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0장 - 밀월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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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전기2의 플레이어블 캐릭터들은 대부분 미남미녀로 구성되어 있었다.
유일한 노인 캐릭터인 케인즈조차도 중후한 매력이 넘치는 미노년이었으니 말이다.
‘뭔가 욕 같단 말이지. 미노년.’
아무튼 이러한 플레이어블 캐릭터들 중에서도 얼짱사대왕이 있으니 바로 절세미소년 유더와 절세미소녀 코델리아, 인성과 실력과 재능과 인맥과 금수저를 타고난 걸로 모자라 얼굴까지 타고난 진주인공 막시밀리언, 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일러스트로는 구현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항상 가면을 쓰고 다니는 초절미녀 아델라이데였다.
‘루카스는 뭐랄까, 입구 컷의 기준이라는 느낌이지.’
페어리들에게 초대받을 수 있는 하한선이라고 해야 할까.
남자답게 잘생긴 호남아이긴 했지만 페어리들의 취향에서는 살짝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지금 이 순간, 페어리들이 사랑해마지 않는 얼짱사대장 가운데 둘이 한 자리에 모였으니 열광적인 반응이 일어나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완전 잘생겼어.”
“하루 종일 쳐다봐도 안 질릴 것 같아.”
“너무 예쁘다. 예뻐. 눈이 보석 같아.”
유더와 코델리아를 에워싼 윈터 페어리들이 달뜬 숨을 토하며 말했다.
이전에 만난 페어리들이 유더와 코델리아로 인형놀이를 하고 싶어 한 것과 달리, 윈터 페어리들은 감상 쪽에 더 취미가 있는 모양이었다.
‘민망해 죽겠어.’
항상 코델리아가 제일 예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코델리아였지만 막상 원색적인 칭찬을 쏟아내는 수십 명의 페어리들에게 둘러싸이자 민망함이 하늘을 찌를 것 같았다.
“부끄러워하는 것 봐.”
“귀여워.”
“깨물어 주고 싶다.”
윈터 페어리들의 감상에 더욱 민망해진 코델리아는 어쩔 줄을 몰라 땅만 쳐다보았다.
하지만 유더는 전혀 달랐다.
“짜릿해, 늘 새로워, 잘생긴 게 최고야.”
“꺄악!”
“이것도 말해줘, 이것도.”
“쟤꺼 말고 내꺼! 내꺼 읽어줘!”
윈터 페어리들이 폴짝폴짝 뛰며 손에 든 커다란 종이- 인간에게는 명함 크기 밖에 되지 않았지만-들을 흔들어댔다.
각각의 종이에는 느끼하고 달콤하고 아무튼 보는 순간 시공간이 오그라들 것 같은 대사들이 잔뜩 쓰여 있었다.
“자자, 줄을 서세요, 줄을. 음, 이번엔 이걸 읽어보죠.”
여유롭게 답한 유더가 종이 한 장을 고르자 페어리들이 다시 자지러지는 비명을 질러댔다.
“꺄아! 저거 그거잖아, 그거!”
“완전 명대사야.”
대체 뭔데 저러는 걸까.
코델리아가 호기심에 슬쩍 고개를 돌리자 유더가 그런 코델리아를 보았고, 순간 사악한- 아니, 잘생긴 미소를 지었다.
‘코델리아, 좀 도와줘.’
‘엉?’
뭘 어떻게? 아니, 여기서 뭘 도와달라는 건데?
‘상대역이 필요하거든.’
‘상대역?’
‘그냥 가만히 서 있기만 해.’
거의 텔레파시 수준의 눈빛 대화를 마친 유더는 코델리아에게 바짝 다가섰고, 코델리아는 순간 움찔하며 얼어붙었다. 그리고 동시에 윈터 페어리 수십이 입을 꾹 하고 다물었다. 몰입하기 위함이었다.
‘가만히 있어.’
다시 눈빛으로 말한 유더는 천천히 손을 뻗더니 코델리아의 탐스러운 머리칼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얼굴을 좀 더 가까이 했다.
‘미, 미친놈이 뭐하는 거야!’
하지만 유더는 멈추지 않았다. 숨결이 닿을 거리까지 얼굴을 밀착시키더니 코델리아의 푸른 눈을 똑바로 직시하며 말했다.
“나는 그럴 수 없소. 왜냐하면 내가······.”
‘네가 뭐!’
“당신을······.”
유더의 눈빛이 촉촉해졌고, 코델리아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그건 윈터 페어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유더가 코델리아의 뺨을 어루만졌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얼굴로 속삭이듯 말했다.
“사랑하니까.”
“꺄아!”
“어떡해! 어떡해!”
윈터 페어리들이 꺅꺅 비명을 질러대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페어리 퀸과 9서클 대마법사의 사랑’이라는 이야기에 나오는 장면이었는데, 결정적인 실수로 대마법사의 평생 염원을 무너트린 페어리 퀸이 자신을 죽여달라고, 사랑을 구걸하게 하더니 이제는 죽여주지도 않는 거냐며 울부짖자 대마법사가 페어리 퀸을 보듬으며 하는 대사였다.
“녹음했어? 녹음했지?”
“아예 영상까지 찍었어!”
윈터 페어리들이 미쳐 날뛰는 가운데 코델리아는 일단 유더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악!”
“미친놈이 뭐하는 거야!”
두근두근거렸잖아!
아니, 이게 아니고.
코델리아는 민망함을 억누르기 위해 유더를 몇 대 더 때린 뒤 열심히 심호흡을 했고, 윈터 페어리들은 저건 저거 나름대로 좋다고 또 열심히 영상을 찍어댔다.
‘하, 진짜. 설마 연기자였나?’
눈빛 연기가 보통이 아니었으니까.
생각해보니 페어리들이 내미는 대사들도 읽을 때마다 연기톤을 조금씩 달리한 것 같았다.
‘진짜 뭐하던 사람이지?’
코델리아가 새삼 의문에 빠져들 즈음, 다시 자기 대사를 읽어달라며 꺅꺅 거리던 윈터 페어리들이 순간 꽉하고 입을 다물었다.
유더의 새로운 연기가 시작되어서가 아니었다.
“길을 열어라!”
원피스 수영복에 가까운 미니 드레스 차림의 여느 페어리들과 달리 갑옷으로 무장하고 투구까지 쓴 페어리 하나가 우렁차게 외치자 지금까지의 소란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단번에 연회장 전체가 조용해졌다.
‘페어리 나이트.’
페어리 퀸을 지키는 최강의 페어리.
전투와 참으로 거리가 먼 페어리들 사이에 존재하는 유일한 전투병력이었다.
“유더 바이엘과 코델리아 체이스. 여왕님께서 너희를 부르신다.”
페어리 나이트의 선언에 윈터 페어리들 대부분이 축 처진 얼굴로 어깨를 늘어트렸다.
사실상 잔치는 끝났다는 선언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오도록.”
위엄있게 말한 페어리 나이트가 휙 돌아서자 윈터 페어리들이 옆으로 비켜서 유더와 코델리아에게 길을 열어주었다.
“재미있었어.”
“고마워.”
“나중에 또 놀자.”
한 마디씩 하는 윈터 페어리들에게 미소로 화답한 유더는 코델리아에게 눈빛을 보냈다.
‘이제부터가 진짜야.’
겨울의 가호를 내릴 수 있는 것은 윈터 페어리들의 수장인 페어리 퀸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유더와 코델리아는 그 이상을 노리고 있었다.
“이쪽으로.”
페어리 나이트의 안내를 따라 걷다보니 나무들이 좁게 늘어서 복도 같은 공간이 나타났다.
이전에 방문했던 페어리들의 거처와 거의 같은 구조였다.
그리고 그렇게 몇 걸음.
역시나 이번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시야가 순간 어지러워지는가 싶더니 유더와 코델리아는 어느새 여왕의 방에 도착해 있었다.
“페어리 퀸을 뵙습니다.”
“페어리 퀸을 뵙습니다.”
유더가 예를 표하자 코델리아 역시 얼른 따라서 예를 표했다.
“예의가 바른 아이들이구나.”
얼음으로 된 옥좌 위에는 푸른 빛이 감도는 하얀 드레스를 입은 페어리 퀸이 앉아 있었다.
이전에 만난 페어리 퀸이 금발이었다면, 이번에 만난 페어리 퀸은 은발에 가까운 백금발이었고, 드레스 색 때문인지 훨씬 더 차가운 인상을 주었다.
‘하지만 그래도 페어리는 페어리.’
심호흡을 한 유더는 자세를 바로한 뒤 페어리 퀸을 똑바로 직시했다.
“과연, 잘생겼구나.”
뺨을 살짝 붉히며 페어리다운 반응을 보인 페어리 퀸은 빙긋 미소를 지으며 코델리아를 돌아보려 했지만 순간 다시 유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유더의 손에 자리한, 일부러 보란 듯이 가슴쪽으로 들어 올린 오른손 약지에 자리한 은빛 반지를 보았기 때문이다.
“요정의 발걸음?”
‘역시나.’
알아보았다.
아니,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요정의 발걸음은 그리 흔한 물건이 아니었으니까.
더욱이 지금 유더 자신이 끼고 있는 요정의 발걸음은 ‘폴 페어리’들의 물건이었으니 말이다.
‘페어리들도 분류가 있지.’
스프링, 섬머, 폴, 윈터.
사계절을 상징하는 페어리들.
넓게 보면 다 같은 페어리들이지만, 인간들도 인종과 국가 등으로 서로를 구분하듯이 다소간의 차이가 존재했다.
유더와 코델리아가 이전에 만난 페어리들은 폴 페어리들로 윈터 페어리들에게는- 아니, 정확히는 윈터 페어리 퀸에게는 꽤 의미가 있는 존재들이었다.
“로렐라이가 준 것이니?”
예쁜 여자아이보다 잘생긴 남자가 더 좋다고 했던 폴 페어리 퀸.
“그렇습니다. 연회에 어울려주어 고맙다며 하사하셨습니다.”
바이콘을 격퇴해준 보상으로 받은 것이었지만, 유더는 일부러 그 사실을 숨겼다.
‘여기선 놀아준 거 말고는 딱히 해준 게 없으니까.’
물론 문라이트 역시 빼먹지 않았고 말이다.
“이 성곤 역시 로렐라이 님께서 하사해주신 물건입니다.”
유더가 부드럽게 말하며 눈짓하자 코델리아가 얼른 미리 꺼내두었던 문라이트를 들어올렸다.
“문라이트까지?”
“손님 대접은 확실하게 하는 거라며··· 저희도 과하다 생각했지만 내려주신 물건이라 감사히 받았습니다.”
유더의 대답에 윈터 페어리 퀸- 게르드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적어도 로렐라이가 해준만큼은 해줘야 할 것 같았으니까.
그렇지 않으면 어쩐지 모르게 지는 기분이 들었으니까.
‘페어리는 결국 페어리.’
귀엽고 사랑스러운 개구쟁이들이라 쓰고 어린애라 읽으면 되는 종족.
“으음, 으으음.”
잠시 신음하던 페어리 퀸 게르드는 이내 결심했다는 듯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윈터 페어리들이 폴 페어리들에게 뒤질 수는 없는 법이지.”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이렇게 직접 뵈니··· 정말······ 아닙니다. 이는 로렐라이 님께도, 게르드 님께도 예의가 아니겠지요.”
유더가 일부러 말을 하다가 말자 게르드의 파란 눈동자에 여러 가지 감정이 어렸다.
“왜 그러느냐. 무슨 말을 하려던 것이냐.”
“그것이······.”
“그것이?”
“로렐라이님 보다 아름다우신 것 같아서······. 분명 그 마음 씀씀이 역시 더 아름다우시겠지요.”
유더의 속보이는 대사에 코델리아는 얼른 고개를 숙여 표정을 감췄다.
‘왜 민망함은 내 몫인 건데!’
아니, 것보다 속이 보여도 너무 보이잖아!
하지만 유효했다.
페어리 퀸도 결국엔 페어리였으니까. 유더의 직설적인 속보이는 칭찬에 뺨을 살짝 붉히더니 헤실헤실 미소지었다.
“그렇지? 내가 로렐라이 언니보다 좀 더 예쁘지? 헤헤헤.”
두 손을 꼼지락거리며 좋아하던 게르드는 이내 표정을 바로 하더니 짐짓 헛기침을 토한 뒤 말했다.
“흠흠. 너희가 내 아이들을 기쁘게 하는 모습은 잘 보았다. 그러니 나도 로렐라이처럼 너희에게 상을 내리도록 하겠다.”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유더와 코델리아가 얼른 예를 표하자 흡족한 얼굴이 된 게르드가 짝짝 박수를 쳤다.
“요정의 결속을 가져오거라.”
순간 유더와 코델리아가 서로를 보았고, 둘은 같은 눈빛을 보냈다.
‘빙고!’
‘진짜로?!’
양쪽 모두 감탄사.
요정의 결속은 그럴만한 물건이었으니까.
요정의 발걸음처럼 직접적인 효력을 가진, S랭크에도 비견될 수 있는 아이템은 아니었다.
하지만 장래성을 고려하면 사실상 페어리들에게 얻을 수 있는 아이템들 가운데서 ‘끝판 삼대장’ 가운데 하나에 속하는 물건이었다.
‘사계절 페어리들의 가호를 담을 수 있는 팔찌.’
본래 페어리들이 내리는 가호는 지속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일회용 스티커 문신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요정의 결속에 가호를 담으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가호의 효과가 훨씬 더 강해질 뿐만 아니라 사용 가능한 기간 및 횟수 역시 대폭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진짜는 가호를 모두 모았을 때.’
사계절 페어리들의 가호만 모두 모아도 ‘사계의 대가호’라는 특수 가호를 발동시킬 수 있었는데, 여기에 풍수지화 사원소 페어리들의 가호까지 모두 더하면 영웅전기2의 최강 가호 가운데 하나인 ‘요정왕의 가호’를 만들 수 있었다.
‘다 모으기만 하면 완전 사기니까.’
당장 사계의 대가호만 하더라도 그 성능이 막강했으니까.
사계의 가호를 받는 자는 사계절 페어리들의 힘을 자유로이 부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예 세계로부터 요정의 하나로 인식되어 다양한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가호를 담지 않으면 그냥 은팔찌에 불과하다는 게 좀 문제긴 하지만, 어쨌든 모으면 되니까.’
오히려 문제라면 요정의 결속을 유더와 코델리아 중에 누가 갖느냐였다.
양쪽 모두에게 무척이나 유용한 아이템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고맙게도 게르드는 그런 고민조차 제거해주었다.
“너희는 잘 어울리는 한 쌍 같구나. 함께 차면 보기 좋겠지.”
그야말로 커플 팔찌.
아름답게 세공된 은빛 팔찌 한쌍을 내려다본 유더와 코델리아는 꽃이 피는 것처럼 화사한 미소를 머금었다.
“하하하.”
“호호호.”
정말 순수하게 기뻤으니까.
두 사람의 모습에 게르드는 뽐내듯 턱을 한 번 치켜들더니 혼잣말하듯 조심스럽게 물었다.
“로렐라이에 뒤지지 않지?”
“물론입니다.”
“정말 감사해요.”
척하는 순간 탁하고 나오는 유더와 코델리아의 대답이었다.
더욱 기분이 좋아진 게르드가 말했다.
“겨울의 가호를 담아줄 터이니 팔찌를 찬 팔을 내밀거라.”
이번에도 바로 명에 따른 유더와 코델리아였다.
윈터 페어리 퀸이 내리는 겨울의 가호.
요정의 결속에 담은 덕분인지 벌써부터 모든 추위에 내성이 생긴 기분이었다.
“자아, 그럼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너희는 어쩌다 이 깊은 곳까지 들어오게 되었니?”
외지인에 대한 호기심이 강한 건 폴 페어리든 윈터 페어리든 같았으니까.
유더는 숨길 것 없이 태양화초 때문에 프로스트 앤빌을 찾아가는 중이라 답했다.
“아··· 그랬구나. 태양화초를 꼭 찾았으면 좋겠구나. 그래야 약혼녀를 안아도 주고 덮쳐도주고 또··· 뭐라고 했지?”
“담벼락도 넘어줄 겁니다.”
“그래, 그럴 수 있지. 기운내렴, 어여쁜 아이야. 네 낭군은 꼭 태양화초를 손에 넣어 네 간병을 해줄 터이니.”
“어··· 네. 기···대하고 있어요. 호호.”
이게 대체 무슨 대화인지 회의감이 들었지만, 일단 웃는 얼굴로 답한 코델리아였다.
“흠, 좋아. 프로스트 앤빌에 간다면 내가 조금 더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구나.”
결심했다는 듯 고개까지 한 번 끄덕인 게르드가 옆에서 똑같이 이야기에 빠져들고 있던 페어리 나이트에게 말했다.
“에이다, 가서 요정의 깃털을 가지고 오거라.”
“알겠습니다, 여왕 폐하.”
페어리 나이트가 예를 표하고 물러나자 게르드는 유더와 코델리아를 돌아보며 말했다.
“요정의 깃털에 대해 알고 있느냐?”
‘네, 물론 알고 있지요.’
하지만 속마음과 달리 유더는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고, 게르드는 웃으며 설명했다.
“요정의 깃털은 공간을 가로지를 수 있게 해주는 신비한 물건이지. 프로스트 앤빌까지 단번에 질러갈 수 있게 해주마.”
“와, 정말요?”
코델리아가 적절하게 추임새를 넣자 게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란다. 프로스트 앤빌을 만든 고대 드워프들과 우리 윈터 페어리들은 한 때 무척이나 친밀한 사이였단다. 우리가 언제든 놀러갈 수 있도록 고대 드워프들이 프로스트 앤빌에 단번에 들어갈 수 있는 마법 좌표를 알려주었지.”
사실은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를 페어리들을 그나마 통제하기 위함이었지만, 좋은 게 좋은 거였으니까.
유더는 괜한 태클을 거는 대신 얌전히 주는 거나 받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여왕 폐하, 깃털이 하나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페어리 나이트의 말에 게르드가 살짝이지만 미간을 찌푸렸다.
요정의 깃털은 1회용, 그것도 1인당 하나씩 사용해야 하는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음··· 뭐, 그래도 괜찮겠지. 편법을 사용하면 되니까.”
“편법이요?”
코델리아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1인당 하나씩 필요한 아이템인데 대체 어떤 편법이 있다는 것일까?
“간단하단다. 둘이 꼭 끌어안고서 사용하렴.”
“네?”
“그럼 둘이 같이 이동할 거란다.”
정말 간편한 해결책 아니냐는 듯 게르드가 미소지었고, 코델리아는 유더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유더가 말하기를,
“음, 뭐, 별 수 없지.”
“뭔가 미소가 음흉한데?”
“아니거든? 나도 그냥 1인 1깃털 하고 싶거든?”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리자 게르드는 보기 좋다는 듯 빙긋 웃더니 다시 페어리 나이트를 보며 말했다.
“아이들에게 모이라 하거라. 손님들을 송별해야지.”
“알겠습니다, 여왕 폐하.”
페어리 나이트가 대답한 직후, 공간이 일렁이는가 싶더니 유더와 코델리아는 어느새 연회장 중심에 서 있었고, 그런 두 사람을 수십이 넘는 페어리들이 둘러쌌다.
“포옹한데, 포옹.”
“프리 허그?”
“베어 허그.”
“미친 애들이 뭐라는 거야, 허그야, 허그. 러브 허그.”
재잘재잘 저들끼리 잘도 떠든 윈터 페어리들은 예의 영상 녹화 장비를 저마다 들어올렸고, 게르드는 만면에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인간의 아이들아, 프로스트 앤빌에서 원하는 바를 얻기를 기원하겠다. 행복해지렴.”
“행복해!”
“잘 살아!”
프로스트 앤빌로 텔레포트하는 것과 행복해지는 것은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계속되는 윈터 페어리들의 성원 속에서 코델리아는 참담한 얼굴이 되더니 유더에게 말했다.
“빨리 가자.”
“그래.”
유더 역시 슬슬 민망해지기 시작했으니까.
“내가? 네가?”
“내가.”
단박에 알아들은 코델리아는 심호흡을 크게 하더니 가슴 앞에 양 팔을 엑스자로 겹친 뒤 똑바로 섰고, 유더는 한없이 어색하게 코델리아를 끌어안았다.
“와아!”
“키스해! 키스해!”
“키스해!”
더 이상은 무리였다.
유더는 급히 요정의 깃털을 발동시켰고, 두 사람은 공간을 가로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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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스트 앤빌.
고대 드워프들이 세운 위대한 왕국의 일곱 도시 가운데 하나.
“허억, 헉.”
“후우, 후.”
어두컴컴한 실내에 안착한 두 사람은 일단 거친 숨을 토했고, 어느 순간 고개를 들어 서로를 보았다.
“페어리들.”
한숨과 함께 바로 떨어진 두 사람은 다시 심호흡을 한 뒤 재빨리 저마다의 동작을 취했다.
코델리아는 마법의 빛으로 어둠을 밝혔고, 유더는 미리 만들어둔 프로스트 앤빌 지도를 꺼내 들었다.
“프로스트 앤빌?”
“내부 같아. 코델리아, 저쪽 좀 비춰줄래?”
“여기?”
“어, 거기.”
유더가 가리킨 곳에 빛을 가져가니 벽에 커다란 글씨가 음각되어 있었다.
“고대 드워프 문자네. 유글번역기야, 뭐라고 쓰여 있어?”
“유글 번역기?”
“구더 번역기가 더 좋아?”
“···유글이 낫겠군. 아무튼 기다려 봐. 기억 좀 더듬게.”
“더듬는다고 하니까 변태같아.”
“···기억 좀 살펴볼게.”
얼른 정정한 유더는 눈을 감고 기억의 궁전을 펼쳤다.
아무리 기억력이 좋은 유더라지만 모든 것들을 바로바로 기억해내는 것은 무리였다.
그렇게 몇 분.
떠올린 기억에 따라 고대 드워프 문자를 해석한 유더가 말했다.
“프로스트 앤빌. 1층. 로비.”
“오, 진짜 내부네.”
“아무래도 입구 바로 건넛방 같아. 다행이다, 입구 넘는 게 녹록치는 않으니까.”
프로스트 앤빌은 고대 드워프들이 건설한 지하도시였다.
입구는 ‘그레이트 게이트’ 하나뿐이었는데, 애당초 입구 자체가 크고 견고한데다가 각종 몬스터들이 모여있는 곳이라 통과하기가 쉽지 않았다.
‘운이 좋군.’
윈터 페어리들 덕분에 난관 중 하나를 손쉽게 돌파했으니까.
“겨울의 가호 발동했는데도 춥네.”
“완전 냉동고나 다름없으니까. 옷깃 더 여미고, 바로 출발하자. 일단 오늘은 1층 휴게실까지 이동한 다음에 쉬도록 하고.”
몬스터들과 함정 등등이 들끓는, 본격적인 탐사 활동은 지하 2층 부터였으니까.
유더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인 코델리아는 마법의 빛을 조금 더 크게 키웠고, 두 사람은 나란히 발걸음을 떼었다.
그리고 같은 시각, 전혀 다른 장소.
악마의 손의 간부들이 한 자리에 모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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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장 - 밀월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