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7장 - 만월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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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던 자작님, 다시 인사드리게 되어 기쁩니다.”
“오오··· 랑게스트에서의 이야기는 나도 들었네. 이렇게 무사한 모습을 보니 정말 기쁘군.”
“염려해주신 덕분이지요. 이쪽은 바이엘 백작가의 유더 공자와 체이스 백작가의 코델리아 양입니다.”
루카스의 소개에 노던 자작- 머리칼이 하얗게 샌 노년의 남성이 유더와 코델리아를 돌아보았고, 두 사람은 각기 예를 표하였다.
“유더 바이엘입니다.”
“코델리아 체이스입니다.”
“오오, 듣던 대로 선남선녀들이로다. 노던 자작일세. 이렇게 만나 반갑구려.”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유더와 코델리아, 루카스가 비록 12가문의 자식들이라고는 해도 아직은 작위 없는 일반 귀족에 불과했다.
연장자이자 작위 보유자인 노던 자작에게 말을 높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저택의 분위기가 무척이나 좋네요.”
오래되었지만 결코 낡지 않은, 잘 손질된 저택 곳곳을 돌아보며 코델리아가 말하자 노던 자작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3대 전부터 쭉 물려받은 저택이라네. 작고 오래되었지만··· 내가 나고 자란 소중한 장소지.”
코델리아에게 푸근하게 답한 노던 자작은 오래 끌지 않고 메이드들을 시켜 일행 각자에게 손님방을 배정해주었다.
‘좋은 사람 같지?’
‘나쁜 사람 같지는 않은데?’
원작에서는 그냥 그런 사람이 있다- 수준으로 끝나는 노던 자작인 터라 유더와 코델리아 모두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마차 안에만 있느라 노던 자작령의 분위기도 온전히 살피지는 못 했고 말이다.
‘뭐, 별 문제 없겠지.’
본인 입으로 작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백작가의 저택들에 비해 작다는 것이지 정말로 저택 자체가 작지는 않았다.
영지를 가진 귀족의 저택답게 손님방도 몇 개나 되었다.
2층에 있는 방을 배정받고, 노던 자작과 저녁 만찬까지 마친 일행은 일찌감치 각자의 방에 돌아가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그리고 손님방의 발코니.
유더와 코델리아는 언제나처럼 둘 만의 시간을 갖기 시작했다.
“아, 좋다. 오랜만에 맛있는 것도 먹고, 목욕도 하고, 제대로 된 침대에서 자고.”
나이트가운을 걸친 코델리아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어깨 위로 흘러내린 머리칼을 어루만졌다.
목욕을 마치자마자 왔는지 머리칼이 무척이나 찰랑거렸다.
“음, 나는 화장실이 좋아.”
“나도 좋긴 하지만 그걸 꼭 말해야 하니?”
“아무튼.”
두 사람은 나란히 발코니에 놓인 의자에 앉아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언제나처럼 두 개의 달이 별들과 함께 빛나고 있었다.
먼저 운을 뗀 것은 유더였다.
“란디우스는 내일 도착할 것 같아. 한동안은 우리랑 동행할 거고.”
“듀크를 조심하라는 정도로는 부족하겠지?”
“일단··· 듀크의 약점이나 공격 방식에 대해 넌지시 알려줄 생각이야. 일단 알아두면 란디우스가 우릴 어떻게 생각하든 쓸모가 있을 테니까.”
“으음··· 그럼 란디우스랑 일단 친해져야겠네? 그래야 우리말도 믿을 테고, 더 많은 정보도 전달할 수 있을 테고.”
“아마도 그렇겠지.”
최선은 아예 란디우스가 듀크와 싸우는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는 것이었으니까.
“아예 우리랑 계속 같이 다닐 수는 없을까? 란디우스는 방랑하는 전사잖아. 카마엘처럼 성십자수호단 소속도 아니고.”
“그렇긴 한데··· 뭐, 시도는 해봐야겠지.”
란디우스와 동행할 수 있다면 북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대부분을 보다 손쉽게 해결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쉽지 않겠지.’
란디우스는 파라곤 왕국의 멸망 이후 악마 추종자들- 정확히는 파라곤 왕비를 현혹해 바이카젤을 소환한 대사교 마누엘라를 쫓고 있었다.
목적의식이 뚜렷한 란디우스인 터라 유더와 코델리아가 다른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란디우스를 쫓아다니는 거면 모를까, 란디우스가 유더와 코델리아를 따라다니게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어찌되었든··· 만나보면 알게 되겠지.”
“그러게. 2편이 1편으로부터 10년 후니까··· 란디우스도 많이 변했겠지?”
“변했겠지. 그래도 20대가 30대 된 수준이니까 거기서 거기 아닐까? 카마엘도 가면을 써서 그렇지 맨 얼굴은 거의 똑같잖아.”
“그래도 궁금하다.”
영웅전기 1편의 진주인공이라 불리는 카마엘과 란디우스는 둘 다 굉장한 미남들이었다.
카마엘은 유더처럼 중성적인 미모를 가진 절세미청년이었고, 란디우스는 2편의 진주인공이라 불리는 막시밀리언과 계보를 같이하는 선이 굵고 강렬한 눈빛을 가진 정통파 미남이었다.
1편으로부터 10년 후를 다루는 2편.
성십자수호단의 간부가 된 카마엘은 수많은 악마들과 싸우는 와중에 그 스스로도 악마의 힘에 중독되어 인상이 꽤 변하였는데, 의외로 2편의 모습을 선호하는 팬들이 많았다.
‘퇴폐미···가 추가되었다나?’
턱을 긁적인 유더는 다시 란디우스 쪽으로 생각을 돌렸다.
“아무튼 기대되기는 하네.”
바이카젤의 막강한 힘 앞에 모두가 절망할 때조차 홀로 포기하지 않던, 카마엘을 비롯한 1편의 주인공들 모두를 일으켜 세운 태양의 남자.
사실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유더 역시 란디우스를 무척 좋아했다.
그런 란디우스를 실제로 만난다고 생각하니 이래저래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일이나 모레쯤이면 만날 수 있겠지? 기대된다.”
“그러게.”
고개를 끄덕여 응답한 유더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아무튼 이래저래 힘들었으니까 오늘은 이만 자자.”
“하우, 그래. 너도 잘 자.”
“내 꿈꾸고.”
“그래, 그래. 너야말로 내 꿈꿔.”
“야한 꿈꿔야지.”
“미친놈이 뭐라는 거야.”
언제나와 같은 교환을 마친 코델리아가 발코니를 나서자 유더는 새삼 다시 밤하늘을 돌아보았다.
평소보다 훨씬 더 달이 밝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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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더가 눈을 뜬 것은 새벽을 눈앞에 둔 깊고 깊은 밤이었다.
눈을 뜬 이유는 단순했다.
콰강!
폭발음에 번쩍하고 눈을 뜬 유더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고, 반사적으로 소리가 들려온 창가를 돌아보았다.
습관처럼 설치해둔 함정이 발동한 덕분에 창문이 박살나 있었고, 발코니에는 피투성이가 된 검은 복면 사내 하나가 신음을 토하고 있었다.
습격.
그 순간 유더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하나였다.
그리고 그 하나를 입 밖에 내었다.
“코델리아!”
머리맡에 두었던 너클을 장착한 순간 발코니 너머로 복면인 둘이 더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유더는 깨달았다.
‘악마의 손!’
랑게스트에서 실패한 놈들이 다시 한 번 공격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다면 큰일이었다.
이쪽의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면서도 공격해왔다는 것은, 충분히 감당할 자신이 있는 병력을 쏟아 부었다는 이야기가 되었으니 말이다.
‘안일했어.’
랑게스트에서 워낙 큰 피해를 입었기에 섣불리 2차 습격을 시도하지 못 할 것이라 생각했다.
악마의 손의 전투원이 분명한 복면인 둘이 저마다 나이프를 거머쥐었다.
그런 둘의 뒤로 또 다른 복면인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피하자.’
여기서 몇이나 될지 모를 놈들을 상대하는 것은 하책이었다. 서둘러 코델리아와 합류해 그녀의 안전을 확보해야만 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유더!”
벼락같은 부름과 함께 방문이 폭발했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절세미소녀.
아니, 검붉은 머리칼을 흩날리는 잠옷 차림의 마녀였다.
“저리 꺼져!”
코델리아가 복면인들을 노려보며 소리친 순간 허공에 형성된 매직 미사일 두 발이 섬전처럼 날아가 복면인들을 강타했다.
“유더! 얼른!”
구하려고 했는데 구함을 받았지만 어찌되었든 중요한 것은 합류하는 것이었다.
유더는 급히 침대를 박차 코델리아에게 달려가며 물었다.
“달리아는?”
“1층에! 기사들끼리 한 잔 한다고 했어!”
분명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코델리아의 말을 듣는 순간 유더는 생각했다.
‘함정?’
이러나저러나 호위 임무 중인 기사들이었다.
그런 기사들이 남의 저택에서 저들끼리 한 잔이든 두 잔이든 술자리를 가진다는 것은 어찌 생각해도 무리수였다. 달리아나 준은 물론이고 흐레스벨그 백작가의 호위대장인 세오른 경의 성격을 생각해도 말이다.
노던 자작가 쪽에서 먼저 술자리를 제안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일은 일어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하나.
노던 자작가 자체가 함정이다.
노던 자작일지, 아니면 그 사용인들 일부일지 모르지만 악마의 손과 내통하는 자가 있다!
“빨리 가자!”
1층으로.
달리아를 구하기 위해.
“그전에 루카스부터!”
악마의 손이 노리는 것은 루카스와 코델리아였다.
유더는 급히 복도로 나섰고, 코델리아는 뒤따르며 물었다.
“그런데 폭발은?”
“뭐가?”
“폭발 소리!”
유더의 방에서 있었던 폭발 소리를 묻는 것이었다.
유더는 루카스의 방문을 박차며 소리쳤다.
“함정! 창문에 매일 설치해!”
“너 진짜 스파이였지?”
“없어!”
“어?”
“없다고!”
루카스의 방은 비어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침입의 흔적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1층?”
기사들의 술자리에 엉거주춤 끼어든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화장실?
생각할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1층 쪽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서두르자!”
“매직 미사일!”
코델리아가 외친 그 순간 다섯 발이나 되는 매직 미사일들이 동시에 형성되어 복도를 날았다.
유더의 방 창문을 통해 침투한 악마의 손 전투원들을 향해서였다.
“마녀화 효과 죽이는데?”
“오래 못 써!”
이해했다.
유더는 앞장서서 달리기 시작했고, 중앙 계단 쪽에서 일행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달리아! 준!”
“아가씨!”
“도련님!”
달리아와 준이 동시에 답했다.
두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기사들도 있었는데, 세오른 경과 실리온 경, 무엇보다 루카스가 보이지 않았다.
“루카스는?!”
“밖에!”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1층 사방에서 쏟아져 나온 악마의 손의 전투원 십여 명이 기사들을 덮쳤고, 2층에서도 유더와 코델리아를 노리고 악마의 손 전투원들이 들이닥쳤다.
이번 공격에 적어도 수십 명 이상의 전투원들을 동원한 것이 분명했다.
“코델리아! 안아!”
코델리아의 허리를 덥석 안은 유더가 지면을 박차 중앙 계단 자체를 뛰어넘었다.
그리고 코델리아는 그런 유더의 목을 와락 끌어안았다. 꺅하고 비명을 지르는 대신 등 뒤를 매섭게 노려보며 매직 미사일들을 연달아 발사했다.
콰가가가가가!
쿵!
매직 미사일들이 폭발하는 소리와 유더가 지면에 착지하며 난 소음이 동시에 터졌다.
유더는 코델리아를 고쳐 안으며 다시 한 번 지면을 박찼다.
“밖으로!”
“파이어- 애로우!”
코델리아가 유더의 품에 안긴 채 수인을 맺어 거대한 불꽃의 화살을 연성했다.
유더의 명을 찰떡같이 알아들은 기사들은 두 사람을 중심으로 쇄기형 방진을 세운 뒤 그대로 중앙 현관을 향해 돌진했다.
콰가강!
코델리아가 발사한 파이어 애로우가 정문을 파괴하며 불살랐다. 그리고 동시에 사방에서 화살이 쏟아져 내렸다.
“실드!”
체이스 백작의 반지가 바로 발동했다.
반투명한 반구가 유더와 코델리아를 감쌌고, 기사들은 저마다 검을 휘둘러 쏟아지는 화살비에 대응했다.
“큭!”
하지만 모두 막아내는 것은 무리였다.
화살 몇 발이 기사들의 팔이나 어깨에 꽂혔다.
“달리아!”
“밖으로!”
왼쪽 허벅지에 화살이 꽂힌 달리아를 보며 코델리아가 비명처럼 외치자 달리아가 바로 응답하며 전진했다. 다음 화살비가 쏟아지기 전에 저택을 빠져나가야만 했다.
“용맹한 돌진!”
돌연 크게 외친 준의 몸이 은은한 황금빛에 휩싸이는가 싶더니 마치 쏘아지듯 정문을 향해 돌진했다. 기사들의 마법이라 불리는 ‘기사도’였다.
파파파파팍!
맹진하는 준의 위로 화살이 빗발치듯 쏟아졌지만 은은한 황금빛이 대부분의 공격을 튕겨내거나 비껴나가게 했다.
“큭!”
하지만 그래도 한계가 있었다.
돌진하던 준이 제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유더는 볼 수 있었다.
포위된 상태로 악마의 손의 전투원들과 맞서 싸우고 있는 루카스 일행을!
“루카스!”
정문을 통과한 유더가 코델리아를 바닥에 내려놓았고, 그 순간 코델리아가 영창에 들어갔다. 마녀의 마법서를 통해 배운 마녀의 주문을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연달아 정문을 나선 기사들이 유더와 코델리아를 보호하듯 방진을 세웠고, 루카스 쪽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유더 공자!”
“노던 자작이 적입니다!”
세오른 경이 외친 그때였다.
정문 앞 부지 전체에 순간 강력한 마력의 기운이 흘렀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 가운데 코델리아를 제외하면 가장 마법에 익숙한 유더는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법진!”
같았다.
유더가 마인 미노스와 싸우기 위해 미리 마법진을 준비했듯이 악마의 손 역시 함정을 준비해둔 것이었다.
빛이 일었다.
보랏빛 선이 부지 위에 복잡하게 그려지는가 싶더니 이내 유더를 비롯한 일행 모두를 억누르기 시작했다. 마치 중력이 몇 배로 강해진 것 같았다.
‘중압진!’
이름 그대로 진에 갇힌 이들을 찍어 누르는 마법진이었다.
주문을 외우던 코델리아는 돌연 가해진 충격에 악 소리를 내며 주저앉았고, 기사들 역시 엉거주춤 서 있을 뿐, 제대로 운신하지 못 했다.
“하하하! 어리석은 것들!”
틀에 박힌 대사를 따라 시선을 돌리니 정원 부지에 숨어 있던 이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노던 자작이었다.
사람 좋아보이던 얼굴 자체가 가면이었던 것처럼 일그러진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두 눈에서 붉은 안광이 번뜩였다.
“끝이다. 설사 중압진을 돌파한다 해도 너희에게 희망은 없으니.”
연극조로 말한 노던 자작이 손을 튕기자 정원뿐만 아니라 저택에서도 악마의 손 전투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얼핏 세어도 서른이 훌쩍 넘는 숫자였다.
더욱이 일반 전투원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연이든 뭐든 미노스를 꺾은 놈들이니 방심할 수는 없지.”
노던 자작의 옆으로 새로운 마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던 노던 자작과 달리, 원작 초반에 제법 존재감을 드러내던 악역이었다.
‘마인 바루스.’
미노스와 호각이라 할 수 있을 악마의 손의 마인.
미노스가 납치한 12가문의 자제들을 의식의 거행지까지 운반하는 임무를 맡고 있던 마인으로, 얼음을 사용하는 미노스와 반대로 지옥의 불길을 사용하는 마인이었다.
“유더.”
코델리아가 신음을 흘리며 작게 말했다.
마인이 둘에 전투원만 마흔에 가까웠으니 중압진이 없더라도 상대하기 버거운 적들이었다.
‘원작을 너무 믿었어.’
노던 자작이 마인일 거라 생각하지 못 했다.
2차 습격의 가능성을 너무 낮게 보았다.
하지만 모두 뒤늦은 후회였다. 일단은 작금의 위기를 타파해야만 했다.
“12가문의 자제들만 잡으면 된다. 기사들은 모두 죽여라.”
바루스의 명을 받은 전투원들이 중압진 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특별한 각인을 몸에 새긴 덕분에 중압진 안에서도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는 놈들이었다.
“유더.”
코델리아가 다시 유더를 불렀다.
그리고 그 순간 유더는 코델리아가 무엇을 하려는지 깨달았다.
마녀의 힘을 폭주시킨다.
순간이지만 엄청난 마력을 발산해 중압진을 날려버린다.
하지만 자폭수에 가까웠다.
어찌어찌 중압진을 날린다 해도 여전히 적들이 많았고, 뭣보다 코델리아는 최소 빈사 상태에 빠지고 말 터였다.
유더가 코델리아를 보았고, 코델리아는 씩하고 웃었다.
그대로 눈을 꽉 감더니 마녀의 힘을 이끌어내기 시작했다.
유더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코델리아를 말리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유더는 알고 있었다.
작금의 위기를 타파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코델리아가 선택한 방법이 그나마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란 사실을.
하지만,
하지만 설사 그렇다 할지라도-
콰가가가가가가가가-!
무시무시한 파공음이 순간 모든 소리를 지워버렸다.
코델리아의 힘이 폭주한 것이 아니었다. 한창 마녀의 힘을 이끌어내던 코델리아조차 깜짝 놀라 눈을 떴고, 그녀는 볼 수 있었다.
밤하늘이 찢어지는 광경을.
붉은 섬광이 어둠을 가르는 모습을.
“저게 뭐야.”
저도 모르게 말한 그 순간.
콰앙!
하늘에서 벼락이 쳤다.
붉은 섬광이 한 줄기 번개가 되어 지상에 강림했다.
콰가강!
충격파에 하늘과 땅 모두가 진감했다. 거센 바람이 일어 대기를 밀어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중심에 선 자.
붉은 머리가 선명했다.
어둠 속에서 마치 태양처럼 빛나는 자였다.
적염의 란디우스.
그 어떤 절망 속에서고 굴복하지 않는 태양의 전사!
하지만 그의 등장에 유더와 코델리아는 당황했다.
영화처럼 극적인 등장 때문이 아니었다.
““라, 란디우스?!””
영웅전기 1편으로부터 10년.
2편에서 등장조차 하지 않았기에 아무도 알지 못 했던 그의 변화.
란디우스는 본래 키가 컸다.
거의 190에 가까운 거한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컸다.
아니, 커도 너무 컸다.
아무리 작게 잡아도 2미터 30은 거뜬히 될 것 같았으니까.
란디우스는 몸이 좋았다.
애당초 떡 벌어진 어깨를 가진 멋진 몸매의 소유자였다. 별명이 캡틴 파라곤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좋아도 너무 좋았다.
어깨가 넓어도 너무 넓었으니까.
근육이 단단해도 너무 단단했으니까.
그야말로 움직이는 강철.
거대한 존재.
그 와중에 얼굴은 1편과 마찬가지로 잘생겼다. 바람의 흩날리는 붉은 머리칼은 사자의 갈기 같았다.
얼굴은 그대로인데 덩치는 거의 두 배가 되었다고 해야 할까.
더욱이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1편에서 쓰던 솔라 블레이드를 들고 있는 게 아니라 맨손이었다.
“란디우스 경!”
루카스가 목 놓아 외쳤고, 란디우스가 사나이의 미소를 지었다.
껄껄껄 웃더니 그대로 거칠게 발을 놀렸다.
쿵!
그것으로 끝이었다.
단 한 번의 발길질에 지축이 뒤흔들렸고, 지면 위로 수십 개나 되는 균열이 생겼다. 중압진을 형성하고 있던 마력 따위는 순식간에 흩어져 버렸다.
“저, 저게 뭐야.”
코델리아가 말한 그때, 악마의 손의 마인들이 움직였다. 전투원들이 동시에 석궁을 쏴 화살비를 만들었다.
란디우스가 그것을 보았다.
주먹으로 하늘을 후려쳤다.
그리고 폭풍이 일었다. 란디우스의 타점을 중심으로 일어난 충격파에 대기가 요동치더니 날아오던 화살비들을 모조리 휩쓸어버렸다.
“미친! 죽어라!”
바루스가 다급히 외치며 거대한 화염구를 발사했다.
마인의 마력으로 만들어낸, 지옥의 불길이었다.
란디우스는 자신을 향해 엄습해오는 화염구에 코웃음 쳤다. 손을 쓸 것도 없다는 듯 크게 소리쳤다.
“파破!”
무지막지한 내공이 실린 외침은 사자후 그 자체였다. 화염구는 란디우스를 불사르기는커녕 순식간에 소멸해버렸다.
당황한 것은 바루스만이 아니었다.
유더와 코델리아는 물론 저택 부지에 있던 이들 모두가 충격에 빠졌다.
사실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강함이었다.
란디우스는 1편의 주인공이었으니까.
인간의 몸으로 데몬프린스를 쓰러트린 초강자가 10년의 세월 동안 더 강해졌으니까.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유더조차 혼란에 빠진 그때, 마침내 란디우스가 발걸음을 떼었다. 가볍게 내디딘 한 걸음으로 공간을 가로지르더니 움켜쥔 두 주먹을 휘둘렀다.
팡! 팡! 팡!
터져나갔다.
특별한 무공이 아니었다.
그저 내지른 주먹에 악마의 손의 전투원들이 폭발했다. 무지막지한 물리력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하늘을 부수고 땅을 가른다.
문자 그대로였다.
란디우스가 휘두른 주먹질 몇 번에 서른이 훌쩍 넘던 전투원들이 한줌 핏덩이로 화했다. 권압만으로 전투원들의 팔다리를 부러트리니, 허공만 격타해도 쓰러지는 수준이었다.
마인들이라 하여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너무나 압도적인 힘에 넋이 나가 있던 노던 자작은 목을 붙잡혔고, 란디우스의 일권에 머리가 사라졌다.
그나마 정신을 챙긴 바루스 역시 비슷한 운명이었다. 도망치기 위해 등을 보인 순간 란디우스가 수도를 휘둘렀다. 무시무시한 기파가 놈을 두 동강 내는데 그치지 않고 아예 분쇄해버렸다.
“나약한 것들. 검을 쓸 필요조차 없구나.”
란디우스가 코웃음을 쳤고, 유더와 코델리아는 생각했다.
‘저, 저게 뭐야. 무서워.’
플레이아데스는 초인이 있는 세계였다.
당장 노란폭풍의 별명이 인간 폭풍이었듯이 강대한 초인 하나가 수백, 수천 명에 대적하는 것 역시 가능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정도가 있는 법이었다.
아니, 그보다는 게임과 현실의 차이였다.
모니터 너머로 몬스터 수십을 썰어재끼는 전사를 볼 때와, 실제 두 눈으로 주먹 한 방에 사람이 터져나가는 광경을 보는 것은 달랐으니까.
‘듀크가··· 죽였다고?’
저걸?
어떻게?
솔라 블레이드도 그냥 란디우스가 버린 거 주운 거 아냐?
유더가 저도 모르게 눈을 껌벅인 그때였다.
란디우스가 돌아섰다. 일단 루카스부터 살피는가 싶더니 이내 그 시선을 유더와 코델리아 쪽으로 돌렸다.
“호.”
씩 웃은 란디우스가 발걸음을 내디뎠고, 코델리아는 저도 모르게 유더의 팔을 붙잡았다. 유더 역시 코델리아를 자신의 등 쪽으로 숨기며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뭔가 이게 아닌데.’
자신과 코델리아가 생각했던 란디우스와의 만남은.
아니, 자신들이 생각했던 란디우스의 모습은.
2미터 30센티미터.
덩치만 따지면 유더보다 몇 배는 되는 거인의 그림자가 유더와 코델리아를 뒤덮었다.
마인과 맞상대할 때조차 두려워한 적이 없던 코델리아가 저도 모르게 어깨를 떨었고, 유더의 숨결이 거칠어졌다.
란디우스가 그런 유더와 코델리아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마치 꿰뚫어 보는 것 같은 시선으로 유더의 전신을 살펴보았다.
“너, 천무지체군.”
란디우스의 얼굴에 사나운 미소가 번졌다.
솥뚜껑 같은 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코델리아가 반응했다.
라이제강을 처음 만났을 때처럼 반사적으로 마력을 끌어올렸다.
유더 역시 뒤늦게나마 천하삼십육보를 펼치려다 움찔했다. 바로 등 뒤에 코델리아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란디우스의 손이 유더의 어깨를 붙잡았다. 전신에서 일어난 기운이 코델리아의 마력을 단숨에 흩어버렸다.
‘죽는다.’
유더가 저도 모르게 생각한 그때.
란디우스가 입을 열었다. 생각도 못 한 말을 입에 담았다.
“내 제자가 되어라.”
“···예?”
“내 제자가 되어라, 천무지체의 소년.”
적염의 란디우스.
태양의 전사.
“네게 구천구문九天九門을 전수해주겠다.”
유더는 멍한 얼굴로 란디우스를 보았고, 란디우스는 사나이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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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장 - 만월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