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5장 - 악마의 손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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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노스는 순간 정신을 차리지 못 했다.
폭격처럼 쏟아진 칠연격이 명치, 인중, 관자놀이 등등 인체의 치명적인 급소들을 노렸기 때문이다.
마인이라 하나 일단은 인간이었다.
인간의 육신과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니, 급소 역시 인간과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악마였다.
유더의 연격에 의해 순간 정신까지 놓아버린 미노스였지만 뇌성박 한 번에 무너지진 않았다.
‘격차.’
미노스가 아무리 초반에 등장하는 하급 마인이라고는 하나 마인은 마인이었다.
신체능력만이 아니라 육신의 내구도 역시 인간을 초월한 존재였다.
허나 이미 예상한 바였다.
더욱이 지금의 미노스는 로닌과의 싸움으로 인해 지치고 벨라스틴의 마법진에 속박되어 약화된 상태였다.
유더는 멈추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뇌성박을 펼쳤다.
콰쾅!
태양의 목걸이가 발하는 솔라리의 신성과 미노스의 육신에서 발산된 악마의 기운이 충돌하며 굉음이 터졌다.
악마의 손의 전투원들은 미노스가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상황에 놀라 개입하려 했지만, 그들 역시 많든 적든 악마의 힘이 깃든 이들이었다. 벨라스틴의 마법진에 막혀 아예 진입 자체가 불가능했다.
“도련님!”
“아가씨!”
더욱이 그들 너머에는 12가문의 호위기사들이 있었다.
당장 눈앞에서 밀어붙이는 호위기사들을 막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이었다.
‘시간문제.’
연달아 뇌성박을 펼친 유더는 머릿속으로 숫자를 헤아렸다.
코델리아가 벨라스틴의 마법진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
호위기사들이 악마의 손을 뚫는데 걸리는 시간.
마인 미노스가 벨라스틴의 마법진에 적응해 운신이 가능해지는 시간.
몇 초 차이.
길어야 십여 초에 불과하지만, 그 십여 초에 의해 목숨이 오갈 수 있었다.
쿵!
유더는 재차 진각을 밟으며 세 번째 뇌성박을 펼쳤다.
무리한 운용으로 숨이 막혔지만 멈출 수 없었다.
콰쾅!
다시 뇌성이 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칠연격 모두가 성공하지 못 했다. 마지막 공격이 막혔다. 미노스가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여 공격을 저지했다.
“라- 쿠하!”
피투성이가 된 미노스가 괴성을 터트리자 놈의 전신에서 번갯불이 일었다. 악마의 기운과 벨라스틴의 마법진의 속박력이 충돌하며 생긴 현상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루카스! 가세해!”
자세를 무너트린 채 문라이트에 매달려 있던 코델리아가 소리쳤다.
“성왕십자검!”
마지막에는 거의 악을 쓰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그것이 미노스와 벨라스틴의 마법진에 놀라 넋을 놓고 있던 루카스를 각성시켰다.
성왕십자검.
오직 흐레스벨그 백작가의 적통에게만 전해진다는 고대의 검공.
당대의 후계자답게 루카스 역시 성왕십자검을 쓸 줄 알았다. 물론 그 경지가 미천하긴 했지만, 그렇다 해도 성왕십자검이었다.
대악마 다섯을 베고 성국을 세운 성왕 그레이엄의 검이었으니, 악마의 힘을 쓰는 마인에게는 특효약이라 할 수 있었다.
루카스의 호흡이 바뀌었다.
전신의 기를 단번에 활성화시킨 그가 미노스와 유더를 향해 신영을 날렸다.
성왕십자검 일식- 성검.
루카스의 검신이 순백으로 빛났다.
항마의 힘을 지닌 성스러운 빛이었다.
코델리아가 루카스의 이름을 외친 그때 이미 몸을 뺄 준비를 하고 있던 유더는 숨을 토함과 동시에 미노스와의 거리를 벌렸다.
그리하여 생겨난 틈을 루카스가 파고들었다.
“크악!”
성검에 가슴을 베인 미노스가 괴성을 질렀고, 놈의 가슴에서 검은 피가 솟구쳐 올랐다.
하지만 아직이었다.
메인 시나리오 초반인 지금, 유더나 루카스나 강함만을 논한다면 오십보백보인 상황이었다.
루카스 혼자서는 미노스를 꺾기 어려웠다.
“잡것들이!”
미노스가 노성을 토하며 속박된 상태로나마 힘을 발했고, 루카스는 식은땀을 뻘뻘 흘려가며 미노스에게 맞섰다.
그리고 유더는 코델리아에게 돌아와 그녀를 부축하며 물었다.
“할 수 있어?”
“있어. 대신, 아흑··· 끊겨.”
코델리아가 신음을 토하며 답했다.
얼핏 이해하기 어려운 대화였지만, 유더와 코델리아에게는 아니었다.
유더가 요구한 것.
문라이트에 숨겨진 힘.
하지만 사용하는 순간 벨라스틴의 마법진은 불과 몇 초만에 해제될 운명이었다. 코델리아의 마력은 아직 문라이트와 벨라스틴의 마법진을 동시에 가동하기에는 너무나 미약했다.
유더는 계산했다.
코델리아는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하자.””
호위기사들이 악마의 손을 뚫고 도달할 때까지 벨라스틴의 마법진이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아니, 코델리아가 버틸 수 있을 것인가.
무리였다.
간발의 차로 미노스 쪽이 힘을 회복하는 쪽이 더 빠를 터였다.
애당초 벨라스틴의 마법진이라 해도 만능이 아니었다.
유더가 굳이 비밀방에 벨라스틴의 마법진을 설치한 것은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이었다.
마법진을 그리기 위해 연회장 전체를 대여하는 것도 무리였고, 연회장 전체를 커버할 정도로 거대한 마법진을 발동시키는 것도 무리였다.
그렇다고 작은 마법진을 그리자니 미노스를 정확히 마법진 위로 유도하는 것이 또 한 번 문제였다.
그래서 비밀방을 택한 것이었다.
말 그대로 비밀 방이기에 몰래 들어가기만 한다면 마법진을 그릴 동안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다.
방 자체가 그리 넓지 않기 때문에 방 전체를 커버하는 마법진을 설치하면 미노스를 특정 지역으로 유도해야 한다는 문제 자체가 사라진다.
‘최선이야.’
애당초 지금의 상황 자체가 노력에 노력을 다해 만든 최선의 상황이었다.
그러니 다시 한 번 노력한다.
막연히 잘되기를 바라는 대신 한 번 더 발버둥 친다.
루카스와 미노스가 격돌했다.
성왕십자검과 악마의 기운이 충돌하며 발생한 충격에 루카스가 신음을 토했고, 벨라스틴의 마법진을 억지로 유지 중인 코델리아의 코에서 왈칵 피가 쏟아져 나왔다.
유더는 더는 망설이지 않았다.
태양의 목걸이를 고쳐 쥐었고, 코델리아는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중요한 것은 타이밍.
아슬아슬한 순간에, 정확한 빈틈을 찌른다.
유더는 다시 한 번 계산했다.
코델리아는 이번에도 본능으로 직감했다.
1초.
2초.
루카스의 검이 다시 한 번 미노스의 가슴을 가른 그때.
“달빛의 영광이여! 지금 깨어나 빛을 발하라!”
코델리아가 문라이트를 마법진에서 떼었다. 크게 들어 올리며 영창했고, 문라이트에 숨겨진, 백년도 넘는 시간 동안 축적해온 달의 마력을 방출했다!
빛.
어둠을 파하는 것이 아닌, 어둠 속에 번지는 은은한 그것.
달빛이 비밀방을 가득 채웠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 힘을 온전히 한 곳에 전달하였다.
그로인해 빛나는 것은 태양.
솔라리의 힘을 담은 신성기.
백년의 세월동안 축적된 달의 마력은 결코 작지 않았다.
태양의 목걸이로부터 그 옛날 솔라리의 챔피언 가리우스와 함께 했을 때와 동등한 빛이 방출되었다.
“크학?!”
전신을 압박하는 달의 마력에 순간 주춤하던 미노스가 고통스런 신음과 함께 눈을 질끈 감았다.
루카스는 다시 한 번 놀라 입을 크게 벌렸다.
쿵!
유더가 돌진했다. 동력원을 잃은 벨라스틴의 마법진의 효과가 사라지기 전에 마무리를 지어야 했다.
“그리스!”
왼손에 낀 장갑에 그려둔, 너무나 간단한 동시에 치명적인 마법.
눈을 감은 채 뒷걸음질 치던 미노스가 미끄러져 넘어졌다. 그리고 그런 놈에게 올라탄 유더가 주먹을 당겼다.
기회는 오직 한 번.
지금의 일격으로 가장 치명적인 타격을 가한다.
유더는 숨을 멈추었다.
달빛을 받아 응축된 태양의 힘을 원료삼아 단번에 뇌격권을 폭발시켰다.
콰광!
뇌성이 터졌다.
벼락같이 쏟아진 주먹이 미노스의 가슴을 강타했다.
더욱이 이번에는 단순한 물리적 타격이 아니었다.
태양신 솔라리의 신성력이 미노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크아악!”
미노스가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그런 놈의 전신에 수십 개나 되는 균열이 일었다.
마정석.
악마와 하나 되어 마인이 된 자의 가슴에 자리하는 심장을 대신하는 기관.
악마의 뿔처럼 마력을 응집하고, 외부로부터 수급할 수 있는, 마인을 마인으로서 존재하게 하는 그것.
그것이 부서졌다.
솔라리의 황금빛이 벨라스틴의 마법진과 계속된 타격에 의해 약해질대로 약해진 놈의 마정석을 산산이 분쇄했다.
“안 돼, 안 돼!”
놈의 전신에 난 균열로부터 마력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미노스가 몸부림쳤다.
그리고 다시 유더가 주먹을 당겼다.
“조져버려.”
코델리아의 목소리가 들린 것은 착각일까.
유더는 사납게 웃었다. 태양의 목걸이에 남은 달의 마력을 자신의 것으로 삼았다. 포효하며 미노스의 가슴에 최후의 일격을 꽂아넣었다.
쿠화아-!
빛이 터졌다.
다시 한 번 가슴을 강타당한 미노스의 전신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악마의 기운이 마치 연기처럼 일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직후.
유더의 몸을 감싸는 새하얀 빛의 고리가 연달아 발생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처음 던전북을 공략했을 때처럼 머릿속에 떠오르는 문구가 있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한 자’ 타이틀을 획득하셨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5% 상승합니다.]
본래는 이길 수 없는 보스.
지는 것을 전제로 설계된 시나리오.
하지만 극복했다.
승리를 이끌어냈다.
유더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처음으로 서버랭킹 1위를 했을 때처럼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솟구치는 성취감을 포효로 발산했다.
코델리아도 같았다.
코피를 줄줄 흘리며 나자빠졌음에도 불구하고 두 팔을 높이 들며 환호했다.
“도련님!”
“아가씨!”
연달아 들려오는 준과 달리아의 목소리.
유더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기분 좋은 미소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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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하··· 뒤, 뒤질 것 같아. 졸도 할 커흑 거니까, 뒷일, 부탁해.”
미노스를 쓰러트린 직후.
코델리아가 여전히 나자빠진 채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얼굴로 말했고, 어찌어찌 그런 코델리아 옆까지 반쯤 기어서 이동한 유더가 답했다.
“미안, 내가 먼저, 졸도··· 할, 각이라.”
“씨, 씨발?”
“구음···절맥··· 컥.”
정말 거기까지였는지 코델리아 옆에 누운 유더가 켁 소리를 내며 졸도했다.
둘 다 레벨 업을 잔뜩 하긴 했지만 소모한 체력과 마력이 워낙 엄청났기 때문이다.
“씨, 씨발놈.”
겨우겨우 욕지거리를 토한 코델리아는 마지막 힘을 다해 정신줄을 붙잡은 뒤 약간 꿔다놓은 보릿자루 꼴이 된 루카스에게 말했다.
“뒷수습, 뒷일. 부탁······.”
코델리아도 거기까지였다.
코피를 줄줄 흘리던 절세미소녀는 그대로 의식을 잃었고, 졸지에 뒷일을 부탁받게 된 루카스는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아니, 소리치고 싶었다.
어떻게!
아직 코델리아가 건 침묵마법이 걸린 상태였으니까.
더욱이 뒷수습을 하기에는 루카스도 모르는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비밀방에 설치된 마법진은 뭐고, 마지막에 미노스를 쓰러트린 유더와 코델리아의 활약은 뭐란 말인가.
‘그, 그리고 씨발도.’
씨발씨발거리는 절세미소녀라니. 아니, 백작가 영애라니.
어떤 의미로는 오늘 있었던 일 중에서 가장 임팩트가 큰 게 코델리아의 본색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그렇게 내숭을 떨더니만.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친 루카스는 무너진 벽 너머를 바라보았다. 악마추종자들을 제압한 호위 기사들이 단체로 몰려오고 있었다.
“아가씨! 아가씨!”
체이스 백작가의 호위무사- 달리아가 코피를 줄줄 흘리는 코델리아를 보고 왈칵 눈물을 쏟았고, 바이엘 백작가의 호위무사는 다급히 유더의 맥을 짚어보았다.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사색이 된 흐레스벨그 백작가의 호위무사에게 적당히 고개를 끄덕인 루카스는 새삼 다시 유더와 코델리아를 돌아보았다.
나란히 졸도한 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두 사람을 보고 있자니 앞뒤 사정 다 떠나 저도 모르게 미소가 그려졌다.
‘그야말로··· 환상의 커플이군.’
아니, 환장인가.
유더와 코델리아가 들었다면 극구 부인했을 이야기를 속으로 삼킨 루카스는 다시 호위기사를 돌아보았다. 열심히 자신의 입을 가리키며 침묵 마법이 걸렸음을 어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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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장 - 악마의 손 #5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