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딩메이커-23화 (23/473)

< 제5장 - 악마의 손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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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 미노스.

악마의 손이 만들어낸 인마합일의 결과물.

마인들은 단순히 악마에게 힘을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악마 그 자체와 하나가 된 존재들로, 평범한 악마 추종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힘을 자랑했다.

영웅전기2에서 마인 미노스는 ‘이길 수 없는 보스’로서 군림했다.

애당초 지는 게 전제로 깔려 있는 친목회 습격 이벤트의 보스니 무슨 짓을 해도 이길 수 없다고 해야 할까?

게임을 계속 진행하기 위한 조건도 미노스를 격퇴하는 것이 아닌, 놈의 손에서 도망치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이었다.

게임과는 달랐다.

더욱이 미노스의 등장 시점부터가 게임과는 달라졌다.

본래는 보스답게 마지막에 등장해야 하는 인물이 습격과 동시에 모습을 보였으니 말이다.

유더와 코델리아는 마인 미노스를 마주한 순간 생각했다.

사고와 동시에 움직였다.

“루카스!”

코델리아가 루카스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마인 미노스는 ‘영혼 추적’ 능력을 갖고 있어 지근거리에 위치한 존재의 영혼을 식별 및 추적할 수 있었다.

놈이 단번에 루카스를 분별해낸 것 역시 영혼 추적의 능력일 터였다.

그러니 눈에 띄고 안 띄고는 이미 문제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루카스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연회에 무장한 상태로 참석할 수는 없으니, 호신용으로 가지고 있던 단검을 뽑아든 루카스는 반사적으로 코델리아 쪽을 돌아보았고, 그 순간 미노스가 움직임을 개시했다.

“라 크사르 피오.”

아무런 무늬 없는 하얀 가면을 뒤집어 쓴 놈의 입에서 마계의 언어가 흘러나왔다.

두 눈이 푸른 안광으로 빛났고, 놈의 양 손에서 막대한 한기가 일기 시작했다.

유더는 순간 숨이 막히는 기분을 느꼈다.

라이제강을 마주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절대적인 힘을 가진 존재를 마주한 압박감 때문이었다.

아니, 그런 것이 아니었다. 순간 마주친 미노스의 눈이 유더의 영육을 속박했다.

“아웃복서!”

코델리아가 유더의 등을 강타하며 소리쳤고, 덕분에 속박에서 풀려난 유더는 컥하고 숨을 토했다.

“가자!”

코델리아가 재차 외쳤다. 그녀는 루카스를 향해 도도도 달려가더니 당황한 그의 팔을 대뜸 붙잡았다.

“코델리아 양?!”

“코델리아?!”

루카스 곁에 있던 실비아도 목소리를 높였고, 유더는 그런 세 사람 대신 미노스를 보았다.

미노스가 한 걸음을 내디뎠다.

놈의 팔에서부터 일어난 한기가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로도스의 맹염이여! 나의 적을 쳐라!”

화염법사 로닌이 미노스를 향해 돌진하며 마법을 발동시켰다. 그러자 그의 양 옆에 구현화 된 불꽃의 맹수 두 마리가 미노스를 향해 몸을 날렸다.

“도련님!”

“아가씨!”

멀리서 준과 달리아가 각기 소리쳤다. 아무래도 연회의 특성상 외곽에 대기하고 있을 뿐 유더와 코델리아 곁에 바짝 붙어 있지는 못 한 두 사람이었다.

지금도 소리치며 달려오려 했지만 당장 눈앞에서 칼들고 덤비는 놈들이 있으니 몸을 빼내기가 쉽지 않았다.

유더는 판단했다.

본래 계획은 달리아와 합류한 뒤 이동하는 것이었지만 미노스가 나타난 지금 그럴 틈 따위 없었다.

“루카스! 도망쳐야 합니다! 이쪽으로!”

유더가 소리치자 실비아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루카스는 아니었다.

검의 귀재답게, 12가문의 맹주인 흐레스벨그 백작가의 후계자답게 당당하게 말했다.

“무슨 말입니까! 적을 두고 도망치다니! 기사된 자로서 나도 맞서······.”

“미친놈이 뭐라는 거야! 패럴라이즈!”

루카스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 했다.

대뜸 본색(?)을 드러낸 코델리아가 마비 마법을 발동시켜 루카스를 쓰러트린 탓이었다.

“코, 코델리아?!”

실비아가 대경실색했지만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코델리아는 픽하고 쓰러진 루카스의 한쪽 팔을 붙잡은 뒤 유더에게 외쳤다.

“가자!”

유더는 바로 알아들었다. 비어있는 루카스의 반대쪽 팔을 붙잡은 뒤 실비아에게 말했다.

“실비아 양! 이쪽으로!”

“예?! 아, 예!”

어쨌든 연회장 전체가 싸움터가 된 상황이었다.

맞서 싸우자는 것도 아니고 도망치자는 것이니 거부해야 할 이유가 없는 실비아였다.

“이그에 므스은 지거리······.”

마비가 완전히 되지 않았는지 루카스가 우물우물 거렸지만 유더와 코델리아는 신경쓰지 않았다.

루카스가 검의 귀재라고 해봐야 지금은 게임 초반.

쪼렙에 불과한데 제대로 된 검도 아니고 단검 들고 설쳐봐야 납치밖에 더 당하겠는가.

당장 코델리아의 마법이 단박에 먹히는 것이 그 증거였다.

“도련님!”

흐레스벨그의 기사들이 소리쳤지만 그들도 달리아나 준과 마찬가지로 눈앞의 적 때문에 쉬이 몸을 빼낼 수 없었다.

더욱이 미노스와 로닌의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연회장 안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어 주변을 분간하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이쪽으로!”

유더는 연회장 구석으로 이동하더니 비밀문을 발동시켰다.

연회장소로 쓰인 이 레스토랑은 본래 대귀족의 저택이었는데, 그런 건물들이 대개 그러하듯이 비밀 방을 가지고 있었고, 아웃복서는 아웃복서답게 비밀 방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3.5단계.’

유더와 코델리아는 어제 미리 비밀 방에 들어와 준비를 해두었다.

일종의 패닉룸을 만든 셈이었다.

“하악, 학··· 여긴?”

실비아가 헐떡이며 물었지만 유더와 코델리아는 답하는 대신 계속해서 움직였다.

여전히 마비 상태인 루카스를 바닥에 내려놓자마자 코델리아는 마법으로 어둠을 밝혔고, 유더는 왼쪽 모서리 부분에 가 카펫을 벗긴 뒤 어른 상반신보다 조금 큰 뚜껑을 열었다.

“이쪽으로!”

아쉽게도 밖으로 나가는 비밀통로 같은 것은 아니었다. 어제 유더와 코델리아가 디그 마법으로 새로 뚫은 구덩이였으니 말이다.

“빨리!”

코델리아의 재촉을 받으며 유더는 안에 넣어둔 물건들을 꺼냈다.

문라이트와 각종 방어구, 검, 방패, 마법진 등등이었다.

“실비아 언니, 들어가요. 언니는 중요 타겟이 아니니 숨어만 있으면 괜찮을 거예요.”

“어? 중요 타겟이 아니라고?”

태어난 이래 줄곧 세상의 중심이나 다름없이 살아온 그녀라 그런지 생각지도 못 한 부분에서 당황했다.

코델리아는 쓰게 웃으며 그런 그녀를 구덩이에 들어가게 했고, 실비아는 어쩐지 모르게 짐처럼 다뤄지는 상황에 당황하며 몸을 숨겼다.

“좋아, 무장하자.”

코델리아에게 문라이트를 건넨 유더는 연미복 위에 가죽 갑옷을 걸쳐 입은 뒤 태양의 목걸이를 너클처럼 쥐었다. 아무리 천무지체라고 하지만 아직 제대로 된 검술을 익힌 것은 아니었기에 주먹질 쪽이 좀 더 편하고 강한 유더였다.

“캔슬 패럴라이즈.”

코델리아는 문라이트를 휘둘러 루카스에게 걸린 마비 마법을 해제시켰다.

“공자도 받아요.”

유더가 얼른 검과 갑옷을 건네자 루카스는 마비가 덜 풀린 손을 움직여 무장을 하면서도 매서운 눈으로 코델리아를 노려보았다.

“코델리아 양! 이게 대체 무슨 폭······.”

“사일런스!”

침묵 마법의 효과는 굉장했다.

루카스는 무성 영화의 주인공처럼 입을 크게 벌리며 악을 썼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코델리아가 그런 루카스에게 바짝 다가서더니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

“야, 잘 들어. 지금 긴급 상황이야. 너도 네가 마법 한방에 무력화되는 거 느꼈지? 설치지 마. 적은 강해. 정신 바짝 차리고 긴장해도 부족하다고. 알았어?”

차갑고 날카로운 진실은 욕설보다 훨씬 강렬했다.

루카스는 입술을 깨물더니 고개를 끄덕였고, 무섭게 루카스를 노려보던 코델리아는 생긋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너무 쫄지는 말고. 같이 잘 해보자.”

툭하고 어깨까지 두드린 그녀는 후하고 숨을 길게 토하더니 치맛단을 과감하게 찢어버렸다.

“와우.”

“왜, 새삼 반할 것 같아?”

“퍽이나.”

가벼운 교환은 두 사람에게도 이로웠다.

이 와중에도 밖에서는 아비규환이 펼쳐지고 있으니, 아무리 이번 사태 자체를 예견했다고는 해도 긴장으로 몸이 굳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여기까지 올까?”

“안 오는 게 최고겠지만 올 수도 있겠지.”

미노스의 영혼추적의 범위가 꽤 짧긴 했지만, 그래도 연회장 전체를 커버할 정도는 되었다.

로닌을 꺾고 나면 이곳으로 향할 것이 분명했다.

“아으, 긴장 돼.”

라이제강 때와는 달랐다.

마인 미노스는 봉인되지 않은, 자기 전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존재였다.

“할 수 있어. 준비해놨잖아? 그리고 해낸다면··· 최초라고.”

“미노스 격파?”

“미노스 격파.”

영웅전기2의 수많은 썩은물들이 이루기는커녕 근처에도 못 가본 대업적.

“영웅전기담에 특집기사 뜨겠지?”

“뜨겠지.”

“좋아요도 많이 찍히고?”

“아주 폭격이겠지?”

“헤.”

코델리아가 상상이라도 하듯 해맑은 미소를 그렸고, 유더 역시 기분 좋게 미소를 그렸다.

되도 않은 흰소리였지만, 그립고도 즐거웠기 때문이다.

‘긴장하라더니 꽁냥거리고 있어.’

여전히 침묵 마법에 걸린 상태인 루카스가 속으로 불만을 토했지만, 소리 없는 아우성일 뿐이었다.

그리고 몇 초.

몇 분.

식은땀이 흐르는 시간이 지난 순간.

쾅!

비밀방 밖에서 굉음이 터졌다.

비명과 괴성이 연이어졌고,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가 더욱 날카롭게 들려왔다.

“온다.”

유더가 본능적으로 말한 그때 비밀방의 문이 얼어붙었다. 한기는 벽을 따라 퍼졌고, 이내 벽면 전체가 차디찬 얼음으로 변모했다.

마인 미노스.

극한의 지배자!

콰가강!

얼어붙은 벽에 균열이 생기는가 싶더니 일시에 무너져 내렸다.

갑자기 트인 시야에 난장판이 된 연회장과 악마의 손의 전투원들, 이마에 한 쌍의 뿔이 돋아난 채 반신이 피로 물든 마인 미노스가 들어왔다.

‘로닌.’

로닌은 패했다. 하지만 그냥 지지 않았다. 상극의 존재답게 미노스에게 막대한 타격을 입히는데 성공했다.

유더는 머릿속에 연회장 지도를 떠올렸다.

순간적으로 전황을 파악했다.

이쪽이 우세했다.

하지만 상황은 좋지 못 했다.

악마의 손의 전투원들이 길을 막고 미노스가 코델리아와 루카스를 제압한다.

놈에게 있어 둘을 제압하는 것은 어린애 손목 비트는 것보다도 쉬웠으니까.

실제로 이를 증명하듯 미노스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그려졌다.

“쥐새끼들이 여기 숨어 있었구나.”

미노스가 한 걸음을 내디뎠다.

기세등등하던 루카스는 저도 모르게 움찔했고, 코델리아는 이를 악물며 문라이트를 꽉 움켜쥐었다.

‘온다. 놈이 온다.’

유더는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코델리아를 보았고, 진각을 밟았다.

쿵!

유더의 신영이 쏘아지듯 앞으로 나아갔다.

동시에 미노스가 반응했다. 놈은 유더의 움직임에 맞춰 눈동자를 굴렸고, 이내 극한의 한기가 유더를 향해 몰아쳤다.

“히트!”

유더가 마법진을 찢어 열기를 일으켰다.

하지만 기껏해야 1성 마법에 불과했다.

잠시 주춤하던 한기는 순식간에 유더를 덮쳤고, 미노스가 다시 한 걸음을 내디뎠다. 유더에 이어 코델리아와 루카스를 제압하려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아니, 유더가 진각을 밟은 바로 그때.

코델리아가 미리 준비한 칼날로 손바닥을 그었다. 피를 냄과 동시에 꽉 움켜쥔 문라이트로 바닥을 찍었다.

“같잖은 마법 따위!”

미노스의 전신에서 강대한 악마의 기운이 솟구쳐 올랐다.

막강한 마력으로 코델리아의 마법 구성 자체를 찢어발기기 위함이었다.

실로 무시무시한 기운이었다. 그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도 코델리아는 미소지었다.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아릿한 통증 때문에 쓴웃음이긴 했지만 분명 미소를 그렸다.

아웃복서009의 예상대로였으니까.

모든 것이 정해진 수순대로 흘러갔으니까.

코델리아는 마력을 발산했다.

마법이 아니었다.

그저 순수한 마력을 피와 함께 방출하였고, 문라이트를 통해 바닥까지 전달된 그것이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츄화아아아아아아아-!

찬란한 빛이 일었다.

비밀방 바닥 전체를 뒤덮은 빛의 고리로부터 방출된 빛이 카펫을 뚫고 선명하게 드러났다.

“이게 무······?!”

미노스가 말을 멈추었다.

아니, 말을 잇지 못 했다.

숨이 막혔다. 전신이 쇠사슬에 얽매이는 것 같았다.

어째서, 아니, 이게 대체 무엇이기에?!

“뭐긴 뭐야, 씨발! 벨라스틴의 마법진이지!”

코델리아가 유쾌하게 웃으며 소리쳤다.

벨라스틴의 마법진.

악마를 상대로는 무시무시한 위력을 자랑하는 그것.

미노스는 악마의 기운을 강하게 방출했고, 그것이 오히려 발목을 잡았다.

악마의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 강한 힘을 발하는 것이 바로 벨라스틴의 마법진이었다.

물론 한계는 있었다.

라이제강 때처럼 태양신 솔라리의 봉인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었으니, 동력은 코델리아의 마력이 전부였다.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기껏해야 수십 초 남짓.

그나마도 코델리아가 사력을 다해야 가능한 시간이었다.

너무 짧았다.

하지만 코델리아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힘들어 죽겠지만, 식은땀을 뻘뻘 흘려가며 다시 한 번 소리쳤다.

“아웃복서!”

쾅!

지면을 박찼다.

천하삼십육보.

유더가 미노스의 코앞에 나타났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미노스의 한기는 평범한 한기 따위가 아니었으니까.

영육을 좀 먹는 음기였다.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한기를 견뎌낸다 하더라도 음기 때문에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유더는 아니었다.

‘익숙하니까.’

구음절맥.

극한의 음기를 타고나 생기는 병.

거기에 더해진 태양의 목걸이.

미노스의 얼굴에 경악이 번졌다.

코델리아가 문라이트에 매달리듯 무너지며 가운데 손가락을 세웠다.

뇌성박.

벼락같은 칠연격이 미노스의 전신을 강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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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장 - 악마의 손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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