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딩메이커-15화 (15/473)

< 제3장 - 체이스 백작가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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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엘 백작가의 출가 시험은 단순했다.

평기사 수준의 상대와 겨루기를 해 일격을 성공시킨다.

굉장히 단순 명쾌했지만, 그렇기에 소위 말하는 꼼수가 개입될 여지가 거의 없었다.

공명정대하게 오직 실력만을 시험한다.

당대의 바이엘 백작은 십이 세의 어린 나이에 시험을 통과했고, 아버지만은 못하지만 무재를 타고난 게일 역시 평균보다 어린 십삼 세에 시험을 통과했다.

유더의 나이는 열일곱.

평범한 바이엘 백작가의 사람이 시험을 통과하는 나이인 열다섯보다 두 살이나 위였지만, 사실 이번 시험 응시는 무리수에 가까웠다.

‘고작해야 한 달.’

태양의 목걸이를 얻기 전에는 제대로 된 수련은커녕 체력 단련조차 버거웠던 유더였다.

때문에 유더가 태양의 목걸이를 얻고, 치료를 시작하며 단련한 기간은 아무리 길게 잡아야 한 달이었고, 그 중 무술을 수련한 시간은 보름이 채 못 되었다.

더욱이 유더는 현재 완치된 상태가 아니었다.

구음절맥이 낫고 있어 서서히 정상 체력에 근접해가고 있을 뿐, 기사를 기준으로 본다면 여전히 허약한 편에 속했다.

‘하지만.’

바이엘 백작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유더에게 망신을 줄 생각이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자식을 위해 일부러 어설픈 시험을 진행할 생각 역시 없었다.

‘빅터, 그대를 믿겠다.’

가문에 도착하기 하루 전, 가문의 노기사 빅터에게서 온 마지막 편지에 적혀 있던 글귀.

도련님은 시험을 통과하실 겁니다.

빅터가 그리 말했다면 믿는다.

근거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을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바이엘 백작도 사람이었다.

호기심이 생겼다.

빅터는 대체 무얼 보고 그리 자신을 한 것일까.

팔불출 같은 생각이었지만 혹여 유더에게 자신을 능가하는 무재라도 있는 것은 아닐까?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도 지금의 시험을 기다린 것은 바이엘 백작 자신일 터였다.

“아버지.”

실내 수련장 한 가운데 자리를 잡고 선 바이엘 백작에게 게일이 목검을 건네며 낮은 목소리를 내었다.

굳이 직접 상대 역할까지 할 필요가 있냐는 눈빛에 바이엘 백작은 쓰게 웃었고, 결국 포기한 게일이 고개를 내저으며 작게 말했다.

“살살하시죠.”

“그래.”

다른 누구도 아닌 세일룬 왕국 십대 검호 가운데 하나인 바이엘 백작이었다.

평기사 수준으로 자신의 검기를 제한하는 것은 무척이나 쉬운 일이었다.

목검을 건네받은 바이엘 백작은 흐뭇한 얼굴로 저만치 멀리서 시험에 임할 준비를 하는 유더를- 정확히는 유더와 코델리아를 바라보았다.

마찬가지로 같은 곳을 바라본 게일이 으흐흐 웃으며 말했다.

“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죠?”

“그래, 정말 보기 좋구나. 원정 다녀오기 전에는 저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새 부쩍 가까워진 것 같구나.”

“좋을 때니까요.”

시험에 임하는 남자와 그런 남자를 가까이서 걱정하는 약혼녀라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이란 말인가.

분명 예쁘고 귀여운 말들이 오가고 있으리라.

“야, 미친놈아. 바이엘 백작이 직접 나오잖아. 최소한 상대라도 바꿔달라고 해.”

“에헤이, 어련히 수준 맞춰주시겠지.”

“그러다 지면? 너 맨날 노래하듯이 구음절맥이잖아.”

“지면 너 혼자 랑게스트 가는 거지. 메인 시나리오 파이팅입니다요.”

“미친놈이 뭐라는 거야.”

예쁘고 사랑스러운 말들을 소리죽여 속삭이던 코델리아는 한숨과 함께 말했다.

“좋아, 믿을게. 아웃복서니까 어떻게든 하겠지. 그래도······.”

“그래도?”

“무리하다 다치지는 말고. 알았지?”

“노란폭풍.”

“왜?”

“너 정말 너희 아버님 닮았구나.”

“내가 우리 아버지 닮지 그럼 누굴 닮아.”

“그러게.”

킥하고 웃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지은 유더는 어깨를 펴고 숨을 길게 토했다.

마지막으로 코델리아를 돌아보며 말했다.

“같이 가자.”

랑게스트로.

유더와 코델리아의 메인 시나리오를 개변하기 위해.

유더는 씩 웃었고, 코델리아는 코웃음을 치더니 응원하듯 주먹을 살짝 흔들었다.

“파이팅.”

이것으로 충분했다. 유더는 목검을 고쳐 쥔 뒤 앞으로 나섰고, 코델리아는 체이스 백작이 서있는 곳까지 물러섰다.

“아가씨, 공자님 괜찮으시겠죠?”

달리아가 작게 묻자 코델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을 거야.”

아웃복서009가 그렇게 말했으니.

뒷말은 삼킨 코델리아는 어디 어떻게 하나 지켜보겠다는 듯 유더를 바라보았고, 유더는 바이엘 백작 앞에 섰다.

“시작하자.”

길게 끌 필요가 없었다.

마주한 순간 바이엘 백작은 말했고, 유더가 자세를 취하자마자 공세를 펼쳤다.

바이엘 백작가에 녹을 먹는 기사들이라면 누구나 익히는 왕국검법이었다.

바이엘 백작은 자신의 말을 지켰다.

목검의 속도도, 실린 위력도 평기사 수준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할지라도 십검호 가운데 하나가 휘두르는 검이었다. 마치 왕국검법의 정석을 보는 것 같은 공격이었다.

그리고 그랬기에,

‘할 수 있어.’

바이엘 백작의 검을 유더가 피했다.

어찌보면 단순한 회피였지만, 지켜보던 기사들의 눈에 순간 이채가 어렸다.

반발자국.

유더가 바이엘 백작의 검을 피하기 위해 이동한 거리였다.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바이엘 백작의 검을 피한 것이었다.

백작의 검이 연이어졌다.

자로 잰 것 같은 왕국 검법의 검식이 이어졌고, 유더는 단 한 번의 격검도 없이 백작의 공격을 모조리 회피했다.

일곱 번.

일곱 개의 검격을 피해낸 순간 기사들 사이에서 감탄이 터졌다.

체이스 백작 역시 눈을 빛냈고, 게일은 거의 환호성을 지를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리고 코델리아는 이해했다.

유더가 어째서 그렇게까지 자신하였는지를.

‘외웠구나.’

왕국 검법의 검식을.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바이엘 백작가의 시험에서 시험관들이 펼치는 공격의 패턴을.

이게 무차별 대련이었다면 통하지 않을 수였다.

하지만 시험이었고, 공정한 시험이 되기 위해 시험관들에게는 검식과 공격 패턴이 제한되어 있었다.

‘머릿속에 대체 뭐가 들어 있는 거지?’

너무 황당해서 아예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유더가 패턴을 꿰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더욱이 대단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제법이군.”

체이스 백작이 말했다.

이미 그와 바이엘 백작은 유더가 패턴을 외웠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는 감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 패턴을 외우는 것 자체는 그렇게까지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어찌되었든 몇 대에 걸쳐 이어져온 시험이었으니 말이다.

패턴을 외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고작 그것만으로는 시험을 통과할 수 없었다.

아홉 번째.

이번에도 유더가 피해냈다. 고작 한 걸음 거리로 검을 지나쳐 보냈다.

지켜보던 게일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유더에게는 무재가 있었다.

그것도 엄청난 무재가.

그렇지 않으면 눈앞에서 쇄도하는 검격을 저렇게까지 정확하게 피해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바이엘 백작 역시 미소지었다.

유더의 무재가 진짜배기임을 이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도 여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이엘 백작은 동시에 생각했다.

피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단지 피하기만 해서는 결코 시험 조건을 완수할 수 없다.

‘다가와 보거라.’

피하는데 그치지 않고 파고들어라.

바깥에만 머물지 말고 안으로 들어서라.

바이엘 백작이 검을 뿌리듯 휘둘렀다. 유더가 옆으로 비껴서 피했고, 그 순간 바이엘 백작의 검이 추적하듯 유더를 향해 쇄도했다.

연격.

공격과 공격이 연이어지는, 그렇기에 공격하는 측 역시 무리를 해야 하는 수.

유더는 알고 있었다.

오직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

쿵!

지면을 박찼다. 단순한 발구름이 아니었다. 천하삼십육보. 보법이었다.

검이 허공을 베었다.

유더가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정면으로 파고드는 대신 왼쪽 측방을 돌아 바이엘 백작의 빈틈을 찔렀다.

콰직!

바이엘 백작이 왼손을 놀려 유더의 검을 붙잡았다. 직후 유더는 손을 놓았고, 땀투성이가 된 얼굴로 미소지었다.

“한 방.”

지금의 일격.

평기사가 막아낸 것이 아니었다.

십검호 가운데 하나인 바이엘 백작이 막아낸 것이었다.

순간 요란한 침묵이 수련장을 가득 채웠다.

바이엘 백작이 유더를 보았고, 이내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졌다.”

“우오오!”

“도련님!”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빅터는 눈시울을 붉혔고, 게일은 단숨에 달려와 유더를 끌어안았다.

“흥, 제법이군.”

체이스 백작이 말한 그때, 유더는 게일의 품에 안겨 코델리아를 보았고, 코델리아는 코웃음을 치더니 주먹으로 살짝 허공을 때렸다.

‘파인 플레이.’

유더는 다시 웃었다.

그리고 꼬리를 잇듯 호탕하게 웃기를 멈춘 바이엘 백작이 체이스 백작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더, 미안하지만 출발을 사흘만 늦추겠네.”

본래는 내일 바로 출발시킬 예정이었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유더의 무재를 보았으니까.

결코 평범한 아이가 아님을 알았으니까.

“흥, 기다리겠다.”

체이스 백작이 허락했으니 더 이상 만류할 이가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썩은물 노란폭풍은 이해했다. 바이엘 백작이 사흘이란 시간을 더 만든 이유.

바이엘 백작이 직접 나선다는 사실에 유더가 더욱 기꺼움을 표한 이유.

‘추가 보상?’

바이엘 백작이 사흘의 시간 동안 가르칠 것은 오직 무공뿐이었으니까.

코델리아가 유더를 보았고, 이번에는 유더가 응답했다.

살짝 쥔 주먹으로 허공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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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렀다.

나흘 뒤 오전.

나들이 갈 때처럼 꾸며 입는 대신 승마복장을 한 코델리아가 마차 앞에 서서 고개를 살짝 기울이더니 이내 씩하고 미소를 지었다.

“성과 좀 있었고?”

“있었지.”

겨우 사일 사이였지만, 이전보다 좀 더 늠름해진 것 같은 유더가 빙긋 웃으며 답했다.

바이엘 백작가 입구.

체이스 백작가가 준비한 커다란 사두마차가 하나에 말이 네 필.

마차에 타는 것은 유더와 코델리아, 전속 메이드인 마이아와 호위무사 달리아 이렇게 네 사람이었고, 바이엘 백작가와 체이스 백작가에서 붙인 호위가 각기 두 사람씩이었다.

랑게스트에서 있는 북방 12가문의 친목회는 문자 그대로 친목회였다.

더욱이 미성년 자제들끼리 모이는 것이었으니, 가문의 위세를 자랑한다며 으리으리한 행렬을 꾸밀 이유도 없었다.

‘그래도 일행이 있긴 있으니.’

유더는 슬쩍 코델리아에게 눈빛을 보냈고, 코델리아는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더가 이전 이야기한 ‘랑게스트에 가는 길에 챙겨갈 무언가’에 대한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였다.

“랑게스트까지 함께하게 되어 무척이나 기쁩니다.”

“저도요. 앞으로 펼쳐질 공자님과의 여행이 무척이나 기대 돼요.”

마이아와 달리아 앞이었기에 하하호호 웃음을 가장한 두 사람은 각기 마차에 자리를 잡았고, 마이아와 달리아는 흐뭇한 눈빛을 나눈 뒤 두 사람의 곁에 각기 자리를 잡았다.

“그럼, 출발하죠.”

양가 부모님들에 대한 인사는 이미 마쳤으니 더 이상 걸릴 것이 없었다.

“유더! 다녀오거라!”

저만치 정원에 자리한 게일이 새삼 목소리를 높였고, 바이엘 백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체이스 백작은 언제나처럼 코웃음을 쳤고 말이다.

'n빵하는 거 알지?'

코델리아의 시선이 유더의 허리춤으로 향했다. 아까 인사할 때 체이스 백작이 유더에게 건네준 돈주머니를 보았기 때문이다.

유더는 대답 대신 모른척 어깨만 으쓱인 뒤 반대쪽 창을 돌아보았다.

북동쪽.

북방의 심장 랑게스트를 향해.

“이럇!”

마부의 외침과 함께 마차가 출발했다.

메인 시나리오의 시작이었다.

제3장 - 체이스 백작가 끝, 제4장 - 성곤으로 이어집니다.

< 제3장 - 체이스 백작가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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