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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메이커-28화 (28/473)

< 제6장 - 마녀의 숲 >

제6장 - 마녀의 숲

랑게스트를 떠나기 하루 전.

이제는 정례 행사나 다름없어진 ‘둘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발코니에 나온 유더와 코델리아는 바로 작전 회의에 들어갔다.

“일단 수확물 점검부터 해보자.”

체이스 백작이 준 물건들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며칠 랑게스트에 묵으면서 각기 준비한 것들이 있는 유더와 코델리아였다.

“나는 포션을 몇 병 구했어. D랭크 포션들이야. 체력이랑 마력 회복용이랑 해독용이랑··· 만약을 위한 각성제까지.”

상업도시답게 마법물품도 제법 풍부한 랑게스트였다.

코델리아는 괜히 영웅전기2의 최다사냥왕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보급품 확보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가진 돈이 거의 동났어.”

“···너무 안 아낀 거 아니니?”

“흥, 어차피 우리 아버지가 돈 줬잖아. 내가 다 봤거든?”

맞는 말이었다.

체이스 백작이 떠나기 전에 여비에 보태 쓰라며 금화 한 주머니를 주고 갔으니 말이다.

‘아버님, 감사합니다.’

새삼 체이스 백작에게 감사한 유더는 코델리아 입에서 n빵 하자는 말이 나오기 전에 화제를 돌렸다.

“난 장비를 좀 구했어. 다행히 랑게스트 쪽 대장장이들 솜씨가 좋더라고.”

“오, 너클. 완전 전용으로 뽑았네? 검사 말고 무투가 루트 밟으려고?”

지금껏 급할 때마다 태양의 목걸이를 너클처럼 쥐고 싸운 유더였지만, 아무래도 제대로 된 너클이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태양의 목걸이가 파손될 우려도 있었고 말이다.

때문에 유더는 태양의 목걸이를 끼워서 성스러운 힘만 활용할 수 있는 전용 너클을 대장간에 직접 주문해서 만들었다.

“일단은. 가지고 있는 장비나 기타등등 고려하면 당장 전투력은 이쪽이 더 높으니까.”

“흠, 뭐 천무지체 있으니 괜찮겠지.”

도중에 루트를 갈아타도 그렇게까지 손해를 보지는 않을 테니까.

납득한 코델리아는 유더가 꺼낸 다른 물건들도 살펴보았다.

거의 대부분이 보호장구들이었다.

“이건 평소에도 겉옷 속에 입어둬. 얇으니까 괜찮지?”

“엄청 얇은 체인 메일이네. 방어력 거의 안 오르겠는데?”

“그래도 여긴 현실이니까.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거야. 애당초 검 같은 것에 찔리거나 베일 때 직접 다치지 말라고 입는 거니.”

“음··· 과연.”

얇은 쇠사슬을 엮어 티셔츠처럼 만든 체인 메일을 이리저리 둘러본 코델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오늘의 하이라이트로 넘어가자고.”

체이스 백작이 주고 간 물건들.

유더는 오른손 팔목에 차고 있는 검은색 팔찌를 가리켰다.

“일단 이 팔찌는 너도 알지? 마법 방어- 특히 어둠의 마법을 막는데 유용한 C랭크 팔찌야.”

“치, 나도 하나 주시지.”

“대신 내가 유용하게 써줄게.”

능글맞게 웃은 유더는 연이어 왼손을 들어올렸다.

“다음은 반지.”

“벌써 꼈어?”

“응? 어. 왜?”

“아, 아니. 그냥.”

우물우물 말끝을 흐린 코델리아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펼쳤다.

안에는 유더의 것과 똑같이 생긴 반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왼손 약지에 껴. 일단은 커플링이니까.”

“나, 나도 알거든?”

코델리아는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더니 마른침까지 꿀꺽 삼켰다.

그리고 반지를 집어드려는 찰나.

“손 줘봐.”

“응?”

“손 줘봐.”

“어.”

코델리아가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자 유더는 바로 반지를 집어든 뒤 자연스럽게 왼손 약지에 끼웠다.

“음, 좋아. 손이 예뻐서 그런가 어울··· 코델리아?”

“응? 아, 응. 다, 당연하지. 코델리아잖아.”

흥하고 코웃음을 친 코델리아는 얼른 손을 뒤로 뺀 뒤 태연을 가장했고, 유더는 그 모습에 피식하고 웃었다.

“왜, 왜.”

“아니, 그냥.”

어깨만 한 번 으쓱인 유더는 코델리아를 위해 화제를 돌려주었다.

“아버님이 떠나시기 전에 설명서를 주고 가셨어.”

“반지에 대한?”

코델리아가 왼손 약지를 만지작거리며 묻자 유더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단, 두 가지 효력이 있어.”

“어떤?”

“하나는 반지를 끼고 있는 사람끼리는 마법의 효과가 강해진다.”

“얼마나?”

“1.1배에서 1.2배 정도?”

“오··· 좋은데? 그럼 공격이나 저주 마법도 강해지나?”

공격이든 저주든 일단은 똑같이 마법이었으니까.

참으로 노란폭풍다운 발상에 유더는 마법진을 꺼내들며 말했다.

“우리 상호확증파괴적인 대화는 삼가자. 알았지?”

“칫, 지가 무슨 마법사도 아니고.”

분명 직업은 무투가인데 당장 마법 쓰는 것만 보면 여간한 마법사는 물론이고 코델리아 뺨까지 때릴 유더였다.

“두 번째 효력은 뭔데?”

“반지끼리 가까이 있으면 내장되어 있는 마법의 위력이 강해져. 내껀 회복계열이고, 네껀 방어계열이야. 서로에게 근접해서 걸 때는 1번 효과랑 중복되어서 위력이 크게 강화되는 모양이야.”

코델리아가 살펴보니 과연 반지에 실드 마법이 내장되어 있었다.

“뭐랄까··· 정말 컨셉에 충실한 반지네.”

“그러게.”

서로에게 효과가 강해지고, 함께 있으면 성능이 좋아진다.

묘하게 귀여운 것이 딱 체이스 백작의 자작품다웠다.

“흠흠.”

“왜?”

“아니, 좀 실례되는 생각을 한 것 같아서.”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갸웃하는 코델리아 앞에서 체이스 백작의 냉엄한 얼굴을 떠올린 유더는 몇 번의 심호흡 끝에 평온을 되찾을 수 있었다.

“아무튼 수확물 점검은 이쯤하고, 다음은 작전회의로 넘어가자.”

“마녀의 숲으로 가기 위한 방법 말이지?”

“맞아, 똑같이 북부에 있기는 하지만 흐레스벨그 백작가로 직진하면 마녀의 숲에 굳이 들를 필요가 없으니까. 우리가 이유를 만들어야 해.”

더욱이 마녀의 숲에는 몬스터들까지 출몰했다.

흐레스벨그 백작가까지 안전한 여정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을 호위단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제법 그럴싸한 이유가 필요했다.

“그래서 생각해둔 게 뭔데? 이쯤 이야기한 거 보니까 이미 계획이 있는 거 아냐?”

플레이아데스에 오기 전부터 이미 유더에게 익숙해져 있던 코델리아였다.

아무런 방안도 없이 이런 이야기를 꺼낼 유더가 아니었다.

과연 그러한지 유더는 씩 웃으며 말을 받았다.

“물론 있지. 지난 번 정보 교환 회의 전에 내가 했던 이야기 기억나?”

“어···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패를 깐다는 이야기?”

“맞아, 새로운 무안단물이 나설 때가 된 거지.”

구음절맥에 이은 새로운 만능약.

유더의 얼굴에 진한 미소가 그려졌다.

&

“페어리 퀸이 말씀입니까?”

“예, 페어리 퀸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녀의 숲에 코델리아를 위한 인연의 끈이 닿아 있으니 북부에 갈 일이 있으면 반드시 들르라고요.”

유더가 무척이나 진지한 얼굴로 말하자 루카스는 코델리아를 돌아보았고, 코델리아는 유더와 똑같이 진지한 얼굴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에요, 루카스 공자.”

마녀의 숲에 코델리아를 위한 이벤트가 준비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페어리 퀸이 그랬다는데 지들이 어쩔 거야. 확인할 거야? 무슨 수로?’

유더가 어젯밤에 했던 말.

유더와 코델리아는 페어리 퀸을 만났다.

문라이트가 그것을 증명했고, 이는 분명한 사실이었다.

‘페어리 퀸을 만나는 건 아무나 할 수 없어.’

애당초 페어리 퀸의 밤놀이가 코델리아 전용 이벤트인 이유는 단순했다.

코델리아가 밤놀이에 초대된 이유는 페어리들도 감탄할 만큼 엄청나게 예뻐서니까.

그나마 지금까지 만난 인물들 중에서 가능성이 있는 건 실비아 정도일까?

그 정도 미녀를 구해서, 정해진 날,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에 가서 목욕을 해야 한다.

루카스 일행은 날짜와 시간, 장소 모두 제대로 아는 것이 없으니 확인하고 싶어도 확인할 방도가 없었다.

‘그리고 여기에 추가타를 가해야지. 너도 루카스 설정 알지?’

영웅소설 마니아.

소설 속의 영웅들 같은 삶을 살고 싶다 생각하는 아직은 어린 16세 소년.

“지금도 눈을 감으면 페어리 퀸을 만났던 그 날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정말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밤이었죠.”

유더가 슬며시 눈을 감으며 말하자 코델리아 역시 두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말을 이었다.

“정말··· 정말 평생 잊지 못 할 기억이에요.”

정말이었다.

페어리 수십 명에게 그야말로 미친 듯이 시달린 밤이었으니까.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때 일이 떠올라 식은땀이 흐르는 코델리아였다.

‘좋아, 넘어오고 있어.’

슬쩍 눈을 뜬 유더는 다양한 감정이 어리기 시작한 루카스의 눈을 보았다.

페어리 퀸 같이 신비한 존재를 만나는 것은 영웅소설의 단골 시츄에이션 중 하나였으니 말이다.

“어쩌면 이번에도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맞아요, 페어리 퀸께서 일부러 말씀해주셨을 정도니 분명 신비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거예요.”

다름 아닌 마녀의 영혼을 만나는 것이었으니 신비할 수밖에.

연기력이 국어책 읽기 수준인 코델리아였지만, 그래도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연기가 자연스러웠다.

“바이콘과 싸웠을 때처럼 몬스터들과 싸워야 할지도 모르지만··· 그 또한 모험의 일부겠죠.”

“어머, 무서워요. 유더 공자.”

“괜찮아요, 코델리아 양.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제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드릴 터이니. 루카스 공자도 함께해주실 겁니다.”

아름다운 레이디를 지키는 기사.

코델리아가 겁먹은, 하지만 동시에 기대하는 눈으로 돌아보자 루카스는 순간 흡하고 숨을 삼켰다.

일전에 이미 코델리아의 본색을 목격한 루카스였지만, 그걸 감안한다 해도 지금의 코델리아는- 정확히는 그녀의 가련하면서도 아름다운 외모는 확실히 굉장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흠흠.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레이디를 지키는 것은 기사의 사명이니까요.”

제법 의젓하게 답한 루카스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것을 본 유더와 코델리아는 동시에 생각했다.

‘평소에 해보고 싶던 말이구만.’

‘소원성취 했네, 소원성취.’

눈빛을 교환한 두 사람은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

“루카스 공자, 가슴 뛰는 모험이 우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 마치 영웅소설 같아서 두근두근 거려요.”

마녀의 숲을 경유하자.

페어리 퀸이 선물한 모험을 즐기자.

루카스가 다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유더와 코델리아.

이미 바이콘을 무찌르고 페어리 퀸을 만난다는, 정말로 이야기 같은 모험을 마친 두 사람.

그런 두 사람이 새로운 모험을 하자며 손을 내밀고 있었다.

거절하기에는 너무나 큰 유혹이었다.

“그······.”

“그?”

“위험하진 않을까요?”

“호위단이 함께하니 괜찮을 겁니다. 그리고··· 약간의 위험이야말로 모험의 참맛이겠죠.”

빌트바인 영웅전의 단골 대사인 ‘약간의 위험이야말로 모험의 참맛.’

결국 고개를 끄덕인 루카스는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코델리아 양을 위해 마녀의 숲을 경유하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루카스 공자. 가슴 뛰는 모험이 우릴 기다릴 거예요.”

분위기를 탔는지 평소답지 않게 제법 연기가 되는 코델리아였다.

그리고 분위기를 탄 것은 그녀만이 아니었다.

모험이란 말에 다시 한 번 뺨을 실룩거린 루카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호위단에 이야기를 하고 오겠습니다. 두 분께서도 각기 호위단에 이야기를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마음이 급해진 루카스가 자리를 떠나자 유더와 코델리아는 서로를 보았고, 기분 좋게 주먹을 맞부딪혔다.

&

< 제6장 - 마녀의 숲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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