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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메이커-31화 (31/473)

< 제6장 - 마녀의 숲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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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의 십자가가 빛과 함께 작렬했다.

갈비뼈는 물론이고 등뼈까지 산산조각이 난 조장 스켈레톤은 그대로 무너지듯 쓰러졌고, 유더는 주먹을 지른 자세 그대를 잠시 동안 유지하였다.

“후우··· 후우··· 후······.”

성십자 지르기.

신격권의 기술 가운데 하나로, 이름처럼 십자 모양의 성투기를 적에게 직접 때려 박는 정권 지르기였다.

“하아··· 하······.”

자세를 편히 한 유더는 계속해서 거친 숨을 토했다.

계속된 레벨 업으로 몸이 좋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내공을 사용한 기술은 몸에 부담이 심했다.

아직 세맥은 물론이고 대맥까지 막히거나 협소한 부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성과가 있네.’

몸을 에워싸는 새하얀 빛의 고리만이 아니었다.

신격권과 성십자 지르기.

허공에 흩어지는 성투기의 잔흔을 보며 기분 좋게 웃은 유더는 코델리아 쪽으로 돌아섰다.

예상대로 코델리아 쪽 역시 거의 마무리가 되어가는 분위기였다.

“이탈! 방어해! 핵을 뚫는다!”

속사포처럼 명령을 쏟아낸 코델리아가 지면 위를 미끄러지듯이 이동했다.

아니, 평범한 이동이 아니었다. 스켈레톤들 사이를 거짓말처럼 빠져나가더니 스트라이킹 주문이 걸린 문라이트를 휘둘러 놈들의 목뼈를 시원하게 박살냈다.

그리고 그것으로 진법 자체가 파괴되었다.

코델리아 스스로가 말한 것처럼 수호격멸진의 핵을 꿰뚫었기 때문이다.

“오오! 오오오!”

코델리아의 명령을 찰떡같이 알아듣고 자신 쪽으로 스켈레톤들을 유도한 루카스가 환한 얼굴로 환호했다.

검집을 씌운 그의 검격에 쓰러진 스켈레톤만 벌써 셋이었다.

“마무리 가즈아!”

시원하게 웃은 코델리아는 다시 지면 위를 미끄러지듯이 이동했다. 어찌나 빠르고 부드러운지 마치 빙판 위를 달리는 피겨 스케이팅 선수 같았다.

‘과연 노란폭풍.’

유더는 도와주러 달려가는 대신 두 팔을 늘어트리며 감탄했다.

당장 지금의 이동만 하더라도 평범한 이동이 아니었으니까.

‘헤이스트 건 상태로 그리스가 깔린 바닥을 이동하고 있는 거지 지금?’

일반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스는 자빠지라고 까는 마법이지 빙판처럼 이용하라고 까는 마법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코델리아는 할 수 있었다.

‘가끔 보면 진짜 야생동물 같다니까.’

유더가 생각하고 계산해서 매사를 처리한다면, 코델리아는 본능에 몸을 맡기는 스타일이었다.

지금의 저 경이로운 이동 역시 생각해서가 아니라 본능대로 행동한 결과이리라.

“마무리!”

춤을 추듯 스켈레톤들 사이를 누비던 코델리아가 마치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듯 문라이트를 휘둘렀고, 허리뼈가 박살난 스켈레톤이 발라당 자빠지며 무너졌다.

“오오! 멋집니다! 코델리아 양!”

“헤헷, 브이!”

루카스가 감탄하자 코델리아는 헤헤헤 웃으며 브이 자를 그렸고, 유더는 문득 옛날 일이 떠올라 쓴웃음을 지었다.

‘길드장들이 싫어할 만도 해.’

길드끼리 맞붙는 대규모 전투에서 노란폭풍의 존재는 재앙 그 자체였으니까.

‘젠장! 어떻게 움직일지 예상할 수가 없어!’

당연했다. 노란폭풍은 일단 전투에 돌입하면 생각이란 것을 하지 않았으니까.

‘혹시 천재가 아닐까? 아니면 어떻게 저렇게 딱딱 나타날 수가 있어!’

언제 어디서 무슨 짓을 할지 종잡을 수 없지만, 신기하게도 필요한 순간에는 반드시 노란폭풍이 등장했다.

적의 아픈 곳을 찌르는 것은 기본이었고, 방금 전투에서 보여준 것처럼 진형의 핵을 찔러 적의 진영 자체를 붕괴시키는 것에도 능했다.

때문에 노란폭풍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녀를 ‘천재 전술가’ 정도로 생각했다.

전장 전체를 한 눈에 꿰뚫어 보는, 마치 제갈량이나 이목 같은 지장 말이다.

하지만 유더는 진실을 알고 있었다.

‘그냥··· 감인데?’

노란폭풍 본인의 입으로 한 말.

그랬다.

노란폭풍은 고차원적인 전술적 사고 하에 적의 아픈 곳을 찌르는 것이 아니었다.

‘뭐랄까, 막 그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할까?’

문자 그대로 감.

어쩐지 모르게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

유더도 처음에는 노란폭풍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앙숙으로 지내다보니 결국 이해할 수 있었다.

‘본능이야.’

노란폭풍은 천재였다.

지능 쪽이 아닌, 전투 감각 방면의 천재.

그녀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전장의 상황을 계산하지 않았다. 그저 본능적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그 결과 알 수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딜 공격해야 하는지.

그리고 여기에 더해진 또 하나의 재능.

노란폭풍이 진정 ‘인간폭풍’이란 존재로 각인하게 만든 이유이자, 유더조차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녀만의 고유한 능력.

‘무지막지한 공간지각과 멀티테스킹.’

일반적인 영웅전기2의 만렙 법사는 보통은 이십여 개 안팎, 많으면 오십여 개 정도의 마탄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노란폭풍은 달랐다.

‘274개.’

노란폭풍이 동시에 사용한 마탄 숫자의 최고 기록.

홀로 수백 개의 마탄을 동시에 부리며 전진하는 그녀는 실로 인간폭풍이란 말이 부족하지 않았다.

길드 단위로 가야하는 사냥터를 혼자서 쓸어버렸고, 단신으로 길드를 박살내기도 했다.

‘뭐, 그래도 1등은 나지만.’

씩 웃는 것으로 생각을 마무리한 유더는 다시 정면을 보았고, 루카스에게 쪼르르 달려가 손바닥을 내미는 코델리아를 보았다.

“하이파이브!”

“네?”

“하이파이브!”

코델리아가 다시 손을 흔들자 루카스는 눈을 껌벅이더니 이내 소심하게 손을 들어 코델리아와 손뼉을 마주쳤다.

“잘했어, 역시 루카스. 검의 귀재. 최고야.”

“흠흠, 코델리아 양도 정말 대단했습니다. 새삼 감탄했습니다.”

루카스가 뺨을 살짝 붉히며 말했다.

코델리아도 코델리아였지만, 하이파이브 자체에 가슴이 두근거렸기 때문이다.

‘빌트바인 영웅전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오긴 하지.’

홀로 고개를 끄덕인 유더는 신나서 방방 거리는 두 십대에게 다가섰다.

“얼추 마무리가 된 것 같군요.”

“어, 잘 끝난 것 같···아요. 유더 공자. 호호호······.”

유더 얼굴을 보니 정신이 들었는지, 코델리아가 급 얌전한 척을 하며 말했다.

갑자기 바뀐 말투에 루카스는 쿡쿡 웃더니 일부러 모른 척 하듯 시선을 돌려주었다.

“루카스 공자, 다치신 곳은 없고요?”

“예, 코델리아 양 덕분에요.

“이런 말하기 좀 그렇지만··· 상대가 성십자수호단이라 다행이었습니다.”

유더의 말에 루카스는 눈을 깜박이는가 싶더니 이내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성십자수호단 말씀이십니까? 그림자 속에서 대륙을 수호한다는?!”

“예, 스켈레톤들이 입고 있는 옷도 그렇고··· 뭣보다 수호격멸진을 사용한 것이 그 증거입니다.”

차분히 답한 유더는 섣불리 끼어드는 대신 입을 꾹 다물기로 결심한 코델리아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체이스 백작가는 성십자수호단과 조금이지만 인연이 있습니다. 덕분에 코델리아 양이나 저도 수호격멸진에 대해 알 수 있었고요.”

“수호격멸진······.”

“예, 성십자수호단이 사용하는 가장 기본적인 진법입니다. 흐레스벨그 백작가의 성왕십자진에 비할 정도는 아니지만, 무척 견고한 방진이죠. 코델리아 양, 그렇죠?”

“에? 어··· 네, 그래요.”

코델리아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원하게 웃으며 문라이트를 휘두를 때와는 아예 다른 사람처럼 보이는 그녀였다.

“어찌되었든··· 정황상 수호단의 일개 조가 결계에 갇힌 끝에 지금처럼 언데드 몬스터가 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수호단이 언데드 몬스터라니··· 결계의 힘인 걸까요?”

루카스가 약간이지만 겁먹은 얼굴로 묻자 유더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마녀의 봉인을 찾아 결계를 해제하면 모두 잘 될 겁니다.”

유더가 부드럽게 답하자 루카스는 딱딱해진 얼굴로나마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다시 다부진 표정을 지었다.

‘나도 어른스럽게 대처하자.’

마치 세오른 경처럼 의지가 되는 유더였지만, 따지고 보면 겨우 한 살 차이였다.

호적수가 되기 위해서라도 루카스 자신 역시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야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루카스는 돌연 미간을 좁히더니 파괴된 스켈레톤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유더 공자, 코델리아 양. 다소 무리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어떤?”

“저분들을 묻어 드릴 수 있을까요? 성십자수호단의 분들이라면 대륙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시던 분들인데 저리 방치하는 것은 좀······.”

루카스의 말에 어쩐 일인지 코델리아 역시 동조했다.

“디그 마법이면 구덩이도 쉽게 팔 수 있으니까··· 커다란 공동 무덤을 하나 만드는 게 어떨까요?”

말은 루카스에게 하고 있었지만 시선은 유더에게 가 있었다.

유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죠. 저도 성십자수호단 분들이 이런 곳에 방치되는 것은 옳지 못 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유더 공자, 코델리아 양. 정말 감사합니다.”

루카스는 환한 미소를 짓더니 얼른 검을 갈무리하고는 스켈레톤들의 잔해를 수습하기 시작했다.

“난 땅을 팔게.”

짧게 말한 코델리아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는가 싶더니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디그 마법을 연사했다.

그리고 약 십여 분.

스켈레톤들을 한 곳에 묻은 일행은 부러진 성십자수호단의 검으로 묘비를 세운 뒤 짧게나마 묵념과 추모의 시간을 가졌다.

“성령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묵념을 마친 유더가 짧게 읊조린 순간이었다.

“아······.”

루카스가 탄식과 감탄을 함께 토했다. 성십자수호단의 묘지에서 푸른 빛들이 마치 반딧불처럼 일어났기 때문이다.

코델리아가 저도 모르게 말했다.

“아홉 개야.”

무덤에 묻힌 성십자수호단과 동일한 숫자의 빛 무더기.

마치 인사라도 하듯 유더와 코델리아, 루카스 앞을 빙글빙글 돌던 빛 무더기들은 어느 한 곳으로 날아가 다시 빙글빙글 돌더니 이내 산산이 흩어져 사라졌다.

“아아··· 성십자수호단의 분들이······.”

루카스가 감동한 얼굴로 작게 중얼거리는 그때, 유더는 주먹을 불끈 쥐며 속으로 외쳤다.

‘빙고!’

마녀의 숲에서 언데드가 된 성십자수호단과 싸우는 이벤트 자체는 원작에 존재하지 않았지만, 비슷한 종류의 이벤트라면 제법 많았으니까.

‘성불한 영혼들이 중요한 물건이 숨겨진 장소를 알려주는 건 클리셰니까.’

사실 루카스가 먼저 나서지 않으면 유더 자신이 제의할 생각이었다.

‘코델리아도 비슷한 생각이었겠지.’

“정말 잘 됐다. 정말 잘 됐어.”

유더가 코델리아를 돌아본 그때, 그녀는 상기된 얼굴로 작게 말했다. 눈시울이 살짝 붉은 것을 보니 정말 다행이라 안도하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코델리아는 유더처럼 계산해서 무덤을 만든 것이 아니었으니까.

게임에서야 그냥 스켈레톤이었지만, 이곳은 현실이었다.

정말로 성십자수호단이 있었고, 그들은 마녀의 숲을 헤매다가 언데드 몬스터가 되고 말았다.

어찌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행이야··· 다행······.”

성십자수호단의 영혼이 안식을 찾아서.

코델리아는 촉촉하게 젖은 눈으로 산산이 흩어지는 빛을 보았고, 어쩐지 모르게 홀로 나쁜 놈이 된 기분에 휩싸인 유더는 헛기침을 토했다.

“흠흠.”

“응? 왜? 어디 안 좋아?”

“아니, 그냥. 너 착하고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미친놈이 뭐라는 거야. 열이라도 있어?”

코델리아가 제법 걱정스럽다는 듯 미간을 좁히자 어깨를 으쓱인 유더는 여전히 감동 중인 루카스의 어깨를 두드렸다.

“루카스 공자, 성십자수호단 분들이 마지막으로 선물을 남기신 것 같습니다.”

“선물··· 아! 과연! 저희에게 알려주신 거군요!”

눈을 크게 뜨며 감탄한 루카스는 바로 빛 무더기들이 모여 있던 장소로 달려갔다.

커다란 나무 밑이었는데, 뿌리가 반쯤 드러난 것이 안에다 뭘 숨기기 좋아보였다.

“파보도록 하죠.”

“예, 유더 공자.”

영웅전 같은 전개에 잔뜩 신이 난 루카스가 앞장서서 땅을 파헤치니 오래지 않아 잘 봉인된 나무함이 나타났다.

겉면에 새겨져 있는 십자가 문양을 보니 성십자수호단의 물건이 분명했다.

“루카스 공자가 열어보시죠.”

“제가요?”

“네, 무덤을 만들자고 한 건 루카스 공자잖아요. 열어보세요.”

유더에 이어 코델리아까지 권하자 루카스는 뺨을 붉히는가 싶더니 두 사람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열겠습니다.”

잘 봉인되었다고는 하나 결국 나무함에 종이를 붙여놓은 수준이었다.

나이프를 꺼내 종이봉인을 뜯어낸 뒤 뚜껑을 열자 무척이나 복잡한 술식이 새겨진 양피지가 나왔다.

“이건······.”

“성십자수호단의 술식입니다. 악마를 멸하는 공격용 술식인데··· 아무래도 역시 성십자수호단은 마녀의 영혼을 봉인하고 있는 악마의 무리들을 격퇴하기 위해 왔던 모양입니다.”

유더의 설명에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인 루카스가 코델리아를 보며 물었다.

“코델리아 양, 사용하실 수 있을까요?”

“어··· 네, 아마도요.”

솔직히 자신이 없었지만 유더도 있으니 어떻게든 되리라.

“신격권을 다룬 책도 있군요. 루카스 공자, 이건 제가 가져가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저는 검을 사용하니까요.”

루카스가 순순히 응하자 유더는 빙긋 웃으며 무공서를 챙겼다. 던전북에서 얻은 것처럼 스킬북은 아니었지만, 천무지체와 유더의 머리가 있으니 익히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을 터였다.

“언데드 몬스터를 만들 정도면 사기가 무척이나 진하다는 거니, 아무래도 우리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모양입니다. 조금만 더 가면 봉인지의 중심에 도달할 수 있을 겁니다.”

유더의 설명에 루카스가 고개를 끄덕인 그때였다.

“잠깐, 잠깐만.”

돌연 작게 말한 코델리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어느 한 방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더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마녀의 목소리.’

숲의 중심에 봉인된 그녀의 영혼.

마치 대답이라도 하듯 코델리아가 유더를 돌아보았다. 맑고 푸른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목소리가 들려.”

마녀의 부름.

코델리아가 손을 들어 안개 너머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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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장 - 마녀의 숲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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