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딩메이커-4화 (4/473)

< 제1장 - 플레이아데스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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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신음과 함께 깨어난 유더는 생각했다.

‘진짜 허약해.’

코델리아에게 힐을 받기는 했지만 역시 구음절맥은 구음절맥.

자고 일어나니 평소보다 몸이 무겁고 머리도 어지러웠다.

‘역시 서둘러야해.’

반년은커녕 한 달도 기다릴 수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구음절맥을 치료해야 했다.

‘시간이 없어.’

대소환제까지는 아직 몇 년이란 시간이 남아있었지만 문제는 대소환제만이 아니었다.

영웅전기2에 배치되어 있는 각종 기연들과 아이템들.

그것들은 문자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즉, 유더나 코델리아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손에 넣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애당초 영웅전기2에서도 특정 기한을 놓치면 생각지도 못 했던 인물이 기연이나 아이템을 손에 넣는 경우가 많았으니, 모든 것이 현실화된 이 세상이라면 더더욱 그럴 터였다.

정원에서 밤 산책을 조금하는 것만으로도 컨디션이 망가지는 지금의 몸으로는 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 제한되었다.

한시라도 빨리 건강한 몸으로 다시 태어난 뒤 최적화 공략을 시작해야만 했다.

‘좋아, 일단 데이트 신···청이 아니라 퀘스트 공략 신청부터 하자.’

코델리아가 제안을 받아들여 마음의 평화를 애써 유지한 유더는 침대에서 일어나 아침 일과를 시작했다.

기상, 세면, 식사.

평소라면 여기에 부모님께 문안인사 드리기가 끼어있었겠지만 지금은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저택을 비우신 상태였다.

‘덕분에 퀘스트 신청하기도 편하다 이거지.’

마차까지 타고 나가는 본격적인 데이- 아니, 소풍이니 평소라면 유더의 약한 몸 때문에라도 허락 받는 것 자체가 난항일 터였다.

‘물론 지금도 쉬울 것 같지는 않지만.’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온 유더는 슬쩍 옆을 돌아보았다. 어제 코델리아와 나눈 의문의 대화 때문인지 마이아의 시선이 평소와는 달랐다.

걱정과 우려, 도련님이 진짜 정신이 이상해지신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 등등이 섞인 눈빛이었으니 말이다.

‘이 와중에 코델리아에게 마차 데이트를 제안하고 싶다고 해야 하는 건가.’

그러고 보니 대체 어떻게 신청을 해야 하는 것일까.

현실처럼 메신저로 약속 장소 정하고 대화 좀 하다 당일날 딱 만나면 되는 것도 아닐 텐데.

‘아니, 비슷하려나.’

유더의 기억대로라면 만남을 청하는 편지를 써서 체이스 백작가에 보내고, 이를 체이스 백작가와 코델리아가 허락하면 다시 시일을 정해 만나면 되는 것이었으니까.

‘한 이틀 걸리겠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약혼한 상태이기는 해도, 아직 둘 다 미성년에 한쪽은 몸까지 약했으니까.

“저기, 마이아.”

“예, 도련님.”

“그··· 내가 말이야.”

“네, 도련님.”

“그··· 노란··· 아니, 코델리아 양에게 퀘스트를 신청- 아니, 데···이트를 제안하고 싶거든? 그··· 뭐, 근처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마차 타고 마실도 나가고······ 어, 어제! 맞아, 어제 병문안 오셨는데 좀 제대로 이야기도 하지 못 했고.”

어째서 다른 누구도 아닌 노란폭풍과 마차 데이트를 나가고 싶다는 말을 이런 식으로 해야만 하는 것인가.

당장 깊은 고뇌에 빠지고 싶어진 유더였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마음의 괴로움이 아닌 마이아의 조력이었다.

아무리 부모님이 모두 자리를 비우셨다고 해도 유더 마음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가문 내에서 명망도 높고 인정도 받는, 유더에게는 사실상 누나나 다름없는 마이아의 조력 없이는 저택 밖으로 나가는 것이 불가능했다.

때문에 유더는 긴장어린 눈으로 마이아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그렇잖아도 요 며칠 ‘헛소리’를 잔뜩 늘어놓았는데 집에서 안정이나 취하라고 하면 어쩔 것인가.

‘제발, 제발 마이아!’

내 입으로 노란폭풍이랑 데이트하고 싶다는 말을 또 하게 만들지 말아줘!

유더의 간절한 마음이 통한 것일까.

마이아는 차가운 표정 대신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준비해보죠.”

그리고 다시 웃는데, 뭐랄까.

그랬구나, 사실 코델리아랑 더 가까워지고 싶었던 거구나. 어제는 부끄러워서 그랬던 거구나, 우리 도련님 다 큰 줄 알았는데 아직이었구나. 아니, 다 커서 이런 건가? 우후후- 같은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기분이랄까.

‘흑흑, 아니거든? 지금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거든?’

하지만 대놓고 부정할 수는 없는 유더의 처지였다.

“그럼 어서 코델리아 양에게 보낼 초대장을 쓰도록 하죠. 첫 문장은 역시 사모하는 코델리아 양이 어떨까요?”

마이아 탄탈롯.

유더 바이엘의 전속 메이드.

평소 차가운 표정 때문에 얼음공주라는 이명으로 불리지만 실상은 오지랖 넓은 팔불출 아가씨.

“그, 그래······.”

긴 한숨과 함께 수긍한 유더는 펜을 들었고, 노란폭풍에게 전할 사랑의 편지를 적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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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틀 뒤.

체이스 백작가를 출발해 바이엘 백작가를 경유한 이두 마차가 벨카인 산맥과 이어진 가도 위를 경쾌하게 달렸다.

마차 안에 타고 있는 것은 네 사람.

둘은 바이엘 백작가의 차남인 유더 바이엘과 전속 시녀인 마이아 탄탈롯이었고, 나머지 둘은 체이스 백작가의 차녀인 코델리아 체이스와 호위무사인 달리아 에일이었다.

양 가문의 사람들은 서로 마주보는 형태로 자리를 잡았다.

즉, 유더의 반대편에는 코델리아가 앉아 있었다.

‘싫으냐? 나도 싫으다.’

유더가 보낸 사랑의 편지에 코델리아 역시 답장을 해야 했으니까.

마차 타고 같이 마실도 나갈 정도의 사이인 만큼 코델리아의 편지 역시 사랑의 편지였다.

‘그래, 내가 네 마음 알지.’

나도 편지 쓸 때 똑같은 심정이었으니까.

하지만 유더는 한숨을 내쉬는 대신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렸다. 눈앞에 자리한 코델리아의 모습 때문이었다.

‘완전 풀세팅이구만.’

약혼자와 꽃구경을 가는 상황이었으니까.

햇살을 막기 위한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코델리아의 분홍에 가까운 붉은 머리칼이 도드라지도록 하얀 드레스를 입었는데, 치마가 길고 레이스가 주렁주렁 달린 무거운 드레스였다.

물론 어울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코델리아는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절세미소녀였으니까.

솔직히 노란폭풍인 걸 떼어놓고 외모만 보았을 때는 절로 박수갈채가 나올 정도로 예쁘고 귀여웠다.

‘그래, 노란폭풍만 아니라면.’

눈앞의 절세미소녀가 씨발을 감탄사라 주장하는 노란폭풍이라 생각하니 자꾸만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뭐, 나도 똑같은 상황이지만.’

유더 역시 가능한 모든 치장을 다하고 나온 상황이었다. 더욱이 유더 또한 절세미소년. 그래서 그런지 자신을 보는 코델리아의 뺨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역시 노란폭풍. 본능에 충실하구나. 아주 그냥 짐승이야, 짐승.’

‘아니거든? 그런 거 아니거든? 그러는 너야말로 눈이 아주 벌개졌거든?’

눈빛만 한 번 교환했을 뿐인데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마이아와 달리아는 각기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잘 어울리는 한 쌍이야.’

‘두 분 모두 귀여우셔라.’

서로를 보며 으르렁거리고 비웃는 것을 부끄러운 시선 교환이라 착각한 두 사람의 표정엔 더욱 더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렇게 반나절여.

마차는 마침내 목적지인 벨카인 산맥 중턱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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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날씨가 참 좋죠?”

“그러게요. 꽃이 참 예쁩니다. 무, 물론 코델리아 양만큼은 아니지만요.”

“어, 어머나. 싫어라. 그렇게 놀리시면······.”

어색한 국어책 읽기를 주고받으며 발걸음을 내딛기를 몇 분.

흐뭇하게 바라보는 마이아와 달리아로부터 겨우 거리를 벌린 두 사람은 어느 순간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씨발, 진짜 못 해 먹겠네.”

“씨발하는 건 상관없는데, 웃으면서 해라. 표정은 보이니까.”

“어머나, 씨발. 진짜로 씨발. 못 해 먹겠네 씨발.”

씨발씨발 거리는 절세미소녀의 모습에 참담함을- 동시에 살짝이지만 씨발 거리기 전의 모습에 두근거렸다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낀 유더는 어지러움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어찌되었든, 일단 여기까지는 왔어.”

“근데 이제 어떡할 거야? 여기서 봉인지까지는 거리가 꽤 되잖아.”

“생각이 있어. 그보다 준비물은 다 챙겨왔어?”

“흥, 당연하지. 날 누구라 생각하는 거야?”

“서버 2등 노란폭풍.”

“그래, 내가 바로 서버··· 죽는다? 아니, 나 그냥 돌아간다?”

“아유, 우리 2등님 화내지 마시고. 뒤에서 쳐다보니 미소도 잃지 마시고. 자, 스마일?”

스마일 대신 가운데 손가락을 세운 코델리아는 웃으며 유더를 노려보았고, 유더는 헛기침을 한 뒤 말했다.

“아무튼 챙겨왔구나.”

“흥, 치마 안에 숨겨 오느라 개고생했거든?”

그러면서 살짝 치맛단을 흔들었다.

“좋아. 역시 노란폭풍. 믿고 있었어. 이래야 우리 노란폭풍이지.”

“딱히 네 노란폭풍 할 마음 없으니까 작전부터 말해봐. 여기서 봉인지까지 어떻게 갈 생각인 거야?”

단 둘이 나온 거면 모를까, 마이아와 달리아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는 상황이었다.

유더는 슬며시 몸을 움직여 마이아와 달리아를 완전히 등진 뒤 소리 죽여 말했다.

“간단해. 저기 절벽 보이지?”

“보여. 꽃밭의 끝.”

“저 근처까지 간 다음에 네가 날 데리고 확 뛰어내리는 거야.”

미친 소리에 가까웠지만 노란폭풍은 수긍했다. 아웃복서009가 ‘맵’을 가지고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건 다 수가 있다는 소리였으니 말이다.

“절벽 밑에 비밀 통로라도 있어?”

“비밀 통로까지는 아니고, 10미터쯤 내려가면 절벽 밑에 길이 있어. 그쪽 길을 이용해서 봉인지까지 가는 거야.”

여기까지 오면서 이런저런 지형을 확인해본 유더였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확신했다.

아주 약간의 차이가 존재하긴 했지만, 일단 큰 틀에서는 영웅전기2와 이 세계의 지형이 일치했다.

물론 고인물을 넘어 썩은물의 경지에 오른 유더이기에 가능한 확신이었지만 말이다.

“마이아랑 달리아가 쫓아오지 않을까?”

“10미터나 되니까 섣불리 내려오진 못 할 거야. 그리고 그것도 나름 해결책이 있어.”

“뭔데?”

코델리아의 물음에 유더는 바로 답하는 대신 잠시 뜸을 들였다. 답답해진 코델리아가 언제나처럼 특유의 감탄사를 토하려는 순간에나 입을 열었다.

“일단 한 가지 약속부터 해.”

“무슨 약속?”

“내 말 듣고 지랄 안 한다는 약속. 나 때리지도 말고.”

“···어디 한 번 말씀해 보시지.”

“약속한 거다?”

“그래, 대체 뭔데 그래?”

“그러니까······.”

유더가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꽃밭 가장자리.

슬쩍 등 뒤를 돌아본 유더가 코델리아에게 신호를 보냈다.

‘바로 지금!’

미리 약속한대로 코델리아가 불쑥 유더의 손을 잡았다. 그 과감한 스킨십에 지켜보던 마이아와 달리아가 어머머 소리를 내며 깜짝 놀랐지만, 아직 더 놀랄 일이 남아 있었다.

“뛰어!”

유더와 코델리아가 절벽의 가장자리를 향해 달렸고, 미처 말릴 틈도 없이 도약했다.

“도련님?!”

“아가씨?!”

아니, 이미 약혼자인 것들이 지금 뭐하는 짓거리란 말인가. 이번 생에 이루지 못 한 사랑 다음 생에 이루자는 것도 아니고.

어찌되었든 화들짝 놀란 마이아와 달리아는 눈 깜짝할 사이에 절벽의 가장자리에 도착했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안도의 숨을 토했다.

유더를 품에 안은 코델리아가 플라이 마법으로 지면에 안착하는 광경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도련님!”

“아가씨!”

각기 목소리를 높인 마이아와 달리아는 안전부절 못 하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내려갈 길을 찾기 위함이었다.

‘역시!’

달리아는 플라이 마법을 쓸 줄 몰랐다.

유더는 급히 코델리아를 재촉했고, 코델리아는 완전히 빨개진 얼굴로 소리쳤다.

“유, 유더 공자와 둘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 저녁 전에는 돌아갈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걱정하지 말고!”

“아가씨!”

달리아가 대경실색해 외쳤고, 유더는 다시 한 번 코델리아를 재촉했다.

“빨리! 빨리 다음 대사!”

“이, 이상한 짓은 안 할 거야! 그러니까 걱정 하지 마! 유, 유더 공자는 신사니까!”

이 정도면 되었다.

어차피 이곳에 있는 건 마이아와 달리아뿐이었으니까. 체이스 백작가의 마부는 저만치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낮잠을 자고 있으니 마이아와 달리아만 입을 다물면 구설수도 나지 않을 터였다.

어찌되었든 마이아와 달리아에게서 거리를 두는 데 성공했고, 시간을 벌기 위한 변명(?) 역시 마쳤다. 이제는 재빨리 봉인지로 향하는 일만 남은 셈이었다.

“가자! 빨리!”

유더의 재촉에 코델리아는 재빨리 반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분.

마이아와 달리아가 완전히 보이지 않는 곳까지 이동하고나자 코델리아가 노성을 터트렸다.

“아, 진짜! 왜 내가 해야 하는데! 아니, 절벽에서 뛰어내릴 때 안는 것도 나고, 변명하는 것도 나고, 이러면 내가 널 덮치는 거 같잖아!”

말해놓고도 끔찍하다는 얼굴이었다.

그런 코델리아를 위해 유더는 최대한 침착한 어조로 설명했다.

“이미 한 번 말했다시피, 나는 구음절맥이잖아. 내가 이 가는 팔로 널 어떻게 안겠니. 그리고 내가 널 어떻게 덮쳐. 네가 날 덮쳐야 그나마 말이 되지. 왜이래, 나 구음절맥 걸린 남자야.”

“그놈의 구음절맥! 구음절맥! 구음절맥 낫기만 해봐!”

“그래, 나으면 내가 안아줄게, 덮치기도 하고.”

“됐거든? 미친놈이 뭐라는 거야.”

“그래, 그래. 아무튼 이제 좀 풀렸지? 그럼 서두르자.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으니까.”

마이아와 달리아가 정말 손 놓고 기다릴 가능성은 한 없이 0에 수렴했다. 두 사람이 자신들을 찾기 전에 일을 끝마쳐야 했다.

“하아, 진짜. 구음절맥 낫기만 해봐.”

“그래, 낫기만 하면 구워먹든 삶아먹든 마음대로 하고, 일단 봉인지부터 가자.”

“앞장 서.”

“따라오시죠.”

주변 지형을 슥하니 돌아본 유더가 성큼성큼 발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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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장 - 플레이아데스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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