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6장 - 마녀의 숲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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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럿이서 이동할 때는 제대로 된 대열- 일종의 진형을 갖추는 것이 무척 중요했다.
유더는 루카스와 코델리아를 돌아보며 말했다.
“제가 앞장서고, 그 다음은 코델리아 양, 마지막은 루카스 공자가 자리하도록 하죠.”
유더가 제일 앞에 서겠다는 말에 코델리아는 ‘오올’하며 작게 감탄했고, 루카스는 약간이지만 불만 섞인 표정을 지었다.
“유더 공자, 저도······.”
“루카스 공자를 보호할 대상으로 봐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전방만큼이나 중요한 후방을 맡긴 거죠.”
“후방을요?”
“예, 지금 저희는 적이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곳에 있으니까요. 전방만큼이나 후방이 중요합니다. 뒤를 잘 감시하면서 코델리아 양을 지켜주세요.”
“알겠습니다. 맡겨주세요.”
루카스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모험이라는 말에 설래기는 했지만, 막상 유더의 설명을 듣고나니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마 다른 기사들 역시 결계 안을 헤매고 있을 겁니다. 작금의 상황을 타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마녀의 영혼을 해방시키는 거겠죠.”
“마녀의 영혼이 결계도 해제시켜 준다?”
“아마도.”
아무래도 위급 상황이다 보니 슬슬 다시 평소 말투가 나오기 시작한 코델리아였다.
유더는 짧게 답한 뒤 다시 루카스에게 말했다.
“일단은 이동하던 방향을 유지할 생각입니다. 결계에 들어오긴 했지만··· 방향 자체는 그대로일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예, 알겠습니다.”
씩씩하게 답한 루카스는 바로 검을 뽑아들고 임전태세에 들어갔다.
유더는 그런 루카스의 모습에 숨을 한 번 삼킨 뒤 코델리아에게 바짝 다가서며 말했다.
“솔직히 방향까지는 나도 어떻게 알 수 없어. 너만 믿을게.”
“알아. 마녀의 목소리 말하는 거지?”
코델리아가 마찬가지로 얼굴을 가까이 하며 귓속말하듯 작게 말했다.
마녀의 목소리.
원작에서 코델리아는 마녀의 숲을 헤매다가 마녀의 목소리를 듣게 되고, 그녀의 인도에 따라 봉인지까지 이동한다.
“귀를 기울여봐.”
“알았어, 활짝 열어둘게. 그보다 전열이라, 리스트에서 한 줄 지워도 되겠는데?”
“조만간에 다른 것들도 해줄게.”
“흥, 기대할게.”
묘하게 끝을 맺은 코델리아는 유더와의 거리를 벌렸고, 유더는 태양의 목걸이를 너클에 장착한 뒤 안개 너머를 바라보았다.
“출발하겠습니다.”
유더는 천천히 주변을 경계하며 나아갔고, 코델리아와 루카스는 각기 세 걸음씩 떨어져서 그런 유더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얼마나 나아갔을까.
잠시 휴식을 위해 유더는 커다란 나무 아래 멈춰 섰다. 이러나저러나 숲 한가운데임에도 불구하고 나무들 사이의 간격이 무척이나 멀었다.
“잠시 주변 환경을 살펴보겠습니다.”
낮게 말한 유더는 바닥의 흙이나 근방의 나무들을 세심하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코델리아는 생각했다.
‘뭐하는 거지?’
주변 환경을 관찰한다.
솔직히 유더가 뭘 하고 있는 건지 봐도 모르겠는 코델리아였다.
‘흙이 바뀌었다는 것도 그렇고.’
말인즉 숲에 처음 들어섰을 때 흙을 관찰했다는 것인데, 코델리아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진짜 뭐하던 사람이지?’
걷다말고 흙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눈치 챈 것도 그렇고.
이건 이미 서버랭킹 1위라는 말로는 설명이 불가능했다.
‘뭔가, 뭔가가 있어.’
초월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기억력.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다른 발상과 뛰어난 연기력.
여기에 탁월한 관찰력까지.
‘수상한 냄새가 난단 말이지.’
코델리아가 괜히 코까지 한 번 킁킁 거릴 때였다.
“코델리아 양.”
“어? 아, 네?”
흠칫 놀란 코델리아가 고개를 돌려보니 루카스가 보였다.
그런데 어쩐지 모르게 기분 나쁜 미소를 실실 흘리고 있었다.
“루카스··· 공자?”
“아, 죄송합니다. 유더 공자를 바라보시는 코델리아 양의 시선이 너무나 절절하여··· 정말 깊은 사랑이군요. 저도 두 분 같은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루카스가 정말로 부럽다는 듯 얼굴까지 살짝 붉히자 코델리아는 생각했다.
‘미친놈이 뭐라는 거야.’
하지만 다행히 마인 미노스와의 싸움 때처럼 급박한 상황까지는 아니었던 터라 입 밖으로 나오는 사태만은 막을 수 있었다.
“씨··· 호호호··· 꼭··· 그러실 거예요.”
특유의 감탄사를 간신히 목구멍 안쪽으로 삼킨 코델리아는 우아하게 웃었고, 루카스는 쑥스럽다는 듯 괜히 코 밑을 슥 하고 닦았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어색한 웃음을 흘리던 코델리아가 돌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루카스 역시 한 박자 늦기는 했지만 눈매를 날카로이 하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공기가 바뀌었다.
정확히는 찌르듯 날카로운 시선들이 느껴졌다.
“코델리아 양.”
루카스의 부름에 코델리아는 답하는 대신 문라이트를 양손으로 거머쥔 뒤 소리쳤다.
“유더!”
시선을 여전히 정면에 두고 있었다.
짙게 깔린 안개 너머로 덜컥덜컥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나가 아닌 여럿이었다.
‘생각하자, 기억해보자.’
원작에서 코델리아가 마녀의 숲을 헤맬 당시 만난 몬스터들은 꽤 여러 종류가 있었다.
숲 외곽 지역에서는 주로 포레스트 고블린이, 깊은 곳에서는 무조건 도주를 고려해야 하는 아울 베어나 워보어 같은 맹수들이. 그리고 봉인지 근처에서는······.
‘스켈레톤!’
마녀의 영혼을 가두고 있는 봉인의 힘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음욕의 대군주 아스모데우스의 힘을 담고 있는 그것은 마녀의 영혼뿐만 아니라 주변 일대에까지 영향을 끼쳤는데, 덕분에 마녀의 숲 깊은 곳에서는 죽음이 더 이상 영원한 안식이 아니었다.
강대한 사기가 죽은 자들을 언데드 몬스터로 재탄생시켰기 때문이다.
“루카스! 칼에 검집을 씌워! 스켈레톤에겐 타격이 더 잘 통해!”
코델리아가 빠르게 소리치자 루카스는 퍼뜩 놀란 와중에도 서둘러 검집을 풀었다.
그리고 마침내 스켈레톤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덟.’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비척비척 걸어온 놈들은 다 헤진 하얀 옷을 입고 있었는데, 어째 낯설지가 않았다.
‘뭐지? 원작에서도 이랬나?’
코델리아가 이를 악물며 고민할 때였다.
“수호단.”
어느새 바로 옆으로 다가선 유더가 말했다.
성십자수호단.
영웅전기 시리즈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악마와 대적하는 인간의 무리.
넓게 보면 과거 대악마 라이제강을 봉인한 성기사 가리우스와 솔라리의 성직자들 역시 수호단의 일원이었다.
정황상 아스모데우스의 끄나풀인 마수를 멸하기 위해 숲에 들어왔다가 지금 같은 꼴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수호단? 그럼?!”
“하나가 더 있겠지.”
성십자수호단은 아홉 명이 한조가 되어 움직였으니까.
그리고 마치 유더와 코델리아에게 대답이라도 하듯 도열한 스켈레톤들 등 뒤로 새로운 스켈레톤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찬가지로 낡긴 했지만, 수호단의 성십자 문양이 뚜렷한 성투의를 입고 있는 스켈레톤이었다.
아마도 놈이 놈들을 이끄는 조장일 터였다.
“유더 공자! 놈들이!”
루카스가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외쳤다.
모습을 드러낸 여덟 스켈레톤들이 진형을 갖추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수호격멸진.”
공방일체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수호단의 가장 기본적인 진법.
더욱이 점입가경으로 놈들의 손에 붉은 투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언데드 몬스터가 되었지만 여전히 수호단의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씨발.”
마침내 감탄사를 터트린 코델리아는 마른침을 삼켰고, 유더는 빠르게 말했다.
“기본답게 패턴이 단순해. 루카스와 함께 놈들을 묶어놔. 내가 조장을 상대할 테니.”
수호격멸진은 여덟이 성채가 되고, 조장이 진법의 안과 밖을 오가며 적을 타격하는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때문에 수호격멸진을 깨트리기 위해서는 조장과 수호격멸진을 각기 상대하는 식으로 놈들을 뜯어놓아야만 했다.
유더의 설명에 코델리아는 납득했다.
이론적으로 완벽한 이야기였으니까.
하지만 늘 그렇듯이 이론과 현실 사이에는 괴리가 있는 법이었다.
“야, 잠깐 야!”
코델리아가 급히 소리쳤지만 그때는 이미 유더가 지면을 박찬 후였다.
스켈레톤들 역시 느릿느릿하게나마 수호격멸진을 이룬 채 전진하기 시작했고, 조장은 옆으로 빠져나가는 유더를 쫓기라도 하듯 똑같이 지면을 박찼다.
“나쁜 놈아! 내가 너냐? 너냐고!”
패턴이 단순하다.
패턴만 알면 쉽게 깰 수 있다.
‘그걸 누가 다 외우고 있어!’
영웅전기2에는 수많은 몬스터들이 등장했고, 자연 등장하는 패턴도 수백, 수천 가지를 우습게 헤아렸다.
아웃복서도 아니고, 누가 그 많은 패턴을 다 외우고 있겠는가.
“코, 코델리아 양?!”
“온다! 일단 자리 지켜!”
반사적으로 외친 코델리아는 문라이트로 바닥을 찍으며 주문을 외웠다. 일단 놈들이 바로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광역으로 그리스를 펼친 뒤 다시 루카스에게 외쳤다.
“시작은 오른쪽에서부터! 상상하!”
“예?!”
루카스는 당황해서 외쳤지만 괜히 검의 귀재가 아니었다.
코델리아가 펼쳐놓은 그리스를 피하듯 우회해서 접근해온 놈들의 공격을 긴박하게나마 완벽히 피해냈다.
‘진짜야!’
상상하.
머리, 머리, 하단.
스켈레톤 셋이 연달아 펼친 공격은 코델리아의 말 그대로였다.
“코델리아 양!”
“이번엔 내 쪽! 중중하!”
코델리아는 스스로에게 헤이스트를 건 뒤 재빨리 움직여 루카스와 거리를 벌렸다. 포위되는 사태를 피하기 위함이었다.
‘뭐지, 나 이거 왜 외우고 있지?’
그리고 이내 코델리아는 깨달았다.
머리는 몰라도 몸이 알았다.
환생까지 했으니 몸이 안다고 하기도 뭐했지만, 어찌되었든 수백, 수천, 수만 번의 사냥을 거친 코델리아의 잠재의식이 수호격멸진의 패턴을 기억하고 있었다.
“코델리아 양!”
“중앙! 상하상하중! 동시에!”
반사적으로 외친 코델리아는 기억을 더듬으려 노력하지 않았다. 사냥 본능에 몸을 맡기며 떠오르는 것들을 그대로 입 밖에 내었다.
“상상하!”
쿵!
코델리아의 낭랑한 목소리를 꿰뚫듯 유더가 세게 땅을 찍었다. 정면에서 덤벼드는 조장 스켈레톤을 보며 본능 대신 머리로 생각했다.
‘권투사. 수호단 조장. 복색으로 보아 등급은 낮아. 아마도 7급. 그렇다면 사용하는 것은 신격권!’
수호단의 권투사들이 익히는 기본공인 수호권의 바로 상위 단계에 속하는 권공.
천하삼심육보가 몇 번의 승격을 거쳐 천둔구보에 도달하듯이, 신격권 역시 기초부터 시작해 더 상위의 무공으로 승화하는 형태였다.
‘언데드가 된 것 때문에 성투기의 위력이 약해졌어.’
마력, 내공, 성투기.
모두 결국엔 비슷한 개념들이었지만 조금씩의 차이가 존재했다.
성투기는 내공에 생명의 힘을 더한 것.
그렇기에 언데드 몬스터가 제대로 다룰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사기를 이용해 억지로 쓰고는 있었지만, 생전의 위력에는 미치지 못 할 것이 분명했다.
더욱이 놈에게는 지금 피와 살이 없었다.
놈의 허연 뼈 위로 성투기의 움직임이 고스란히 보였다.
쿵! 쿵! 쿵!
유더가 연달아 지면을 박찼다.
수호격멸진처럼 정해진 패턴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유더는 마치 놈의 공격 패턴을 모조리 꿰고 있는 것처럼 완벽한 회피를 보여주었다.
‘보이니까.’
놈의 뼈대 위를 따라 움직이는 성투기의 흐름이. 그로 말미암아 놈이 어떤 공격을 펼칠지가.
물론 평범한 사람은 보이든 말든 펼칠 수 없는 재주였지만 아웃복서에게는 가능했다.
더욱이 지금의 그는, 유더는 이전에는 가지지 못 했던 것 역시 갖추고 있었다.
‘천무지체!’
조장 스켈레톤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생전에 비해 형편없는 성투기를 사용하고는 있었지만 신격권 자체는 빠르고 정확했다.
하지만 유더 역시 빨랐다.
마인 미노스를 격퇴함에 따라 레벨은 20을 돌파했고, 전반적인 신체 능력 역시 크게 성장한 상태였다.
거기에 더해진 하나.
유더는 단순히 공격을 피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다음에 이어질 공격을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것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천무지체.
하늘이 내린 무의 재능!
츠화악!
유더의 주먹에서 새하얀 투기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성투기.
내공에 살아있는 자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생명의 힘을 첨가한 것.
성투기의 움직임을 보다보니 알 것 같았다.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사용법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결과.
유더는 숨을 멈추었다.
정면에서 쇄도하는 조장 스켈레톤의 일권을 읽어냈다.
놈이 그리게 될 궤적을 느끼며 몸의 중심을 이동시켰다.
츠확!
놈의 주먹이 허공을 꿰뚫었다. 파공음이 터졌고, 놈의 공격을 흘리듯 피한 유더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머릿속으로 하나의 그림을 그렸다.
조장 스켈레톤이 몇 번이나 펼친 것.
조금도 숨기지 않고 몇 번이나 보여준 성투기의 흐름.
하나가 되었다.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유더는 펼칠 수 있었다.
‘신격권.’
성십자 지르기.
유더의 주먹 위에서 순백의 성투기가 십자 형태를 갖추었다.
격렬한 타격음과 함께 조장 스켈레톤의 가슴을 분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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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장 - 마녀의 숲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