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6장 - 마녀의 숲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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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옛날, 한 소녀가 있었다.
동화 아홉 닢에 부모에게서 팔린 그 아이는 악마 소환의 제물이 되었고, 악마의 변덕 덕분에 한줌의 핏덩이가 되는 대신 악마의 노예가 되었다.
노예의 운명은 가혹했다.
악마에게 영혼이 사로잡힌 이들에게 안식은 존재하지 않았다.
살아서는 악마의 노리개로 농락당하고, 죽어서는 영겁의 시간동안 고통 속에 허덕이는 것이 그들의 운명이었다.
소녀도 그러했다.
그리되어야 할 운명이었다.
하지만 소녀는 운명에 순응하지 않았다.
그녀는 엎드려 사는 대신 일어섰고, 끝내 자신의 운명을 바꾸었다.
그녀는-
‘알아요! 이건 이미 안다고요!’
마녀의 이야기.
악마의 노예로 시작했지만 끝내는 악마들을 굴복시킨 마녀의 전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마녀의 과거보다는 마녀의 힘을 다루는 방법 자체가 중요했다.
[···이건 또 아는구나.]
어쩐지 모르게 시무룩한 목소리를 낸 마녀는 자신의 과거를 코델리아에게 주마등처럼 보여주는 대신 코델리아의 영육을 직접 조종해 힘을 다루었다.
마녀의 힘은 코델리아에게 있어 타인의 것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없었다.
원작의 코델리아가 ‘마녀화’를 습득해 사용하긴 했지만, 그건 미래의 코델리아지 지금의 코델리아가 아니었다.
미래에 운전면허를 딸 예정이라 하여 지금 당장 운전하는 법을 터득할 수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
더욱이 원작에서처럼 스킬 버튼 하나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으니, 마녀의 힘을 부리기 위해서는 요령이 필요했다.
마녀의 힘이 움직였다.
코델리아의 영육 곳곳으로 악마조차 굴복시켰던 대마녀의 힘이 전파되었다.
단 한 번.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코델리아는 본능적으로 힘의 사용법을 깨달았고, 감고 있던 눈을 떠 힘을 발산하였다.
“유더!”
코델리아가 소리치며 안광을 번쩍인 그 순간 강렬한 녹색의 기파가 봉인지 전체를 휩쓸었다.
무지막지한 힘에 유더를 공격하려던 마수는 물론이고 유더와 루카스마저 휩쓸려 튕겨져 나갔다.
“쿠워어!”
“커헉!”
“크윽!”
뒤로 크게 밀려난 마수였지만 노성을 토하며 버텨냈다.
반면 유더와 루카스는 버티지 못 하고 바닥을 뒹굴었다. 특히 유더의 경우 벽 가까이에 있었던 터라 벽에 한 번 세게 부딪히기까지 하였다.
힘의 발산 직후.
녹색 안광을 발하는 코델리아의 두 눈에 봉인지의 전경이 들어왔다.
노성을 토하며 버티고 선 마수와 검을 짚고 일어서고 있는 루카스.
그리고 바닥에 쓰러진 채로 고통스런 신음을 토하는 유더.
코델리아의 두 눈에 격노가 어렸다. 그녀가 한 걸음을 내디디며 일갈했다.
“감히!”
유더를 다치게 했구나.
유더를 쓰러트렸구나.
용서하지 않는다.
용서하지 않겠다!
[저기, 저건 네가······.]
마녀의 목소리는 코델리아에게 닿지 않았다.
잔뜩 흥분한 그녀는 두 팔을 거칠게 휘두르며 다시 한 번 힘을 발했다.
마녀의 힘.
일종의 염동력이 녹색의 연기가 되어 뻗어나갔다.
거인의 손이 되어 마수를 강타했다!
“쿠오!”
마수가 거칠게 튕겨져 나갔다. 하지만 놈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허공에서 몸을 틀어 방향을 바꾸는가 싶더니 벽을 박차고 코델리아를 향해 돌진했다.
“쿠하!”
놈이 입을 크게 벌렸다. 무저갱 같은 아가리 속에서 붉은 섬광이 일었고, 이내 거대한 빛의 기둥이 되어 코델리아를 향해 돌진했다.
“브레스?!”
루카스가 놀라 외친 그때 코델리아는 이미 반응하고 있었다. 오른손을 크게 올려치자 녹색의 연기가 마수의 턱을 강타해 강제로 브레스의 방향을 바꾸었다.
콰가가가가강-!
마수의 브레스에 직격당한 천장이 부서지며 낙석이 마구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코델리아는 그것들을 이용했다. 왼손을 휘둘러 녹색의 연기로 낙석들을 낚아채더니 그대로 돌개바람을 일으켜 마수와 충돌시켰다.
“크아악!”
돌덩이들이 칼날과 같이 되어 마수의 온 몸을 난도질했다.
하지만 아직이었다.
마수의 가죽은 두꺼웠고, 놈의 두 눈에선 여전히 붉은 안광이 빛났다.
“쿠라하!”
놈이 두 팔을 크게 벌리며 포효하자 돌개바람 자체가 분쇄되었다.
“꺼져!”
하지만 코델리아도 가만히 구경만 하지 않았다. 놈이 돌개바람을 분쇄한 그때 오른 주먹을 내질러 포효하는 놈의 가슴을 녹색의 연기로 강타했다.
콰가강!
벽과 마수가 충돌하며 엄청난 굉음이 일었다. 충격이 어찌나 강한지 봉인지 전체가 흔들릴 지경이었다.
“하아··· 하아··· 학······.”
코델리아의 코에서 후두둑 코피가 쏟아져 나왔다. 그뿐만 아니라 두 눈 역시 붉게 충혈된 것이 금방이라도 피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코델리아의 전신에서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사용한 것은 잠깐이었지만, 마녀의 힘은 너무나 강대해 코델리아에게조차 타격을 주었다.
[아직이란다.]
마녀가 말했고, 코델리아 역시 알았다.
이 정도 타격으로 쓰러트릴 수 있는 놈이 아니었다. 원작에서도 마녀의 힘을 빌린 코델리아가 거대한 마법의 창을 만들어 놈을 꿰뚫었을 때나 겨우 해치울 수 있었다.
[칼라마이트의 창을 쓰렴.]
때마침 마녀가 말했고, 코델리아는 숨을 가다듬으며 주문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1초. 다시 2초.
“말해줘요!”
[이건 또 모르니?]
코델리아와 마녀의 말이 겹친 그 순간.
“쿠오오!”
전신의 털이 솟구친 마수가 다시 한 번 포효하며 지면을 박찼다. 마치 공간을 가로지르듯 순식간에 코델리아와의 거리를 좁혔다.
“씨발!”
코델리아는 마녀의 힘을 거칠게 발산했다. 자신을 향해 주먹을 내지르려는 마수를 어떻게든 밀어냄과 동시에 바닥을 굴러 자리를 이탈했다.
“매직 미사일!”
코델리아는 자신의 마력에 마녀의 힘을 섞었다. 그리하여 평소 사용하던 마법에 마녀의 힘을 불어넣었다.
콰가강!
발리스타의 화살이라도 되듯 거대한 매직 미사일이 순식간에 형성되더니 그대로 마수를 향해 돌진했고, 무시무시한 폭발음을 내었다.
“커흑!”
하지만 코델리아에게도 타격이 있었다. 순간 허리를 굽힌 코델리아의 입에서 왈칵 피가 쏟아져 나왔다.
[나의 힘을 너의 것으로 삼기에는 아직 무리란다. 너의 마법이 아닌 나의 마법을 사용하렴.]
마녀의 힘은 정상적인 마력이 아니었다.
전설의 대마녀가 수많은 악마들을 굴복시키고 손에 넣은 악마의 힘이었기에 단순히 휘두르는 것을 넘어 제대로 된 마법을 쓰기 위해서는 마녀가 독창적으로 완성시킨 주문을 사용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통상적인 마법에 마녀의 힘을 사용하면 반발이 돌아오게 되어 있었다.
[잘 들으렴.]
마녀가 빠르게 주문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수가 시간을 주지 않았다.
“쿠어!”
매직 미사일을 정통으로 맞은 덕에 털이 그을리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긴 했지만 놈은 아직 건재했다.
단숨에 거리를 좁히더니 오른팔을 크게 휘둘러 간신히 서 있는 코델리아를 부숴버리려 했다.
“우오오!”
바로 그때 루카스가 포효하며 검을 집어던졌다.
성왕십자검의 힘이 실린 검은 마치 섬전처럼 나아갔고, 마수의 주의를 순간이나마 끄는데 성공했다.
쿵!
그리고 천하삼십육보가 펼쳐졌다.
필사적으로 코델리아를 향해 달리던 유더가 어느 순간 지면을 박찼고, 코델리아를 와락 끌어안았다.
하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코델리아와 함께 몸을 피하려 했지만 그보다 마수의 공격이 더 빨랐다.
콰가가가강!
마수의 손이 지면을 휩쓸었다. 무지막지한 힘에 지면이 부서질 지경이었다.
“안 돼!”
루카스가 비명처럼 외친 그때였다.
“매직 미사일!”
다시 한 번 마법이 작렬했다. 옆구리를 강타당한 마수가 고통스런 신음을 토하며 튕겨져 나갔고, 루카스는 목격할 수 있었다.
바닥.
코델리아와 유더가 한데 엉켜 쓰러져 있었다.
밑에 깔린 코델리아가 마법을 사용하였고, 유더가 그런 코델리아 위에서 안도의 숨을 토했다.
요정의 발걸음.
코델리아를 끌어안음과 동시에 발동시켰고, 덕분에 마수의 공격을 완벽히 회피할 수 있었다.
“커헉!”
하지만 코델리아가 다시 한 번 피를 토했다.
유더는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고, 그런 두 사람에게 마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계란다. 무리한 운용에 의한 반발이 너무 심하구나. 더 이상은 위험하단다.]
말투는 나긋나긋했지만 목소리에 우려가 가득했다.
유더는 급히 코델리아를 돌아보았고, 코델리아는 그런 유더를 보았다.
그렇게 눈이 마주친 순간.
“크아아!”
절뚝거리며 일어선 마수가 노성을 토했다. 옆구리에 커다란 상처를 입은 놈은 유더와 코델리아를 향해 돌진했다.
“노옴!”
땅에 떨어진 검을 주워들은 루카스가 마수를 향해 반전했다.
코델리아가 입술을 벌려 유더에게 속삭였다.
“쿠하!”
마수가 뛰어올랐다. 루카스의 머리 위를 단숨에 지난 놈이 강하하며 주먹을 내질렀다.
쾅!
코델리아가 체이스 백작의 반지로 펼친 실드 마법이 단숨에 박살났다.
지면에 착지한 마수는 다시 주먹을 당겼고, 코델리아는 마수를 보았다.
재차 실드 마법을 펼치는 대신 맑고 푸른 눈으로 마수를 보며 가운데 손가락을 세웠다.
포기한 것일까.
마지막으로 욕지거리나마 토하는 것일까.
아니었다.
마수가 주먹을 당기는 그때 코델리아의 머리칼이 다시 붉게 물들었다.
동시에 코델리아를 보호하듯 위에 자리하고 있던 유더의 머리칼이 순식간에 길어졌다.
코델리아가 선혈을 흘리며 웃었다.
다시 한 번 입술을 열어 말했다.
“해치워.”
눈을 마주친 순간 알았으니까.
유더에게도 마녀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사실을.
그렇기에 코델리아는 행동했다. 마녀의 힘을 유더에게 넘겨주었다.
“우오오!”
유더가 포효하며 몸을 일으켰다. 마녀가 유더 안에서 자신의 힘을 움직였고, 유더는 성십자수호단의 술식진을 활짝 펼쳤다.
[다칠 거란다.]
거센 반발이 일어날 거란다.
하지만 유더는 개의치 않았다. 이제 와서 마녀의 주문을 들을 시간 따위 없었으니까.
지금의 방법이 최선이었으니까.
유더의 두 눈이 녹색 안광을 발했다.
마녀의 힘이 술식진을 발동시켰고, 순백의 빛이 작렬했다.
츠화아아아아아!
거대한 황금십자가.
순백의 빛 속에서 그것이 형성되었다. 마수를 강타하였고, 놈의 몸을 불태우며 전진하고자 했다.
“쿠오오오!”
하지만 마수가 그리 쉽게 밀려나지 않았다. 전력을 폭발시켜 황금십자가에 맞섰다. 검붉은 악마의 기운이 황금십자가의 성스러운 힘과 충돌하며 수십 개나 되는 번갯불이 일었다.
유더의 입가를 따라 선혈이 흘렀다.
술식진을 펼치고 있는 두 팔이 사시나무처럼 떨렸고, 이마를 따라 비 오듯 땀이 흘렀다.
팽팽한 격돌이었다.
아니, 조금씩이지만 유더가 밀리기 시작했다.
술식 그 자체보다는 술식을 유지하는 유더의 체력문제 때문이었다.
[안 돼, 이대로는······.]
마녀가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유더는 포기하지 않았다.
믿고 있었으니까.
믿을 수 있었으니까.
“코델리아!”
유더가 절규하듯 외친 그때,
마수의 붉은 안광에 코델리아가 비쳤다.
그녀의 손가락 끝에 새하얀 마력이 집중되고 있었다.
매직 미사일.
아주 작고, 약한, 하지만 균형을 무너트리기에는 충분한.
코델리아가 고통 섞인 미소 속에 손가락을 놀렸다. 손가락 굵기 만한 매직 미사일이 쏜살처럼 날아 마수의 눈을 강타했다!
“크악!”
고통이 균형을 깨트렸다.
마수가 발하던 악마의 힘에 균열이 생겼고, 유더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콰가강!
마수의 비명과 굉음이 동시에 터졌다. 황급십자가가 단숨에 마수를 밀어냈고, 놈은 거의 십여 미터 이상을 날아 벽에 충돌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황금십자가가 놈의 몸에 파고들었다. 불태우는데 그치지 않고 아예 소멸시켜버렸다.
“아아아!”
마지막 절규와 함께 놈의 두 눈에서 붉은 안광이 사라졌다. 가슴에서 시작해 전신이 순백의 불길에 휩싸이더니 이내 재가 되어 흩어졌다.
“하아··· 학······.”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본 유더는 거친 숨을 토하는가 싶더니 코델리아가 그러했던 것처럼 피를 토했다.
이러나저러나 코델리아보다는 마녀와의 상성이 좋지 못한 유더였다.
단 한 번의 사용이었지만, 몇 번이나 힘을 쓴 코델리아만큼이나 상태가 나빠졌다.
[힘을 거둘 거란다. 무리하지 말고 쓰러지렴.]
마녀의 상냥한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인 유더는 코피까지 주륵 흘리더니 그대로 무너지듯 코델리아 옆에 쓰러졌다.
‘레벨··· 올랐네.’
순백의 고리가 몇 개나 형성되었으니까.
더욱이 머릿속에서도 악마 살해자 타이틀을 얻었다는 목소리가 들렸다.
‘전능력치 +3에 대악마 공격력 5% 증가······.’
기절할 때 기절하더라도 일단 챙길 건 챙겨야 했으니까.
그리고 그건 코델리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씨발, 좋긴··· 하네.”
코피에 선혈까지 얼굴의 반이 피투성이인 그녀였지만 그 와중에도 미소 짓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과연 절세미소녀.’
그리고 거기까지였다.
유더는 구음절맥 타령을 할 새도 없이 의식을 잃고 졸도해버렸다.
코델리아는 그런 유더를 보며 다시 한 번 욕지거리 섞인 미소를 짓더니 이내 이를 악물고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졸도할 때 하더라도, 아직은 때가 아니었으니까.
확인해야만 하는 것이 있었으니까.
“코델리아 양! 유더 공자!”
헐레벌떡 달려온 루카스를 보며 코델리아는 비로소 안도의 숨을 토했다.
루카스도 무사하다.
마수는 쓰러트렸고, 결계도 아마 깨졌으리라.
그러니 이제 졸도해도 되겠지.
“뒷일··· 부탁······.”
작게 말한 코델리아는 그대로 의식을 잃어버렸고, 루카스는 데자뷰 속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환상의 커플.’
마인에 이어 마수까지.
두 사람의 호흡은 정말 환상적이었으니까.
부럽다는 듯 유더와 코델리아를 번갈아 본 루카스는 일단 두 사람을 바로 눕히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런 루카스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마녀의 영혼은 몇 번인가 눈을 깜박이다 말했다.
[음··· 아직 승천하면 안 되겠지?]
두 사람과 이야기를 해야 할 테니까.
미간을 좁힌 마녀의 영혼은 나란히 누운 유더와 코델리아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이내 루카스가 그러했던 것처럼 저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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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장 - 마녀의 숲 #6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