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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메이커-10화 (10/473)

< 제2장 - 던전 북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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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전기2의 최고 득점자는 누가 뭐라 해도 서버 랭킹 1위에 빛나는 아웃복서009였다.

하지만 영웅전기2에서 사냥을 가장 많이 한 사람은 서버 2위인 노란폭풍이었다.

‘사냥한 몬스터 숫자만 따지면 노란폭풍이 아웃복서 두 배는 족히 될 걸?’

영웅전기2에서 가장 많은 전투를 경험해본 자.

하지만 그런 노란폭풍도 실제로 전투를 경험해본 적은 없었다.

‘라이제강은 노카운트니까.’

봉인 때문에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태였고, 솔직히 그때는 레벨 업 때문에 코델리아 자신이나 유더나 제정신이 아니기도 했으니 말이다.

어찌되었든 첫 실전.

때문에 상상 이상으로 긴장한 코델리아였지만 의외일 정도로 수월하게 전투를 진행할 수 있었다.

‘너무 편해.’

바루나의 던전 북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나오는 것은 초반답게 고블린 계열의 몬스터들이었지만 평범한 놈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방마다 다른 속성의 고블린들이 등장했고, 놈들의 레벨 역시 낮지 않았다.

영웅전기2로 계산하자면 대략 10레벨 전후.

유더와 코델리아보다 레벨이 거의 두 배 가까이 높은 몬스터들이 속성과 특성을 모두 달리하며 등장하고 있으니, 그 난도가 가히 나이트메어 모드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란폭풍은 편안함을 느꼈다.

‘손발이 너무 잘 맞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러했다.

더욱이 아웃복서009는 지금까지 노란폭풍이 경험해본 그 어떤 서포터보다도 완벽한 서포트 플레이를 했다.

검은 가면을 쓴 암흑 속성의 고블린들이 나타나자마자- 아니, 나타나기도 전에 유더는 이미 암흑 속성의 상극이 되는 빛 속성의 마법진을 찢고 있었다.

우르르 나타난 고블린들은 빛의 속성력이 깔린 바닥에 발을 딛자마자 진한 피로를 느끼며 흐느적거리기 시작했고, 코델리아는 놈들이 제대로 접근하기도 전에 매직 미사일을 퍼부었다.

물론 이것만이 아니었다.

유더는 코델리아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꿰뚫어 보았다.

마력이 달린다 싶으면 등 뒤에서 어느새 마나 포션이 날아왔고, 특정 마법진이 필요하다 싶으면 유더가 등 뒤로 바짝 다가와 마법진을 쥐어주고 빠졌다.

그러다보니 자연 유더와 코델리아의 사냥은 마치 오랜 세월 손발을 맞춰온 의사와 간호사의 수술처럼 신속한 동시에 정교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락 인상을 구긴 노란폭풍은 노성을 터트렸다.

“야! 막타만 먹지 말라고!”

이러나저러나 상대 몬스터들의 레벨은 평균 9에서 10.

코델리아의 두 배에 가까운 만큼 한 방에 쓰러트리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고, 자연 죽기 직전 상태로 비실거리는 놈들의 숫자 역시 상당했다.

그리고 그런 놈들이 나타날 때마다 유더는 얄미울 정도로 완벽하게 막타를 꽂아 넣었다.

‘활이랑 손도끼는 또 언제 챙겨 온 거야!’

더욱이 명중률이 상당했다.

누가 천무지체 아니랄까봐 몸으로 하는 일에는 죄다 능숙한 유더였다.

“끼에엑!”

손도끼에 가슴을 강타당한 고블린이 외마디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코델리아의 매직 미사일을 맞고 비틀거리던 녀석이었다.

유더가 양념하고 코델리아가 한 방을 먹이면 다시 유더가 마무리 한다.

호흡 그 자체만 보면 완벽했지만 뭐랄까, 이건 유더가 아니라 코델리아 자신이 서포팅을 하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이러나저러나 경험치 자체는 막타를 친 사람이 제일 많이 먹는 구조였으니 말이다.

“또 온다!”

고블린 가슴에 박힌 손도끼를 끙끙 거리며 뽑아낸 유더가 정면을 보며 소리쳤다.

지금까지 나타난 고블린보다 덩치가 두 배쯤 되는 홉 고블린이 괴성을 지르며 돌진해 왔다.

“그리스!”

코델리아가 지면을 가리키며 외쳤다. 막무가내로 돌진해오던 홉 고블린은 갑자기 미끄러워진 바닥을 밟고 성대하게 나자빠졌고, 다시 한 번 유더가 소리치며 마법진을 찢었다.

“바인드!”

보이지 않는 밧줄이 나자빠진 홉 고블린의 사지를 옭아맸다. 홉 고블린의 괴력을 생각하면 오래 버티지 못 할 터였지만, 어차피 필요한 것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다.

유더는 짧은 숨을 토했다. 손도끼를 고쳐 쥐며 돌진했고, 코델리아는 그런 유더를 보는 대신 빠르게 주문을 읊조렸다.

“으랏샤!”

유더는 코델리아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태양의 목걸이 덕분에 구음절맥을 치료하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허약하기 짝이 없는 유더의 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최소한의 근력은 있었다.

그렇다면 그 최소한의 근력으로도 치명타를 가할 수 있는 곳을 공격하면 그만이었다.

“끄아아아아아아아-!”

가랑이 사이에 손도끼가 찍힌 홉 고블린이 자지러지는 비명을 질렀다. 몸부림이 어찌나 심한지 바인드 마법이 단번에 깨져나갈 지경이었다.

“웁스!”

공격한 본인이었지만, 홉 고블린의 발길질을 피해 바닥을 구르던 유더는 저도 모르게 사타구니 사이에 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코델리아가 주문을 완성했다.

“파이어- 애로우!”

무 속성인 매직 미사일과 달리 불의 속성력이 가득 실린 불꽃의 화살.

아직 1성 마법사인 코델리아에게는 제법 시간이 필요한 마법이었다.

“크아!”

불꽃의 화살이 홉 고블린의 사타구니 사이에 다시 한 번 내리 꽂혔고, 요동치던 홉 고블린이 어느 순간 컥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을 늘어트렸다.

연이은 충격에 의한 쇼크사였다.

“후우··· 후우··· 후······.”

새하얀 빛의 고리에 감싸인 코델리아가 거친 숨을 토하며 주저앉았고, 유더 역시 안도의 숨을 토했다.

“중보까지 끝. 이제 보스방만 남았어.”

아예 대자로 뻗어버린 유더의 말을 들으며 코델리아는 눈을 감고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아냈다.

다섯 시간.

여기까지 오는데 걸린 시간이었다.

물론 중간중간 휴식 시간을 가지기는 했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지칠 수밖에 없는 강행군인 것만은 분명했다.

‘과연 노란폭풍.’

차오른 숨을 달래며 상체를 일으켜 세운 유더는 저만치에 주저앉아 헉헉 거리는 코델리아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마 함께 온 것이 노란폭풍이 아닌 다른 누군가였다면 다섯 시간 만에 여기까지 오지는 못 했으리라.

‘아니, 아예 계획 자체를 세우지 않았으려나.’

어찌되었든 여기까지 왔다.

죽지 않는 가상 던전인 터라 경험치 효율이 나빴지만, 그래도 몬스터들과 워낙 레벨 차이가 나다보니 유더 자신의 레벨은 8, 노란폭풍은 8이 되기 직전의 7에 도달해 있었다.

‘가능해.’

남은 마법진들의 숫자를 헤아린 유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보다 소모량이 적었으니, 이 정도면 보스방에 도전해볼 만 했다.

“노폭아, 많이 지쳤니?”

유더의 물음에 코델리아는 답하는 대신 자리에 드러누웠고, 유더는 조금 더 휴식을 갖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다시 한 시간 뒤.

각기 운기조식과 명상으로 체력과 마력을 회복한 유더와 코델리아는 누가 봐도 보스방 입구라 생각되는 검고 커다란 문 앞에 나란히 섰다.

“안에서 나오는 건?”

“퓨리 울프.”

“고블린이 아니라?”

“퓨리 울프. 움직임이 빨라. 너나 나나 끊임없이 움직여야 해.”

“방책은?”

“내가 묶고, 네가 패고. 다만······.”

“다만?”

“내가 신호하기 전까지는 일단 회피에만 주력해줘. 사전작업 할 게 좀 있으니. 왜?”

유더가 묻자 코델리아는 바로 답하는 대신 눈을 한 차례 가늘게 떴다.

“이상한 짓 하려는 건 아니지?”

“무슨 이상한 짓. 우리 둘이 힘을 합쳐야 잡을까 말까한 상대인데.”

“흠, 좋아. 그렇다면야.”

마음을 정한 코델리아는 가볍게 몸을 푼 뒤 유더에게 턱짓했고, 유더는 보스방의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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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연 순간 적막이 감돌았다.

분위기 자체가 일변했다.

검은 하늘 아래 하얀 천으로 뒤덮인 땅.

그 한가운데에 거대한 늑대 한 마리가 서 있었다.

녹색 털에 노란색 줄무늬가 선명한 그것은 노란 안광을 빛내며 뜨거운 숨을 토하였다.

거리는 30여 미터.

결코 가깝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 있는 거리 역시 아니었다.

유더는 코델리아를 한 차례 곁눈질 하였고, 코델리아 역시 그러했다. 한 차례 눈빛을 교환한 두 사람은 서서히 서로 간의 거리를 벌렸다.

퓨리 울프는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놈은 뜨거운 침을 흘리며 유더와 코델리아 양쪽을 번갈아 보았고, 어느 순간 털을 곤두세우며 사지에 힘을 주었다.

직후.

코델리아가 숨을 토한 그때.

쾅!

퓨리 울프가 지면을 박찼다. 놈은 유더를 향해 돌진했고, 미리 예측하고 있던 유더는 지체 없이 몸을 던져 바닥을 굴렀다.

“노폭!”

코델리아는 대답 대신 휴식 중에 넘겨받은 마법진을 찢었다. 바인드 마법이 퓨리 울프를 향해 쇄도했고, 그 와중에 몸을 일으켜 세운 유더 역시 마법진을 찢었다. 이번에도 바인드였다.

“커헝!”

퓨리 울프가 일갈했다. 코델리아의 바인드가 늑대의 포효에 분쇄되었고, 유더의 바인드가 놈의 몸을 옭아맸다.

“그리스!”

코델리아가 다시 마법을 펼쳤다. 유더와 퓨리 울프 사이였고, 완력으로 바인드를 풀어낸 퓨리 울프가 바닥을 밟고 미끄러졌다.

유더가 그런 퓨리 울프를 향해 손도끼를 던졌다. 명중하는지 쳐다보지도 않고 연속해서 마법진을 찢어발겼다.

콰쾅!

이번에는 바인드가 아니었다.

첫 번째 것은 아끼고 아낀 워터 폴이었고, 두 번째 것은 라이트닝이었다.

허공에 생성된 물덩이가 퓨리 울프를 덮쳤다. 쫄딱 젖은 놈의 머리 위로 한줄기 번개가 작렬했다.

“크헝!”

퓨리 울프의 포효에 고통이 섞였다.

하지만 노란폭풍은 그 순간 위화감을 느꼈다.

“아웃복서?!”

소리치며 동시에 몸을 던졌다. 퓨리 울프가 코델리아를 향해 돌진해왔기 때문이다. 그것도 이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아직이야!”

유더가 바닥을 구르며 마법진을 찢었다. 그러자 다시 한 번 한 줄기 번개가 퓨리 울프를 강타했다.

그리고 코델리아는 확신했다.

유더는 지금 퓨이 울프를 공격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놈을 강화하고 있었다!

“미친! 뇌속성!”

눈앞의 퓨리 울프에게 라이트닝 정도의 뇌속성 마법은 오히려 힘을 충전시켜주는 영양제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더는 라이트닝을 두 방이나 갈겨 놈을 강화시켰다.

어째서, 무엇 때문에!

“빙고!”

유더가 외친 그때, 퓨리 울프가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동시에 놈의 이마 사이로 거대한 뿔이 솟구쳐 올랐다.

파지지직-!

놈의 뿔을 따라 번갯불이 번쩍였다.

그리고 코델리아는 이해할 수 있었다.

애당초 이게 유더의 목적이었다.

퓨리 울프를 강화시켜 숨겨진 힘을 이끌어내는 것.

B랭크 스킬북을 얻기 위한 히든 피스 정도 되리라.

“씨발! 어쩐지 이상하다 했어!”

초장부터 B랭크 스킬북을 주는 던전 치고는 무난하다 했더니!

강화된 던전 보스.

퓨리 울프는 이마에 뿔만 돋아난 것이 아니었다. 덩치 자체가 이전보다 훨씬 더 커진 느낌이었다.

“좋아! 제대로 각성했어!”

유더가 희열에 찬 목소리로 외치자 코델리아가 바로 악을 썼다.

“미친놈아! 저거 잡을 순 있는 거야?!”

“잡아야지! 뭐야? 설마 못 잡겠어?”

“나쁜 놈! 망할 놈!”

이 와중에도 도발이나 하고!

코델리아는 급히 머리칼을 쓸어 올린 뒤 지휘봉처럼 생긴 마법 지팡이를 고쳐잡았다.

유더 역시 씩 웃더니 왼손에는 마법진 뭉치를, 오른 손에는 손도끼를 거머쥐었다.

“온다.”

유더가 말한 그때, 퓨리 울프가 지면을 박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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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장 - 던전 북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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