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6장 - 마녀의 숲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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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숲을 헤매던 코델리아는 마녀의 목소리를 듣게 되고, 그녀의 인도에 따라 봉인지에 도달하게 된다.
즉, 마녀의 목소리가 들렸다는 것은 목적지까지의 네비게이터를 얻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유더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
코델리아가 길을 잘못 찾거나 마녀의 길안내가 불명확해서가 아니었다.
코델리아는 중간 중간 발을 멈추기는 해도 꾸준히 앞을 향해 나아갔으니 말이다.
[뿌리가 드러난 커다란 나무가 있는 방향으로 오거라.]
머릿속에 울리는 맑고 청아하면서도 어쩐지 모르게 몽롱한 목소리.
‘마녀의 목소리··· 맞지?’
유더가 슬쩍 코델리아를 돌아보자,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녀가 뿌리가 드러난 큰 나무를 보고 좋아하는 게 보였다.
‘맞는데.’
어째서 코델리아뿐만 아니라 유더 자신에게도 들리는 것일까.
‘꼭 코델리아가 아니더라도 들리는 건가?’
애당초 원작에서는 코델리아 혼자였기에 그녀만 목소리를 들었던 거고.
하지만 그건 또 아닌 것 같았다.
코델리아가 길을 찾는 내내 루카스는 그저 멍한 표정을 짓고 서 있었으니 말이다.
‘음, 일단 티내지 말자.’
유더 자신에게도 마녀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것을 이야기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눈에 훤했으니까.
코델리아는 입술을 삐죽거릴 터였고, 루카스는 혼자만 목소리를 못 듣는다고 시무룩해지리라.
“이쪽이야.”
“어, 그래.”
작게 말하며 방향을 가리키는 코델리아의 얼굴에는 옅게나마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주목받기를 좋아하는 성격답게 에피소드 주역이 된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음, 역시 숨겨야겠어.’
굳이 진실을 드러내 저 미소를 깨트릴 필요는 없었으니까.
‘그런데 진짜 왜 들리는 거지?’
마녀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조건이 따로 존재하는 것일까?
유더 자신과 코델리아의 공통점.
루카스와는 공유하지 않는 어떤 특성.
‘예쁘고··· 잘생겼다?’
루카스가 호남형의 미남이긴 했지만, 아무래도 ‘절세’자가 붙는 유더나 코델리아만은 못 했으니까.
‘에이, 설마.’
마녀가 페어리 퀸도 아니고.
분명 다른 무언가가 있을 터였다.
‘나이? 전생의 기억···이라하면 원작에서 코델리아가 듣는 게 설명이 안 되고.’
이런저런 가설들을 고려하며 발걸음을 내딛고 있자니 어느 순간 안개가 옅어지기 시작했다.
“저 동굴 안에 봉인이 있어요.”
작고 좁은, 제대로 된 입구라기보다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생겨난 균열을 가리킨 코델리아가 루카스에게 설명하는 동안 유더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10미터도 넘게 자란 울창한 나무들과 그로인해 완전히 가려진 하늘.
동굴이 있는 작은 바위산 너머에는 봉인을 지키는 마수가 자리하고 있을 터였다.
‘그래도 거의 다 왔어.’
이제 들어가서 봉인을 해제하면 사실상의 임무 종료였다.
봉인에서 풀려난 마녀의 영혼이 마수를 해결해줄 터이니 말이다.
‘코델리아는 마녀의 힘을 얻고, 나는 이것저것 부산물을 챙기고.’
바이콘과 마찬가지로 마수 역시 시신을 남길 터이니까.
유더가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자니 어느새 다가온 코델리아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표정이 변태 같아.”
“···어느 면이?”
“그냥 여러 가지로.”
언제나 그렇듯 흰소리를 늘어놓은 코델리아는 앞장서서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작고 비좁은 균열이었지만 체구가 작고 가냘픈 코델리아나, 아직은 꽤 마른 편에 속하는 유더에게는 문제가 없었다.
루카스 역시 끙끙 거리긴 했지만 어찌어찌 통과했고 말이다.
[거의 다 왔단다. 이쪽으로 오거라.]
캄캄한 동굴 속에 들어오니 마녀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반딧불 여러 마리가 뭉친 것처럼 보이는 녹색 빛 무더기가 눈앞에 나타났다.
[이쪽이란다.]
애당초 작은 동굴인 터라 1분 남짓 걸으니 한쪽에 커다란 강철문이 자리한 제법 커다란 공동이 나타났고, 일행은 마녀의 봉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공동 중앙에 자리한 커다란 돌기둥에 거의 사람만한 크기의 얼음조각이 박혀 있었는데, 안쪽으로 아름다운 흑발 여인의 나신이 흐릿하게 보였다.
[아이들아, 나의 봉인을 풀어다오. 봉인을 풀기 위해서는······.]
“성수로 귀퉁이에 자리한 봉인석들을 약화시키고 중앙에 봉인해제의 마법진을 그려야 한다고요? 알겠어요, 마녀님.”
[어? 어어··· 그렇··· 단다. 어떻게 알았니?]
코델리아가 빠르게 답하자 마녀는 약간 얼이 나간 목소리로 응답했고, 둘의 대화를 모르는 루카스는 그저 오오오 하며 감탄을 토했다.
코델리아는 빙긋 웃더니 유더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봉인석에 성수 뿌리고 올 테니까 마법진은 맡길게.”
“알겠습니다, 마님.”
이미 랑게스트에서 성수를 구해온 유더와 코델리아였다.
굳이 원작에서처럼 숲을 헤매며 마녀가 구해오라는 것들을 모을 필요는 없었으니 말이다.
[마법진의 형태는··· 봉인 전문 마법사니?]
어떤 마법진이라고 설명도 하지 않았는데 유더가 슥슥 잘도 그리고 있었으니까.
유더는 이번에도 굳이 답하는 대신 빠르게 마법진을 완성시켰다.
[어··· 다음은······ 너희도 이미 알지?]
약간은 떨떠름한 마녀의 목소리에 유더와 코델리아는 행동으로 답했다. 유더는 루카스를 데리고 외곽으로 물러났고, 코델리아는 나이프를 뽑아들더니 손바닥에 상처를 냈다.
“아흑.”
울상을 지으며 신음을 흘린 그녀는 주먹을 움켜쥐어 마법진 위에 피를 떨어트렸다.
피는 영혼의 통화일지니.
핏방울을 통해 코델리아의 마력이 마법진에 전해졌고, 이내 환하고 푸른빛이 공동 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쿠오오오오!”
동굴 밖에서 무시무시한 괴성이 들려왔다.
봉인을 지키는 마수의 포효가 분명했다.
바짝 긴장한 루카스가 반사적으로 검을 뽑아들었지만 유더와 코델리아는 마녀의 봉인에만 집중했다.
어차피 마수는 봉인이 풀리면 마녀가 해결해줄 터였다.
[아아, 아아아!]
마수의 포효에 맞추듯 마녀가 비명을 질렀다. 그녀를 봉인하고 있던 얼음에 쩍쩍 금이 가더니 동굴 전체가 뒤흔들렸다.
“쿠오오!”
마수의 포효 소리가 더욱 커지고 가까워졌다.
절로 입술이 마른 코델리아는 아예 손바닥을 마법진에 직접 대어 더 많은 마력을 쏟아 부었고, 마침내 마녀를 봉인하고 있던 얼음이 수백 조각으로 부서져 흩어졌다.
콰앙!
굉음이 터졌다.
봉인지의 정문이라 할 수 있을 강철문이 크게 우그러졌다. 애당초 봉인용이기에 열리지 않는 강철문을 마수가 부수려 하고 있었다.
상상 이상의 굉음에 유더 역시 흠칫했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애당초 원작에서도 비슷한 흐름이었으니 말이다.
[너무나 긴 세월이었다. 나의 봉인을 풀어주어 고맙구나, 아이들아.]
쿵쿵 거리는 굉음 사이로 마녀의 목소리가 분명하게 들려왔다.
봉인지의 중앙.
검고 긴 머리칼로 새하얀 나신을 가린 미녀가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영혼 상태이기 때문에 반쯤 투명한 상태였는데, 코델리아를 무척이나 사랑스럽다는 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쾅!
다시 굉음이 터졌다.
우그러진 강철문 사이로 마수의 붉은 안광이 보였다.
유더는 마른침을 삼키며 원작을 떠올렸다.
마녀의 봉인을 푼 직후.
육신이 없는 마녀는 코델리아에게 일시적으로 강림해 마수를 물리친 뒤 결계를 해제한다.
그로 말미암아 자유로워진 마녀의 영혼은 수백 년의 주박을 끊고 마침내 승천하고, 잠시나마 마녀의 영혼을 품었던 코델리아는 마녀의 힘의 일부인 ‘마녀화’를 체득한다.
제작진이 제법 힘을 준 파트로, 일련의 상황이 마치 영화 같은 영상으로 표현된 터라 코델리아를 플레이한 유저들 대부분이 기억하고 있는 명장면이었다.
그리고 지금.
[위험이 닥쳤구나. 사랑스러운 아이야, 나의 힘을 빌려줄 터이니 위기를 파하거라.]
원작대로의 흐름이었다.
코델리아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마녀는 눈을 감고 주문을 읊조렸고, 마치 그에 자극받기라도 한 듯 마수가 더욱 거칠게 강철문을 두드렸다.
쾅! 쾅! 쾅!
강철문이 뜯겨나가기 직전.
마녀의 영혼이 녹색 빛과 함께 흩어졌다. 동시에 코델리아의 전신에 녹색 빛이 감돌았고, 밝고 선명한 붉은 머리칼이 검게 물들었다.
하늘처럼 푸른 두 눈동자가 유더의 그것처럼 신비로운 녹색이 되었다.
마녀의 강림.
이제 마녀의 힘으로 마수를 물리치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어? 어어어?”
스스로를 돌아본 코델리아가 멍한 얼굴로 눈을 껌벅였고, 유더는 그 순간 깨달았다. 이해할 수 있었다.
‘이벤트의 재현!’
크게 보면 계곡에서의 입욕 이벤트와 같았다.
원작에서는 마녀의 힘으로 마수를 물리치는 싸움이 이벤트 영상으로 표현되었다.
그리고 그랬기에 코델리아는 물론이고 유더마저 놓치고 말았다.
마녀가 아니었다.
마녀의 힘을 손에 넣은 코델리아가 마수를 물리친 것이었다.
“씨, 씨발?!”
코델리아도 이해했다.
그랬기에 당황했다.
어떻게 싸워야 할지 몰랐으니까. 정확히는 마녀의 힘을 어떻게 써야할지 알 수 없었으니까!
쾅!
마침내 강철문이 박살났다.
잔뜩 우그러진 문 두 짝이 바닥에 널브러졌고, 머리에 뿔이 난 붉고 거대한 고릴라처럼 생긴 아스모데우스의 마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웅크린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4미터는 족히 됨직한 키에 우악스럽기 짝이 없는 두 주먹.
코델리아는 유더를 보았고, 유더는 코델리아를 보았다.
루카스는 외로이 두 사람을 보다가 검을 움켜쥐었다.
일촉즉발의 상황.
이번에는 벨라스틴의 마법진이 없었다.
미리 준비해둔 전장 역시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싸워야만 했다.
“믿는다!”
새하얀 성투기를 일으킨 유더가 마수를 향해 돌진했다. 천하삼십육보를 펼쳤고, 루카스 역시 성왕십자검으로 검에 빛을 더하였다.
믿는다.
코델리아가 마녀의 힘을 다룰 수 있다는 것을.
자신이 마수에게 박살나기 전에 해법을 찾아낼 것을.
“쿠오오!”
돌진해오는 유더가 가소롭다는 듯 마수가 포효했다. 지면을 박차는가 싶더니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하듯 단숨에 유더 앞에 나타나 주먹을 휘둘렀다.
콰강!
일격에 지면이 박살났다. 바닥을 구르다시피 해서 겨우 공격을 피한 유더는 너클에 솔라리의 힘을 더했다. 마수를 유인이라도 하듯 부서진 강철문 쪽을 향해 몸을 날렸다.
루카스 역시 시선을 끌고자 커다랗게 포효하며 유더의 반대쪽을 향해 달렸다.
마수가 다시 지면을 박찼다.
이번에도 유더 쪽이었다.
“코델리아!”
유더가 다시 천하삼십육보를 펼쳤다. 아슬아슬하게 마수의 주먹을 피한 뒤 성십자 지르기로 마수의 팔을 강타했다.
“쿠오!”
마수가 고통 섞인 괴성을 토했지만 강철같은 팔뚝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유더는 재차 공격을 하는 대신 지면을 박차 몸을 뒤로 뺐다.
그리고 그 순간 코델리아는 눈을 감고 집중했다.
본능이든 뭐든 동원해 마녀의 힘을 다루고자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눈을 감아 시야를 차단했지만 연속해서 들려오는 굉음과 유더의 위기에 마음이 초조해진 탓이었다.
‘제발, 제발!’
마력을 이끈다.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어라? 이건 할 줄 모르니?]
약간은 태평한 마녀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코델리아는 눈을 번쩍 떴다.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알려줘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마녀의 힘을 어떻게 써야하는지.
유더가 죽기 전에.
아니, 유더가 다치기 전에!
[이렇게 하는 거란다.]
마녀가 말한 순간 코델리아의 영육 속에서 마녀의 힘이 움직였다.
그로 말미암아 코델리아는 이해했다.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마녀의 힘을 다루는 방법.
코델리아의 두 눈에서 녹색 안광이 번쩍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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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장 - 마녀의 숲 #5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