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딩메이커-41화 (41/473)

< 제10장 - 밀월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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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손님방에서 코델리아의 편지를 발견한 흐레스벨그 백작가는 최대한 침착하게 대응하고자 노력했다.

‘찾아야 한다.’

제 발로 나갔든 말든 유더와 코델리아에게 무언가 불상사가 생기면 흐레스벨그 백작가가 불똥을 뒤집어쓸 수밖에 없었다.

어찌되었든 두 사람은 미성년이었고, 흐레스벨그 백작가는 두 사람을 손님으로 초대한 이상 보호할 책임이 있었으니 말이다.

‘아니, 애들이 집 나갈 동안 대체 뭘 한 겁니까? 흐레스벨그 백작가의 담벼락은 그렇게 낮습니까?’

물론 바이엘 백작이나 체이스 백작이 직접 저런 말을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시피 했지만, 대충 비슷한 말로 책임을 지울 터였다.

북방12가문 간의 불화.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어떡하죠? 두 사람이 악마의 손에게 잡히기라도 하면······.”

루카스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모두에게 말했고, 바이엘 백작가와 체이스 백작가의 기사들은 하나 같이 참담한 얼굴들이 되었다.

“그렇게 멀리까지는 못 가셨을 겁니다. 주변부터 착실하게 찾아봅시다.”

보다 못 한 흐레스벨그 백작가의 기사가 짐짓 기운차게 말하자 다른 기사들 역시 의욕을 냈다.

어쨌든 일단 두 사람을 찾아야 했으니까.

하지만 모두의 예상과 달리, 유더와 코델리아는 상당히 먼 곳까지 나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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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도피로부터 닷새.

흐레스벨그 백작가가 여전히 베르드폴니르 인근의 마을들을 뒤지고 있을 때 유더와 코델리아는 프로스트 앤빌이 위치한 북서부 국경 지대 근처에까지 도달해 있었다.

“맛있는 냄새.”

아침.

침낭을 뒤집어쓴 코델리아가 모닥불 앞에서 코를 킁킁거렸다.

이제 막 깬 터라 머리는 부스스하고 얼굴도 생얼이었지만 절세미소녀답게 예쁘고 사랑스러운 그녀였다.

“깼냐?”

“어, 깼어. 오늘 아침은 뭐야?”

코델리아가 배시시 웃으며 모닥불 앞에서 열심히 요리 중인 유더를 보았다.

베르드폴니르를 나설 때만 해도 파비안이 챙겨준 여행가방 하나였던 유더와 코델리아였지만, 지난 닷새 사이에 살림살이가 제법 늘어나 있었다.

‘마력로랑, 확장 가방이랑, 특제 벌레 쫓는 향이랑.’

휴대용 버너라 할 수 있을 마력로는 코블로의 도주를 도와준 대가로 받았고, 겉보기보다 두 배는 더 내용물을 담을 수 있는 확장 가방은 잉센이 잃어버린 어머니의 유품을 찾아둔 대가로 받았다.

특제 벌레 쫓는 향은 유더가 여행 중에 모은 재료로 슥슥 만들어냈고 말이다.

그 외에도 다수.

닷새 전에 흐레스벨그 백작가를 맨손으로 나섰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풍족해진 유더와 코델리아의 여행 살림이었다.

“생활력 있는 남자 최고야. 1등 신랑감.”

“어, 그래. 아무튼 오늘 아침은 프렌치토스트랑 베이컨이랑 크림스프야.”

유더는 코델리아를 쳐다도 보지 않고 답했지만, 코델리아는 만족했다.

유더의 시선이 프라이팬에 집중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요리 어디서 배웠어?”

“여기저기서.”

“여기저기 어디?”

“프랑스랑 이탈리아랑 영국이랑 중국이랑 체코랑 러시아랑 아프간이랑 이라크랑 사우디랑··· 그야말로 기타등등.”

유더의 말에 눈을 반짝이던 코델리아는 마지막에 가서는 입술을 삐쭉였다.

처음 한두 개 나라야 그렇구나 했지만, 저렇게 많은 나라들을 진짜 다 가봤을 것 같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하여간 거짓말만 잘해요.’

하지만 중요한 건 요리를 잘한다는 사실이었기에 금방 입술을 원위치 시킨 코델리아는 고소한 베이컨 냄새에 다시 코를 킁킁 거리며 말했다.

“베이컨 만드는 것도 외국서 배운 거야?”

“어, 이건 미국 사는 친구한테.”

“요리는 손맛이라던데.”

“에헤이, 그보다는 정확한 계량이지.”

“계량?”

“불의 세기에 따라 굽는 시간이 달라져. 재료의 양에 따라 투입하는 소금의 양도 달라지고. 물론 맛보는 이의 취향에 따라서도 달라지지.”

“분자요리인가 뭔가 하는 그거야?”

“뭐, 비슷해.”

거기까지 말한 유더는 문득 고개를 들어 코델리아를 보았고, 이내 절레절레 고개를 가로저었다.

“왜.”

“아니, 사흘 전에 네가 한 첫 요리가 생각나서.”

아니, 그걸 요리라 부를 수는 있는 걸까.

유더의 얼굴이 참담해지는 것과 비례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코델리아가 입술을 삐쭉였다.

“흥, 나도 잘하는 요리 있다, 뭐.”

“불리하다고 거짓말을 늘어놓······.”

“아니거든? 나 라면 진짜 잘 끓이거든?”

“···거기서 나오는 게 결국 라면이냐.”

유더의 표정이 더더욱 참담해지자 코델리아의 얼굴 역시 더더욱 빨갛게 달아올랐다.

“진짜야. 네가 안 먹어봐서 그래. 내가 끓여준 라면 먹으면 너도 홀딱 반할 걸? 막 매일 끓여달라고 조르고.”

“네, 네.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칫, 진짠데.”

다시 입술을 삐쭉인 코델리아였지만 이내 다시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아무튼 적재적소라는 말도 있으니까 앞으로도 이렇게 나누면 딱 좋겠다. 넌 요리하는 사람, 나는 맛보는 사람.”

“지랄도 풍년이다. 난 요리담당이고 넌 설거지 담당이겠지.”

“야, 구음절맥만 나으면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해준다며.”

“내가 언제 그랬니. 안아도 주고 덮쳐도 주고 담벼락도 넘어주고 간병도 해준다고 했지.”

“뭔가 좀 빠진 것 같은데.”

“아무튼 밥 먹을 거니까 세수라도 좀 하고 와. 손도 씻고.”

“네, 엄마.”

“으휴, 저래서 시집이나 갈는지.”

유더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젓자 코델리아는 킥킥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금방 올게.”

“그래, 까불다 넘어지지 말고.”

“누가 애인줄 알아.”

코델리아는 길고 탐스러운 머리칼을 유더가 만들어준 비녀로 정리한 뒤 사뿐사뿐 발걸음을 내디뎠다.

근처에 있는 개울가를 향해서였다.

‘확실히 겨울이라 춥긴 춥네.’

더욱이 세일룬 왕국 최북단 인근에 도달한 상황이었으니까.

조금만 더 날씨가 추워지면 개울물 자체가 얼어붙을지도 몰랐다.

‘괜찮으려나 모르겠네.’

프로스트 앤빌은 이곳보다 훨씬 더 추울 테니까.

방한용품을 열심히 챙기긴 했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쉽다. 시간만 좀 더 있었어도 겨울의 가호 챙겨가는 건데.’

추위 속에서도 체온을 유지하고 행동력이 저하되지 않게 하는 ‘겨울의 가호’특별한 이벤트를 거쳐야만 얻을 수 있는 가호였는데, 문제는 그 이벤트가 랜덤 발생이라는 사실이었다.

‘정황상 이 근처일 것 같기는 한데······.’

새삼 고개를 든 유더는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딱히 이거다 싶은 지역이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제아무리 대단한 유더위키라고 해도 게임에서 생략된 부분까지 알아낼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씁, 어쩔 수 없지.’

이벤트 장소를 알려주는 인물과의 조우는 그야말로 랜덤이었으니까.

시간이 넉넉하다면 모를까, 겨울의 가호 하나 얻자고 이 근처를 배회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꺅!”

“코델리아?!”

저만치서 들려온 비명 소리에 반사적으로 소리친 유더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남과 동시에 질풍이십사보를 밟았다.

보법이지만 응용 여부에 따라 경공으로도 사용가능한 질풍이십사보였다.

“코델리아!”

혹여나 습격을 받은 것이라면 지금의 외침으로 적의 주의를 분산시킬 수 있으리라.

다시 한 번 크게 소리친 유더는 개울가를 향해 질풍처럼 달렸다.

그리고.

“어, 으. 안녕?”

개울가에 선 코델리아가 어색한 얼굴로 유더에게 아무 말이나 내뱉었고, 유더는 코델리아를 지나 개울가에 머리를 박고 쓰러진 덩치 큰 남자를 보았다.

“어떻게?”

“아니, 그··· 반사적으로다가.”

코델리아가 작게 몸짓을 해 보이는데, 아마 놀라서 반사적으로 공격 마법을 사용했다는 이야기 같았다.

“나도 나지만 너도 정상은 아니구나.”

반사적으로 공격 마법을 갈기는 절세미소녀라니.

“아니, 그··· 수풀에서 튀어나오는데 진짜 깜짝 놀라서······.”

“뭐, 됐어. 네가 다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음음.”

코델리아가 민망해하는 가운데 유더는 개울가에 쓰러진 사람을 일단 밖으로 끌어낸 뒤 바로 눕혔다.

“괜찮지? 막 강한 마법은 아니었으니까. 패럴라이즈였어.”

“파이어 애로우가 아니라 다행이네.”

적당히 답한 유더는 맥을 짚어본 뒤 숨을 확인했다. 코델리아 말마따나 단순히 마비된 상태였는데, 항마력이 낮아서 마법이 좀 단단히 걸린 것 같았다.

“어때? 넘어질 때 어디 다치진 않았고?”

“괜찮아, 거기다 운이 좋네.”

“응?”

“너 말이야.”

거기까지 말한 유더는 고개를 갸웃하는 코델리아에게 눈짓했다.

“자세히 봐봐. 너도 알 걸?”

이십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남자의 얼굴.

순박하게 생겼다는 것 외에는 딱히 특징 없는 얼굴이었지만 코델리아는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나무꾼 밤비노.”

“그래, 우리에게 필요한 바로 그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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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비노는 나무꾼인 동시에 약초꾼이었다.

세일룬 왕국 최북단인 이곳은 딱히 숲의 소유권을 주장할만한 영주가 없었고, 덕분에 나무든 약초든 챙겨가는 사람이 임자였다.

물론 관리하는 사람이 없는만큼 맹수는 물론이고 가끔 몬스터까지 튀어나오는 위험한 곳이었지만 말이다.

어찌되었든 열심히 산과 숲을 누비던 밤비노는 어느 날 환상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바로 천사들이 모여 목욕하는 장면을 목격한 것이었다.

“천사님?”

멍한 얼굴로 눈을 뜬 밤비노가 코델리아를 보며 말하자 유더는 미간을 좁혔고, 코델리아는 희희락낙하며 손을 내밀더니 귓속말로 말했다.

“내가 이겼지? 코델리아는 최고로 예쁘다니까?”

“씁.”

유더는 두 말 없이 동화를 넘겨준 뒤 여전히 어안이 벙벙한 밤비노에게 말했다.

“저희는 천사가 아니라 중앙에서 프로스트 앤빌을 탐사하기 위해 온 학자들입니다.”

“학자···님들이시라고요?”

“뭐, 정확히는 아직 학생이긴 하지만요. 왕립 아카데미 소속이거든요.”

유더가 언제나처럼 입에 침 하나 바르지 않고 위장신분을 내세우자 코델리아는 슬쩍 뒤로 돌아서서 표정을 감췄다.

유더와 달리 거짓말에 능숙하지 못 한 코델리아였다.

어찌되었든 유더의 말에 밤비노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유더와 코델리아가 평범한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짜 귀족들인가 보네.’

작위를 가진 영주 정도가 아니면 사실 그렇게까지 귀족과 평민 사이의 골이 깊지 않은 세일룬 왕국이었지만, 어찌되었든 귀족은 귀족.

밤비노의 태도가 조금 더 조심스러워졌다.

“그렇게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름이 뭐죠? 전 슈트라고, 이쪽은 펠리시아입니다.”

“어··· 전 밤비노입니다.”

“네, 밤비노. 반갑습니다.”

“그··· 어떻게 된 거죠? 기억이 잘······.”

“숲에 쓰러져 계신 걸 여기 펠리시아 양이 발견했습니다. 생색내고 싶진 않지만, 펠리시아 양은 밤비노 씨의 생명의 은인인 셈이죠.”

“아아··· 정말 감사합니다.”

“아, 아뇨. 호호······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어색하게 답한 코델리아가 얼른 다시 시선을 돌렸다.

민망함 때문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뻔뻔하지?’

코델리아가 언제나와 같은 의문을 품는 동안 유더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런데··· 혹시 요 아래 하버스 마을에 사시는 밤비노 씨인가요?”

“어, 네. 제가 그 밤비노입니다.”

“이야, 이거 정말 운이 좋았군요. 그렇지 않아도 밤비노 씨를 만나고 싶었습니다.”

“저를요?”

“네, 천사님들을 목격하셨다고요.”

“아아··· 네, 아무도 안 믿어주지만··· 정말로 목격했습니다. 작은 천사님들이 모여 그··· 목욕하시는 광경을.”

밤비노의 말은 사실이었다.

언제나처럼 산과 숲을 누비다가 천사들이 모여 목욕하는 광경을 목격하였으니까.

너무나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광경에 매료된 밤비노는 같은 장소를 몇 번이나 찾아갔지만 매번 허탕만 칠 뿐이었다.

“혹시 저희에게 그 장소를 알려주실 수 있나요?”

“그··· 저도 몇 번이나 다시 가봤지만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괜찮습니다. 혹여 흔적이라도 남아 있을지 모르니까요. 물론 사례도 할 생각이고요.”

유더가 방긋 웃으며 은화가 든 주머니를 슬쩍 두드리자 밤비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부탁합니다, 밤비노 씨.”

“따라오시죠. 여기서 그렇게 멀지는 않습니다.”

시원하게 답한 밤비노가 앞장서기 시작했고, 유더는 코델리아를 보며 찡긋하고 눈짓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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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비노가 안내한 장소는 산기슭에 위치한 계곡이었다.

반쯤 얼어붙은 계곡물을 보아하니 목욕하려고 했다가는 얼어죽을 것 같은 장소였다.

“여기입니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혹여 조사해서 뭔가가 나오면 밤비노 씨에게도 알려드리겠습니다. 어차피 하버스 마을을 지나야 하니까요.”

“그래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다들 제 말을 도통 믿지를 않아서······.”

“하하하, 자, 여기 사례입니다.”

밤비노의 말을 적당히 끊은 유더는 은화 두 닢을 쥐어둔 쥐 밤비노를 떠나보냈다.

그리고 몇 초.

다시 둘만 남게 되자 코델리아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절대로 목욕 안 할 거야.”

“안 해도 돼. 너도 이 이벤트 알잖아.”

밤비노가 목격한 것은 천사들이 아니었다.

그가 목격한 것은 숲의 요정들.

“윈터 페어리.”

“그래, 결국 페어리들이지.”

쓰게 웃은 두 사람은 계곡가 근처에 짐을 풀고 야영 준비를 갖추었다.

그리고 그날 밤.

쏟아질 것처럼 많은 별들이 빛나는 밤하늘 아래.

“완전 잘생겼다. 우리랑 놀래?”

“얘도 엄청 예뻐!”

밤비노가 몇 번이고 이 장소를 다시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윈터 페어리들을 만나지 못 했던 이유.

그리고 유더와 코델리아가 하루 만에 그들을 만날 수 있는 이유.

‘페어리구나.’

‘페어리지.’

서로 눈빛을 교환하는 절세미소년과 절세미소녀 앞에 하얀 머리칼을 가진 윈터 페어리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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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장 - 밀월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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