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장 - 던전 북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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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리 울프를 비롯한 ‘늑대’ 종족 몬스터들은 한 가지 특성을 공유했다.
‘직선 공격.’
강력한 각력을 이용해 마치 총알처럼 앞을 향해 돌진한다.
하지만 그만큼 공격의 궤도가 단순했다. 때문에 타이밍만 맞추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다.
퓨리 울프가 지면을 박찼다.
뒷발로 거칠게 지면을 밀어냈고, 순간 퓨리 울프의 몸 전체가 앞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츠파학-!
뿔에서 비롯된 번갯불이 피어올랐다. 날카롭게 터졌고, 소리의 잔흔을 퓨리 울프가 꿰뚫었다.
눈으로 쫓기 힘든 속도.
유더도 마찬가지였다.
레벨이 8이 되었다지만, 그래봐야 겨우 8에 불과했다. 유더의 안력으로 퓨리 울프의 움직임을 완벽히 포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출발의 순간.
퓨리 울프가 지면을 박찬 그때 유더 역시 움직임을 개시했다. 조금의 주저도 없이 왼쪽을 향해 몸을 던졌다.
콰직!
퓨리 울프가 유더가 서 있던 자리를 관통했다. 유더는 바닥을 굴렀고, 코델리아는 비명을 질렀다.
“아웃복서!”
유더가 유효타를 허용했다고 착각해서가 아니었다.
코델리아는 알고 있었다. 노란폭풍의 기억이 소리치고 있었다.
연격이 온다.
허공을 꿰뚫은 퓨리 울프가 지면을 박찬다. 무시무시한 각력으로 회전과 돌진을 동시에 해낸다.
유더는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아직 몸도 일으키지 못 한 상태였다.
그러니 피할 수 없다.
이번 공격은 적중하고 만다!
코델리아가 지팡이를 세웠다. 생각하지 않고 본능에 따라 마법을 발동시키고자 했다.
노리는 곳은 유더와 퓨리 울프의 사이 허공.
퓨리 울프를 적중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놈과 유더 사이에 공격을 끼워넣는다!
‘제발!’
마법이 발동했다.
제대로 된 구성식을 가진 마법이 아닌, 마력을 그저 쏘아 보낼 뿐인 공격.
하지만 그렇기에 빨랐다.
퓨리 울프와 유더 사이에 마력의 폭발을 밀어 넣을 수 있었다.
콰직!
하지만 폭발이 일어나지 않았다. 퓨리 울프의 이마에 난 뿔에서 번갯불이 작렬했고, 코델리아가 다급히 만들어낸 마력의 응집체를 산산이 분해했다.
“커헝!”
퓨리 울프가 마력의 잔흔을 꿰뚫었다. 코델리아가 무어라 비명처럼 외쳤고, 유더가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퓨리 울프가 유더를 덮쳤다. 코델리아는 그 다음을 알 수 있었다. 퓨리 울프의 날카로운 이빨이 유더의 목덜미를 단숨에 찢어발기리라!
팡!
하지만 아니었다.
유더의 비명 대신, 뼈와 살이 부서지는 참혹한 소리 대신 작은 파공음이 울렸다.
퓨리 울프가 유더에게 닿기 직전.
코델리아가 만들어낸 마력의 응집체를 돌파하느라 만들어진 찰나의 시간 사이.
“케캥!”
퓨리 울프가 돌연 고통스런 울음을 토하며 바닥을 굴렀다. 유더를 물어뜯기는커녕 멀어지고자 몸부림을 쳤다.
어떻게.
대체 어떻게!
“개의 후각은 인간의 수천 배!”
유더가 소리쳤다. 덕분에 숨을 삼켰고, 이내 콜록 거리며 괴로워했다.
코델리아는 이해했다.
생각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저 본 순간 유더가 무슨 짓을 했는지 간파했다.
‘냄새!’
유더의 말대로였다.
개의 후각은 인간의 수천 배에 달했다.
더욱이 상대는 퓨리 울프.
모든 능력이 평범한 개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우월한 괴물이었다.
유더가 터트린 것은 종이 봉투였다.
각종 아이템들을 조합해 만들어낸 특제 냄새 폭탄!
처음부터 끝까지 계획대로였다.
중간에 레벨 업을 해봐야 정공법으로는 퓨리 울프를 이길 수 없었으니까.
각성시킨다.
최초의 직선 공격을 회피한 뒤 두 번째 선회 공격 때 냄새 폭탄을 터트린다.
일시적으로나마 퓨리 울프를 무력화 시킨다.
코델리아의 얼굴에 참을 수 없는 미소가 번졌다.
주먹을 불끈 쥐며 환하게 웃었다.
그래, 이래야 아웃복서지.
내가 한 번도 이기지 못 한 서버 랭킹 1위지!
“쿠헉! 컥! 노폭!”
유더가 콜록 거리며 외쳤고, 코델리아는 그 외침을 놓치지 않았다.
아니, 이미 유더가 소리치기 시작한 그 때 움직이고 있었다.
비장의 수는 유더만 준비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코델리아 역시 준비해둔 순가 있었으니까!
“디그!”
코델리아가 왼손에 쥔 마법석을 발동시켰다.
유더가 사용하는 마법진이 새겨진 종이처럼, 마법이 담긴 돌이었다.
만든 것은 코델리아의 아버지이자, 당대 체이스 백작가의 가주인 윌리엄 체이스 백작.
마법이 발동했다.
몸을 비틀며 괴로워하는 퓨리 울프를 중심으로 직경 3미터, 깊이 3미터의 구덩이가 생겨났다.
“케켕?!”
갑자기 구덩이에 처박힌 퓨리 울프가 다시 앓는 소리를 냈지만 코델리아는 멈추지 않았다.
구덩이 앞에 멈춰 서자마자 이번에는 지팡이를 휘두르며 마법을 발동시켰다.
“디그!”
“디그!”
“디그!”
영웅전기2의 초보들은 처음 배울 마법들을 고를 때 거의 대부분 공격 마법만을 선택하고는 했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적에게 데미지 입히기 위해서는 공격 마법이 필요했으니까.
하지만 적을 공격하는 방법은 공격 마법만이 아니었다.
더욱이 마법사는 공격 마법을 난사하는 포대에 불과한 존재 역시 아니었다.
‘마법사는 상황을 통제하는 자.’
영웅전기2의 랭커들 가운데 그 누구보다도 깡데미지에 목숨 건 코델리아였지만 가장 중요한 그 사실만은 잊지 않았다.
마법사는 단순한 포대가 아니었다.
상황을 통제하는 자였다. 그로 말미암아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이길 수 있게 하는 자였다.
때문에 코델리아는 공격 마법에만 집착하지 않았다.
바닥을 미끄럽게 하는 그리스를 배웠다.
구덩이를 파 전장을 변형시킬 수 있는 디그를 습득했다.
“디그!”
체이스 백작의 디그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만들어진 구덩이에 연속해서 네 번이나 사용하니 효과가 있었다.
깊이 7미터.
퓨리 울프의 각력이라면 어떻게든 빠져나올 수 있는 깊이였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코델리아는 알고 있었으니까.
노란폭풍은 믿고 있었으니까.
“아웃복서009.”
진이 빠져 엉덩방아를 찧는 순간 코델리아가 작게 말했다. 그리고 그 부름에 응답하듯 어느새 달려온 유더가 구덩이 안으로 남은 마법진 모두를 찢어발겼다.
“빙고.”
낮게 말한 직후.
유더가 코델리아를 향해 몸을 던졌다. 거의 덮치듯 엎드렸고, 그 순간 요란한 굉음과 함께 땅이 뒤흔들렸다.
콰가가가가강-!
불꽃과 번개와 바람이 난무했다. 좁은 공간에서 발동한 마법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끼쳐 더욱 큰 폭발을 만들어냈다.
콰광!
마지막 굉음.
유더와 코델리아가 거의 동시에 몸을 일으켜 세웠다. 두 사람은 나란히 구덩이 안쪽에 머리를 슬쩍 밀어 넣어 보았고, 이내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유더가 소리 내어 말했고, 새하얀 빛의 고리들이 연속해서 유더와 코델리아의 몸을 휘감았다.
하나, 둘, 셋.
유더의 레벨이 11이 되었고, 코델리아의 레벨은 10이 되었다.
그리고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10레벨 전에 퓨리 울프를 잡은’ 타이틀을 획득하셨습니다.]
[영구적으로 모든 능력치가 1씩 상승합니다.]
머릿속에 문구가 떠올랐다.
상태창은 열 수 없었지만, 순간 레벨 업을 할 때처럼 몸에 새로운 활력이 솟구치는 것이 느껴졌다.
“타이틀.”
업적을 세웠을 때 얻을 수 있는 보너스 포인트.
유더가 코델리아에게 주먹을 내밀었다.
“파인 플레이.”
“파인 플레이.”
탁 소리나게 주먹을 마주친 코델리아가 웃으며 화답했지만 잠깐 뿐이었다.
“윽, 냄새! 야, 일단 꺼져! 너 지금 냄새 엄청 나거든?!”
냄새 폭탄을 지근거리에서 뒤집어 쓴 것은 유더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코델리아의 타박에 유더는 서운해 하기는커녕 씩 웃더니 오히려 코델리아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으읏, 갑자기 구음절맥으로 인한 빈혈기가······.”
“야! 연기인 거 다 보이거든?!”
하지만 그러면서도 반사적으로 유더를 부축하는 코델리아였다.
유더는 그런 코델리아에게 괜히 더 기대며 턱짓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아무튼 나온 거 같네.”
“이게 진··· 와!”
유더를 밀어내려던 코델리아는 눈을 크게 뜨며 감탄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B랭크 스킬 북.”
허공에 두둥실 떠 있는 책 모양의 빛 무더기가 둘.
서로를 돌아본 유더와 코델리아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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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킬북.
이름 그대로 스킬을 얻을 수 있는 책으로, 영웅전기 2에서 스킬을 얻을 수 있는 여러 수단 가운데 가장 높은 인기를 자랑했다.
‘쉽고 간단하니까.’
스킬 북을 사용하면 따로 배우는 과정 없이 바로 스킬을 습득할 수 있었다.
물론 스킬마다 숙련도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익히자마자 바로 마스터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그래도 바로 쓸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큰 강점이었다.
‘NPC에게 배우거나 혼자 책을 보며 독학하면 습득 자체에도 시간이 걸렸으니까.’
다만 이런 스킬 북에도 단점이 하나 존재했으니, 바로 1회용이라는 사실이었다.
스킬을 얻으면 스킬 북이 사라진다.
때문에 타인과 공유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와아, 진짜 B랭크야, B랭크. 저 테두리색 보이지? 고생한 보람이 있는데?”
스킬 북을 감싸고 있는 은색 고리를 가리키며 코델리아가 해맑게 웃었다.
게임에서도 그랬지만, 보상 타임이 오면 정말 애처럼 좋아하는 게 노란폭풍이었다.
‘하기사 저 보상 보고 달리는 거니까.’
스킬 북의 숫자는 둘.
더욱이 하나는 무공이고 다른 하나는 마법이니 애당초 유더와 코델리아가 서로 뭘 갖겠다고 다툴 필요도 없었다.
“난 이때가 제일 좋더라.”
“뭐? 템 개봉할 때?”
“어, 뭐가 나올지 막 두근두근하잖아.”
절세미소녀답게 매력적인 미소를 보인 코델리아는 엉덩이를 털고 일어선 뒤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B랭크 스킬 북이 천천히 코델리아를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후, 진짜 B랭크다. 헤헤, 뭐가 나오려나? 그런데 이거 확정템이야? 그럼 넌 뭐 나오는지 알겠네?”
“어, 확정템이야. 내꺼는 미리 말했듯이 보법이고.”
유더 역시 하늘로 손을 뻗어 스킬 북을 불러들였다.
스킬 북은 그 랭크에 따라 표지의 색이 달라졌는데, B랭크를 상징하는 색은 빨강이었다.
붉은 색 표지와 은색 테두리의 스킬 북.
코델리아는 자기 몫의 스킬 북을 끌어안으며 유더 쪽을 돌아보았다.
“그래서 뭔데? 무슨 보법이야?”
“천하삼십육보.”
“천하 뭐?”
“천하삼십육보.”
유더의 대답에 코델리아가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기는 한데, 확하고 떠오르는 것이 없어서였다.
“B랭크 무공이니까. 거기다 넌 무공보다는 마법 쪽을 더 좋아했고.”
유더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신 변명해주자 코델리아는 입술을 삐쭉였지만 억지로 아는 척을 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결국 뭔데?”
“이름 그대로 서른여섯 개의 발걸음으로 이루어진 보법이야. 회피에 특화되어 있고.”
“그리고?”
“야, 이거 B랭크거든?”
뭘 더 바라냐는 눈으로 바라보니 코델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좀 더 있지만.’
천하삼십육보가 다른 B랭크 무공에 비해 특별한 이유.
‘이건 업그레이드가 되거든.’
천하삼십육보는 굳이 따지면 기초에 해당했다.
완벽하게 습득할 경우 다음 단계로의 문이 열리는 구조였는데, 한 단계 나아갈수록 보법을 구성하는 발걸음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A랭크 보법인 질풍이십사보.
S랭크 보법인 신뢰십이보.
그리고 궁극이자 환상의 보법이라 불리는 EX랭크 보법 천둔구보.
‘아홉 걸음이면 하늘로부터도 숨을 수 있나니.’
사실상 영웅전기2에 존재하는 모든 보법들 가운데서 끝판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보법으로, 아웃복서009조차 존재만 알 뿐 터득하지 못 한 보법이었다.
“천하삼십육보라··· 그러고 보니 네가 자주 쓰던 신뢰십이보랑 이름이 비슷하네.”
“그러게.”
순진하게 말하는 코델리아에게 적당히 답한 유더는 빙긋 웃더니 코델리아의 가슴- 정확히는 코델리아가 두 팔로 소중히 안고 있는 스킬 북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너는?”
“응? 너도 진짜 몰라?”
“진짜 몰라. 마법사로는 안 깨봤다고 했잖아.”
“헤, 그래? 그럼 진짜 첫 개봉이네? 신난다.”
선물 상자를 앞에 둔 아이처럼 해맑게 웃은 코델리아는 바로 스킬 북을 펼쳤다. 그러자 속표지 위에 제목이 떠올랐다.
[파이어 미사일 - B랭크]
“오! 이거 좋아. 이거 마음에 들어.”
코델리아가 실실 웃으며 스킬 북을 쓰다듬자 유더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춤형이네.’
영웅전기2에 대한 지식이 아웃복서009보다- 아니, 그냥 랭킹 30위권인 녀석들보다 부족한 편에 속했던 노란폭풍이 서버 랭킹 2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
깡데미지에 목숨 건 노란폭풍은 데미지를 최고효율로 뽑아내기 좋은 마법사를 주로 플레이했는데, 노란폭풍은 매 전투마다 자신의 닉네임이 ‘폭풍’인 이유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마탄의 세례.’
남들은 열 개도 동시에 다루기 힘든 마탄 수백 발을 동시에 다루며 문자 그대로 폭풍을 만들던 그녀였으니까.
그런 노란폭풍이 화염 속성의 마탄을 손에 넣었으니, 장인에게 손에 딱 맞는 연장을 쥐어준 셈이었다.
“좋아, 양쪽 모두 만족한 것 같네. 슬슬 돌아갈 채비를 해볼까?”
유더는 퓨리 울프가 처음 등장할 때 서 있던 장소를 돌아보았다. 던전 탈출을 위한 파란 공간의 문이 바람 부는 호수의 표면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잠깐만, 옷 좀 갈아입고. 너도 냄새 좀 어떻게 해 봐. 달리아가 분명 물어볼 거라고.”
“음, 그렇긴 하겠지.”
사실 유더도 갈아입을 옷을 챙겨오기는 했다. 애당초 냄새 폭탄을 사용할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돌아보지 마.”
“너야말로.”
서로 등을 돌린 유더와 코델리아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그런데 말이야.”
“어.”
“타이틀 떴지?”
“떴지.”
“상태창은 없지만 타이틀 자체는 있고, 적용도 된다고 봐야겠지?”
“아무래도.”
답하는 순간 유더의 얼굴에 미소가 그려졌다.
당장 쓸 만한 타이틀이 몇 개나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럼 말이야.”
“어.”
“너랑 나랑 둘 다 레벨이 10이 넘었잖아?”
“넘었지.”
“다음 단계로 생각해둔 거 있어?”
“있지. 너는?”
“나도.”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잠시 멈추었다.
유더는 뒤를 돌아보는 대신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동시에 말할까?”
“좋아.”
“하나.”
“둘.”
““악마의 손.””
유더와 코델리아가 거의 동시에 같은 말을 하였고, 두 사람 모두 미소를 머금었다.
“좀 하는데?”
“너야말로?”
악마의 손.
아이템이나 새로 얻어야 할 스킬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코델리아의 메인 시나리오’에서 암약하는 적대 세력- 한 마디로 악마 추종자 집단의 이름이었다.
영웅전기2에는 다양한 플레이어블 캐릭터들이 존재했고, 저마다의 메인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었다.
코델리아의 메인 시나리오는 유더의 메인 시나리오보다 반년 정도 시작 시점이 빨랐는데, 이제 슬슬 시작의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앞으로 보름 정도?’
코델리아의 메인 시나리오는 코델리아가 북방 12가문의 자제들이 모이는 친목회에 참여하기 위해 여행에 나서면서 시작되었다.
‘북방 12가문의 자제들을 악마의 손이 습격하는 게 초반의 메인 이벤트고.’
저 이벤트로 인해 북방 12가문의 자제들 가운데 몇이 죽거나 다치고, 몇은 아예 악마의 손에 납치되어 세뇌까지 당한다.
‘게임에서야 코델리아 혼자 도망치는 것에 만족해야 했지만······.’
더 이상 게임이 아니었다. 더욱이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는 사람이 둘이나 있었다.
‘악마의 손을 저지한다.’
애당초 유더와 코델리아의 목적은 영웅전기2의 시나리오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랬다가는 아마겟돈이라는 약속된 베드 엔딩이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니 말이다.
새로운 엔딩을 만든다.
대소환제를 저지해 영웅전기3로 이어지는, 세계의 멸망을 막아낸다.
악마의 손 저지는 그 여정의 첫 걸음이라 할 수 있었다.
“저기, 그래서 말인데.”
“말인데?”
“그······.”
“그?”
유더가 의뭉스럽게 되묻자 코델리아는 입술을 삐쭉이더니 성질을 냈다.
“어차피 알지?”
지금 코델리아 자신이 하려는 말.
물론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유더는 능청스럽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모르겠는데. 직접 말로 들어야 알겠는데?”
“야, 방금 대답 자체가 알고 있다는 거거든?”
유더는 유쾌하게 웃었다. 코델리아의 말대로였으니까.
“그래도 일단 말로 해주면 안 돼? 그래야 의욕이 나지.”
“씨발, 진짜 못 됐어.”
아주 작게 중얼거린 코델리아는 숨을 한 번 크게 고르더니 작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같이 가자.”
북방 12가문 자제들의 친목회가 열리는 북방의 심장 랑게스트로.
‘유더 바이엘’은 본래 랑게스트로 가지 않았다.
구음절맥 때문에 장거리 여행이 불가능한 탓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지금의 유더라면 함께하는 것이 가능했다.
‘애당초 그래서 서두른 거니까.’
구음절맥 치료를 서두른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
“사모하는 코델리아 양께서 그렇게 바라신다면야.”
유더의 대답에 순간 몸서리를 친 코델리아였지만 잠시 뿐이었다. 빙긋 미소 짓더니 치맛단을 마무리한 뒤 돌아서며 말했다.
“좋아, 돌아봐도 돼.”
“이미 보고 있어.”
“씨발?”
확하고 얼굴을 붉히는 코델리아의 모습에 킥하고 웃은 유더는 공간의 문을 향해 걸으며 말했다.
“아무튼 서두르자고. 시간은 금이잖아?”
“말만 잘해요, 말만.”
툴툴 거리며 입술을 삐쭉 내민 코델리아는 유더의 옆에 섰고,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서로를 돌아본 뒤 동시에 발걸음을 내디뎠다.
새로운 엔딩을 위한 첫 걸음을 시작했다.
제2장 - 던전 북 끝, 제3장 - 체이스 백작가로 이어집니다.
< 제2장 - 던전 북 #5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