하는 놈한테서 태양의 목걸이만 뺏은 뒤에 다시 봉인시키면 되는 거지.”

“말···은 되는 거 같은데······.”

벨라스틴은 영웅전기 후반부에 두각을 드러내는 강력한 결계술사였다. 그의 결계 마법진을 적절히 잘 응용하면 유더의 말처럼 라이제강의 봉인을 유지한 채 결박된 놈의 본체만 잠시 불러내는 것이 가능할 터였다.

“그···런데.”

“그런데?”

“그··· 엄청 복잡하지 않아? 그 마법진?”

코델리아도 예전에 공략 사이트에서 한 번 지나가다 본 적이 있었다. 봉인된 악마 조지기에 딱 좋은 마법진이라고 소문이 났지만, 바로 옆에 두고 따라 그리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로 복잡해서 포기한 물건이었다.

코델리아의 물음에 유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알지. 라이제강한테 삥도 이미 몇 번 뜯어봤고. 아, 설마 너 못 그려?”

“아, 아니거든? 나도 그릴 수 있거든? 몇 번이나 그려봤거든? 나도 다 외우고 있거든?”

“그렇지? 응, 그럴 거야. 서버 2등인데 아무렴. 설마 그거 하나 못 외우겠어?”

유더가 어깨를 팡팡 두드리며 신뢰 가득한 눈빛을 보내자 코델리아는 울 것 같은 얼굴로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와, 얘 얼굴에 다 드러나네.’

왜 보이스 채팅을 안 했는지도 알 것 같았다. 거짓말은 절대로 못 하는 타입 같았다.

“그래, 일단 마법사는 너니까 그리는 것도 너한테 부탁할게. 진짜 든든하네, 든든해. 너만 믿는다, 노란폭풍.”

“으··· 으응. 나, 나만 믿어. 응. 나만······.”

자신 없는 투로 억지 미소를 짓는 코델리아의 모습이 실로 장관이었다.

“아무튼 그럼 라이제강이 가진 태양의 목걸이를 첫 번째 퀘스트 목표로 삼자고.”

“근데 좀 멀지 않아? 야밤에 잠깐 다녀오는 건 무리 같은데.”

라이제강이 봉인된 장소는 벨카인 산맥 중턱의 버려진 사원이었다.

바이엘 백작가와 체이스 백작가가 위치한 변경 도시에서 가깝다고는 해도 마차로 반나절 정도는 가야 하는 거리에 있었다.

“응, 그래서 생각해봤는데. 이것도 해결책이 있더라고.”

“어떤?”

“너랑 나랑 일단은 약혼한 사이잖아?”

“그, 그렇긴 한데?”

약혼이란 말에 코델리아가 슬쩍 몸을 뒤로 뺐고, 유더 역시 어색하기 짝이 없는 표정이 되었다.

노란폭풍과 약혼이라니.

결혼을 약속한 사이라니.

어쩐지 현기증이 날 것만 같았지만, 어찌되었든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이용하는 것이야말로 올바른 공략자의 마음가짐이었다.

“그러니까 데이트하자.”

“데이트?”

“마차 타고 데이트.”

“누가? 너, 너랑 내가?”

“너랑 내가. 아웃복서랑 노란폭풍이. 1등이랑 2등이 사이좋게.”

채팅방 인간들이 이 상황을 보면 무어라 할까.

코델리아는 그렇지 않아도 하얀 얼굴을 더욱 하얗게- 한 마디로 소름 돋는 표정이 되어 딱딱하게 굳었고, 유더는 비슷한 표정을 지어주었다.

“아, 그런데 슬슬 타임 리미트 오는 거 같다.”

“타임 리미트?”

“응, 나 구음절맥이잖아.”

밤공기 좀 오래 쐬었더니 벌써부터 손발이 차가워지는게, 이대로 밤이슬 맞았다가는 그대로 뻗어버릴 것 같았다.

“괘, 괜찮아? 힐이라도 해줄까?”

“해주면 고맙지. 그런데 너 마법은 어떻게 쓰냐? 마법 쓰면 어때? 좋아? 게임이랑 좀 다르겠지?”

“많이 다르지. 신기하고. 음, 실로 환상적이야.”

구음절맥을 타고나 빌빌 거리는 유더 바이엘과 달리 코델리아 체이스는 시작 시점부터 제법 기틀이 닦인 마법사였다.

당장 담장을 넘기 위해 플라이 마법을 사용하기도 했고.

정원에 도착한 이후 내내 유더에게 휘둘린 탓인지 질리거나 약한 표정만 짓던 코델리아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활짝 웃었다.

“후후후, 이 몸의 힐을 받아보렴.”

“그, 그래.”

코델리아는 유더의 이마에 손을 얹더니 눈을 감고 주문을 외웠다. 코델리아의 아름다운 외모와 손에서 일어나는 녹색 빛이 어우러지니, 그녀의 말마따나 실로 환상적인 그림이 그려졌다.

“어때? 효과 좀 있지?”

“그러게. 숨 쉬기가 좀 편해졌어.”

이 정도면 방까지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난 일단 돌아가 볼게.”

코델리아가 다시 후드를 뒤집어썼다. 바이엘 백작가와 체이스 백작가가 이웃해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수준은 아니었으니 돌아가는데도 시간이 꽤나 걸릴 것 같았다.

“미안, 절맥만 치료하면 내가 너희 집 담장을 넘도록 해볼게.”

“됐거든? 데, 데이트 신청이나 잘 해. 알았지?”

데이트 신청.

“저기, 이왕이면 라이제강 공략 퀘스트라 하지 않을래?”

“그, 그래. 그게 정신건강상 좋겠다.”

유더와 코델리아는 나란히 일어섰고, 서로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럼, 간다. 잘 자고.”

“그래, 너도 잘 자고. 내 꿈 꿔라.”

습관처럼 던진 인사말에 가운데 손가락으로 응답한 코델리아는 훌쩍 날아올라 담벼락을 넘었다.

“하, 진짜 마법이네.”

마법은 물론이고 천사와 악마가 실존하는 세계.

잠시 코델리아가 사라진 담벼락을 바라보던 유더는 벨카인 산맥이 있는 방향을 돌아보았다.

붉은 달의 라이제강과 태양의 목걸이.

공략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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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장 - 플레이아데스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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