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5장 - 악마의 손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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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화초.
세일룬 왕국 최북단 경계 너머, 야만의 땅 초입에는 프로스트 앤빌이라 불리는 유적지가 존재한다.
프로스트 드워프들이 세운 고왕국의 유적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한 곳인데, 중요한 것은 프로스트 앤빌 일대가 혹한을 넘은 극한의 땅이라는 사실이었다.
‘대륙에서 가장 추운 곳? 당연히 프로스트 앤빌이지.’
사실 단순히 추운 수준이 아니었다. 물을 뿌리면 허공을 유영하던 물줄기가 고드름이 되어 떨어지는 곳이었으니 말이다.
어째서 이런 극한 지대가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는데, 프로스트 드워프들이 만든 장치가 지금도 가동 중이라는 의견도 있었고, 신의 저주를 받아 그리 되었다는 신학적인 관점도 있었다.
‘아무튼 프로스트 앤빌에는 한 가지 전설이 있지.’
20년에 한 번, 프로스트 앤빌 어딘가에 극양의 기운을 가진 태양화초가 피어난다.
극한의 땅에서 피어나는 극양의 꽃.
그리고 이 이야기는 전설이 아닌 사실이었다.
‘어떤 의미로는 태양화리보다도 유용하고.’
영웅전기2에 등장하는 극양의 기운을 가진 아이템 중에서 끝판왕은 당연 태양화리였지만, 사실 태양화리는 극양의 기운 외에는 딱히 건질 게 없는 아이템이었다.
반면 태양화초는 극양의 기운은 태양화리보다 못 했지만, 대신 신체 전반의 능력치를 상승시켜줄 뿐만 아니라 흡수한 자를 특수한 체질로 변모시키는 기능이 있었다.
‘그런데 그걸 루카스가 먼저 말했다.’
원작에서 태양화초 이벤트는 메인 이벤트까지는 아니었다.
‘코델리아와 요정의 연회’처럼 히든 이벤트에 가까웠는데, 유더와 루카스 등등 북부에 위치한 캐릭터라면 누구나 발동시킬 수는 있지만 사실상 루카스를 위해 준비된 이벤트라 할 수 있었다.
‘뭐··· 루카스는 태양화초가 극양의 기운을 품은 꽃이라는 정도밖에 모를 테니까.’
과하면 모자란 것만 못하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극양이든 극한이든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친 기운은 오히려 몸에 해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구음절맥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들어본 적은 있습니다. 극양의 기운을 가진 꽃이라죠?”
“예, 북부에는 전설처럼 전해지는 꽃입니다. 그리고······.”
돌연 목소리를 낮춘 루카스는 유더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선 뒤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전설이 아닌 사실입니다. 흐레스벨그 백작가의 기록에는 20년 전에 태양화초를 발견한 자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오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유더는 마른 침까지 꿀꺽 삼키며 적절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듣는 이의 관심이야말로 이야기보따리를 열게 하는 최고의 수단이었으니 말이다.
“올해가 딱 20년째가 되는 날입니다. 북부로 돌아가 조금 있으면 겨울이 올 터이니··· 시기상으로도 적절하지요.”
이쯤 되면 루카스가 무슨 의도로 태양화초에 대해 이야기하는지는 빤했다.
유더에게 태양화초를 권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얘가 왜 이러냐는 건데.’
사실 짐작은 갔다.
루카스 흐레스벨그가 어떤 녀석인지는 이미 잘 알고 있는 유더였으니 말이다.
“그것 참 흥미로운 이야기군요.”
유더는 새삼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관심 없는 척을 가장하지만, 사실 엄청나게 관심이 있음을 어필하는··· 코델리아는 죽었다 깨어나도 할 수 없는 종류의 연기를 펼치며 말이다.
과연 통했는지 루카스의 검푸른 눈동자에 반짝하고 빛이 어렸다.
“유더 공자, 저와 함께 북부에 가시지 않겠습니까?”
‘빙고!’
속으로 환호한 유더는 굳이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기쁨을 얼굴 한 가득 내비친 뒤 다급히 수습하는 형태로 아직 미숙한 도련님을 연기하며 말했다.
“북부에··· 말씀이십니까?”
“예, 유더 공자만 괜찮으시다면 흐레스벨그 백작가에 초대하고 싶습니다. 원하신다면 코델리아 양도요.”
‘오오, 루카스. 오오, 루카스.’
미노스와의 싸움에서도 그렇더니 참으로 유용하구나.
유더는 알아서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루카스의 이마에 키스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을 애써 억누른 뒤 입술을 달싹 거렸다.
“정말··· 정말 고마우신 제안입니다. 다만··· 어찌하여······.”
바이엘 백작가와 흐레스벨그 백작가의 사이는 딱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얼핏 생각하면 과거 바이엘 백작가가 독점하고 있던 변경백 자리를 지금은 흐레스벨그 백작가가 차지하고 있으니 사이가 나쁠 것 같았지만, 둘 사이에는 하나의 가문이 더 존재했다.
‘바이엘 백작가에서 파엘 백작가로, 그리고 다시 흐레스벨그 백작가로.’
바이엘 백작가가 변경백 자리에 있던 것은 거의 50년 전의 이야기였다.
북부 야만족과의 대규모 전투에서 당대 바이엘 백작이 전사한 사건으로 인해 변경백 자리는 파엘 백작가로 넘어갔는데, 새로 변경백 자리에 오른 파엘 백작 역시 오래지 않아 전사하고 마는 비극이 일어나고 말았다.
이에 중앙에서는 중앙의 실력자이자 당대 십검호의 필두에 있던 흐레스벨그 백작을 변경백으로 파견하였고, 그때부터 흐레스벨그 백작가가 12가문의 필두로서 변경백 자리를 유지하게 되었다.
‘어찌되었든 원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니지.’
데면데면한 사이라고 해야 할까.
유더의 물음에 루카스는 얼굴을 살짝 붉히더니 시선을 슬쩍 돌리며 말했다.
“호적수를··· 만났다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역시나 그거냐.’
예상대로의 대답에 유더는 픽하고 웃음이 새어나올 것 같았지만 애써 진지한 표정을 유지했다.
“호적수··· 말씀이십니까?”
“예, 전···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이날 이때까지 제 또래에는 저와 대적할 이가 없다고 생각해왔습니다.”
루카스는 검의 귀재였으니까.
유더처럼 구음절맥을 타고난 것도 아니었던 터라 어린 시절부터 그 눈부신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며 자랐다.
“또래에는 상대가 없다··· 듣기 좋은 말이지만, 사실 저는 늘 고독함을 느꼈습니다. 저와 대등한 위치에 서서 함께 나아갈 수 있는 그런 존재를··· 호적수를 항상 염원해왔죠.”
루카스의 얼굴과 목소리에 진정성이 어렸다.
잘생긴 호남인만큼 그림이 되었지만, 정작 듣는 유더는 똑같이 진지한 표정을 유지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써야만 했다.
‘아오, 진짜. 존나 오글거리네.’
설정으로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직접 들으니 정말 여러 가지 의미로 새로운 느낌이었다.
“유더 공자.”
“예, 루카스 공자.”
유더가 간신히 타이밍 맞게 답하자 루카스는 더 없이 진지한 얼굴로 유더를 바라보더니 돌연 덥썩하고 손까지 잡았다.
“유더 공자의 싸움을 보고 확신했습니다. 유더 공자야말로 제가 오랫동안 염원해온 호적수임에 분명하다고.”
‘그래, 본래는 막시밀리언을 호적수로 삼지만, 뭐, 유더도 천무지체가 있으니까. 호적수로 삼을만 하지. 그런데 손은 대체 왜 잡는 거니.’
마음의 소리를 간신히 억누른 유더는 루카스의 뜨거운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유더 공자의 병을 하루라도 빨리 낫게 하자고.”
유더가 그 재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사실 미노스를 쓰러트린 직후에는 이래저래 코델리아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 루카스였다.
코델리아에게 반해서가 아니라, 그녀의 본색이 너무나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유더의 싸움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유더가 보여준 움직임.
과감하기 짝이 없는 그의 싸움법.
똑같은 천재이기에 알아볼 수 있는 천재의 재능.
“유더 공자, 북부에 함께 가시지요. 태양화초를 찾을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바라마지 않던 제안이었다.
하지만 유더는 이번에도 바로 답하는 대신 잠시 시간을 두었다.
루카스를 애태우기 위함이었다.
‘음, 좋아.’
대충 20초쯤 되었을까?
루카스의 눈동자가 흔들리자 유더는 심사숙고 끝에 입을 연다는 듯 무거우면서도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태양화초를 함께 찾자는 말씀보다는 흐레스벨그의 기린아라 불리는 루카스 공자께서 저를 호적수로 여기신다는 말씀이 더욱 마음에 와닿는군요. 이제 막 무의 길을 걷기 시작한 몸이지만 루카스 공자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졌습니다.”
“유더 공자, 그 말씀은······.”
“예, 루카스 공자와 함께 가겠습니다.”
유더가 활짝 웃으며 말하자 루카스는 안도한 듯 숨을 한 번 길게 쉬더니 똑같이 환한 미소를 그려보였다.
“유더 공자와의 북부행을 기대하겠습니다.”
“예, 저도 기대하겠습니다.”
이야기가 일단락되자 루카스는 기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흐레스벨그 백작가의 기사들에게 돌아갔다.
발걸음에조차 흥분이 묻어나는 걸 보니 이러나저러나 역시 아직은 어린 열여섯 소년이었다.
‘영웅소설 마니아기도 하고.’
당장 지금의 상황 자체가 루카스가 좋아하는 영웅소설 가운데 하나인 ‘빌트바인 영웅전’ 초반 상황과 거의 흡사했으니 말이다.
유더가 마지막에 꺼낸 태양화초보다는 루카스의 호적수가 되었다는 사실이 더 기쁘다-는 작중 주인공 빌트바인의 호적수 카트랑이 한 말을 거의 그대로 가져온 것이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방금 대화를 나누는 동안 루카스는 자신이 빌트바인이 된 것 같다는 기분에 빠져 있었으리라.
‘아무튼, 한 건 해결인가?’
새삼 어깨를 늘어트린 유더는 코델리아 쪽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이야기에 푹 빠져든 실비아와 비올라에게 페어리들의 연회에 대해 동작까지 더해가며 설명하고 있었다.
‘역시··· 나랑 있을 때 외에는 코델리아로서의 면모가 더 강해지는 건가.’
유더와 코델리아는 전생의 기억을 각성했다.
그리고 그 결과 많은 것들이 변하고 말았다.
십여년 밖에 살지 않은 인생에 돌연 이십여 년에 달하는 기억이 한 번에 더해졌으니 아무리 전생과 환생이라고는 하나 유더보다는 아웃복서009로서의 면모가 조금 더 도드라졌다.
그리고 그것은 똑같이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노란폭풍과 마주하고 있을 때 더욱 심해졌다.
유더와 코델리아는 약혼 관계라고는 하나 본래 서로 데면데면한 관계였다.
하지만 아웃복서009와 노란폭풍은 아니었다.
알고 지낸 것만 5년에, 서로 매일같이 채팅방에서 으르렁 거린 것도 근 3년에 달했으니, 함께 있으면 유더와 코델리아보다는 아웃복서와 노란폭풍의 만남이 되었다.
서로가 아직도 닉네임을 부르는 것이 바로 그 증거였다.
둘이 함께 있을 때는 아직 서로의 이름보다는 닉네임이 더 익숙한 두 사람이었다.
‘둘만이 공유하는 전생에 대한 애정··· 어쩌면 집착 같은 것일 수도 있고.’
물론 조금씩 변해갈 터였다.
당장 유더와 아웃복서의 기억이 섞이면서 성격 역시 변하였으니까.
지금의 유더는 기존의 유더도, 전생의 아웃복서 임진호와도 조금 다른 새로운 누군가에 가까웠다.
‘호칭도 언젠가는 변하겠지.’
처음 만남 이후 서로의 닉네임을 부르는 빈도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나중에는 정말 생각날 때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여, 일종의 애칭처럼 닉네임을 부르는 날이 오고 말 터였다.
“언젠가는.”
자리에서 일어난 유더는 한창 신나서 이야기 중인 코델리아를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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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렀다.
악마의 손 습격 사건으로부터 이틀.
제일 먼저 도착한 것은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다후트 백작가였다.
다후트 백작가의 자랑인 금사슴 기사단은 쌍둥이 형제를 데리고 신속히 랑게스트를 떠났고, 그 다음 순번이 된 것은 크로스벨 백작가와 랑그 자작가였다.
“코델리아, 이번 친목회는 무서운 일이 있었지만··· 그래도 만나서 정말 반가웠어. 내년에 있을 친목회를 기대할게.”
“저, 저도요. 코델리아 언니.”
요 며칠 사이 부쩍 친해졌는지 코델리아와의 헤어짐을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두 사람이었다.
“나도 기대할게. 두 사람이 정말 많이 보고 싶을 거야.”
코델리아는 실비아와 비올라를 차례로 끌어안았고, 절세미소녀의 포옹에 절세미녀와 귀여운 소녀는 각기 뺨을 붉혔다.
악마의 손 습격 사건으로부터 사흘.
실비아와 비올라에 이어 펠릭스까지 떠나고 나니 트레지앙에 남은 것은 이제 유더와 코델리아, 루카스 이렇게 세 사람뿐이었다.
“가문과는 중간에 합류할 예정입니다.”
요 며칠 사이 가문과 연락을 마친 루카스가 웃으며 말했다.
흐레스벨그 백작가가 위치한 썬더둠 요새는 랑게스트와 너무 멀었으니까.
어차피 유더와 코델리아가 함께하면 바이엘 백작가와 체이스 백작가도 함께 한다는 이야기였으니 호위 면에서 문제가 생길 일도 없었다.
중간에 합류해도 괜찮으리라.
“남은 건 우리인가.”
바이엘 백작가와 체이스 백작가.
그리고 다음날 아침.
마침내 두 백작가의 사람들이 랑게스트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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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여전히 비리비리하구나.”
“아, 아버지?”
놀랍게도, 체이스 백작가에서 마중 온 이는 다른 누구도 아닌 체이스 백작 본인이었다.
“하하하, 유더. 이야기는 들었단다. 겨우 며칠 사이에 몰라보게 강해졌구나.”
바이엘 백작가에서 온 것은 차기 바이엘 백작으로 확정이 된 게일 바이엘이었고 말이다.
“체이스 백작님이 가시는데 이쪽도 구색은 맞춰야하지 않겠니.”
쓰게 웃은 게일이 유더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하기야 체이스 백작이 가는데 적어도 바이엘 백작가의 후계자 정도는 따라가야 구색이 맞으리라.
체이스 백작은 언제나처럼 냉엄한 얼굴로 유더를 바라보더니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마인을 상대했다지?”
“예, 코델리아 양과 붉은 여명 탑의 마법사 분들 덕분에 쓰러트릴 수 있었습니다.”
“흥, 홀로 쓰러트리지 못 하다니, 여전히 약하구나.”
체이스 백작의 혹평에 주변에 있던 이들이 당황했지만 유더는 아니었다. 당장 지금도 품을 뒤지기 시작한 체이스 백작을 보며 행복한 미소를 머금었다.
“너무 약해서 마음을 놓을 수가 없군, 별 건 아니지만 챙겨둬라.”
“사랑합니다, 아버님.”
체이스 백작이 내민 새카만 팔찌를 넙죽 챙긴 유더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
마법 방어력을 높여주는 C랭크 팔찌인 어둠의 가호였기 때문이다.
“쯔쯔, 여전히 말라비틀어져서는. 오는 길에 우연찮게 산 물건이 있다. 가져가거라.”
슬쩍 돌아보니 체이스 백작가의 기사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품에 안고 있는 종이 보따리를 슬쩍 들어올렸다.
몸에 좋은 보양식이 분명했다.
“딱히 네 녀석을 위해 준비한 것이 아니니 착각하지 말도록.”
“물론입니다, 아버님.”
유더가 반짝반짝 눈을 빛낸 그때였다. 코델리아가 슬쩍 유더의 옆구리를 찌르며 눈짓을 했다.
‘왜? 이것도 n빵 하자고?’
‘미친놈이 뭐라는 거야, 그거 말고. 그거 있잖아, 그거.’
‘아, 그거.’
눈빛만으로 의사소통을 마친 유더와 코델리아는 나란히 체이스 백작을 돌아보았고, 헛기침으로 숨을 가다듬은 유더가 말문을 열었다.
“아버님, 그리고 형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태양화초에 대한 이야기와 루카스의 초대.
그리고 여기에 더해진 것은 코델리아의 합류.
“사, 사랑하는 유더 공자님과 함께 가고 싶어요. 떠, 떨어지고 싶지 않아···요.”
유더의 팔을 꽉 끌어안은 코델리아가 새빨개진 얼굴로 울상이 되어 말했다.
본인은 부끄러워 그런 것이었지만, 다른 이들의 눈에는 약혼자와 함께 하고 싶어 눈물까지 보이는 사랑에 죽고 사는 소녀로만 보였다.
‘형은 당연히 ok할 기세인데.’
코델리아를 보며 얼굴 한 가득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으니까.
유더는 이래저래 매달리는 코델리아를 한 팔로 지탱한 채 체이스 백작을 돌아보았고, 저도 모르게 흠칫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체이스 백작의 시선이 너무나 무서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체이스 백작은 코웃음을 치더니 다시 품을 뒤지며 말했다.
“약해빠진 녀석이 코델리아를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이군.”
말투는 시비조였지만 그의 손에는 벌써 새로운 아이템이 들려 있었다.
“변변찮은 물건이지만 가져가라.”
체이스 백작이 내민 것은 한 쌍의 반지였다.
척 보자마자 유더와 코델리아를 위해 준비했고, 오랜 시간 품어온 물건으로 보였는데, 강력한 마력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코델리아를 잘 부탁한다.’
유더의 머릿속에 들려온 메시지 마법.
유더가 퍼뜩 고개를 들자 체이스 백작은 냉랭한 표정 그대로 돌아섰다.
“용무를 마쳤으니 나는 이만 돌아가겠다. 바이엘 백작 그 꼰대에게는 내가 잘 말해둘 터이니 북부까지 잘 다녀오도록 해라.”
“감사합니다, 아버님.”
“아버지! 다녀올게요!”
유더와 코델리아의 인사에 손만 슥 한 번 들어 올리는 것으로 답한 체이스 백작은 그대로 트레지앙을 떠나는가 싶더니 이내 응접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유더와 코델리아에 대한 용무는 얼추 끝났지만, 로닌을 비롯한 붉은 여명 탑의 마법사들과의 만남 등등 아직 다른 용무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흥, 일들 보거라.”
아주 약간이지만 귓불을 붉힌 체이스 백작이 고개를 돌리며 손사래를 치자 체이스 백작가의 기사들이 여정의 책임자였던 지벡에게 가 이런저런 사항들을 조율하기 시작했다.
다시 장거리 여행을 하게 되었으니 호위단의 구성 등등 논의할 것들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도 별 말씀 안 하실 터이니 걱정 말고 출발하렴.”
시원하게 말한 게일은 직접 유더를 따라갈 호위단을 조율했다.
그리고 다시 두 사람.
체이스 백작이 준 반지를 만지작거리던 코델리아는 입술을 살짝 삐쭉이더니 유더를 돌아보았다.
“아무튼 뭐··· 어떻게든 된 거 같지?”
루카스의 초대도 받았고, 아버지의 허락도 받았고.
거기에 커플링- 아니, 마법 아이템까지 받았으니까.
“이 정도면 대성공이지.”
만족스럽게 웃은 유더는 코델리아에게 살짝 주먹을 내밀었고, 코델리아는 흥하고 코웃음을 치더니 가볍게 주먹을 맞부딪혔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바이엘, 체이스, 흐레스벨그 삼개 백작가가 함께하는 일행이 세일룬 왕국 최북단- 썬더둠 요새를 향해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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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장 - 악마의 손 #8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