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딩메이커-17화 (17/473)

< 제4장 - 성곤 #2 >

&

원작의 이벤트는 이러했다.

고요한 계곡가에 코델리아의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은은히 퍼져나간다.

목을 축이기 위해 계곡가를 찾은 작은 짐승들조차 귀를 기울이게 하는 청아한 목소리와 고운 곡조에 마침내는 근방에 살던 요정족- 페어리들까지도 반응하기 시작한다.

삼삼오오 모여든 페어리들은 코델리아의 노래에 한 번 놀라고, 환상의 달빛 아래, 마치 여신과도 같은 아름다움을 뽐내는 코델리아의 눈부신 외모에 두 번 놀란다.

그리고 개중 하나가 입을 열어 말한다.

‘여왕님의 밤놀이에 초대하자.’

‘여왕님도 기뻐하실 거야.’

‘우리만 들을 수 없어. 너무 아름다운 노래야.’

페어리들의 등장에 잠시 당황한 코델리아였지만, 이내 귀엽고 사랑스런 요정들의 초대에 응할 마음을 품게 된다.

그리고-

‘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수풀에 숨어 상황을 지켜보던 유더는 참담한 얼굴로 계곡가를 바라보았다.

반짝반짝 작은 별.

그래, 뭐 원작에 나오는 노래도 일단 별을 다루기는 했으니까.

똑같이 별에 관한 노래고, 노래 부르는 사람 같고, 아름다움과 신비함 대신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이 느껴져서 그렇지 일단 듣기 좋기는 했으니까.

‘후··· 내가 맛이 가긴 갔구나.’

노란폭풍이 귀엽고 사랑스럽다니.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린 유더는 초조한 눈으로 시선을 더욱 멀리하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어깨까지 몸을 담근 코델리아가 추위로 벌벌 떨며 반짝반짝 작은 별을 세 번쯤 완창 했을 때.

‘왔다.’

저만치 멀리 작은 빛 덩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얼핏 반딧불이로 착각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기에는 빛이 너무나 밝고 아름다웠다.

유더는 수풀 밖으로 사인을 보냈고, 유더의 사인을 본 코델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미 그녀 역시 눈치를 챈 상황이었다.

“서쪽 하늘에서도~ 동쪽 하늘에서도~ 반짝반짝 작은 별~”

코델리아는 천천히 노래하며 물에 깊이 담갔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여전히 수건으로 몸을 두르고 있었지만, 물속에 있다가 밖으로 나오니 새삼 한기가 돌아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기침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의지를 다진 코델리아는 아름다운 달빛을 우러르며 조금 더 감정을 실어 노래했다.

“아름답게 비치네~”

빛 덩이들이 다가왔다.

파란 빛, 노란 빛, 초록 빛.

손바닥보다 조금 커다란 크기지만, 나비 날개가 등에 달린 것 외에는 외형상 성인 여성과 거의 차이가 없는 페어리들이었다.

숫자는 모두 다섯.

코델리아 곁으로 와하고 몰려든 페어리들은 재잘재잘 저마다 목소리를 높였다.

“노래 귀엽다.”

“얘는 왜 목욕하면서 수건을 두르고 있지? 저러면 어떻게 목욕을 해?”

“몰라, 그보다 목소리 예뻐.”

“얼굴도 예뻐.”

“짜릿해, 늘 새로워, 예쁜 게 최고야.”

마지막 페어리의 말에 다른 페어리들 모두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게임이랑 똑같네.’

지상 최고의 외모지상주의 종족은 아마도 페어리일테니까.

어찌되었든 녀석들은 예쁘고 노래 잘하는 코델리아의 곁에 스스럼없이 다가섰다.

오히려 놀란 것은 코델리아였다.

‘귀, 귀여워.’

손바닥만한 페어리들이 실존하는데다가 눈앞에서 움직이기까지 하니 아무리 선머슴같은 노란폭풍이라지만 소녀심이 살아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는 누구야?”

“이름이 뭐야?”

“우리랑 놀래?”

“여왕님의 밤놀이가 시작될 거야.”

“여왕님은 예쁜 애를 좋아하셔.”

페어리들의 제안에 코델리아는 베시시 웃었고, 숨어서 듣고 있던 유더는 안도의 숨을 토했다.

노래가 달라서 걱정했는데, 그래도 얼추 넘어간 모양이었다.

‘사실 그냥 노래보다는 코델리아 외모가 중요한 게 아닐까.’

방금 초대하겠다는 내용도 가만 들어보면 그냥 예뻐서 부른다는 거니.

어찌되었든 과정이 좀 달라져서 그렇지 얼추 원작 이벤트대로 일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때문에 유더는 잡념을 지우고 코델리아와 페어리들이 아닌 다른 곳에 시선을 두었다.

원작 이벤트의 다음 수순.

코델리아는 잠시 망설이지만 결국 페어리들의 초대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그 직후-

“크허헝!”

짐승의 포효가 터졌다.

늑대에 가까웠지만, 포효의 주인은 늑대가 아니었다.

바이콘.

타락한 유니콘이라고도 불리는, 두 개의 뿔을 가진 말 형태의 음탕한 마물.

예정대로의 등장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원작과 같진 않았다.

“코델리아!”

수풀에서 벌떡 일어서며 유더가 소리쳤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코델리아 쪽으로 몸을 날리며 다시 한 번 외쳤다.

“물에서 나와!”

바이콘의 포효가 울려퍼졌다.

하지만 바이콘이 원작에서 등장했던 지점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급히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

놈이 나타났긴 했지만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

순간 퍼뜩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직감이었다.

그렇기에 유더는 코델리아에게 물 밖으로 나오라 소리친 것이었다.

“크헝!”

수면에 비친 달빛이 부서졌다. 물속에서 솟구쳐 오른 바이콘이 코델리아를 향해 돌진했다.

“노폭!”

유더가 지면을 박찼다. 그리고 동시에 보랏빛 털과 붉은 갈기를 가진 바이콘이 머리로 코델리아를 들이박았다.

갑작스러운 충돌이었다.

페어리들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고, 코델리아는 크게 튕겨져 나가는 대신 위로 솟구치더니 그대로 바이콘의 등 위에 던져졌다.

바이콘의 특기 가운데 하나인 염동력이었다.

“크히힝!”

코델리아를 포획하자마자 기분 좋게 웃은 놈은 단숨에 물가로 빠져나오더니 붉은 안광을 흩날리며 자리를 이탈하려 했다.

하지만 코델리아가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꺼져!”

코델리아가 몸을 비틀었다. 바이콘의 등 위에서 겁도 없이 몸부림을 치더니 염동력에서 벗어나 물 위로 몸을 던졌다.

순간 쿵 소리와 함께 물살이 세게 튀었고, 물에 풍덩 빠진 코델리아는 허우적거리다 몸을 일으켰다.

바이콘이 그런 코델리아를 보았다.

페어리들이 무어라 소리쳤고, 유더는 코델리아와 바이콘을 향해 질주했다.

그리고 코델리아가 소리쳤다.

“아웃!”

다급한 외침이었다. 복서를 붙일 틈도 없이 소리친 그녀는 몸에 두르고 있던 수건을 급히 벗어 재꼈다.

붉은 레오타드.

사실상 원피스 수영복이기에 부끄러울 것은 없었다. 아니, 지금은 그런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있었다.

코델리아가 수건을 펼쳤다.

페어리들이 반사적으로 수건을 보았고, 그것은 바이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유더는 아니었다.

코델리아가 아웃이라 외친 그 순간 유더는 이해했으니까.

코델리아가 무엇 때문에 자신을 부른 것인지, 자신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 간파했으니까!

“라이트!”

수건 안쪽에는 커다란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고작해야 빛을 밝힐 뿐인 1성 마법.

하지만 마법진을 괜히 그린 것이 아니었다.

몇 개나 되는 수식이 마법을 증폭시켰다.

코델리아가 쏟아 부은 마력이 순수하고 강렬한 빛이 되어 온 세상을 뒤덮었다.

“꺄악!”

“크헝!”

무지막지한 광량에 노출된 페어리들과 바이콘이 신음과 함께 눈을 감았다. 순간이지만 완전히 눈이 멀고 말았다.

그리고 그것은 바이콘에게 라이트를 집중시키기 위해 눈을 뜨고 있던 코델리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코델리아가 소리친 그 때 눈을 감아버린 유더는 아니었다. 페어리들의 비명이 끊긴 그 순간 눈을 뜬 유더가 지면을 박차 올랐다.

쿵!

천하삼십육보.

내공을 사용한 보법이 유더를 가속시켰다. 유더와 바이콘 사이의 거리가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바이콘이 눈을 떴다.

하지만 여전히 제대로 보지 못 했다. 유더는 그런 놈에게 달려들며 숨을 삼켰다. 한 순간 호흡을 끊고 움켜쥔 주먹에 힘을 주었다.

‘잡는다.’

쫓아내는데 그치지 않는다.

여기까지 온 이상 놈을 쓰러트린다.

유더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예장용 검을 뽑지 않았다. 손 위에 둘러 너클처럼 만든 태양의 목걸이에 힘을 불어넣으며 일권을 내질렀다.

쾅!

유더의 주먹이 바이콘의 미간 사이를 정확히 강타했다. 놈이 자지러지는 비명을 질렀지만 아직이었다. 유더는 천하삼십육보를 밟으며 바이콘의 머리에 연격을 퍼부었다.

‘뇌성박!’

사흘간 아버지께 전수받은 무공 가운데 하나.

한 번 번개가 칠 사이에 일곱 번의 주먹을 꽂아 넣는다는 쾌권으로, 선사초와 후삼초의 칠연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파파팍!

유더의 주먹이 연속해서 바이콘의 미간과 뺨을 강타했다. 평범한 주먹질이었다면 단순 완력만으로도 곰과 상대가 가능한 바이콘에게 기별조차 가지 않았겠지만, 유더가 사용한 것은 내공을 이용한 무공이었다. 더욱이 태양의 목걸이가 발하는 성스러운 힘이 마에 속하는 바이콘의 존재를 용납하지 않았다.

“크헝헝!”

칠연격이 모두 꽂혔지만 역시나 바이콘이었다. 놈은 순간 비틀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머리를 크게 휘둘러 유더를 들이박고자 하였다.

빠르고 위력적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유더가 기다리고 있던 일격이었다.

훙!

바이콘의 뿔이 허공을 찍었다. 천하삼십육보를 밟아 단숨에 거리를 벌린 유더는 만족했다.

방금 일격을 회피한 스스로가 자랑스럽기 때문이 아니었다.

맡은 바 임무를 다하였으니까.

충분한 시간을 만들어냈으니까.

짧은 시간.

유더는 숨을 토했다. 고대하던 목소리에 미소를 머금었다.

“파이어 미사일!”

코델리아.

붉은 마탄이 어둠을 사르며 맹진했다. 대기를 불태우며 나아간 그것이 바이콘의 머리를 강타함과 동시에 폭발했다!

콰과광!

굉음이 일었다. 폭발의 여파로 대기는 물론이고 수면까지 뒤흔들렸고, 페어리들이 꺅꺅 비명을 질러댔다.

하지만 유더와 코델리아는 탄성을 지르는 대신 바로 다음을 준비했다.

양쪽 누구도 레벨 업 이펙트가 생기지 않았으니까.

아직 놈이 살아있을 가능성이 높았으니까!

“디그!”

코델리아가 연속해서 마법을 영창했다. 바이콘의 발밑을 꺼트려 넘어지게 한 그녀는 다음 마법을 준비하는 대신 이를 악물었다.

머리가 아팠다. 파이어 미사일을 사용한 여파인지 연속해서 마법을 영창하는 것은 무리였다.

코델리아가 비틀거리자 바이콘이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불에 타 엉망이 된 머리 사이로 흉흉한 안광을 불태우며 코델리아를 향해 돌진했다.

‘계획대로.’

머리가 아픈 것은 사실이었다.

마법을 연속해서 영창하는 게 무리인 것도 거짓이 아니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이 꼭 영창뿐인 것은 아니었다.

“바인드!”

코델리아가 마석을 내뻗으며 소리쳤다.

체이스 백작이 직접 만든 마석으로, 바인드 마법을 담고 있었다.

본래 유더가 허튼 짓(?)을 하면 쓰라고 주신 거였는데, 그런 아버지의 마음이 담긴 만큼 매우 강력한 포박능력을 자랑했다.

“끄워억!”

반투명한 금빛 줄에 묶인 바이콘이 달려오던 기세 그대로 물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윽.”

코델리아 역시 완전히 무사하지는 못 했다.

안 그래도 이미 비틀거리던 차였던 터라 바이콘이 일으킨 물보라에 밀려 그대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은 전투 중이었다.

노란폭풍의 머리는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10초 남짓.’

바인드가 바이콘의 몸부림을 견뎌낼 수 있는 시간.

‘15초 남짓.’

코델리아 자신이 다시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

충분했다.

시간은 부족하지 않았다.

‘그렇지? 아웃복서009.’

바이엘 백작이 전수한 두 가지 가운데 하나.

마차 안에서 이미 들어 알고 있던 것.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 기대하고 있던 것.

아웃복서는 노란폭풍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코델리아가 바이콘의 시선을 끈 그때 이미 준비 동작에 들어간 그였다.

‘배운 것은 두 가지.’

바이엘 백작은 유더의 무재를 제대로 알아보았다.

하지만 동시에 재능에 눈이 멀어 유더의 몸 상태를 간과하는 실수 역시 저지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사흘 동안 오직 두 가지만을 전수하였다.

‘평시에 사용하기 위한 연격.’

뇌성박.

좋은 기술이었다. 대성하면 정말 눈 깜박할 사이에 칠연격을 쏟아 부을 수 있으니, 그 위력 또한 약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평타를 위한 기술일 뿐이었다.

‘결정타가 될 한 방.’

사실 지금의 유더에게는 제대로 된 기술이 아니었다.

한 방을 사용하기 위한 준비 시간이 너무나 오래 걸렸으니까.

더욱이 힘을 집중시키는 준비 시간 동안에는 사실상 무방비 상태에 빠져야 했으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강력했다.

단순히 위력만을 논한다면 뇌성박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코델리아가 물속에 주저앉은 채 유더를 보았다.

유더의 주먹에 집중된 황금빛 섬광에 미소지었다.

‘뇌격권.’

그 주먹에서 번개가 작렬할지니.

유더가 진각을 밟았다.

바이콘의 머리 위로 벼락을 떨구었다.

&

< 제4장 - 성곤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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