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1장 - 프로스트 앤빌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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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도 없이 몰려듭니다!”
“파라고트 님!”
“아악! 살려줘!”
프로스트 앤빌의 차갑고 혹독한 질풍 사이로 전투원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마인 파라고트는 거친 숨을 토하며 정면을 노려보았다.
이미 악마화를 발동시킨 그의 두 눈에서 붉은 안광이 일었고, 몰아치는 눈보라 사이에 숨겨진 진실을 목도하였다.
‘너무 많아.’
수백- 아니, 어쩌면 수천 이상.
종류도 다양했다. 몇 가지 종으로 구분할 수가 없었다. 개중에는 파라고트가 난생 처음 보는 종류의 몬스터도 있었다.
“파라고트 님!”
다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앞이 아닌 뒤에서였다.
전열에 선 파라고트의 등 뒤로 비행형 몬스터인 윈터 하피들이 난입해 들어왔기 때문이다.
“잡것들이!”
파라고트가 노성을 토하며 오른 주먹을 내지르자 무시무시한 충격파가 일어 허공의 윈터 하피들을 덮쳤다.
그 위력이 얼마나 강한지 순간이지만 눈보라와 질풍 모두가 주변 일대에서 사라질 지경이었다.
쾅!
충격파를 뒤집어 쓴 윈터 하피는 한줌의 핏물이 되어 흩어졌고, 살아남은 몇 놈들도 공포에 질려 달아났다.
하지만 잠깐 뿐이었다.
이내 다시 눈보라가 몰아쳤고, 몬스터들 역시 몰려들었다.
“빌어처먹을!”
처음부터 이런 것은 아니었다.
고작해야 스노우 고블린 몇 마리가 나타난 게 시작이었으니까.
이상하지 않았다.
프로스트 앤빌 일대는 눈 덮인 설원이었고, 스노우 고블린들은 설원에 살았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해졌다.
스노우 고블린들이 무리 이동이라도 하듯 자꾸만 숫자가 늘어났고, 나중에는 스노우 고블린의 포식자인 윈터 베어들까지 나타났다.
그리고 몇 시간이 흐른 지금.
“파라고트 님! 더 이상 버틸 수 없습니다!”
전투원의 애달픈 비명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하여 이 자리를 이탈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벗어날 수가 없어!’
몬스터들이 너무 많았다.
흡사 노도처럼 끝도 없이 밀려오니 벗어날 재간이 없었다.
“파라고트 님! 빌케일 님이!”
바로 등 뒤에서 덮쳐오는 윈터 베어의 머리통을 박살내며 파라고트는 시선을 돌렸다.
저만치 멀리, 수많은 몬스터들에게 포위된 빌케일이 날개를 펼치며 떠오르고 있었다. 붉은 안광을 빛내며 무시무시한 마력을 발산했다.
콰가강-!
강렬한 붉은 기파가 빌케일과 주변을 휩쓸었다. 단번에 지름이 20미터는 족히 될 거대한 공터가 생겨났고, 그 안은 몬스터들의 피로 가득 찼다.
“커헉!”
하지만 빌케일 역시 무사하지 못 했다.
연달아 너무 많은 마력을 소모한 그녀는 바닥에 무너지듯 주저않더니 검붉은 피를 토했다.
“빌케일!”
파라고트는 거칠게 지면을 박찼다.
공포라는 감각 자체가 마비라도 된 것처럼 몬스터들이 재차 빌케일에게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파라··· 고트······.”
빌케일의 붉은 머리칼 사이로 돋아나 있던 뿔이 조금씩 작아졌다.
지나친 소모로 악마화가 풀린 탓이었다.
“우오오!”
빌케일에게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거대한 주먹으로 한 번에 후려친 파라고트는 왼팔로 재빨리 빌케일의 허리를 안았다.
“빠져나가야 해.”
더 이상 이 자리를 지키는 것은 무리였다. 어떻게든 도망쳐야만 했다.
“시시오트의 봉인을 완전히 해제해.”
“그럼······.”
“제멋대로 날뛰겠지. 시간을 벌어줄 거다.”
악마의 손이라 하여 소환한 악마를 완벽하게 다룰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계약을 통해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긴 했지만, 상대는 결국 악마.
악마의 손을 일방적으로 이용하려는 놈들 또한 적지 않았다.
시시오트는 후자에 속하는 악마였다.
때문에 수장은 아스모데우스에게 받은 힘으로 시시오트의 능력을 일부 봉인하여 놈을 악마의 손의 노예로 만들었다.
“일단은 우리가 살아야 한다.”
“시시오트가 미쳐 날뛰면 제일 먼저 우리부터 죽일 거야.”
맞는 말이었다. 파라고트는 주먹으로 땅을 찍어 재차 충격파를 일으킨 뒤 그레이트 게이트 앞에서 필사적으로 농성 중인 전투원들을 보았다. 일백 명 가까이 끌고 왔거늘 남은 것은 고작해야 서른 명 남짓이었다.
“밖으로는 도망칠 수 없어.”
몬스터들이 끝도 없이 밀려들고 있었으니까.
상상한 것 이상으로 몬스터들의 숫자가 많으면 아무리 파라고트라 해도 노도에 휩쓸려 죽고 말 터였다.
파라고트 역시 그 사실을 알았기에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안으로 간다.”
그레이트 게이트 안쪽으로.
안에 들어가서 문을 봉하고 시시오트의 봉인을 풀어버린다.
“문을?”
빌케일이 당황해서 물었다.
그레이트 게이트는 단단히 봉인된 상태였으니까.
흐레스벨그 백작가가 프로스트 앤빌에 도굴꾼들이 침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새로 설치해둔 거대한 봉인 때문이었다.
“내가 연다. 남은 힘을 총동원하면 봉인을 부수고 문을 여는 것까지는 가능할 거다.”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고, 시시오트의 봉인을 푼다.
시시오트로 몬스터들을 상대하게 한 뒤 문 안쪽에서 휴식을 취해 힘을 회복한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봉인을 해제하면 이상함을 느낀 코델리아가 접근하지 않을 것을 우려해 손대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회복한 뒤에는 시시오트를 다시 봉인하면 된다. 시시오트 놈도 몬스터들을 상대하느라 지쳐있을 터이니.”
“좋아, 네 말이 맞아.”
빌케일도 고개를 끄덕였다. 숨을 몰아쉬며 얼마 안 남은 마력을 한 데 모았고, 파라고트는 거칠게 지면을 박찼다.
“문을 연다! 안쪽으로 대피한다!”
크게 소리친 그는 허공에서 일단 빌케일을 전투원들을 향해 집어던졌다.
전투원들이 허둥거리며 빌케일을 받아내는 순간 주먹을 당겼고, 전력을 한 점에 집중하였다.
기술명 따위는 없었다.
그저 순수한 힘의 발현.
주먹을 내지른 순간 붉은 섬광이 그레이트 게이트를 강타했다. 높이만 이십여 미터는 될 그레이트 게이트 전체가 크게 요동쳤고, 그레이트 게이트 전면에 펼쳐져 있던 흐레스벨그 백작가의 황금빛 마법 봉인이 단번에 박살났다.
“우오오오!”
파라고트는 멈추지 않았다. 충격으로 살짝이나마 열린 그레이트 게이트의 틈바구니 속에 손을 집어넣었고, 전력을 다해 문을 열었다.
“크오오!”
크기만큼이나 무지막지한 무게를 자랑하는 그레이트 게이트였다.
전력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두어 사람 들어갈 정도의 틈을 만드는 것이 한계였다.
“서둘러라!”
파라고트가 제일 먼저 뛰어들며 소리쳤고, 전투원들이 급히 파라고트의 뒤를 따라 게이트 안쪽으로 이동했다.
“파라고트 님!”
“저희도!”
“아악!”
전열- 제일 뒤에 서서 몬스터들을 저지하던 전투원들이 아우성을 질러댔지만 파라고트는 그들을 무시했다.
열 명 정도 되는 전투원들이 사투 속에 죽어가는 동안 마지막 힘을 다해 그레이트 게이트를 닫아버렸다.
쿵!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동시에 빌케일이 수인을 맺어 봉인 해제의 의식을 마무리 지었다.
“허억··· 헉······.”
파라고트는 거친 숨을 토하며 식은땀을 흘렸다. 문 너머로 봉인이 풀린 시시오트의 강렬한 마기가 느껴진 탓이었다.
“파라···고트······.”
빌케일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파라고트를 불렀다.
두 눈에는 공포와 두려움, 동시에 살았다는 안도감이 뒤섞여 있었다.
파라고트가 말했다.
“안으로 간다.”
“안으로?”
“조금 더 안쪽으로. 문 바로 앞에 있는 건 위험하다.
봉인이 없어졌으니 근력만 있으면 누구든 문을 열 수 있었다.
몬스터들이 되었든, 미쳐 날뛰는 시시오트가 되었든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안으로 들어가 몸을 숨긴다.
불을 피워 냉기를 몰아내고, 뭐라도 먹어 체력을 회복한다.
“네 말이 맞아.”
고개를 끄덕인 빌케일은 전투원들에게 앞으로 나아갈 것을 명한 뒤 바닥에 주저앉은 파라고트를 부축했다.
“코델리아는 이미 죽었을 거다.”
“그래, 죽었겠지.”
몬스터들이 이 정도로 몰려들었으니까.
아마 프로스트 앤빌 근처에 몰려든 몬스터들에게 잡아먹혔으리라.
“어떻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어.”
어째서 갑자기 몬스터들이 몰려든 것일까.
태양화초는 일종의 전설이었다.
때문에 태양화초가 개화할 때 몬스터들이 몰려든다는 사실 역시 세간에는 제대로 전파되지 않았다.
애당초 프로스트 앤빌 근처에는 아무도 살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무튼 가자.”
“그래, 힘을 회복해야지.”
전투원 몇을 죽여 혼과 생기를 흡수하면 어느 정도 체력이 돌아오리라.
파라고트와 빌케일이 비슷한 생각을 하며 나아갈 때였다.
어느 순간.
정확히는 복도의 어느 지점에 들어섰을 때.
파라고트는 직감했다.
빌케일 역시 같았다.
“이게 뭐야.”
말을 내뱉은 직후.
천장과 벽, 바닥에서 마법의 불꽃이 솟구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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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응?”
유더와 코델리아는 서로를 보았다.
새하얀 빛의 고리가 서로를 감쌌기 때문이다.
“레벨 업?”
“아, 함정에 몬스터들이 걸린 건가?”
“와, 여기까지 경험치 획득 범위가 돼?”
“아슬아슬한 한계선 정도가 아닐까? 지금 3층이니까.”
1층 복도에 잔뜩 설치해둔 마법진들은 유더와 코델리아의 공동 작품이었으니 경험치를 함께 먹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코델리아는 다시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그런데 이런 간접 사냥은 경험치 효율이 별로지 않나?”
그런데 단번에 레벨 업을 했다고? 벌써 20레벨인 두 사람인데?
“뭐, 박리다매인가 보지. 잔뜩 걸린 게 아닐까?”
그렇게 말한 순간이었다.
“응?”
“어?”
다시 한 번 빛의 고리가 두 사람을 감쌌다.
연이은 레벨 업.
더욱이 이번에는 연달아 세 개나 생겨났다.
이쯤 되니 유더 역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뭐지?”
“거물이라도 걸린 거 아닐까?”
“내가 직접 만들긴 했지만 거물 잡을 정도의 마법진은 아닌데?”
“모르지, 실피였다가 마법진 맞고 으악 했을지도.”
코델리아의 주장에 유더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가능성이··· 있어!”
“어, 그건 내 대사인데.”
“뭐라는 거야.”
“아무튼 레벨 업 하니까 좋다. 안 그래도 요즘 마력 후달렸는데.”
마녀화는 극적인 성능 향상만큼이나 많은 마력을 요구했으니까.
마법 특화 캐릭터답게 레벨 업 할 때마다 마력이 크게 성장하는 코델리아였으니,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 같은 레벨 업이었다.
더욱이 레벨 업의 효과는 단순히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마녀의 마법서는 일정 레벨마다 펼칠 수 있는 페이지가 늘어나는 구조였는데, 여기서 이제 1레벨만 더 높이면 새로운 장을 열 수 있을 터였다.
코델리아가 기뻐서 헤실거리자 저도 모르게 표정이 풀린 유더였지만 이내 다시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나도 좋기는 한데··· 조금 서두르는 게 좋겠어. 일단 몬스터들이 1층에 진입했다는 이야기니까.”
“알았어, 서두르자.”
유더의 말에 동의한 코델리아는 잠시 멈추었던 발걸음을 다시 내디뎠다.
“아, 여기서부터는 나도 알 것 같아. 저쪽으로 가면 되는 거지?”
“어, 맞아. 저쪽으로 가면 5층으로 질러갈 수 있는 비밀 통로가 있어.”
본래라면 3층에서 5층까지 가는 사이에 프로스트 앤빌에 자생하는 여러 몬스터들과의 사투를 거쳐야 했지만, 일단 모두 건너뛰기로 마음먹은 두 사람이었다.
‘무기 얻고 잡으면 되니까.’
무기고에서 파워 웨폰 얻은 뒤에 잡는 쪽이 훨씬 더 수월할 테니까.
썩은물인 두 사람에게 경험치의 보고인 몬스터들을 잡지 않고 지나간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파~워 웨폰 뚜 루루 뚜루~ 귀여운~ 뚜 루루 뚜루~ 앤빌 속~ 뚜 루루 뚜루~ 파워 웨폰!
“뭐하냐.”
“뭐하긴, 기쁨의 노래지.”
원작에서는 태양화초를 지키는 거대한 백사를 잡기 위해 파워 스피어 하나를 얻고 말았지만 이번에는 다를 터였으니까.
뭐가 있을까.
뭘 챙길 수 있을까.
“귀여운~ 뚜 루루 뚜루~ 파워 웨폰!”
코델리아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앞장섰고, 유더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으며 생각했다.
‘귀엽긴 하네.’
말로 하면 으르렁 거릴 테니 속으로만 생각해야지.
“뭐해! 빨리 와!”
“그래, 그래. 뚜루뚜루 파워웨폰.”
“뚜 루루 뚜루.”
“뚜루뚜루뚜?”
“뚜 루루 뚜루.”
“그래, 뚜 루루 뚜루.”
“흠, 좋아.”
어쩐지 모르게 크게 만족한 코델리아는 방긋 미소를 지었고, 유더는 다시 피식 웃은 뒤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30분 뒤.
두 사람은 고대 드워프들의 무기고 앞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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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1장 - 프로스트 앤빌 #2 > 끝